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와 정치는 경제의 불평등을 교정하고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는커녕 정반대로 시장만능과 불평등을 강화함으로써 양극화와 민생불안의 격차 사회를 만들었다. 이는 정치의 실패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기성의 정치를 혐오한다. 영남과 호남에 각각 기반을 둔 보수 양당은 적대적 공생 구조를 강화하면서 기존의 양극화된 경제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봉사한다. 이들은 역사의식이나 책임의식이 부실하고, 한국 사회의 어떤 실질적 변화를 추진할 의사도 없다. 그래서 '무책임과 무위'의 정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OECD 국가 평균의 3배나 되는 높은 자살률
"도저히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되기에 가족들과 함께 간다."
이것은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된 38세의 남자가 친구에게 남긴 유서의 첫 구절이다. 이 남자의 집 거실에선 아버지(67)와 어머니(64), 누나(41), 그리고 조카(8)가 이불 위에 나란히 누워 숨져 있었다. 이 사건은 부산 최고의 부촌인 센텀시티 한 복판 44평의 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경찰은 생활고로 인해 이 남자가 가족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비극이다.
2014년 2월 26일, 서울 송파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61세 여성과 그녀의 30대 두 딸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다. 이 여성은 12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8만 원의 반지하방에 살면서 식당 일로 생계를 꾸렸다. 두 딸은 신용 불량자였고, 큰 딸은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월세가 50만 원으로 올랐고 공과금도 매달 20만 원씩이나 나오는데, 오른팔을 다쳐 더 이상 식당 일을 못하게 되면서 수입이 완전히 끊겼다. 그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세상과 작별하는 순간에도 "정말 죄송하다"며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겼다. 이는 가난한 서민 가정의 비극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보인다. 인구 10만 명당 약 30명이 매년 자살한다. 우리 국민이 원래 자살 잘 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민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어려운 시기에도 불굴의 용기로 난관을 헤쳐 왔다. 1995년 이전에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7~9명 수준으로 OECD 국가들 평균 수준보다 낮았다. 1995년도에는 10.8명이 자살했다. 그러던 것이 외환위기 이후 급증하더니 2003년도에는 20명으로 높아졌고, 2009년부터는 30명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사이에 자살률이 3배나 증가했고, OECD 국가들 평균 자살률의 3배나 된다. 이건 분명히 "비정상"이다.
청년의 좌절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현재 60세 이상 서울시민의 절반은 성인이 된 자식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중의 약 40%는 '경제적, 건강상 이유로 자녀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 자식을 돌보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전국적인 현상인데, 소위 "캥거루족"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최악의 취업난 때문에 부모 집에 얹혀살거나 경제적 의존을 끊지 못하는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들이 캥거루처럼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며 지내는데, 이렇게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보편적 복지가 취약하고 교육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인 우리나라 실정에서 아이 키우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엄청난 부담이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청년세대를 우리는 '3포 세대'라고 부른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어려워진 청년들의 처지를 적절하게 표현한 신조어였다.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되는 경제 불황과 취업난으로 인해 3포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고, 급기야 최근에는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7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이것이 우리나라 청년들의 현실이다. 최근 2030세대의 일부를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잡 코리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7포(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 집 마련, 희망, 꿈)에 해당하는 것 중에서 하나라도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의 85.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 2030세대가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는 결혼이 38.6%(복수 응답)로 1위였고, 이어 출산(33.2%)이 2위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19명이다. 합계 출산율이 2.1이라야 현재의 인구 규모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므로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우리나라는 장차 인구가 급감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1970년 합계 출산율은 4.71이었고, 1980년은 2.92였다. 그리고 1995년까지만 해도 1.63명으로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해 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OECD 국가의 평균 합계 출산율 1.7명에 한참 못 미친다. 우리나라는 OECD 34개 국가 중 합계 출산율이 꼴찌이다. 이것도 "비정상"이다.
강력범죄의 급증과 침몰하는 안전
"2012년 8월 18일 의정부 지하철역에서 30대 남성이 공업용 칼을 휘둘러 행인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일 서울 광진구의 주택가에서 전자발찌를 찬 40대 남성이 집안으로 들어와서 30대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21일 수원 장안구에서 30대 남성이 성폭행 미수 뒤 인근 주택에 침입해 칼부림으로 1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22일 서울 여의도에서 30대 남성이 흉기로 전 직장동료와 행인 등 4명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는 18일부터 22일 사이에 벌어져 우리 사회를 공포와 불안에 떨게 했던 강력 범죄 목록이다."
이 인용문은 내가 <한국일보> 칼럼니스트로 2012년 8월 30일 작성했던 칼럼의 일부분이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도 연일 강력 범죄가 일어났고, 며칠 전에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차별적인 총격 살인이 일어났다. 이건 "비정상"이다.
살인, 강도, 성폭행, 방화 등의 강력 범죄 발생건수는 2000년 1만3806건에서 2010년 2만5771건으로 늘었다. 10년 새 86.6%나 늘어났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시장 만능주의가 제도적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양극화와 민생불안이 심해진 추세와 일치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2007년만 해도 강력 범죄 발생 건수는 1만5973건으로 7년 전인 2000년보다 15.7%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점인데, 결국 10년 새 늘어났던 강력 범죄 증가율 86.6%의 대부분(70.9%)은 2008년부터 2010년 사이에 늘어났다. 이 3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2008년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금융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고,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에도 이명박 정부가 감세와 규제 완화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던 해였다.
