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열차여행은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체험입니다. 우선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함을 체험합니다. 미국과 중국을 합친 것보다도 크고 남북한을 합한 넓이의 100배가 넘는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두 개의 대륙에 걸친 러시아를 온몸으로 헤쳐 나가다 보면 공간의 광활함이 뼈에 사무쳐옵니다. 이틀을 꼬박 여행해도 오막살이 한 채 볼 수 없는 대지의 막막함을 그야말로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시베리아에는 겨울과 여름,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극한의 기후 속에 원시의 체취가 가득 남아있습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는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와는 다른 시간의 원칙이 지배합니다. 시베리아횡단열차여행이야말로 러시아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머나먼 선조들이 마침내 한반도에 정착하기까지 남하했던 길이기도 하며, 또 다른 선조들이 북방을 정복하기 위해 달려 나갔던 길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애국지사들이 몸을 숨겼고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던 수많은 까레이스키들이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여독으로 죽음을 맞았던 길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러시아 땅에 묻혀있던 우리 민족이 간직해 온 대륙에의 꿈을 되찾기 위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겨울 시베리아와 바이칼의 2월, 눈이 한없이 내리며 실외는 춥지만 실내는 따뜻합니다. 극야현상이 나타나므로 오전 8시쯤에 해가 뜨고 오후 4시쯤에는 어두워집니다. 일생에 한번쯤 체험해보고 싶은 ‘무한상상’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풀어야 할 ‘북방(北方)’에 대한 로망이나 염원, 우리 민족과 역사에 대한 회한이 있다면, 올 겨울 조용히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로 가십시오. 먼 옛날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떠났던 그곳에서 깊은 화해를 만날지도 모릅니다.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1을 아무우르2를 숭가리3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4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5이 멧돌6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것도
쏠론7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잦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8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ㅡ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9 보래구름10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 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백석의 <북방(北方)에서>)
[주(註) 1.음지산맥 부근 2.흑룡강 주변 3.송화강 4.창포 5.만주의 유목민족 6.멧돼지 7.남방 퉁구스족 8.돌로 된 비석 9.몹시 불고 10.보랏빛 구름]
이번 <겨울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로>는 특별히 시베리아학교 정태언 교장선생님이 동행하여 실감나는 현장인문강의를 들려주십니다. 정 교장선생님은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대학원, 모스크바국립대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였고,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외대, 연세대 등에서 러시아어문학을 강의하였고, 현재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러시아문학과 시베리아에 대해 강의하며 2010년 시베리아 답사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시베리아를 뒤지고 있습니다. 또한 2008년 월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여 소설가로 활동 중이며 소설집 <무엇을 할 것인가>, 역서 <백학>(라술 감자토프 시집) 등이 있습니다.
여행 첫째 날,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항공편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시발점입니다. ‘동방의 정복자’라는 도시 이름답게 러시아가 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육성한 군사도시였죠. 유럽의 모든 나라로 연결되는 기나긴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종착역이기도 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지금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관문으로서 물류의 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이곳이 우리에게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민족의 숨결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로서 조국을 되찾기 위해 애쓰던 애국지사들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연해주 독립운동지 신한촌기념비와 영화 <태풍> 촬영지, 중앙광장(혁명광장) 등을 둘러봅니다.
다음날, 시내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수리전망대, 니콜라이2세 개선문과 잠수함박물관(외부), 러시아 전쟁영웅들을 기리는 영원의불꽃 등을 탐방하고 이날 오전 11시 2분 출발하는 시베리아횡단열차 007호에 몸을 싣습니다.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이 열차는 3박4일간 4,115km를 달립니다. 약 70시간 동안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며, 겨울은 무한의 눈보라로 한여름 드넓던 들꽃 지역과 자작나무·전나무숲, 끝없이 펼쳐졌던 초원지대를 어떻게 상상을 절하는 세계로 바꾸어놓는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입니다.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동서횡단철도로, 그 길이가 9,288km에 달합니다. 지구 둘레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며 서울-부산간(약 444.3km)을 22번 이상 달리는 셈입니다. 1891년에 시작한 철도 공사는 무려 25년이 걸려 191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따라서 90여 개의 도시가 발달되어 있는데 열차는 약 50개 역에 정차합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쉬지 않고 6박7일간 달리는데, 비행기로 직행해도 9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여행 3∼4일째,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던 우리는 하바롭스크→카림스카야→치타→울란우데를 거쳐 드디어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에 도착합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지 70여 시간 만에 닿게 되는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 도시들 중 유일하게 35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유럽 수준의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유배되어온 데카브리스트(Dekabrist, 12월당원)의 영향 때문입니다.
