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월, 1단계 '원전(핵발전소) 하나 줄이기' 성과 및 2단계 '에너지 살림 도시, 서울' 계획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서울의 전력 자립률을 20%까지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 사업에 돌입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5월부터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을 시작해, 당초 목표인 2014년 12월보다 6개월 정도 단축해 핵발전소 한 기 규모인 원유(석유) 200만 톤에 해당하는 에너지를 절감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임 정부와 마찬가지로 핵 발전(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을 펴고 있는데다, 차별화된 에너지 정책에 소극적인 다른 광역시·도와 비교하면 서울시의 이런 노력은 칭찬 받을 만하다.
단적으로 2013년의 경우 전국 평균 전력 사용량은 1.76% 증가했으나, 서울은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전력·가스·석유 등의 사용량 모두가 감소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 이전 서울의 전력 자립률이 2.95%였는데, 정책 추진 이후 전력 자립률이 4.2%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에너지 저감과 효율화 그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을 통해 자립률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서울시 원전 하나 줄이기 2단계는 에너지 자립, 나눔, 참여 3대 가치를 내세우고 있고, △에너지 분산형 생산 도시 △효율적 저소비 사회 구조 △혁신으로 좋은 에너지 일자리 △따뜻한 에너지 나눔 공동체 등을 4대 목표로 총 88개 세부 사업 과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가치와 목표는 매우 적절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행정은 에너지 혁명의 마중물 역할
그러나 좋은 취지와 목표로 하는 정책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회색 성장으로 퇴락한 것처럼. 미래의 가치와 현실적 이해관계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고, 집행 과정에서 행정 부처 간․이해당사자 간 괴리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또 사용자의 수용성 또한 예상치 않은 부정적인 변수로 작동될 여지도 많다.
서울시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칭찬받을 만하지만, 서울시의 노력만으로 목표가 달성될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서울시가 설정한 3대 가치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에너지 전환은 단순히 기존의 핵에너지와 화석 에너지를 재생 가능 에너지로 교체하는 것으로 평가되거나, 완성될 수 없다.
가령, 서울 이외의 곳에 있는 대규모 재생 가능 에너지 단지에서 송전선로를 통해 서울로 가져온다면? 서울의 가난한 동네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부자 동네로 가져간다면? 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 그리고 편익에서 주민이 배제된다면? 대기업이 투자하고, 중소기업이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면? 재생 가능 에너지 설비는 늘었지만, 이해 관계자의 갈등이 증폭된다면? 녹색 일자리가 양적으로 늘었지만, 질적으로 좋지 않은 일자리라면? 서울은 에너지 전환에 성공했지만, 다른 지역은 그대로이거나, 악화된다면?
생색나지 않지만, 전환의 기초 체력을 주목해야
상식적인 것이지만, 행정의 추진력만으로 정책이 성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정책 성공을 위한 기초적인 인프라 구축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행정이나 기업이나, 심지어 사회단체에서도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당장에 성과 지표가 나오지 않지만, 매우 중요하고, 중장기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 오히려 사각지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래창조과학부는 원자력산업회의에 용역을 주어, 매년 <원자력 실태 조사 보고서>를 내고 있는데, 올해로 18호까지 나왔다. 반면, 재생 가능 에너지와 관련한 정례적인 실태 조사 보고서는 없으며, 간헐적인 보고서는 연구 목적에 따라 조사 지표가 달라 정책 평가와 대안 정책 수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을 펴는데, 제대로 된 실태 조사 보고서가 없다면, 무엇을 근거로 평가할 것이며, 대안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까? 서울시 에너지 백서를 제대로 만들고, 매년 축적해 간다면, 좀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시민 인식 전환을 위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베란다 태양광처럼, 실용적이고, 가시적이면서, 생활의 변화를 촉매하는 정책도 유익하다. 각종 정보 공개를 통해 시민의 알 권리와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에 '교육'을 좀 더 주목하면 어떨까?
