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부터 민주노총과 함께 '시민 안전' 기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철도, 지하철, 가스, 병원, 버스, 공항, 항공, 보육 및 요양시설, 건설, 화물, 화학섬유 관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 각 사업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안전 문제를 제 목소리로 전달하려는 취지입니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재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안타깝게 희생된 지도 100일이 다 되어간다. 한꺼번에 수백 명이 희생되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오래 전부터 육상에서는 소규모의 세월호 참사는 늘 존재해왔다. 바로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책임져왔던 전세버스의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근과 통학은 물론 관광 목적으로 운영이 되는 전세버스의 교통사고 건수는 2008년 6309건, 2009년 7721건, 2010년 1만1182건, 2011년 1만2366건, 2012년 1만3972건으로 5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사망자는 5년간 311명이나 발생했다.
전세버스 노동자들이 교통사고를 자부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 사고는 공식통계보다 훨씬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전세버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흉기가 되어 가는데 우리 학생들은 계속해서 통근과 통학은 물론 수학여행을 목적으로 전세버스를 이용해왔던 것이다.
[노동자가 말하는 '안전'] 연재 보기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노동조건은 악화
그러면 왜 전세버스에서 교통사고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인가? 전세버스 업체의 영세성과 그로 인한 노동조건 악화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전세버스는 1993년도에 면허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되어 업체끼리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점차 영세화 및 부실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건은 계속 악화하면서 장시간·저임금 근로조건이 만연해졌고 사고율을 높이게 된 것이다. 전세버스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 달 내내 거의 쉬지도 못하고 매일 15시간(대기시간 포함) 정도 일을 해야 할 때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고 노동조합도 없어서 부당하더라도 사측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구조적으로 과로에 인한 졸음 운전이 만연되면서 여차하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 편으로는 높은 이직률을 메우기 위해서 미숙련 노동자들을 무리하게 고용하면서 사고율이 높아진 탓도 있다.
돈 아끼려 차량 정비 최소화
또 한편으로는 직영 업체와 지입차주들이 차량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행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차량을 정비하면 비용도 소요되지만 그만큼 운행을 못 하면서 손해를 보게 되므로 정비는 최소화하고 차량을 운행시키는 것이다. 운전자의 실수처럼 보이지만 차량 정비 불량으로 차량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사고 위험이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전세버스는 차량정비 불량과 운전자들의 장시간·저임금 노동조건이 결합하면서 교통사고가 구조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소규모라서 뉴스에 잘 나오지는 않지만 통근이나 통학 그리고 관광 목적으로 버스를 이용하다가 다치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이 많다.
시내버스도 사고 많아…하루 18시간 격무
전세버스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매일 이용하고 있는 노선(시내)버스도 점점 위험해지고 있다. 민영제로 운영되는 경기도 노선버스는 1년에 2570건(2012년 기준)의 교통사고가 발생했고 4500여 명에 이르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교통사고 자부담 관행을 감안하면 실제 사고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전세버스처럼 경기도 버스 노동자들 또한 장시간 저임금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많은 업체가 1일 18시간 근무하는 격일제 사업장이며 만근일수가 평균 14일이라 월 노동시간이 300시간이 훌쩍 넘어간다.(☞관련 기사 보기 : "18시간 연속 운전…사고 안 나는 게 기적")
이러한 장시간 근로는 과로와 졸음 운전으로 이어져 교통사고 증가를 야기한다. 버스업체가 비용 절감을 위해 적정 인원보다 훨씬 과소 고용하고 있으며, 노동자 입장에서도 낮은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일을 해야 하므로 장시간 근무가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업장이 어용노조란 평이 많은 한국노총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소속이라 노동자는 사측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준공영제도 다를 게 없다…악명 높은 '꺾기' 여전
그러면 민영제와 다르게 버스 준공영제는 괜찮을까? 민영제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최근에 발생한 서울 송파 버스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준공영제에서도 점점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업체들이 인원 채용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당일 18시간 근무(일명 꺾기교대라고 하는데 준공영제하에서 변형된 1일 2교대 근무형태로 첫날 오전 근무(첫차∼오후 1시), 둘째 날 오후 근무(오후 1시∼막차)를 한 뒤 셋째 날 다시 오전 근무를 하는 것을 뜻함)를 해야 할 상황이 왕왕 발생하면서 버스안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준공영제라고 해도 노무 관리는 전적으로 민간업체가 담당해서 지방정부가 제대로 관여하지 않고 있어서 언제 송파 버스 사고와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민영제냐 준공영제냐 상관없이 마을버스 노동자들 또한 장시간·저임금에 놓여 있다. 시내버스보다 임금수준이 60%에 지나지 않지만 노동시간은 더 길기 때문이다.
1년짜리 계약직 정비 노동자로 버스 안전 지킨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세버스에서처럼 정비 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운전직에 비해 소수라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비직은 장시간 저임금에 1년 단위 연봉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들이 많아서 버스안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적절한 인원이 고용되지 않아서 예방정비는커녕 문제가 있는 차량을 점검하기에 급급한 형태이다. 막차와 첫차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야간 근무도 필수인데 인원이 적다 보니 혼자 당직을 쓰면서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차량의 성능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차량이 노후화하면 문제가 많이 발생하므로 예방 점검은 필수다. 더욱이 승객안전과 직결이 되는 브레이크 부문이나 실제 몇 번이나 폭발사고가 난 CNG(압축천연가스) 관련 점검은 더 엄격하게 해야 함에도 제대로 못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버스 안전, 민간이 아니라 공공이 책임져야
버스 안전은 비용이 소요되어 수익성과는 반비례할 수 없으므로 민간업체들에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버스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을 따지지 않는 공공 부문이 운영을 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전면적으로 버스 공영제를 시행하기는 어려우므로 버스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부문에 한해서라도 정부가 공적 개입을 확대해서 버스 안전이 담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운수 노동자들의 장시간 근무로 인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근로시간에 대해서 협약 및 권고로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ILO 협약 및 권고에 근거하여 선진국들은 사업용 운전자의 장시간 과로 운행이 대형 교통사고로 연결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최대 연속 운전시간 제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에는 10시간 연속운행을 할 경우, 8시간을 의무적으로 휴식하도록 하고 유럽연합(EU)도 하루 운행시간은 9시간을 넘지 못하며 근무 종료 후 11시간을 의무 휴식으로 정하고 있다.
충분한 휴식과 이를 위한 인력 고용은 필수
물론 이렇게 운영을 하려면 인력이 충분히 고용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인력 운영에 대해서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관철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호주에서는 화물 노동자들의 장시간 저임금이 도로 교통사고의 원인임을 인정하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도로안전운임법'을 제정하였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곧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다. 한국도 충분히 버스 부문에서도 ILO 협약 및 권고에 근거해서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사회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물론 비용이 많이 든다고 주장하겠지만 사고 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버스 부문도 장기적으로 누적이 되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버스안전 보장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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