젊은 귀족 장교들인 이들이 쿠데타 실패로 유배된 곳이 이르쿠츠크였고, 이곳은 처음에는 강제노동의 유형지였지만 이들이 점차 정착하면서 러시아 귀족문화와 유럽 수준의 문화가 꽃피게 되는 파격적인 변신을 한 것입니다. 20세기 초에는 반혁명 백군의 본거지로서 불꽃 튀는 격전장이 되기도 했지요.
여행 5일째, 일행은 바이칼호 알혼섬을 향해 달립니다. 바이칼은 ‘시베리아의 진주’입니다. 해발고도 1,500∼2,000m의 산들로 둘러싸인 바이칼 호수는 자연경관이 일품입니다. 호수가 낮은 지대에는 숲이 울창하고, 멀리 봉우리에는 만년설이 눈부십니다. 40m 깊이까지 들여다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물을 보면 누구나 저절로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름이면 갖가지 색상의 야생화들이 호숫가를 뒤덮는 장관이 연출되는 바이칼호는 가히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릴 만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입니다.
바이칼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입니다. 바이칼 호수와 몽골 주변에 흩어져 살던 일족이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다시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와서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원주민인 부리야트족은 우리의 사촌쯤 되는 셈입니다. 1만 3천여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이 흘렀건만 그들과 우리는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닮은 꼴입니다.
바이칼은 ‘러시아의 갈라파고스’입니다. 바이칼 호수는 오랜 역사와 고립된 위치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이채로운 담수 동물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물이 1,080여 종, 동물은 1,550여 종에 이르며, 이중 80% 이상은 이곳에만 있는 고유종으로, 이곳의 유일한 포유류인 바이칼바다표범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담비, 수달, 시베리아족제비, 고라니, 흰꼬리수리, 새매부엉이 등 다양한 희귀동식물을 볼 수 있어 진화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바이칼은 수많은 ‘세계기록의 보유자’입니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Irkutsk)와 부랴티아(Buryatia)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는 2,500만 년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호수요,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입니다. 또한 저수량이 22,000㎦로 담수호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이자,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바이칼호의 면적은 31,500㎢,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km, 최단 너비 27km이며, 둘레는 2,200km에 이릅니다. 수심이 깊을 뿐 아니라 물도 맑아서 물밑 가시거리가 최고 40.5m나 됩니다. 약 330여 개의 강이 이곳으로 흘러드는데, 밖으로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Angara)강 하나뿐이라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호수 안에는 총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것은 길이 72km인 알혼섬입니다. 바이칼이라는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 러시아어로는 Байгал)에서 연유했다고 합니다.
이르쿠츠크에서 버스편으로 약 4∼5시간 달리면 알혼(Olkhon)섬 앞입니다. 바지선으로 20분쯤 가면 알혼섬입니다. 알혼섬의 크기는 730㎢이며, 동시베리아 남부 바이칼호 안에 있는 호중도(湖中島, 호수 안의 섬)입니다. 알혼섬은 바이칼호 안에 있는 18개의 호중도 가운데 가장 크며, 섬 안에 또 호수가 있습니다. 섬의 외관은 수백만 년에 걸쳐 구조 이동이 이루어졌으며, 들판과 대지 사이에 해협의 공동(空洞)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거주한 역사가 오래 되었고, 최초의 토착민은 브리야트족과 야쿠트족의 조상인 쿠리칸족입니다. 17세기에 러시아 탐험가들이 처음 방문하였고, 구소련 시기에는 추방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합니다.
