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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리를 '맑스돌' 만든 그것, 총선에선 누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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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혜리를 '맑스돌' 만든 그것, 총선에선 누구 편?"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② 3평 가게 안의 계급투쟁

음주가무의 나라, 한국에서 술장사가 안 된다. 6년 전 100만 원 매출을 올렸던 술집이 지금은 73만 원어치를 판다. 최근 발표된 서비스업생산지수 이야기인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7월 이후 최저치다.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은 지난해 1.6%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자영업자의 연간 사업소득은 1.6% 줄었다. 역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첫 마이너스다.

거의 모든 자영업이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똑같은 고통은 아니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도, 동네 치킨집도 모두 자영업자다. 누군가에겐 여윳돈이 줄어드는 어려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다. 그 간극만큼 사회의식도 다르다. 그들을 한데 묶어 이야기하긴 어렵다.

자영업자가 '갑'이 되는 순3평 가게 안의 계급투쟁


하지만 강력한 공통분모가 있다. 고용 문제다. 3평(9.9제곱미터)이 채 안 되는 테이크아웃 커피점도 '알바'를 쓴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고용주를 겸한다. 자영업자의 장부는 기업 회계처럼 복잡하지 않다. 매출에서 몇 가지 고정 비용을 뺀 게 자기 소득이다.

비용은 대부분 강자의 요구다. 예컨대 가게 임대료는 건물주의 요구다. 건물주가 '갑'이므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재료비 역시 강자들이 정한다.

유일하게 자영업자가 '갑' 위치에서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이 인건비다. 직원 급여를 줄인 만큼, 내 소득이 늘어난다. 게다가 매출은 줄어든다. 다른 비용은 요지부동, 아니 오름세다. 직원을 쥐어짜야 내가 산다. 3평 가게 안은 처절한 계급투쟁의 전장이 된다.

성형외과 원장도, 동네 치킨집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가 듣는 흔한 조언도 고정 비용을 줄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건비 깎으라는 말이다. 물론, 한계가 있다. 비슷한 업종, 비슷한 규모라면 직원 급여 역시 마찬가지다. 그보다 조금 더 줄이느냐, 마느냐의 다툼이다. 인건비를 못 줄일 바엔, 더 고분고분했으면 싶다. 모든 고용주가 같은 마음이다.

"알바느님, 그래서 1000원 더"

치킨집 주인이 말했다. "'알바느님'이지." 알바와 하느님을 합친 말인데, 살짝 비꼬는 느낌이다. 배달 아르바이트 직원에 대해 불만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단다. 갑자기 출근을 안 하면 주인 입장에서 대단한 낭패다. 치킨 배달은 아무나 못한다. 술을 파니까 청소년은 고용할 수 없다. 오토바이 운전 면허도 있어야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오토바이를 몰고 가야하는 위험한 일이다. 세상이 온통 월드컵에 열광할 때 홀로 오토바이를 몰아야하는 외로운 일이다.

주인 마음에 쏙 드는 아르바이트 직원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게 힘들게 모신 '알바느님'에게 급여는 얼마나 주나, 물어봤다. "최저시급보다는 훨씬 더 주지." "그래서 얼마?" "천 원쯤 더."

201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이다. 그러니까 시급으로 7000원쯤 준다는 말이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몬, 알바천국 등에서 검색해봤다. 시급 7000~9000원대였다. 9000원은 드물다. 최저시급보다 1000~2000원 더 주는 게 보통이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확실히 낫다. 예컨대 서울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 가운데 6%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미용실 등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 3600곳을 조사한 결과.)

오토바이 운전 능력, 사고 위험 등 몇 가지 문턱을 넘은 대가가 최저시급에 얹어진 1000~2000원이다. 이 대목에서 각자 지닌 사회의식의 색깔이 갈린다. 최저시급보다 더 받는 돈, 1000~2000원. 그게 많은 돈인가, 아닌가. 치킨집 주인은 그 정도면 많다고 본다. "걔들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

치킨 배달도 외주화안전판은 최저임금


실제로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 시급이 오른 것도, 맥도날드나 버거킹 등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다. 배달 아르바이트 수요가 늘면서 시급이 올랐다. 말 그대로 시장 논리.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 아르바이트 직원의 전문성을 치킨집 주인들이 높게 쳐줘서 오른 게 아니다.

역시 시장 논리에 따라 배달 아르바이트 시급을 위협하는 요소도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요식업계에도 '외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알바느님' 모시느니, 배달 대행업체를 쓰겠다는 게다. 아직은 식당 주인들이 배달 대행업체의 효용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다. 일단 가입비를 내고, 업체를 이용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는 방식인데, 대체로 비싸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도 썩 못 미더워 한다. 아무래도 여러 가게의 배달을 도맡다보니, 배달 시간을 못 맞추는 경우가 있다.

배달 대행업체가 아직 영세한 탓이다. 만약 이들 업체가 규모와 전문성을 키운다면, 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배달 아르바이트는 일자리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지금보다 낮은 시급을 감수해야 한다. 시급은 어디까지 떨어질까.

안전판은 결국 최저임금이다. 치킨집 주인도, '알바느님'도 올해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잘 알고 있다. 의외라고? 당신이 최저임금과 상관없는,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탓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입장이라면, 최저임금이 늘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덕분이다. '알바몬'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최저임금이 눈에 잘 띄게끔 표시돼 있다. 제시된 시급이 그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비교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고른다.

