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부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접 쓴 '시민 안전' 기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철도, 지하철, 가스, 병원, 버스, 공항, 항공, 보육 및 요양시설, 건설, 화물, 화학섬유 관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 각 사업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안전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취지입니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재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1994년 아현동 밸브 기지 폭발사고, 1995년 대구 상현동 지하철 공사현장 가스 폭발사고, 1996년 대한도시가스 정압기 연쇄분출사고 등. 지난 4월 16일 수많은 사람의 인명과 재산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도시가스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모두 안전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위험에 대한 과소평가가 그 원인이었고 이에 따라 '도시가스사업법'의 안전 규정이 한때 대폭 강화됐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안전 관리와 규제를 완화하는 흐름이 계속됐다.
그 결과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다. 관료적 관리 체계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수량적 평가 뒤에 숨겨져 있을 뿐이다. 단기적인 이윤 논리는 현장의 노동자와 지역 주민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 이 글에선 바로 그 도시가스에 숨겨져 있는 사고 위험성을 얘기해 보려 한다.
위험을 키우는 규제 완화의 대표적 사례가 '배관 안전 점검원 제도'의 축소 및 해체다.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한국가스공사와 각 지방의 소매 도시가스 공급회사의 가스 배관 등 공급 시설물을 점검 및 유지·보수하는 안전 점검원 제도는, 1994년과 1995년 두 차례의 대형 가스 참사 이후 도입됐다.
제도 도입 이후 사고가 현격히 주는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이 안전 제도에도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다. 기업 구조조정과 각종 규제 완화 분위기 안에서 도시가스 업계의 요구가 관철된 결과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는 사실상 배관 안전 점검원 제도가 거의 해체된 상황이다.
이 규제 완화 시도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래 표에 정리한 '도시가스 안전관리 로드맵'이었다. 그리고 지금, '규제 개혁' 방침을 세운 박근혜 정부에 발맞춰, 도시가스 회사들은 현행 도시가스사업법 완화마저 요구하고 있다.
이미 현행법은 도시가스 사의 배관 안전 점검원 선임(15킬로미터마다 1명)과 배치 기준(60킬로미터마다 1명)을, 그 실행 여부에 따라 15%까지 완화해주고 있다. '도시가스의 합리화'니 '안전성 제고를 위한 과학화'니 하였지만, 실은 명백한 규제 완화다.
이에 더해 가스업계는 배관 15킬로미터마다 1명의 안전 점검원을 배치토록 한 제도마저 완화하고, 시설물 점검 횟수를 줄이고, 20년 경과된 도시가스 배관을 상대로 5년 마다 실시하는 정밀 안전진단 관련 규제도 완화하란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비자 민원처리 업무는, 외주화 및 프랜차이즈화된 지역관리소(고객 센터)에 위탁 처리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민원은 외면한다. 민원 서비스의 질은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회사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기보단 외려 더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안전 관리도, 사고 처리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
안전 점검원 제도를 지속해서 축소해온 결과 현장은 난리 통이 됐다. 배관 안전 점검원을 충원하지 않아, 주간 근무자가 야간에 이루어지는 정밀 안전 진단 업무에까지 배치되고 있다. 안전 점검원들이 높은 노동강도와 시달리고 피로가 누적되면 과거보다 안전 관리 업무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현행법이 규정한 선임 및 배치 기준도 사업자들은 이미 지키지 않고 있다. 선임만 해놓고 안전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시키는 등 배관 안전 점검원의 업무 범위는 불합리하게 확대, 통폐합됐다. 서류 업무에 시달리고 확대된 시설물 관리 업무로 현장을 제대로 돌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도시가스 회사와 가스공사는 점검원의 업무 범위를 더욱 확대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동시에 순찰 체제 전환 등을 통해 인원 충원의 근거를 아예 없애려는 시도마저 하고 있다. 이는 곧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시민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일이다.
물론 도시가스 사들도 세월호 참사로 생긴 안전을 되돌아보는 분위기를 아주 무시하는 건 아니다. 가스사고 대응 매뉴얼을 재점검해 보완하고, 이를 통해 더욱 현장 중심적인 안전 점검을 하겠다고 한다. 사고 발생 시 긴급 출동, 비상사태 수습 등 발 빠른 복구 작업을 하겠단 것이다.
