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일산중학교 아이들과 텃밭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부터는 손을 뗐다. 삼 년 동안 함께 텃밭동아리를 이끌어왔던 선생님이 이제는 농사박사가 다 되었을 뿐만 아니라 텃밭에서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눈여겨본 선생님 두 분이 동아리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며 보조교사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깊은 정이 들어서 떠나는 섭섭함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자체의 힘만으로 텃밭동아리를 이끌어갈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건 정말로 감사할 일이다.
일산중학교에 텃밭동아리를 만들어서 함께 해온 지난 3년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철쭉으로 뒤덮인 화단을 개간해서 텃밭으로 만들던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일산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후배와 함께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면 좋을 것 같다고 의기투합해서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심정으로 텃밭을 일굴 때만 하더라도 그 일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낼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먼저 운을 뗀 건 후배였다. 앞뒤 없이 학교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찾아간 내게 후배는 철쭉으로 뒤덮인 화단을 가리키며 텃밭으로 만들 수 있는지 봐달라고 했다. 화단의 흙을 살펴본 뒤 충분히 가능하다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후배는 덥석 내 손을 잡으며 텃밭동아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품어왔던 나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흔쾌히 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삼십 명 남짓한 아이들이 운동장 가장자리를 가로지른 화단에 모였다. 후배는 빙그레 웃는 얼굴로, 크고 작은 말썽을 부려서 봉사점수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화단을 텃밭으로 만드는 일을 거들면 봉사점수를 두 배로 쳐주겠다고 했더니 순식간에 지원자가 몰렸다고 넌지시 귀띔을 해주었다. 쉽게 말해서 말썽꾸러기들이 모였다는 얘긴데 한 눈에 보기에도 체격들이 당당했고 일부는 건들거리는 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일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꽤나 신바람을 내가며 서툰 일손을 곰바지런히 놀려대기 시작했다. 철쭉을 캐는 건 어지간한 어른들에게도 버거운 일인데 아이들은 깔깔대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농땡이를 치는 녀석들이 더러 눈에 띄긴 했지만 대부분은 굉장히 열심이었다.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태도에 후배와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이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워낙에 적극적인데다가 일하는 요령까지 터득하면서 작업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농땡이를 부리던 녀석들도 눈치가 보였는지 깜냥껏 일손을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에 세 시간씩 사흘에 걸쳐서 삼십 평 화단의 철쭉을 모두 캐냈다. 정말 놀랄 만한 속도였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퇴비를 뿌리고 흙을 뒤집어 밭을 일구었다. 퇴비를 뿌릴 때 똥냄새가 나네, 더럽네, 투덜거려가면서도 아이들은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삼십 평 텃밭이 세 시간 만에 뚝딱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완성된 텃밭을 갈마보았다. 그런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자부심으로 빛났다. 과정은 힘들기 짝이 없지만 완성된 텃밭을 둘러볼 때의 희열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문득 한 아이가 곁의 아이에게 자부심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야, 우리 굉장하지 않냐?"
"그래, 정말로 굉장해!"
말을 받은 아이의 목소리에도 잔뜩 힘이 실렸다. ‘짱’으로 통하는 녀석들이었는데 그 애들은 작업과정 내내 꾀 한 번 안 부리고 열심히 일했다. 나는 녀석들이 너무 기특해서 사이로 끼어들어 어깨동무를 한 뒤 "어때, 좋지? 너희들 밭이니까 열심히 돌봐야 한다"라고 말을 걸었다.
"선생님, 제가 여기에 쓰레기 제일 많이 버렸거든요. 근데 이제부터 쓰레기 버리다 걸리면 그냥 끝장이에요!"
'짱'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손마디를 우두둑 꺾어가며 목에 힘을 주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었다. 그러다 문득 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일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문제아 여부를 떠나서 상위권 성적 밖에 있는 보통의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성취감을 느낄 일은 드물 수밖에 없다. 성취감을 느낄 일이 없는 삶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뿐만 아니라 공부를 잘 하지 못하면 칭찬을 듣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이 땅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칭찬받을 일이 거의 없다. 거기다가 말썽이라도 좀 부리면 문제아란 낙인을 달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텃밭을 만드는 과정 내내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칭찬을 들었다. 퇴비를 잘 나르고 잘 뿌린다고, 삽질을 잘 한다고, 일머리가 좋다고,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아이에겐 열심히 한다고, 아이들 모두에게 칭찬이 돌아갔다.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입이 귀밑까지 벙그러졌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다재다능한 아이들이 비뚤어진 입시지옥에 갇혀서 단지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게으르다, 산만하다, 생각이 없다, 큰일이다, 인생의 목표가 없다는 식의 능욕을 날마다 견뎌야 하는 현실은 야비하기 짝이 없다. 다양하게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만 준다면 아이들은 줄기차게 성장을 한다.