한민족과 바이칼, 알혼섬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태고부터 숱한 신비를 간직해 온 바이칼은 단순히 자연의 물구덩이가 아니라 천혜의 인종을 잉태한 태반이고 다양한 문화를 융합시킨 허브이며, 숱한 민족의 수구지심(首丘之心)을 불러일으키는 본향이었습니다. 빙하기 때 바이칼은 고립된 오아시스와 같은 열수(熱水)광산이었지요. 당시 구석기인들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열수가 치솟는 온화한 바이칼 주변에 머물고 있다가 해빙기에 큰 홍수가 일어나자 남하해 한반도 일원에까지 정착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몽골, 만주, 한국, 브리야트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인이 매우 가까우며 바이칼 주변의 야쿠트인과 브리야트인, 아메리카인디언, 그리고 한국인의 DNA가 거의 같다는 학설도 있고 최근엔 ‘조선’이나 ‘고려(고구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Khori 또는 Qori)’나 ‘고올리(Kholri)’에서 유래된 말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불을 토하며 무너진 산이 물로 변하여 커다란 바다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바이칼은 서있는 불(standing fire)이다.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 브리야트족들이 믿는 바이칼 형성에 관한 전설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바이칼은 동경과 함께 한없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알혼섬은 세상의 샤머니즘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섬의 최고봉인 지마봉(Zhima, 1,276m)에는 신의 메시지를 받으려는 샤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혼섬 후지르마을에 있는 부르한바위는 모든 샤먼들의 고향입니다. 바이칼 어디를 가나 샤머니즘의 실상을 만날 수 있고 언덕을 넘는 고갯마루에는 돌무더기 서낭당이 있으며 바이칼을 굽어보는 곳에는 세르게라는 장승이 서 있습니다.
여행 6일째, 알혼섬에서 우아직 4륜구동차로 투어에 나섭니다. 칭기즈칸이 묻혔다는 전설의 바위 부르한바위를 둘러보고 알혼섬 북부빙상투어에 나섭니다. 사라예스끼 해변을 따라 뉴르간스크의 사자섬과 움직이는 악어바위, 삼형제바위, 최북단 말라예모래와 발쇼에모래를 볼 수 있는 하보이곶을 산책한 후 잊지 못할 야간 별자리 관측과 캠프파이어를 즐깁니다(알혼섬은 특별히 사계절의 별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별자리 관측의 명소임). 신령이 기득한 알혼섬 후지르마을에서 1박 합니다.
다음날, 다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면 이르쿠츠크 관광이 기다립니다. 이르쿠츠크를 오늘의 ‘시베리아의 파리’로 만든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기념관(발콘스키공작), 이르쿠츠크의 대표적 건축물이자 데카브리스트들의 묘가 있는 즈나멘스키수도원, 19세기 후반에 이르쿠츠크 대화재로 소실된 전통가옥들을 고증에 의해 재현해 놓은 시내중심가의 문화·휴식공간 통나무집마을130번가 등을 답사하고, 바이칼 물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유일한 강인 아름다운 겨울 앙가라 강변을 산책합니다. 러시아 전통사우나 ‘반야’ 후 맛보는 바이칼보드카와 대표생선 ‘오믈’, 현지특식 러시아 꼬치구이 ‘샤슬릭’의 체험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자료 출처 : 정태언 시베리아학교 교장선생님, 최연혜 저 <시베리아 횡단철도 잊혀진 대륙의 길을 찾아서> 등에서)
여행 8일째, 우리는 이르쿠츠크에서 항공편으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합니다.
<겨울 시베리아횡단열차와 바이칼 8일 여행>의 자세한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기 일정은 항공 및 현지 사정에 의해서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 시베리아횡단열차와 바이칼 여행>은 2017년 2월 9일(목)부터 16일(목)까지 8일간 진행되며, 러시아문학박사(모스크바국립대)이며 인문학습원 시베리아학교 교장선생님인 정태언 박사가 동행합니다. 항공편 등 사전예약관계로 참가신청은 2017년 1월 8일 마감합니다. 이번 답사는 시베리아캠프(캠프장 김창원·염재동)와 마중여행사(주)가 준비·진행합니다.
