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현대화된 온실에서 토마토, 가지, 주키니 호박, 피망들이 탐스럽게 자란다. 그러나 이 채소들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먹을 게 아니다. 대부분은 중동 산유국의 식탁으로 실려 간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옥한 땅이 풍부하며 기후 조건이 좋은 이 아프리카 나라는 '페르시아만의 곡창지대'로 떠올랐다. 2007년 말 에티오피아 당국은 토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의향이 있는 투자자들에게 자국 토지 일부를 장기 임대하는 계획에 착수했고, 향후 몇 년 사이 벨기에 국토 크기의 땅이 투자자들에게 배분될 것이다. 임대료는 평당 2원에서 8원 사이. 그러나 여당인 인민혁명민주전선의 협조 아래 이루어지는 이 토지 임대에 대해 야당을 위시한 반대 세력은 목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다.
산유국의 맏형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자원 민족주의만으로 식량 안보를 지킬 수 없음을 깨닫고, 식량의 '외부화 관리' 전략을 택했다. 즉 왕국의 바깥에 있지만 사우디 그룹들이 관리하는 해외 농업 투자 계획을 2009년부터 본격화한 것이다. 그들의 레이더에는 수단, 에티오피아, 이집트, 터키 같은 가까운 나라들뿐 아니라 필리핀, 베트남, 우크라이나까지 포착되었다. 이렇게 토지를 대가로 투자를 받는 나라들은 작물의 종류와 재배 방식은 물론이고 임대 조건 같은 문제에 대해서조차 선택권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발이 없을 리 없다. 2010년 로마에서 열린 세계식량안보위원회 회의장에서는 국제 농민 단체의 작은 시위가 열렸다. 이들이 퍼포먼스로 준비한 종잇조각에는 대우, 도이체방크,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의 이름들이 적혀 있다. 시위대는 단일 작물 재배로 인한 생물 다양성 파괴와 원주민 생존권 박탈을 고발한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책임 있는 농업 투자'의 원칙을 만들어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려 한다. 세계적 투자 회사의 한 간부는 수익을 거둬들이고, 지구에 도움이 되고, 민중의 편에 설 수 있다는 '3P(Profit, Planet, People)'의 철학으로 무장하고 그 세 가지가 모순되지 않는다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돈 얘기 뒤에 으레 따라붙는 '더 나은 세계', '식량 주권' 같은 문구들은 이 모든 게 정치적, 생태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맞춰진 듯 보이게 한다.
시카고 상품 거래소의 딜러들은 숨 쉴 새도 없이 곡물 상품을 매수하고 매도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물품을 볼 일도 없을 뿐더러 그게 무엇인지에도 관심이 없다. "오늘 뭘 사셨습니까?" "콩이요." "파신 거는요?" "콩이요." "왜죠?" "나도 모르겠습니다." 식량이 주요한 투기 상품이 될수록 식량은 적재적소에 적절한 양으로 공급되기 어려워지고, 기본 식량 상품 가격의 주기적 폭등은 여러 빈국에서 '기아 폭동'을 낳는다. 미국과 브라질이 석유 에너지 의존 탈피 차원에서 주력하는 바이오연료 정책은 식량 자원의 위기를 더욱 키우는 뇌관이 된다.
수출용 식량 생산과 관련된 투자, 바이오연료와 관련된 투자 말고도 최근에는 또 하나의 농업 해외 투자 유형이 등장하고 있는데 바로 탄소 배출권과 관련된 것이다. 교토의정서의 일부로 마련된 청정개발체제(CDM)에 따라 탄소 배출 할당치를 초과한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의 배출 감축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식으로 탄소 배출권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이 제도가 터무니없는 일들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멀쩡한 원주민 농지를 갈아엎고 먹을 수 없는 나무를 일괄해서 심어두면서 배출 감소 인증을 받게 하며, 그렇게 얻은 배출권은 만기일이 있는 선물과 옵션을 완비한 채 증권 거래소의 상품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3중 위기 속에서 퍼져 나가는 '땅뺏기'
이렇게 된 데에는 석유와 식량 등 에너지와 자원 위기,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 위기, 그리고 금융 시장의 위기가 한데 뒤얽혀 전개되고 있다는 사정이 있다. 이 3중의 위기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을 만든 '인클로저'가 다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람을 잡아먹는 것은 양이 아니라 저 먼 나라에서 사용될 옥수수와 사탕수수, 주키니 호박이다. 주식 시장의 붕괴를 겪으면서 휘청거린 후 "닷컴 기업보다 자트로파에 투자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가장 확실한 원초적 자본인 땅이 새롭게 상품화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와 식량 위기의 시대에 땅은 금보다도 안정적인,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 게다가 상당한 기간(거의 영원히) 이용할 수 있는 이윤 수단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부패한 정부 또는 외국인 농업 투자가 국가 발전에 정말로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이러한 땅뺏기에 적극적으로 공모한다.
대안은 무엇일까? 소농은 힘이 미약하고 세계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으며, 국제기구들이 이들을 보호하고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싸움에 먼저 나서기는커녕 합의된 룰을 지켜주기도 어렵다는 것을 너무도 많이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더욱 널리 알리고 연결하는 것 말고는, 그리하여 식량과 자원, 에너지, 기후를 다루는 국제기구와 회의장에서 이를 의제화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비록 자본에게 발이 없기는 하지만 '스웨트숍(sweat shop)'이 소재한 곳에서나 '스웨트숍'을 운영하는 기업의 본국에서 함께 전개하는 투쟁과 감시 활동이 의미가 없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비관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땅뺏기에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찾아 듣고, 땅뺏기에 나서는 한국 기업이나 정부 투자가 없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면서, 에너지 전환과 자본주의 시장의 대체라는 더 큰 이야기를 병행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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