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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정부 출범과 '진보-좌파'의 과제

[진보논평] 민주노총 6.30총파업에 부쳐

19대 대선 결과

지난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 지형 또는 선거 구도는 줄곧 이른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런데 이는 다른 한편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왜곡, 은폐시키는 작용을 해왔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정권 아래에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 된 1997년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자유주의 정권이 일부 민주적 조치를 시도한 것은 맞지만 그들 정권이 내세운 개혁이란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서 한국사회의 힘 관계가 자본(시장) 위주로 완전히 기울어지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로써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그 정치적 효력을 사실상 상실했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 사회가 완연한 부르주아민주주의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이 노골적인 친자본 정권으로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에서도 그 구체적 양상은 각 나라가 처한 조건에 따라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또한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한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는 늘 과부족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자본의 힘이 노동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는 여전히 쟁점이 되며, 투쟁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지난 촛불집회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게 나라냐' 등이 외쳐진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사실 박근혜 정권이 보인 비정상적 행태가 워낙 두드러져서 그렇지만 민주공화국이 원래 그런 것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실제 문제가 되는 매우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민주(주의)가 늘 과부족 상태에 처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진짜 문제에 직면하게 될 시점은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답게, 나라답게 만든 다음부터다. 물론 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시점은 더욱 빨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이번 19대 대선 결과가 한국사회, 한국정치에 가져온 가장 중대한 변화는 기존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더는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에 있다. 즉 정상적인 부르주아민주주의 자체가 쟁점이 되고, 투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이점은 한국의 보수세력에 의해 먼저 시도됐다. 지난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한국의 보수 세력은 한국사회 정치지형을 보수 대 진보 또는 우파 대 좌파의 대결구도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자유주의 세력도 이를 따랐다. 다만 자유주의 세력은 보수를, 특히 선거 시기에, 반민주 세력으로 묶어두고자 했다.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때문인데, 하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여전히 반(비)민주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 세력 자신이 보수세력 못지않게 반(비)노동적 행위와 정책을 펴는 것을 왜곡, 은폐시키려 한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언론은 이런 실상을 덮기 위한 '한국형'(?) 정치적 레토릭으로 각 정치세력 앞에 '친(親)'자를 붙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친노, 친이, 친박, 친문' 등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먼저 '진보(세력)=민주(세력)', '보수(세력)=반민주(세력)'이라는 등식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부르주아민주주의 자체를 향하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뒀다.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두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측면은, 자유주의 세력은 부르주아민주주의 아래에서나마 충분히 가능한 조치마저 취하지 않고 단지 보수세력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리는 선에서 머물렀다는 점이다. 또 한 측면은, 이점이 더욱 중요한데 부르주아민주주의 아래에서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진전, 향상시킬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와 투쟁을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아래 묶어두는 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즉 한국사회 정치지형 또는 계급역관계가 노동 대 자본의 대립구도로 형성되는 것을 차단했다. 부르주아민주주의 아래에서의 민주(주의)의 진전과 향상은 오직 노동 대 자본의 힘 관계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치명적이다.


2016년 총선에서 이미 한국의 정치지형에 일부 변화가 발생했다. 즉 기존 민주 대 반민주 구도의 토대가 되었던 거대 양당 구조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만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은 거대한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이번 19대 대선에서 다시 그 같은 양당 구조가 부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촛불집회로 인해 양당 구조는 더욱 약화되고, 기존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넘어 설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10년 만에 '진보정당'이 대선에서 다시 독자완주를 했다. 단지 형식만 부활한 것이 아니다. 그 이전 민주노동당 시기의 경우 독자출마는 사실 전체 정세와는 무관한 자체 행사 수준의 것이었다. 그나마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진보정당(정치)'는 존재감이 계속해서 후퇴했다. 자유주의 세력의 2중대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이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다시 찾아왔다. 물론 이번에도 대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 자체 행사 차원은 넘어 선 것이었다.

