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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한반도가 제2의 히로시마가 된다면…"

[정욱식 칼럼] 오바마 대통령께 보내는 공개 편지

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대통령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화네트워크라고 하는 한국의 시민 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정욱식이라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몇 말씀드리고자 편지를 띄웁니다.

이미 대통령님의 히로시마 방문을 놓고 수많은 찬반 논란과 권고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몇 말씀을 얹어놓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습니다. 분초를 다퉈가며 직무를 보고 있을 오바마 대통령께서 이 편지를 읽게 되리라고 기대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개인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방문이고, 그만큼 인류사적인 의미가 크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지구촌에서 핵전쟁의 위험이 가장 큰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도 하고 싶었습니다.

핵 문제를 중심으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지구적 문제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 문제이며, 끝으로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책무입니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 시각) 워싱턴 백악관의 남쪽 잔디밭에 대기 중인 대통령 전용 헬기 '마린원'으로 향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7일까지 베트남과 일본을 차례로 방문한다. ⓒAP=연합뉴스

21세기형 ABM 조약을 추진해야

먼저 지구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71년 전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 보이'는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장송곡이었습니다. 미국의 본질적인 의도는 소련의 스탈린을 겨냥한 무력 시위에 있었으니까요. 그 의도를 간파한 스탈린은 자국의 과학자들을 다그쳐 '신의 불'을 달구게 했습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예언처럼 세계는 "두 개의 거대한 괴물이 세계를 분단시키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표현처럼 미국과 소련은 "병 안에 든 두 마리의 전갈"이 되었고요. 다행히 인류는 핵겨울을 경험하지 않고도 냉전을 종식시켰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끝났다던 냉전이 21세기 들어 부활하고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는 '유럽 미사일 위기'라는 말이 떠돌아다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도 2009년에 이를 우려해 "냉전은 끝났다"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오늘날 냉전 부활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MD) 구축 및 1조 달러짜리 핵무기 현대화 계획과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 현대화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핵 군비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께서 다짐한 '리셋'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르고 말았습니다. 러시아가 포함된 'G8'이 아니라 러시아가 빠진 'G7'이 된 게 이를 상징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1세기 철의 장막은 아시아로도 뻗치고 있습니다. 한반도-동중국해-대만 해협-남중국해를 잇는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가 미국과 중국의 대결 격화로 아시아의 거대한 분단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화해 협력과 평화 공존보다 세력권을 둘러싼 경쟁이 지배적 질서가 되면서 군비 경쟁도 격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책임이 미국에만 있다고 말하면 부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군사 패권주의라는 낡은 시대의 관성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 견제 및 봉쇄에 도움이 된다면, 과거의 어떤 적대국들을 끌어안기도 하고 어떤 적대국은 악마화하는 이중적 행태도 여전합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부시 행정부가 2001년 9.11 테러를 틈타 탄도 미사일 방어(ABM) 조약 탈퇴를 선언했을 때, 신냉전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격화와 완화를 오가다가 종식(?)으로 끝난 냉전 역사의 중심에는 ABM 조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냉전을 '긴 평화(long peace)'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ABM 조약의 공이 컸습니다. 상대방의 보복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MD를 갖는 것보다 공포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MD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유럽-중동-동아시아를 거쳐 미국 본토까지 뻗어지고 있는 '글로벌 MD'가 지구의 북반구를 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세계 평화와 전략적 안정이 아니라 새로운 철의 장막이 되고 있습니다. 장막 안에 있는 나라는 안전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장막 밖에 있는 나라는 불안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그 장막을 뚫으려고 합니다. 전형적인 군비경쟁이자 안보 딜레마입니다.

하여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여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께서 남은 임기 내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21세기 철의 장막을 거둬낼 21세기형 ABM 조약의 디딤돌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나도 안전해진다"는 탈 냉전형 안보관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제가 살고 있는 한반도로 시선을 돌려보겠습니다. 상기한 모든 모순과 위험이 응축되어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가끔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라는 곤혹스러운 질문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핵 위협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놓고 70년 가까이 씨름해왔습니다. 이건 북한의 프로파간다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에이피>가 한국 전쟁 발발 60년을 맞이한 2010년에 미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분석해 내놓은 통찰이기도 하니까요.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6년 전 핵 태세 검토(NPR)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북한과 이란을 "예외국들(outliers)"이라고 불렀습니다.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 보장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란 핵 문제는 미국 정부의 정력적인 노력 덕분에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핵 선제 공격 대상에는 사실상 북한만 남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그 의지를 과시하듯 잊을 만하면 각종 전략 무기를 동원해 '공개적인' 대북 핵 시위도 전개해왔습니다. 물론 그 뜻은 핵 선제 공격이 아니라 대북 억제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 사이에 핵 억제가 거칠게 충돌할 때마다, '다모클레스의 칼'을 붙들고 있는 말총이 흔들리는 것을 느낍니다.

오바마 대통령께서는 참모들로부터 '북한의 본래 의도는 핵무장이었다'는 얘길 간혹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북핵 역사를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지만, 북핵은 MD를 향한 미국의 탐욕이 키워낸 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MD 신봉자들은 그 구실을 잃지 않기 위해, 때로는 북한의 위협을 부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합의를 방해하거나 파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협상을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MD와 북핵은 서로를 먹잇감으로 삼으면서 동반성장 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협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논란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북한이 노골적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노리면서 유일한 북핵 해법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김정은 참수 작전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 시대에는 '죽은 자의 손(Dead hand)'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붕괴시키려고 제재의 강도를 높일수록 그 고통의 크기는 북한의 낮은 곳으로 향하기 마련이고 북한 정권의 핵 보유에 대한 의지는 더더욱 강해집니다.

히로시마에서 초심을 떠올리길

저는 오바마 대통령께서 히로시마에서 멀지 않은, 그렇지만 제2의 히로시마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한반도를 냉정하게 응시하길 바랍니다. '전략적 인내'라는 가위눌린 대북정책에서 깨어나 대통령께서 대선 후보 때 다짐했던 "적대국 지도자와도 대화하겠다"는 초심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임기 동안 북핵의 뿌리를 캐낼 수 있는 첫 삽을 뜨시길 바랍니다. 그 첫 삽은 바로 북핵의 토양이 되어온 정전 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단언컨대, 북한 지도자의 전략적 셈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직접 만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죽의 장막'을 거둬낸 닉슨 대통령과 같은, '철의 장막'을 거둬낸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용단이야말로 오늘날 미국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책무가 아닌가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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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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