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재래시장. 가게 주인이 숨을 돌리는 시간대다. 텅 빈 국숫집에서 주인 혼자 텔레비전을 본다. 방송 채널은 역시 종편이다. 다른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시장 끝에 있는 약국부터 반대쪽 끝에 있는 미용실까지, 텔레비전 채널은 대개 보수 종편이다.
치킨집 주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종편을 좋아하나."
그냥 틀어 놓는단다. 마치 배경음악처럼. 진짜 음악을 틀어도 되잖아? 그보다는 종편이 재미있고, 무엇보다 사람들 속에서 이야기하는 느낌이 든단다. 하긴, 그렇다. 온갖 논객이 나와서 떠들어 댄다. 시장바닥에서 수다 떠는 느낌이 든다. 호들갑 역시 재미다. 남북 정상 간 NLL(북방 한계선) 대화록이 공개됐을 당시, 한 종편 앵커는 북한방송 아나운서처럼 떠들었다. 걸핏 하면 나오는 '속보' 자막도 자극적이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를 상대로 첫 승을 거둔 날, 종편 진행자는 카메라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런 게 좋단다. 덤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알게 되는 느낌이다.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가게는 사람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진짜 대화는 없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아르바이트 직원과도 할 이야기는 별로 없다. 분주하지만 외롭고, 왁자지껄하지만 쓸쓸하다. 가게 주인에게 종편은 세상으로 통하는 창문이다. 그걸로 세상 이야기를 엿듣는다.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가 된 느낌을 잠시 잊는다.
원래 보수적이던 사람이 자영업을 하면 더 보수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어찌 됐건 사장님이다. 아르바이트 직원과 '계급투쟁'을 한다. 습관처럼 틀어놓는 종편이 위안거리다. 보수 색깔이 더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악덕 사장' 되지 않으려 애쓰는 '생존주의 보수'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원래 진보적이던 사람이 자영업을 하면 어떻게 될까. 사장 입장에서 직원과 '계급투쟁'을 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내면 풍경이 조금 복잡해질 듯 했다.
진보정당을 지지했던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서울 양천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과거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다. 이른바 '86'세대의 끝물이다. 서울 신촌 거리에서 술집을 하는 B씨는 그보다 훨씬 젊은 세대다. B씨 역시 한 진보정당의 당원이었고, 대학 시절 진보적인 활동을 했다. A씨와 B씨 모두 사회과학 소양이 풍부하다.
A씨는 십년 넘게 학원 일을 하면서 확실히 보수화됐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선 난생 처음으로 보수여당을 찍을까 싶기도 하단다. 하지만 끝내 망설이게 되는 건, 과거 기억 때문이라고.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 위로는, 여전히 학살과 고문의 역사가 어른거린다. 그것만 아니라면, 선선히 보수 정당을 지지할 거라고 했다. 그는 요즘 서울 노원 병 지역구 선거 관련 뉴스를 자주 검색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새누리당 이준석 후보가 경쟁하는 곳이다. 그가 사는 동네가 아니라서 투표는 할 수 없지만, 두 후보 모두 마음에 든단다. 과거사에서 자유로운 보수 정치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B씨는 술집을 연 지 5년째다. 그러니까 성공한 셈이다. 1년을 못 넘기는 가게가 부지기수다. B씨의 가게는 골목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곳이다. 살아남으면 성공이다. B씨는 지금도 진보 성향이다. 가게 직원이 있는데, '악덕 사장'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저임금보다 높은 급여를 준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진보 성향일까. 그건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생존주의 보수'가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직원에게 잘해 봤자 소용없어"
실제로 딜레마를 자주 겪는다. B씨는 복지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금은 싫다. 세금이 원천징수 되는 월급 생활자와는 다른 느낌이다. 자영업자는 하루하루가 세금과의 전쟁이다. 돈을 쓰는 곳에선 세금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반면 돈이 들어오는 곳에선 세금을 피할 수 없다. 예컨대 도매상에서 재료를 살 때는 현금을 내지만, 가게 손님은 카드로 결제하는 식이다. 세금에 대한 혐오감이 너무 커지면, 복지국가를 꿈꾸기도 어렵다. 진보 패배주의 정서가 짙어진다.