텃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그 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는데 대표적 예로 '짱'을 꼽을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이지만 녀석은 할머니와 단 둘이 살면서 언제 학교를 그만둘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늘 학교를 때려치울 생각을 품고 있다 보니 녀석은 시끄러운 문제를 수시로 몰고 다녔다. 그러던 이듬해 텃밭동아리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텃밭동아리가 만들어질 때의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텃밭동아리 모집 공고가 붙자마자 팔십 명의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는데 전교생이 삼백 명 남짓인 걸 감안하면 정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봉사점수를 바라보고 텃밭을 만들었던 삼십 명의 아이들도 빠지지 않고 지원을 했다. 정원이 이십 명인데 팔십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자 당황한 선생님들이 대책회의를 열었고 정원을 사십 명으로 늘리고 면담을 보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면담을 본다는 말을 전해들은 아이들은 수능시험을 보는 수험생 못지않게 긴장을 했다. 텃밭동아리가 뭐라고 극도의 긴장들을 하는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짱'은 가장 먼저 텃밭동아리에 지원을 했는데 면접을 통과하자마자 면접 장소인 도서관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녀석은 누구보다도 동아리활동에 열심이었는데 텃밭에 나오기만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말썽을 부리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루는 학교에 오는 게 재미있다는 말까지 꺼냈다. 까닭을 물으니 그냥이란다. 사석에서 후배에게 연유를 캐물으니 녀석이 칭찬에 맛을 들이면서 마음을 잡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바로 이해가 갔다. 당당한 체구에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보니 녀석은 타고난 일솜씨를 뽐내었다. 삽을 들고 낑낑거리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녀석의 삽날은 흙 속에 푹푹 박혔고 20킬로그램짜리 퇴비도 가뿐하게 다루었다. 자연히 녀석은 몸을 쓸 때마다 칭찬을 받았고 그 얼굴을 보면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모두가 포기할 뻔했던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삶을 돌보게 된 건 텃밭이 지니고 있는 치유의 힘을 빼 놓고서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다. 우선 텃밭에서는 몸을 쓴다. 이게 참으로 중요하다. 현대사회는 몸을 소외시키고 천대한다. 헬스장에서 열심히 땀을 흘려봐야 그건 몸을 소비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몸을 꾸미고 전시하는 일이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소비하는 몸의 종착역은 열등감과 무기력의 세계이다. 스스로가 몸의 주인이 아닌 까닭이다. 하지만 텃밭에서 쓰는 몸은 다르다. 생산하고 창조하는 몸이다. 이때의 몸은 쓰면 쓸수록 더 큰 성취감을 맛본다.
텃밭동아리에 속한 아이 하나는 심각한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어서 반에서 늘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이 아이가 텃밭동아리 활동을 하고나서부터 분노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텃밭에서 녀석의 집중력은 남달랐고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 남아서 뒷정리까지 도맡았다. 녀석은 농사에 소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어떤 일을 할 때 즐긴다는 건 재능을 타고났다는 얘기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녀석은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해냈고 아이들과의 관계도 회복했다. 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엄마에게 부탁해서 학원에 다니기까지 했다.
