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대표 직업을 꼽는다면? 어쩌면 자영업자 아닐까. 상당수 청년이 취업을 못 한다. 정 취업이 안 되면 결국 자영업자가 될 게다. 직장에서 퇴직한 이들 역시 대부분 노후 대책이 없다. 그들의 선택지 역시 자영업이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준비 없이 쫓겨나면, 가장 흔한 대안이 자영업이다. 그런데 장사에 필요한 기술이 전혀 없다. 결국 프랜차이즈 업체에 의지한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찾아갈 만큼, 맨몸으로 만나는 세상은 두렵다.
대중의 호민관, 약자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며 총선 후보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그들은 자영업자 또는 예비 자영업자의 현실을 얼마나 알까. 그래서 예비 국회의원을 위한 '자영업 리포트'를 준비했다. 자영업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물론, 유권자가 먼저 읽는 게 좋다. 그래야 어떤 후보의 목소리가 더 현실에 가까운지 가늠할 수 있다.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첫 번째 기사에선 경쟁조차 양극화한 현실을 다룬다.
한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통계로도 드러난다.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네 번째다. 요식업이 중심인데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치킨 전문점이다. (한국외식업경영지수 연구용역 데이터 참고.) 반면 요식업계에서 수직 계열화와 독점이 가장 잘 진행된 분야 역시 치킨 업계다.
한마디로 경쟁 양극화.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있는 이들은 무한 경쟁을 강요받는다. 반면, 위쪽은 경쟁 무풍지대다. 치킨 생태계의 포식자인 하림은 축산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기업 집단에 편입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65개 기업집단을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했다. 여기 포함된 민간 기업을 흔히 '재벌'이라고 부른다. 닭고기 가공 업체인 하림은 이 가운데 38위다. 자산총액은 9조9000억 원이다. 소, 돼지 등과 달리, 닭은 기업 중심으로 계열화 돼 있다. 이는 정부의 축산 정책이 낳은 결과다. 정부는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동우 등 일부 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했고, 중소 규모 도계장과 재래시장 닭전은 폐쇄시켰다.
그 결과, 하림은 재벌이 됐고 양계 농민은 하청 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등 떠밀려 창업한 치킨집 사장들은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낸다. 이는 한국 사회의 어떤 특징을 도드라지게 묘사한 캐리커처와도 같다. 다른 분야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에선 경쟁도 양극화 돼 있다. 누군가는 너무 심한 경쟁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너무 편한 경쟁을 한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자유 없는 경쟁
전국에 치킨집은 수만 곳에 달한다. 왜 숫자를 애매하게 적었냐고? 등록된 치킨전문점은 3만여 곳이지만, 실제 치킨집은 그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파는 장작구이 통닭도 있다. 또 닭강정이나 닭꼬치를 파는 노점도 있다. 그래서 통계 작성 기관마다 수치가 다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치맥(치킨과 맥주) 열풍을 보며, 숱한 이들이 치킨집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가 폐업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02년 월드컵 이듬해인 2003년, 치킨집 창업이 급증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곡선의 첫 번째 꼭짓점이다. 하지만 폐업 그래프는 그보다 높은 꼭짓점이다.
유행 따라 하는 창업은 위험하다는 상식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 하지만 상식은 예외가 적으니까 상식이다.
치킨집 운영에서 '전관예우'는 통하지 않는다. 예전 회사에서 마지막 직급이 부장이었든, 과장이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공부를 어디까지 했는지 역시 관심 밖이다.
"아직도 넥타이에 집착하십니까?"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가 내걸었던 가맹점 모집 광고 문구다. 설마 '넥타이', 그 자체에 집착한 사람이 있었을까. 실제로 벗어던져야 했던 건, 넥타이가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그렇게 뛰어든 곳은, 완전한 경쟁 시장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경쟁이 혁신을 낳는다고 가르친다. 여기엔 단서가 있다. 자유가 있어야 한다. 혁신적인 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경쟁의 순기능이 작동한다. 하지만 치킨집 주인에겐 자유가 없다.