'생존주의'와 '패배주의'. B씨가 한 이야기인데, A씨에게 전했더니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자기가 딱 그렇단다. 자영업자는 늘 벼랑 끝에 서 있다. 언제 망할지 모르고, 망하면 끝이다. 생존이 모든 가치보다 우선이다. 그런 생각으로 오래 버티면, 당장의 생존과 관계없는 가치에 대해선 무덤덤해진다. 자연스레 보수화된다. 좋은 뜻으로, 이상주의적으로 했던 일이 현실에서 조롱당하는 일을 자주 겪는다. 선한 시도는 패배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역시 보수 성향으로 이어진다.
"처음 학원 차리고 직원 뽑았을 때, 정말 잘해줬어. 인간적으로만 잘 해준 게 아냐. 내가 걔한테 노동법 책을 사줬다니까. 내가 어쩌다 보니 사장이 됐지만 '악덕 사장'은 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너(직원)도 늘 깨어있어라. 이런 말도 했었지. 그런데 한번 월급 밀리니까, 직원이 바로 관두더라고. 당연한 건데, 솔직히 서운했지. 비슷한 일 몇 번 겪고 나니까, 이제는 그래. 직원에게 잘해 봤자 소용없어.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급전'이 필요한 순간, 기댈 곳은 '원초적인 인간관계'
B씨가 운영하는 술집은 한밤중에 손님이 많다. 그래서 저녁 늦게 문을 연다. 가게 앞에서 맨 처음에 하는 일은 늘 똑같다. 사채 광고 전단을 치우는 일이다. 광고 전단이 늘 수북하다.
B씨는 아직 사채를 쓴 적은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필요하니까, 그토록 열심히 광고 전단을 뿌리는 것이다. 실제로 '급전'이 필요한 순간은 아무 때나 닥친다. '악덕 사장'이 되지 않으려면 직원 월급이 최우선이다. 그나마 월급은 예상되는 지출 항목이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일러가 고장 난다. 집기도 망가진다. 수입 재료값이 폭등하는 일도 있다. 모두 예상 밖으로 돈을 써야 하는 경우들이다. B씨는 다행히 돈을 빌릴 친구들이 있었다. "자영업을 하니까, 원초적인 인간관계에 더 의지하게 된다."
A씨와 B씨 모두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다. 주류 엘리트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다. A씨 역시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A씨 역시 사채를 쓰다 망했을 게다.
A씨는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는 전혀 친하지 않았던 대학 동창에게 신세를 진 경험을 이야기했다. "한번 도움을 받고 나니까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더라고. 전에는 출세를 쫓는 친구들이 하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아니야. 그런 친구가 있는 게 자랑스러워."
혈연, 지연, 학연 등 "원초적인 인간관계"에 너무 기대는 태도 역시 보수 성향으로 이어진다. A씨는 말했다.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무래도 오래된 관계지. 새로 사귄 사람에게 손을 벌리긴 어렵잖아. 인간관계가 그저 우정이 아니라, 내 생존의 문제가 되니까, 아무에게나 마음을 못 열겠어. 그런데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만 챙기다 보면, 약자들의 처지에는 아무래도 관심이 덜 가지. 그게 수구, 혹은 보수 아니겠어. 나, 내 가족, 도움 되는 친구만 챙기는 것 말이야."
'한국판 양적완화' vs. '경제 민주화'
A씨와 B씨 모두 필요한 때 돈을 구하지 못해서 애가 탔던 적이 많다. 그 대목에선 이야기가 길어졌다. 워낙 할 말이 많았던 게다. 돈이 지금보다 잘 돌았으면 싶은 마음은 장사하는 이들에겐 다 마찬가지다.
마침,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발표한 '한국판 양적완화'가 선거 쟁점이다. 한국은행이 국채나 통화안정증권뿐 아니라 산업은행 채권 등도 살 수 있게 하자는 건데, 결국 가계와 기업에 돈을 더 푼다는 거다. 그러자면 현행 한국은행법을 고쳐야 한다. 현행 법으론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도 이 대목에선 조심스럽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본 등 주변 국가의 양적완화 정책이 부작용을 낳는 것도 봤다. 효과가 오래가기 어렵다는 걸 다들 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강하게 반발했다. 김 위원장에겐 그저 정치적인 논쟁거리만이 아니다. 그는 독일식 질서자유주의 경제학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 더 엄격한 편이다. 그 입장에 선 김 위원장에게 '한국판 양적완화'란 신념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다. 반대로 김 위원장이 내건 '경제 민주화' 역시 어떤 이들에겐 신념 차원에서 거부감이 드는 구호일 게다.