에너지 다소비 공간이자 교육-홍보-연구의 교두보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과거 이력이나, 삶의 경로, 목표 지향에서 매우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다양한 분야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11월 17일, "20대 서울 시청-교육청 교육 협력 사업"을 발표했는데, 내용 중에는 '학교 내 햇빛 발전소' 사업도 포함돼 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2018년까지 500개 학교에 총 50메가와트 규모(학교당 100킬로와트)의 태양광 설비가 들어선다.
현재 상황에서 세부 사업 내용에 포함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햇빛 발전소 건립과 연동해서 교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면, 미래의 든든한 세력을 양성할 수 있다. 오래전 자료이기는 하지만, 지난 2009년 현재, 전국의 5개 대학 환경교육학과에서 매년 200명이 넘는 환경 교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신규 환경 교사 임용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2009년 기준, 서울의 환경 교사는 5명이라는 자료가 있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떨까? 햇빛발전소 50메가와트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확장할 환경 교사와 프로그램이 연동될 때, 정책 효과성은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다.
또 지난해 서울그린캠퍼스협의회가 발족했는데, 아직까지는 대학의 에너지 자립률이 향상되었거나, 가능성의 징후가 잘 보이지는 않는다. 대학의 에너지 소비량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많다. 특히, 건물 부분 에너지 소비량이 아파트가 21.3%인데, 대학은 13.6%로 두 번째로 많다. 백화점(13.5%), 상용 시설(13.2%), 병원(11.7%), 호텔(10.8%), 공공(4.9%)보다도 많다. 참고로 서울의 에너지 다소비 건물 1위는 서울대학교이다.
경희대 에너지협동조합 추진을 주목해야
서울시도 대학 에너지 전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책적 재정적 지원 정책을 수립,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려대학교나 서울시립대학교처럼 학교의 주요 설비를 에너지 효율형으로 교체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생산 설비를 갖춘 사례도 중요한데, 아래로부터의 변화라는 점에서 경희대학교 에너지협동조합 추진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학 중에서 처음으로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함께 참여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이 내년 초 경희대에 들어설 예정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는 학내의 다양한 주체인 교수, 직원, 학생 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1년여에 걸쳐 27회의 강의 및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학내에서 그린캠퍼스 캠페인을 3회 진행했고, 태양광 발전기, 자전거 발전기, 태양열 조리기 등을 만들었으며, 학내 구성원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올 12월 발기인 대회를 앞두고 있는 '경희대학교 에너지협동조합'은 에너지 자립률 20%를 목표로 하고 있다.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 교육 교과에서 환경, 기후 문제를 주제로 현장 활동을 한 이들이 종강 이후에도 자발적으로 관련 활동을 하던 중 "학내에서 직접 실천을 해 보자"며 아예 조합 설립에 팔 걷고 나섰다.
조합은 학내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청운관'을 중심으로 △에너지 절감 활동 △지역 사회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 △교수 학생 교직원 동문이 참여하는 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조합은 정식 출범 전임에도 이미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 청운관의 1, 2층 복도의 형광등을 에너지 효율이 우수한 LED로 교체하는 성과를 거뒀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자 연구 기관이다. 재정 절감을 위한, 환경적 가치를 위해, 혹은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기 위한 목표에 추가해서, '교육'과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캠퍼스 울타리를 넘어 지역 사회와 국제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에너지를 매개로 다양한 가치, 즉 인권, 민주주의, 정의, 지속 가능한 미래, 평화 등을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시민', 혹은 '에너지 시민'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에너지 전환의 주체이자, 든든한 지지 세력이 될 것이다.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성공은 상징성 측면만이 아니라, 실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중앙 정부가 미온적인 상황에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선도적인 사례와 영감을 줄 수 있고, 에너지 전환의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중앙 정부의 정책 변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한 행정의 역할이 마중물이라면,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혁명을 이루기 위한 기초 인프라에 대한 중장기적인 투자와 관심이 더 필요하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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