'미피데이'가 끔찍한 이유
서울 신촌에서 만난 한 치킨집 주인은 치킨 요리를 '라면 끓이기'에 비유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인데, 개성이 없다는 뜻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은 라면처럼 맛이 표준화돼 있다. 닭의 육질을 감별하며 치킨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건, 프랜차이즈 본사가 공급하는 양념의 맛이다. 가맹점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매뉴얼만 따르면 된다. 그러므로 누가 해도 상관없다.
결국 직장 생활과 마찬가지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은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이다. 업무는 잘게 쪼개져 있고, 대부분 매뉴얼이 있으며, 회사 밖에는 그저 일만 시켜달라는 이들이 넘쳐 난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선 윗사람 눈치를 봐야 했다면, 치킨집 차린 뒤엔 본사 눈치를 본다. 본사가 꼬투리를 잡으면, 최악의 경우 닭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고의로 나쁜 재료를 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렇게 며칠 지나면 망하는 거다.
직장에서 쫓겨나서 치킨집을 차렸지만, 직장 생활과 다를 게 없다. 아니 훨씬 더 나쁘다. 휴가는 꿈도 못 꾼다. 직장과 달리 동료가 없다. 둘러보면 온통 경쟁자뿐이다. 치킨집만 경쟁자가 아니다. 치킨집 주인들이 끔찍해 하는 게 '미피데이'다. 미스터 피자가 할인행사를 하는 날인데, 치킨집 매출이 확 줄어든다.
1980년대 림스치킨과 지금 프랜차이즈의 차이
치킨에 관심 있다면, 필독서가 있다. <대한민국 치킨展(전)>이라는 책인데, 대한민국 치킨의 거의 모든 게 담겨 있다. 이 기사 역시 <대한민국 치킨展(전)>의 내용과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책의 저자인 정은정 씨는 1975년 설립된 림스치킨을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원조로 꼽는다. 제조부터 판매까지 담당하는 최초의 프랜차이즈였다는 설명이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1호점을 냈다. 퇴근길에 치킨을 사가는 중산층 가장의 모습, 그 배경에 있는 게 림스치킨 가맹점이었다. 하지만 림스치킨은 1980년대 말 양념치킨 열풍과 함께 쇠락한다.
정은정 씨는 전성기의 림스치킨과 지금의 치킨 프랜차이즈를 비교한다. 지금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염지(鹽漬, 고기를 소금과 화학약품에 절이는 것)가 된 닭과 양념, 식용유, 각종 부자재 등을 독점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을 낸다. 심지어 맥주 브랜드 선택권도 본사가 갖는다.
1980년대 림스치킨만 해도 달랐다. 치킨에 곁들여 나가는 치킨무는 가맹점 업장에서 직접 담갔다. 양배추 샐러드 역시 마찬가지. 본사는 지금과 달리 생닭을 공급했고, 가맹점 업장에서 염지를 해야 했다. 따라서 똑같은 림스치킨인데, 가게마다 맛이 달랐다. 식용유 선택 역시 가맹점이 했다. 성수기에는 본사를 통하지 않고 닭을 구입하기도 했다.(사입) 지금은 모든 프랜차이즈 업체가 사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조리법 교육 역시 지금은 철저히 본사가 진행한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다. 1980년대에는 가게를 넘긴 사람에게 조리법을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본사도 교육을 했지만, 위생 교육 수준이었다.
요컨대 치킨 프랜차이즈 산업은 본사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가맹점의 자율성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가맹점 주인은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치킨 관련 노하우를 축적하기 힘들다. 그만큼 쉽게 대체할 수 있다. 자율 없이 경쟁만 있는 지옥에서 살아간다.
양계 농가 90%가 기업 소속 '계약 농가'
글 도입부에서 언급한 하림은 닭고기를 공급하는 업체다. 한국 치킨 산업 역사는 하림의 성장사와 겹친다. 한국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은 약 8억 마리인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치킨으로 튀겨진다. 그 많은 닭은 누가 키우나? 양계 농가가 키운다. 이 양계 농가의 90% 이상이 육계 기업에 소속된 '계약 농가'다. 그 가운데 절반이 하림에 속해 있다. 계약 농가는 일종의 하청 업체 격이다.