"'한국판 양적완화'냐? '경제 민주화'냐?"
A씨와 B씨에게 물었다.
여전히 진보 후보를 지지하는 B씨가 대답했다. "가게를 하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돈을 푸는 정책, '한국판 양적완화'에 더 끌린다. 물을 세게 뿌리면, 어쩌다 한 방울 정도는 나한테도 떨어지지 않겠나. 돈 푸는 정책도 마찬가지겠지. 그것만 해도 어딘가 싶다. 반면 '경제 민주화'라는 말을 들으면,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그게 실현됐을 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냐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될 것 같지가 않다."
난생 처음 보수정당 후보를 찍을지 고민한다는 A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경제 민주화'는 될 것 같지가 않은데, '한국판 양적완화'는 될 것 같다. 새누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어서 한국은행법을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돈 풀어서 생기는 부작용? 그거야 몇 년 뒤일 텐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다면 되는 거지."
치료 못할 바엔 진통제라도
벼랑 끝에 내몰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진보정치 세력을 불신하는 한 이유가 드러난다. A씨와 B씨가 진보적인 정책을 불신하는 사례는, 보수 언론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루 종일 틀어 놓은 종편 때문"이라는 설명은 적용되지 않는다. 지식의 부족 때문 역시 아니다. 그들은 한때 진보 성향 사회과학 서적의 열정적인 독자였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보수화 됐을까. 그들의 대답에 공통분모가 있다. '절박함'에 대한 불신이다. 그들이 보기에, 진보적인 정책은 절박함이 없다. 세금 제대로 내고 나면 당장 죽을 판인데, 진보 진영은 복지국가를 이야기한다. 가게 망하고 복지국가가 되면 무슨 소용인가.
'경제 민주화'를 한다지만, 정말 치열하게 할 것 같지는 않다. 제대로 하려면 재벌과 한판 붙어야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삼성에 손을 내밀었다. 광주에 공장 지어달라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경제 민주화'가 되겠나 싶은 게다. 설령 그게 된다한들, 그 효과가 중소 상인에게 전달되기까진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 건가. 노숙자 된 뒤에 '경제 민주화'가 된다 한들, 나와 무슨 상관인가.
'경제 민주화'보다 '한국판 양적완화'가 더 낫다는 이야기는, 결국 한가함과 절박함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는 한가한 소리다.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할 바엔, 진통제라도 주는 게 낫다. 설령 그게 병을 더 키우는 선택이라도, 당장은 고통을 덜 수 있으니까. 절박한 환자는 오진보다 한가한 진단이 더 얄밉다.
"자영업자 줄이고 복지 일자리 늘려야"…동의와 지지 사이, 까마득한 거리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5일 YTN라디오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 자영업자가 약 600만 명이 됩니다. 경제의 실핏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600만 명 중에서 절반인 300만 명이 월 소득이 한 달에 100만 원 미만입니다. 그러면 이 자영업자가 정상적인 경영을 했을 때 자기가 임금 근로자로 일한 것 보다는 더 벌 수 있어야 자영업이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 월 100만 원도 안 되는 소득을 얻는 자영업자들은 전업을 시키도록 유도하고 취업을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입니다."
이날 발언 내용을 요약하면, 자영업자 수는 줄이고 복지 분야(사회 서비스) 일자리는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후보를 찍으려 한다는 치킨집 주인과 학원장에게 그 내용을 보여줬다. 다들 맞는 말이라고, 옳은 대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지할 마음은 들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런 걸까. 답과 대책을 찾아야 자영업자들에게 진보정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이는 결국 진보정치의 희망을 찾는 문제다. 이번 기획 첫 번째 기사 도입부에서 적었듯, 우리 대부분은 결국 미래의 자영업자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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