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부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접 쓴 '시민 안전' 기고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철도, 지하철, 가스, 병원, 버스, 공항, 항공, 보육 및 요양시설, 건설, 화물, 화학섬유 관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 각 사업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안전 문제를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취지입니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노동자들의 연재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운전실에 승무원만 있었더라면…
이 한 장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악몽과도 같았던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의 한 장면이다. 방화가 일어난 열차의 반대편에서 들어온 열차의 맨 뒤 칸에서 승객들이 객실에 들어차는 연기와 유독가스에 놀라는 모습이 한 승객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찍혔다.
긴박한 그 몇 분 동안 어쩔 줄 모르고 객실 안에 있던 승객들 상당수가 금방 화마에 휩싸인 열차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때 바로 뒤쪽 운전실에 승무원만 있었더라면, 1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객실에 갇힌 채 이렇게 속절없이 쓰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깜깜한 터널 안에서 160미터 앞쪽의 기관사는 뒤쪽의 승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이렇게, 192명의 사망자 중 맨 뒤쪽 두 칸의 객실에서 사망자 대부분이 나왔다.
단 한 명의 승무원만 더 있었더라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시행하는 1인 승무 제도가 빚은 참극이요, 대표적 인재(人災)인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분노와 슬픔에 가슴이 미어진다.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친다. 돈 들어가니까!
이 참사 후 유족과 시민들의 요구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진상조사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였고 그 결론 중에 1인 승무 제도의 문제점이 사고 확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열차 이용 시 반입 불가한 위험 물질로 지정된 시너 통을 가지고 들어와도 속수무책이었던 무인 역사 관리 체제가 사고방지 측면에서의 제1 원인이었다면 사고 대응의 측면에서 1인 승무제도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데 이의가 없었다.
시민들 특히 유족들은 '희생된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더는 이런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2인 승무 제도 등 지하철의 근본적인 안전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거꾸로였다. 참사가 났던 대구 지하철 1호선은 여전히 1인 승무로 운영되고 있다. 오히려 역사 인원은 줄이고 아예 무인 매표로 운영, 뒤이어 개통한 2호선은 무인 역사이며 그 중 12개 역은 민간 위탁하여 운영, 올 연말 개통 예정인 대구 지하철 3호선은 승무원 1명도 없는 무인 운전 시스템이 도입된다.
역사에도, 열차에도 아예 사람이 없는 지하철. 이제 모든 건 승객 스스로 책임지게 되었다.
192명의 희생이 무의미하게도 지하철 안전은 거꾸로 가고 있다. 이러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비용 절감 때문이다. 여전히 이 나라는 사람보다 돈이다.
[노동자가 말하는 '안전'] 연재 보기
지하철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정부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정부는 인력 감축·비용 절감을 핵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정책을 지하철에도 강요해 왔다. 이른바 경영평가 제도를 통한 정책적 압박에 이유 불문하고 비용 절감과 부채 감축만이 최선이 되는 상황에서 안전에 대한 투자도 이뤄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전국의 지하철에는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대폭 증가하고 있어 일상적인 불안감 속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서울지하철(1~4호선)은 차량 및 시설 설비의 노후화와 인력 부족, 개통 20년인 서울도시철도(5~8호선)는 8량 중량 열차의 1인 승무 제도, 역사 인력 부족, 핵심 업무 외주 위탁정비 등 치명적인 안전 위협 요인들을 안고 있다.
부산 지하철 또한 비슷하다. 모든 호선에 1인 승무, 역 외주위탁 운영, 인력 감축에 더해 4호선에는 극단적인 무인운전, 무인역사 시스템을 부산 시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도입하였다.
민자 운영 중인 9호선도 역시 1인 승무에 최소 인력만 배치하고 있고 신분당선은 지금도 무인운전 열차가 운행 중이다.
지난달 28일 10시 도곡역 구내에서 발생한 지하철 3호선 열차 내 방화 사건은 많은 국민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대구 지하철, 남대문 방화사건과 이번 3호선 열차 내 방화사건은 모두 똑같은 범죄 행위였다.
그러나 그 결과를 보면 사고 발생 시 '사람'이 어떻게 잘 대처하는가가 그 결과를 달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필요한 사람이 있을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협동하는 것이 기본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말은 대중교통 지하철 운행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설마 또 사고가 나겠나? 언제 날지도 모르는 사고 때문에 수백 명의 인력을 더 늘릴 수는 없지 않나?'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진상조사 과정에서 2인 승무의 필요성에 대해 나온 대구시, 대구 지하철 경영진의 답변이었다. 시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를 위협하고 있다. 정책의 탈을 쓰고 오직 돈을 위해서.
절대 믿지 말자, 그들의 말은.
세월호 참사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고 책임을 지는지 적나라하게 본 국민들이 많이 분노했다. 아직도 11명의 실종자는 주검조차 찾지 못하고 가족들의 피눈물이 그치지 못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오늘도 목숨 걸고 바닷물 속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지고 사퇴했던 정홍원 국무총리를 다시 유임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희생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가족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바닷 속에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안에서 어른들의 지시만 기다리며 천진난만하게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찍던 아이들의 모습이 다시 우리를 울린다.
사고 직후 너도 나도 결연히 앞장서겠다고 외쳐대던 정치인들은 국회에서 이미 이전투구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부 여당의 김빼기 시간 끌기는 점입가경이다. 요란하게 군까지 동원해 유병언을 잡겠다고 난리를 피운 이유가 사고 수습과 안전 대책 마련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도처에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산재한 낡은 지하철을 운행하며 믿을 놈이 없다는 말들을 한다.
얼마 전 상왕십리 지하철 추돌 사고를 겪으며 언제든지 우리들의 목숨도 위험하다는 위기 의식이 지하철 노동자들 사이에 처지고 있다. 최첨단·최신식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은 점점 인간을 배제하고 기계에 의존하는 운행 시스템이 결국은 모든 사람을 위험속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지하철 노동조합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와 상왕십리 추돌사고, 지하철 3호선 방화사건 등을 계기로 국민의 발이고 대중 교통수단인 철도·지하철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결의하였다. 시민들과 연대하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며 노동조합의 총역량을 집중하여 안전한 철도 지하철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더 이상 저 꽃다운 아이들의 희생, 소중한 이웃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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