여기에 더해서, 대한민국은 사고 공화국이다. 작년 2월,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로 수많은 대학생들이 죽고 다쳤다. 4월 16일은 세월호 침몰 참사로 또 수백 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 후에도 사고는 끝없이 이어졌다. 군부대 총기 난사, 지하철 환풍구 붕괴 참사, 요양병원 화재 등으로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지난 1년은 우리에게 참혹한 한해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의정부와 양주에서는 아파트가 불탔고, 파주에서는 가스 유출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심지어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교사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이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강화의 캠핑장 화재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이것도 "비정상"이다.
불평등의 파국적 심화와 급속한 고령화
이상의 상황을 살펴보건대, 우리나라는 행복한 삶에 적합한 경제·사회적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본질적인 지표는 '불평등'에 관한 것들이다. 첫째,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이하 소득자 비율)은 15%나 된다. 유럽 복지국가들의 7-8%에 비하면 거의 두 배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1995년에는 상대적 빈곤율이 8%였다. 지난 20년 사이에 두 배로 급증했다. 둘째, 중산층 가구 비율(중위 소득의 50-150% 소득자 비율)도 64%에 그쳐 유럽 복지국가들의 70% 이상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우리나라도 1995년에는 74%였다. 셋째,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0% 인구의 소득 점유율이 44.9%로 미국의 48%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우리나라도 1995년엔 32%에 불과했다. 현재 북유럽 국가들은 대개 28% 수준이다.
이에 더해, 매우 어려운 도전 과제가 닥쳐오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가 그것이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2.7%다. 2017년엔 노인 인구의 비율이 14%에 도달하여 고령 사회가 된다. 그리고 2026년 노인인구 20%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53.1%이다. 이는 OECD 평균 노인 빈곤율 13%의 4배를 넘는 수치이다. 우리나라는 노인의 절대 빈곤율도 65세 이상 노인의 26%에 달한다. 가히 노인 빈곤 공화국 또는 노인 자살 공화국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런 조건에서 행복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 32위이다. 우리 국민의 다수는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영위한다. 이것도 지극히 "비정상"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 위해 '정치 교체'가 필요하다
세계 최저의 합계 출산율, OECD 평균 3배의 자살률, '캥거루족'과 '7포 세대'로 상징되는 좌절한 청년들, OECD 평균 4배의 노인 빈곤율, 급증하는 강력범죄와 안전사고, 그리고 파국적 수준의 불평등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사회 질서의 지배적 원리로 확산된 시장 만능주의가 초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장 만능주의(시장과 경제의 무책임한 자유화)는 대한민국 기성 정치가 입법을 통해 법률과 제도로 정착시켰다. 지금 여당의 집권 시기였던 김영삼 정부와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현재의 박근혜 정부도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지 확충의 공을 제외하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도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노선을 추진하고 강화했던 점에서는 동일하다.
결국 지난 20년 동안의 역대 정부와 정치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을 만들었다. 기성 정치가 주범이다. 대한민국의 기성 정치가 법률과 제도로 도입했던 시장 만능주의라는 '시장과 경제의 무책임한 자유화' 때문에 그동안 재벌 대기업은 크게 성장했으나 중소기업과 내수 경제는 설 땅을 잃었다. 노동 시장도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정규직 일자리와 전문직 일자리 등 소위 10%의 좋은 일자리와 비정규직 등 나머지 90%의 일자리로 양극화되고 말았다.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경제력이 집중되었고, 노동 소득 분배율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노동자들 간에도 임금과 복지의 격차가 갈수록 커졌다. 민생불안이 심화된 것이다. 이에 대해 지금의 여야 거대 정당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책임지는 정당은 없다. 그래서 국민의 정치 혐오만 커졌다. 이래서는 안 된다. "비정상"이다.
나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87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노동 운동은 이후 기업별 노동조합의 틀에 갇혀버렸고, 결국 스스로 노동의 기득권을 누리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민사회도 탈산업화 시대의 파편화되고 주변으로 내몰린 보통사람의 불안한 삶을 새로운 사회질서를 향한 조직된 힘으로 묶어내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 모두가 성찰적으로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사회 공공성의 확충과 참여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럴 때라야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에 대해 기성 정치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이들을 심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장 만능주의 경제 질서를 초래한 기성 정치를 교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정치 혐오는 해법이 아니다. 정치 혐오는 오히려 기성의 기득권 정치를 강화하는 데 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 교체'가 필요하다. 영남과 호남에 기반을 둔 거대 보수 양당 체제를 심판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비례성 강한 방식으로 선거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여야 거대 정당들이 비례성 강한 방식으로의 선거법 개정에 나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선과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는 먼저 제1야당을 심판하고 교체해야 한다. 지금의 여당은 시장 만능주의를 옹호하는 보수적 자유주의 정당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잘 견지하고 있다. 문제는 제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는 제1야당이다.
지금의 제1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시장 만능주의에 대항하는 제대로 된 노선과 정책을 견지하지도 못할뿐더러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구성이나 행태로 볼 때 공당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좀 가혹하긴 하지만, 5월 6일자 경향신문 6면에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제1야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정파 연합체보다는 도당 또는 무리들의 모임이라고 보는 게 맞다." 많은 사람들이 제1야당제 을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느슨한 협의체"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는데, 박 대표의 말은 좀 더 혹독하다. 사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여 동안 제1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나는 보통 사람들과 야권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당은 존엄과 연대와 정의의 가치 추구를 위해 정치 권력을 획득함으로써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는 정치적 결사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에서 드러난 모든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 우리는 시장 만능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이기고 201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제1야당으로는 어렵다. 박상훈 대표의 표현대로, "무리들의 모임"이 어떻게 수권 정당이 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제1야당은 민생불안을 극복하고 국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복지국가 정치세력'으로 교체되어야 한다. 양극화와 민생불안을 극복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로 가고 싶다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이 모아지면,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런 용기를 가진다면 우리는 '야권 교체'와 '정치 교체'를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제주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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