▲ '알바몬' 광고에 출연한 '걸스데이' 혜리. ⓒ알바몬

"'사장몬' 검색어 보고 놀랐다?당신이 순진한 거다"


몇 평 가게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 아르바이트 직원의 방패는 최저임금이다. 가게 주인들도 그걸 잘 안다. 상대의 방패가 얇아져야 싸움이 유리해진다.

지난해 벌어진 '알바몬' 사태는 가게 주인들의 이런 정서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걸스데이' 멤버 혜리는 '알바몬' 광고에 출연해서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2015년 기준)입니다"라고 외쳤다. "알바가 '갑'이다"라고도 했다.


'그게 어때서'라고 한다면, 순진한 거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가게 주인들이 '알바몬' 탈퇴 운동을 벌였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알바몬'이 떴다. 가게 주인들은 알바몬 측의 공개 사과와 광고 중단을 요구했고, '사장몬'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결성했다. '사장몬'도 곧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결국 타협으로 결론이 났다. 알바몬 측은 후속 광고인 '야간 수당' 편 방영을 중단했다. 대신 '사장몬'은 폐쇄했다. 졸지에 혜리는 '맑스돌'이 됐다.

일베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


흥미로운 건, 당시 '일베'의 반응이다. 이 사태 관련 글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건, 관련 기사와 이미지를 캡처한 뒤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라는 글을 단 게시물이었다. 최저임금 규정을 지키는 업체가 늘어나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서 떠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장들이 화를 낸다는 뜻이다. 알바몬 광고를 비난하는 가게 주인들을 조롱하는 뉘앙스다.

'일베' 이용자들은 게시물 내용을 추천하면 '일베로'를 클릭한다. 그 반대는 '민주화'다. 당시 '일베로'를 클릭한 횟수는 2216건이었다. '민주화'를 클릭한 횟수는 162건이다.

밥벌이가 달린 진짜 계급투쟁 앞에선 '일베'도 색깔이 달라진다.

치킨집 주인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무시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기자 앞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욕하다가도, 배달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 서면 입을 닫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에게 미소 짓는다. '일베'에 적힌 대로다.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

"걔들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라던 치킨집 주인의 말은, 사실 자신을 향한 것이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나이라도 젊지. 치킨집 주인이야 말로, 가게가 망하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걸 아니까, 물러설 수 없다. 좁은 가게 안의 계급투쟁은 늘 폭발 직전이다. '알바몬' 광고에 출연한 혜리는 그 뇌관을 건드렸다.

최저임금 공약, 말 바꾼 새누리당

혜리가 이야기한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이 마침 선거 쟁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각 오는 2020년, 2019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최저시급 1만 원은 진보 진영의 오랜 요구 사항이다.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등 다른 진보정당 역시 최저시급 1만 원을 공약했다. 다만 달성 목표 시기는 빠르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오락가락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최저시급)을 최대 9000원까지 인상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지난 5일,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최저시급)을 9000원으로 올린다는 건 오보"라며 당의 입장을 뒤집었다. "그렇게 올라가는 효과를 내겠다"라는 설명이다.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들에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잘 아는 탓일 게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최저임금 공약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저임금 수혜자와 미달자, 그들의 선택은?

201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수혜자(최저임금의 90~110% 수령 노동자)는 121만 명이고 최저임금의 영향률(전체 노동자 대비 최저임금 수혜자 비율)은 6.5%이다. 같은 조사에서 최저임금 미달자는 227만 명이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2.1%였다. 2014년 당시 법정 최저임금은 5210원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민감한 집단은 이 가운데 최저임금 수혜자인 121만 명이다. 최저임금 미달자의 경우, 아예 체념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안 지켜지는데, 오른다고 지켜지겠나 싶은 거다.

최저임금 수혜자 121만 명 가운데 상당수는 투표 자체를 안 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치킨집 배달 노동자는 휴일이 더 바쁘다. 투표에 참가하는 나머지 가운데 역시 많은 수는 정치적 입장이 이미 정해져 있을 게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은 앞서 언급한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다. 그 수치를 A라고 하자.

최저임금 인상 공약 때문에 화가 난 자영업자는 얼마나 될까. 최저임금 수혜자를 직원으로 고용한 업주를 집계해야 한다. 최저임금 수혜자를 여러 명 고용한 경우가 있을 테니까, 121만 명보다는 줄어든다. 그 수치를 B라고 하자.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A와 B의 차이만큼의 표를 얻는 공약인 걸까. 당연히 아니다. 정치란 그저 표계산이 아니다.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리며,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중년 사무직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한숨짓는 자영업자를 보고,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못마땅할 수 있다. 최저임금 관련 공약을 내건 여야 정당이 어느 수준까지 표계산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영업자와 알바의 계급투쟁, 어느 당이 더 잘 이해하고 있나

다만 분명한 건, 새누리당은 최저임금 공약이 지닌 폭발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B에 속하는 집단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얼마나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 그걸 아니까 당의 입장을 번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 A에 해당하는 집단의 정서를 잘 알고 있을까. 오는 13일, 선거 결과가 답을 알려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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