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조차 드리기 민망한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훌쩍 넘겼지만, 유가족들의 슬픔과 많은 국민들의 분노는 조금도 덜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실시된 7.30 재보선은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이미 한쪽으로 기운 대한민국 호의 복원력이 회복되기는 더더욱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한반도 정세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 게임 참가 통보로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남북 관계는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7월 30일(현지 시각) 미국 의회에서 열린 대북 정책 청문회가 예정된 3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빨리 끝났을 정도로 미국의 북한 무관심은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고수와 북한의 핵 억제력 증강 사이의 악순환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입니다.
시선을 세계로 돌려보면, 지구촌 곳곳이 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간 여객기 피격 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의 대혼돈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 상태도 여전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대형 감옥'이라고 불리는 가자 지구가 피로 물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7월 8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가자 주민 학살로 7월 29일까지 모두 12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상당수는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민간인들입니다. 가히 무차별적인 전쟁 범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인도 56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인권 선진국임을 자임하면서 타국의 인권 상황과 관련해 친절하게(?) 백서까지 내놓는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 인권이사회 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보편적 인권'을 앞세워 북한 인권 문제를 비판해온 한국 정부도 기권했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미국의 거수기임을 거듭 보여주는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자 지구 학살을 비롯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해 저와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이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진짜 안보'에서 상세하게 다뤄봤습니다. 일청(一聽)을 권합니다.
오늘은 북한의 인천 아시안 게임 참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북한이 9월에 인천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키로 하면서 꽁꽁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해빙으로 이어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말았습니다. 남북 실무 접촉이 지난달 1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렸지만, 차기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1차 실무 접촉 이후 남북 어느 쪽도 후속 대화를 제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실무 접촉에서 북측은 선수단 350명, 응원단 350명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선수단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항공기로 이동하고, 응원단은 경의선 육로로 들어와 '만경봉-92호'를 숙소로 활용하겠다고 전달했습니다. 예상 밖의 큰 규모에 남측이 당황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에 남측은 응원단의 구체적인 구성 상황을 물었고, 북측은 차기 회의나 서면으로 알려주겠다고 했으나, 남측이 거듭 확인을 요구하자 북측이 불쾌감을 표했다는 후문입니다.
회담 결렬 당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측을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오전 회담에서 우리 측 안에 호응하던 남측이 오후에는 청와대의 지령을 받고 완전히 돌변하여 도전적으로 나왔다"는 것이죠. 북측은 남측이 비용 문제, 대표단 규모, 인공기 및 한반도기(통일기)의 크기, 신변 안전보장 등에 대해 사사건건 문제를 삼았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비용 문제와 관련해 북측이 먼저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는데 남측이 국제관례상 자부담 원칙이라고 말했다며, 상당한 불쾌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시안 게임 참가를 재검토할 것이고 참가 여부는 남측 태도에 달려 있다며 공을 넘겼습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북측은 실무적 필요에 따라 상세 사항에 대한 우리 측의 확인을 왜곡하며 문제 삼아 돌연 접촉 결렬을 선언하고 퇴장한 바 있다"며, "청와대 지령 운운하며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특히 정부는 현재까지 먼저 실무 접촉 재개를 제안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로는, 실무 접촉 결렬의 핵심적인 사유는 인공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측이 먼저 '대형 인공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남측이 먼저 곤란하다고 말했다는 것이죠. "대형 인공기를 사용하게 되면 우리 내부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으니까 신변 안전이나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이는 북한이 "남쪽 정서니, 신변 안전보장이 어렵다느니 하면서 응원단의 규모와 국기의 규격까지 걸고 들다 못해 공화국기는 물론 한반도기도 큰 것은 안 된다고 도전해 나섰다"는 주장을 시인한 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통일뉴스> 보도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놓고 보면, 북한을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가 정말 한심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체류 비용을 얘기할 때에는 국제관례를 강조하고, 인공기와 한반도기를 거론할 때에는 국제관례에도 없는 크기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북한이 먼저 꺼내 들지도 않은 문제였는데 말이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국제관례, 북한을 비판할 때에는 국제사회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남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변명하려고 할 때에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제기하는 이중 잣대를 거듭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가 북한의 주장처럼 '청와대의 지령'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작년 7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 회담의 남측 수석대표가 갑자기 교체된 적이 있었는데요, 회담 내용을 모니터링하던 청와대가 당시 서호 대표의 발언과 태도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왔었습니다.
그 이후, 남북 양측에서는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는데요, 북한은 남북 대화 대표로 청와대 안보실의 책임자가 나오라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배후에서 조종하지 말고 실세가 나오라는 의미였죠. 또한 남한 내에서는 '남북 대화에 임하는 남측 대표단이 상대방(북한)을 향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뒤에 앉아 있는 사람(청와대나 국정원)을 향해 말하는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옵니다. 그만큼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남북한의 신경전이 계속되면서 북한의 아시안 게임 참가도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단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7월 20일 인천 아시안 게임에 참가할 남자 축구팀 경기를 지도하면서 "조선 선수들이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북남 사이의 관계를 개선하고 불신을 해소하는 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최고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고 또 <조선중앙통신>이 이를 공개한 것을 놓고 볼 때, 북한의 참가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우선 대회 규정상 8월 15일까지 북한이 선수단 참가 명단을 확정·통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속히 실무 접촉이 다시 열려야 하는데요, 남측은 '북한이 회담을 결렬시켰으니 우리가 먼저 실무 접촉을 제안할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반면 북측은 '아시안 게임 참가 여부는 남측 태도에 달려 있다'고 반박합니다. 이러다가 '골든 타임'을 놓칠까 걱정됩니다. 또한 8월 하순부터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이 실시될 예정입니다. 이 훈련 전에 실무 접촉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면, 김정은 체제가 또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릅니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인데요, 북한의 아시안 게임 참가가 무산되면 반쪽짜리 대회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이 대남 비방과 군사적 위협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요. 반면 북한의 참가가 성사된다면, 아시안 게임은 국제적 관심을 모으면서 성공적인 개최를 기약할 수 있을 겁니다. 남북 관계도 바닥을 치고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거고요. 모쪼록 남북한 위정자들이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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