그러나 안전관리도 사람이 하고, 사고처리도 사람이 한다. 안전 관련 노동자를 줄이면서 어떻게 안전을 높인다는 얘기인가? 보편적 시민 생활 에너지가 된 도시가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안전은 도시가스 사들에 비용 절감 대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보이고 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없었다면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을 미명으로 도시가스의 안전은 진작에 완화됐을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형 사건 사고가 우리의 머릿속에서 잊힐 때쯤이면 도시가스 사들은 또다시 도시가스 안전관리 규정을 완화하려 할 거란 점이다.
시기
내용
1기
1995년
- 도시가스사업법의 전면 개정 ⇒ 안전관리 규제 강화
- 배관 안전 점검원 제도 도입 (선임 인원 기준 15km마다 1인)
2기
1999년
첫 규제 완화 _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민영화 및 규제 완화 분위기의 영향 받음
① 현대화와 과학화 정도에 따라 15km마다 1인 기준 완화를 가능토록 함.
② 도시가스사업법에 규정된 안전관리 규제의 일부 삭제.
2000년
~
2007년
지속적인 규제 완화 시도 _이와 같은 업계의 요구는
'도시가스 안전 관리 규제 합리화 로드맵'에 집약됨
① 배관 안전 점검원의 업무 확대
② 15km마다 1인 기준 완화
↳ 시도의 근거: 경직적인 선임 인원 기준에 따른 비용 부담 및 효율성 저하, 도시가스 사고의 현격한 감소
3기
2008년
①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에서 안전 점검원의 업무 범위 확대 시도.
↳ 전국도시가스노동조합협의회의 대응으로 전산 관리 업무와 사용 시설의
공급 전 안전 점검은 업무 범위에서 제외됨.
그러나 안전 점검원 제도가 더 흔들릴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보임.
② 병렬 배관은 단일 배관으로 산정(2009년 개정).
③ 도시가스사업법 시행규칙에서 과학화와 현대화 정도에 따라 인원 배치 기준(60킬로미터마다 1명)과 선임 인원을 변경할 수 있는 가중치가 규정됨.
2010년
안전 점검원 업무 사실상 해체
① 시행령에서 안전 점검원의 고유 업무 사라짐.
이로써 1995년도에 만들어진 안전 점검원 제도는 거의 해체된 것으로 보임.
② 도시가스 사마다 안전 점검원 업무가 달라짐.
"가슴 아픈 세월호 참사…절대 잊어선 안 돼"
안전 점검원 제도뿐이 아니다. 전반적인 안전 관리와 관련한 규제에도 도시가스 업계의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꾸준히 관철되어 왔다.
이는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장에선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일어난다. 지하나 지상에 있는 도시가스 시설들은 주변 공사나 사용자의 부주의로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다.
애초에 훼손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훼손이 되었을 때 초동 조치를 어떻게 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누설되는 가스를 얼마큼 잘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도 있고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사고의 상당수는 묻힌다. 현장을 입회한 담당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국도시가스노동조합협의회는 앞서 2010년 도시가스 사와 안전 관리와 관련한 일부 내용을 합의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재차 요구한다. 안전 점검원 제도, 더 나아가 안전 관리 규제 완화를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
배관 안전 점검원 제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선임 인원 기준을 10킬로미터당 1인으로 변경하고 그 고유업무를 규정해야 한다. 주간과 휴일을 포함한 배관 순찰 횟수를 늘려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함도 물론이다. 이를 위해선 인력 충원이 필수이며 도시가스 사들이 반대하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
사고 통계도 더 철저히 해야 한다. 안전 관리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키 위해선 사고에 대한 정의를 확장 및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고 집계 방식에서 신고 기피라는 현실적 문제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사태 이후 노동자들은 단순한 '일자리 지키기'가 아니라 공공의 안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전을 다루는 노동자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만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고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 사고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또 잊는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의 안전이 또다시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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