두 가지 과제

이제 '진보-좌파' 세력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 미완의 촛불집회 또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는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끝까지 부여잡고 계속해서 이를 확장, 확산시켜야 하는 과제다. '진보-좌파'는 촛불집회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한 아래로부터의 직접민주주의를,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단지 '적폐청산'으로 대체할 수 없는, 정치사회적 요구를 실현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 과제는 정당 정치 또는 공식 정치 차원의 활동에 머물러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계급) 정치, 시민들과 함께하는 거리 정치, 다양한 이슈를 뿜어내는 운동(지역)정치, 성평등을 추구하는 성정치,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지향하는 생태정치,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정치, 시민이 일상에서 부딪히고 있는 생활정치 등을 확장, 확산해 나가야 한다. 정당 정치, 공식 정치는 바로 이를 확장, 확산하기 위한 과정, 수단이 되어야 하며 그 자체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 정치, 공식 정치 차원에서 정치적 독자성과 독립성을, 단지 형식에서만이 아니라, 실질(내용)적인 측면에서 더욱 강화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진보정당' 안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동정부' 문제는 그런 면에서 검토할 여지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공동정부'에 어울릴 정도의 조건과 힘이 갖춰져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배 세력의 일부에 해당하는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할 것도 없이 지배 세력의 일부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안별 협력, 연대, 공조마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아니 그것들은 오히려 필요에 따라 먼저 제안하고, 그 속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노력과 시도를 다 해야 한다. 아무리 원내 소수정당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의 정치지형도 그 어느 시기보다 그럴 수 있는 조건이 가장 확대되어 있다. 무엇보다 촛불집회가 제기한 문제를 자신의 과제로 부여잡는다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진보정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2중대 또는 단순한 야당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야당은 나머지 정당만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이들 정당은 모두 문재인 정부 오른쪽에서의 야당이다. 문재인 정부가 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개혁조차 발목잡고, 방해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비록 '협치'를 내세워 눈치 보기를 하고 있지만, 조그만 실수라도 나오면 언제든 달려들어 분탕질하려 할 것이다. 아마 그 결정적인 정치적 시험대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정' 국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진보정당'이 왼쪽에서의 야당 역할을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보수세력의 준동을 저지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왼쪽에서의 비판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나아가 한국사회, 한국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구체적 방안에 대한 큰 틀에서의 정치적 비전과 전망을 독자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를 보완, 보충하는 역할을 넘어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고 강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적어도 '진보정당'이라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분수령

민주노총은 올해 2월 대의원 대회를 통해 6월 30일 이른바 '사회적총파업'을 결의, 결정한 바 있다. 올 2월은 알다시피 사실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것이 기정사실로 여겨지던 정세였으며, 민주노총은 바로 정권교체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차원에서 그 같은 결의, 결정을 한 것이다.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가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시도에 맞서 정면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집행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민주노총은 비록 박근혜 정권의 일방적인 행정지침까지는 막지 못했지만 국회에서 노동개악 안이 처리되는 것은 저지해냈다. 현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안을 그대로 처리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노동개악 저지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에 불과하다. 산적한 노동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 모두를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해결하기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른 사안도 그렇지만 특히 노동 문제는 단순한 하나의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계급적 차원의 문제로서 체제와 직결되는 문제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을 2020년까지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벌써부터 내부에서 임기 내, 즉 2022년까지로 미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문제 해결, 노동조합(특히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조) 인정과 노동3권 보장,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실업 해소 등 4대 정책 의제와 산업·업종별 교섭틀 구성을 위한 노정 직접 교섭을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특히 정부 권한으로 즉각 시행할 수 있는 과제들을 제시했다. 최저임금 1만 원 실현을 위한 로드맵 제시, 노동개악 4대 지침 폐기, 노동시간·통상임금 등 잘못된 행정지침·행정해석 폐기, 전교조와 공무원 노조 합법화, 특수고용 노동자 노조 인정,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들과 원청의 교섭 성사, 한상균 위원장 등 구속 노동자 석방, 하청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 조처,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취소,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4인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 산별 교섭 촉진 등이 그것이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문재인 정부의 선의를 기대하거나 기다려서는 무엇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와의 사회적대타협을 위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독자적인 투쟁을 앞장서 조직하는 투쟁 사령부로서의 역할을 계속해서 해야 한다.

민주노총 6.30 사회적총파업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향후 국정운영 방안과 정국의 향방을 가르는 일차 분수령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노총은 물론, '진보-좌파' 세력도 6.30 사회적총파업 조직화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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