끝으로, 애절하게 전하는 <앙가라강의 전설>을 들려드립니다.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우리식 어법으로 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었다. 이 땅에는 바이칼이라는 늙은 영웅이 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바람을 부르고 구름을 일으키며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예전의 명성과 이름만 추억처럼 남은 늙은 영웅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는 바이칼에게는 여전히 하나의 자랑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름다운 딸이었다. 호수 빛 눈에 황금 색깔의 머릿결을 지닌 바이칼의 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바이칼은 딸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깊어갔다. 그 딸의 이름은 앙가라였다.
바이칼은 딸의 아름다움을 본 다른 사람들이 딸에게 혹시 해를 가할까 밤낮 걱정을 했다. 걱정 끝에 바이칼은 딸 앙가라를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도록 호수 깊이 숨겨놓았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끌려 바이칼 호수 속에 갇히게 된 앙가라는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앙가라의 눈물은 호수의 물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바이칼 호수는 앙가라의 눈물로 점점 푸른 빛을 더해갔다. 앙가라의 슬픔이 호수에 짙게 배었기 때문에 호수는 더 푸르러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앙가라는 물 표면으로 나와 한숨을 지으며 바이칼 빛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갈매기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울며 날아왔다.
“갈매기야, 너는 어디서 날아왔니? 나도 너처럼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구나.”
앙가라가 한숨을 쉬며 갈매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갈매기가 끼룩끼룩 소리를 내더니 앙가라에게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앙가라 아가씨. 물속에서 사시기에 너무 힘드시지요. 아가씨를 위해 제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래, 고마워. 어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렴.”
앙가라의 재촉에 갈매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어깨에 앉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갈매기는 날마다 날아와 앙가라의 어깨에 앉아서 자신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본 온갖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갈매기가 앙가라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가씨가 살고 있는 호수를 따라 며칠을 날아가면 큰 강이 있는 마을이 나오지요. 그 강 가에는 수많은 꽃들이 피어 여름을 아름답게 빛나게 한답니다. 밤이면 달빛 아래 그 꽃들은 초롱불처럼 빛나지요. 낮에는 온갖 색깔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꽃들이 밤이면 호롱불로 일제히 피어나는 것이랍니다. 그 강가에 멋진 수염에 건장한 용사 한 명이 살고 있답니다. 예니세이라는 그 용사는 지금껏 수많은 싸움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지요. 구척장신에 깎아놓은 듯한 얼굴, 중후한 인품에 그윽한 목소리, 세상의 모든 아가씨들은 예니세이를 흠모한답니다.”
갈매기의 말을 들은 앙가라는 예니세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예니세이에 대한 그리움이면서 동시에 갇혀 살아야 하는 운명에 맞닥뜨린 존재의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했다.
‘아, 한번이라도 세상으로 나가 예니세이를 만나볼 수 있다면….’
앙가라는 그런 소망으로 밤이면 가슴을 태우곤 했다. 그 그리움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 앙가라는 바이칼이 잠든 틈을 타 호수를 빠져나갔다. 예니세이와 세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앙가라의 발걸음은 나는 듯이 빨랐다.
한밤중,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퍼뜩 일어난 바이칼은 앙가라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바이칼은 바람처럼 날아 앙가라의 뒤를 쫓았다. 멀리서 앙가라가 마구 강을 거슬러 달음질치는 것이 달빛 아래 아득하게 보였다.
더 화가 난 바이칼은 자기 곁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번쩍 들어 앙가라의 앞길을 향해 집어던졌다. 바위는 거대한 굉음을 내며 날아가 앙가라를 덮쳐버렸다. 세상을 향해 달려가던 앙가라의 발길은 아버지 바이칼이 내던진 바위 아래 무참하게 깔려 멈추고, 앙가라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지금도 앙가라강의 입구에는 그때 바이칼이 던진 샤먼바위가 그대로 남아 슬픈 부녀간의 이야기를 전해 준다.
바이칼은 모두 336개의 강물이 모여들어 이루어진 호수다. 그리고 그 바이칼 물은 유일하게 하나의 강으로 흘러 나간다. 흘러나가는 유일한 강이 바로 앙가라강이다. 앙가라강은 흐르고 흘러 예니세이강과 만난다. 앙가라 처녀의 슬픈 사연처럼, 이르쿠츠크를 휘돌아 흐르는 앙가라강은 뒤척임도 없이 아득한 세월부터 유유하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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