어떤 학자는 아이들이란 야생동물과 똑같은데 그걸 가둬 놓고서 몸을 억압하기 때문에 분노조절장애를 앓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꽤나 수긍이 간다.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아이들의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마땅한 치료법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 현실에서 한 달에 두 번 있는 텃밭동아리 활동을 통해 오랜 시간 앓아온 병을 극복해낸 녀석을 보면 스스로 몸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서 놀다 보면 경이로운 일들과 왕왕 맞닥뜨리게 되는데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건 참으로 놀라운 수확이었다. 텃밭동아리 속엔 여러 부류의 학생들이 뒤섞여 있다. 공부 잘 하는 아이, 운동 잘 하는 아이, 놀기 좋아하는 아이, 조용한 아이, 산만한 아이, 거친 아이, 수줍은 아이… 그 면면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 속에는 가해를 한 아이와 피해를 당한 아이도 섞여 있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외부의 개입 없이 대화를 나눈다는 건 흔히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해학생은 폭력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반면 피해학생은 두고두고 원한을 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후배가 내 옆구리를 조용히 쿡쿡 찔렀다. 후배의 눈길이 향한 곳을 바라보니 찬바람 쌩쌩 불던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서 호미로 김을 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감격한 후배는 한턱내겠다며 나를 이끌고 간 술집에서 텃밭동아리 만들길 정말 잘 했다는 얘기를 무시로 되풀이했다. 작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4월 초순, 텃밭동아리 활동시간에 후배가 체격이 당당하고 인상이 꽤나 강렬한 3학년 여학생을 가리켰다. 신입회원인 그 아이는 소문난 ‘은따’였다. 후배는 3학년이 되도록 그 아이가 학교에서 웃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학기 첫 동아리 시간에 아이들은 그 아이와 냉랭하게 거리를 두었고 그 애는 한껏 굳어진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 아이가 아이들 속에서 웃고 있었다. 지난 시간까지만 해도 영영 좁혀질 것 같지 않던 거리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고 비록 어색하긴 하지만 그 애가 아이들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이후 그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떠했을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텃밭에서 몸으로 맺는 관계는 경쟁이 아닌 협동과 상생의 관계이다. 땀 흘려가며 일을 하다 보면 서로 돕고 배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단박 삐걱거리게 된다. 작물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늘 주변을 살펴야 하고 서로서로 호흡을 맞춰야 한다. 힘이 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거들고, 일손이 빠른 사람은 느린 사람의 짐을 나눈다. 그렇다고 힘이 약하고 일손이 느린 사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관계에서는 가치를 따지게 되지만 협동과 상생의 관계에서는 그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며 그저 모두가 동료일 따름이다.
텃밭에서 아이들과 놀다 보면 비실비실한 아이가 ‘짱’에게 지시를 내리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체구가 아무리 작아도 일머리가 좋으면 자연스레 또래들을 이끌게 되고 아이들은 기꺼이 그 지시에 따른다. 경쟁관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텃밭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일을 하다 보면 신명이 일기 마련이고 동료애 또한 도타워진다.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싸움을 잘 하건 못 하건 텃밭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성실하게 일하는 게 최고의 미덕이다. 한여름 땡볕 아래서도 아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 녀석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텃밭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가르쳐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배와 나는 텃밭에서 농사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과 요령 말고는 아이들에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걸 가르친 기억이 없다. 굳이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텃밭에서 굳이 스승을 꼽자면 텃밭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텃밭에서 몸을 쓰다 보면 감성이 순해진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인데 아이들은 그 변화에 더욱 빠르게 반응한다.
재작년 봄,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의 논밭이 타들어갈 때 학교 텃밭이 걱정되어서 무작정 찾아간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학교 텃밭의 작물들도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텃밭을 둘러보던 와중에 팻말 하나가 와락, 눈길을 사로잡았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끝내 알 길이 없었지만 팻말을 만들어서 밭에 나왔을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지금도 그때 느꼈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농사의 근본은 생명을 키우는 데 있다. 생명을 키우다 보면 사사로운 변화 하나하나에도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새싹이 올라왔을 때, 새싹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때, 수확을 할 때, 수확물을 맛볼 때, 수확물을 나눌 때 아이들은 온몸으로 반응을 한다. 몇몇 아이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앞으로 절대로 급식을 남기지 않을 거예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얼굴로 다짐을 하는 아이들에게서 나는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이제껏 아무런 생각 없이 먹어왔던 음식들이 농부들의 노동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다짐이 아닌가. 다른 이의 노동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아이를 텃밭이 키워낸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내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정규 교과과정 속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다 환해진다. 실제로 이 땅의 모든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아이들에게 국, 영, 수가 아닌 의, 식, 주를 가르치는 것이며 그러한 변화는 삶이 직업이 되는 세계를 아이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초석이 될 게 분명하다.
다행히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점차로 늘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내게도 두 군데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텃밭농사를 가르쳐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요청에 기꺼이 응했음은 물론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학교 텃밭이 더욱 확산돼서 정규교육으로 자리를 잡고 그것이 출발점이 되어 요리와 목공과 옷만들기와 집짓기까지 가르치는 과정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아이들은 그 즉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아이들과 함께 텃밭에서 열심히 놀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에 대해서 자꾸만 소문을 내고 다닐 작정이다.
*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4년 9월 현재 71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 전국귀농운동본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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