농축수산물 가운데서 이런 경우는 닭뿐이다. 치킨 소비가 철저히 기업(프랜차이즈 업체) 중심인 탓에 공급 역시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사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축산 현대화'가 명분이었다. 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국민이 상대적으로 싼 값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게끔 한다는 목적도 곁들여졌다. 일부 치킨집의 '영양센터' 간판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하림은 이런 정부 정책에 가장 잘 부응한 기업이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11살 때 축산업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실과 교과서에 병아리와 닭 키우는 법이 실려 있던 시절이다. 양계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다. 당시 외할머니가 병아리 10마리를 사줬는데, 김 회장이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그걸 팔아 번 돈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고, 이를 되팔기를 거듭해서 고등학교 때는 닭 4000마리, 돼지 30마리를 기르는 사업가가 됐다는 이야기다. 어찌 됐건, 대단히 부지런한 기업인이었던 건 분명하다.
업계 1위가 된 뒤엔 인수합병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림그룹 계열사는 58곳이다. 천하제일사료 등 양계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회사는 대부분 인수했다. 지난해 해운업체 팬오션 인수 역시 옥수수와 콩 등 닭 사료 공급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인수합병은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굳히는 방편이 된다.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진다. 이번에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 건, 이처럼 잦은 인수합병의 결과다.
경쟁으로 이익 보는 건, 경쟁 부추긴 '갑'뿐이다
문제는, 이처럼 경쟁을 피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하림이 계약 농가들에 대해서는 경쟁을 강화하는 정책을 써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을 선도했다. 2위 이하의 육계 기업들은 하림을 따라한다.
<대한민국 치킨展(전)>은 계약 농가에 대한 상대평가 제도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사료를 가장 적게 쓰고 닭을 키워낸 농가가 1등이 된다. 1등에겐 혜택을 주고 나머지에겐 불이익을 준다. 미국의 스미스필드 등 대형 축산기업에게서 배운 제도다.
경쟁으로 이익을 보는 건, 경쟁을 부추긴 자뿐이다. 농가 입장에선 닭 한 마리당 400원 남짓인 사육 보수가 못마땅하다. 그러나 하림은 대기업이고, 농가는 자영업자다. 경쟁에 내몰린 농가끼리 연대해서 사육 보수를 올리도록 요구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결국 농가들은 닭을 많이 키워서 이익을 늘리는 선택을 한다. 시설 투자비용이 늘어난다. 양계 시설에 수억 원대를 묻어둔 농가는, 마음이 불안하다. 투자한 돈이 크면, 피해에 따른 위험 규모도 함께 늘어난다. 결국 하림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실제로 하림은 농가에 대한 '갑질'로 종종 물의를 일으켰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관계와 구조가 똑같다. 가맹점 사장 역시 이미 투자한 퇴직금을 날릴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럴수록 본사 눈치를 보게 된다. 본사에 코가 꿰인 것이다. 가맹점이 누리는 자율의 폭은 줄어들고, 경쟁은 격화되는 쪽으로 진화했다.
자영업 생태계 '갑질' 막는 경제 민주화
이동걸 동국대학교 초빙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재벌 개혁 시도에 승산이 있었던 건 두 차례다. 첫 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위기를 부른 책임이 재벌에게 있었으므로, 개혁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두 번째는 2010년 이후 대기업이 중소상인의 영역에 진출할 때다. 이는 평범한 시민이 몸으로 느끼는 문제라서 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었다.
치킨 자영업 생태계의 포식자 문제는 후자에 가깝다. 대표적인 포식자 가운데 하나인 하림은 이제 '재벌' 반열에 들었다.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경쟁을 피하는 일을 흔히 본다. 그걸 막자는 게 '경제 민주화' 주장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구호가 다시 튀어나온 이번 선거에서 강자에게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유권자 대부분은 이미 자영업자거나 미래의 자영업자다. 대기업 퇴직자 역시 가장 흔한 선택은 자영업이다. 지옥도가 돼 버린 자영업자들의 풍경은, 유권자 대부분의 문제다. 그러데 왜 총선 후보자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일까. 다들 노후 걱정이 없어서? 그게 진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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