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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 '위험한 줄타기'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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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냐 중국이냐, '위험한 줄타기' 언제까지?

[정욱식 칼럼] 뜨거운 경제와 차가운 안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월 3~4일 한국을 방문한다. 취임 후 첫 방한이지만,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6번이나 만났을 정도로 정상 외교는 활발하다. 이를 두고 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중 관계가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평가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통계도 있다. 1992년 두 나라가 수교했을 때 무역 규모는 52억 달러였지만, 작년에는 27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무려 430배나 늘어났다. 이로 인해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다. 특히 작년 한국의 대중 무역 흑자 규모도 9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무역액만 늘어난 게 아니다. 작년 양국을 오고 간 국민들이 800만 명에 달한다. 양쪽 유학생의 수도 6만 명을 돌파했다. 이러한 수치를 종합해보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는 양자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산물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이견은 남아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체결되면 양국의 경제와 교류왕래 규모는 더더욱 늘어날 것이다.

▲ 지난 3월 23일 핵안보정상회의 참석 차 네덜란드 헤이그를 방문한 박근혜(왼쪽)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헤이그의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연합뉴스

그러나 화려한 수사와 수치 이면에는 전략적 갈등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70년 가까이 미국 패권에 익숙해진 한국엔 중국의 부상이 아직까진 낯설게 느껴진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한국 경제의 블루오션이 되어왔지만, 군사적 부상에는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미·중 관계가 좋아진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두 나라의 관계가 협력보다는 경쟁에 방점이 찍혀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흔히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안보적 이익을 얻고, 중국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중국을 겨냥한 지역 동맹으로 재편하려 한다. 한국이 여기에 빨려 들어가는 징후를 보이자, 중국 내에서는 '한국이 돈은 중국에서 벌고, 안보는 미국 편에 선다'거나 '한국이 도자기 가게에서 쿵푸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래서 중국은 한국에 균형외교를 강조한다. 중국이 남북한을 상대로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듯이, 한국도 미·중 관계에서 누구 편에 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한국은 미국에 계속 베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미국의 눈에는 한국의 균형외교 시도가 '탈미친중'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중 양국의 정책도 공통점은 줄어들고 차이점이 커지고 있다.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은 북·미 관계가 기본이라고 본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북·미 관계 개선이라는 도랑을 건너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6자회담 개최국으로 북·미 관계를 비롯한 핵심 현안들의 거중 조정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역할을 강조한다. 북한과는 형제이자 미국과는 동맹국인 한국이야말로 북핵 해결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게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양국 간 공조가 잘 이뤄졌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에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표면적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티격태격하고 있다.

최근 북·일 관계 개선에 대한 한중 양국의 시각 차이에 이러한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은 북·일 관계 개선이 대북 제재와 압박 구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불편해한다. 반면 중국은 6자회담 재개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문제가 고도로 연계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가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접근법은 정반대이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근거로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또 한일관계를 연결해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고 한다. 이것이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핵심이라는 점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대화와 협상만이 북핵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국이 북한위협론을 이유로 중국에 대한 군사적 포위·봉쇄망을 구축하려고 한다는 강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딜레마도 커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계속 베팅하라'는 미국의 압력과 '균형외교를 펼치라'는 중국의 요구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면 안보적 이익이 걱정될 것이다.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면 경제적 이익이 침해받을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게 6자회담이다. 6자회담이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면,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문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 결과 미·중 관계에서 한국의 샌드위치 신세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면 6자회담의 재개와 성공적인 발전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선순환을 도모하면서 한국의 딜레마를 기회로 전환시키게 될 것이다. 6자회담이 한반도 위기관리와 평화적 해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토대인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동북아 차원에서도 그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보다 정확하게는 중국을 겨냥해 한미일, 미국-일본-호주, 미국-일본-인도 등 3자 관계를 구축하고 동남아 국가들까지 여기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아시아 국가들이 모여 자체적인 집단안보체제를 만들자고 한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의 '내 편 만들기'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도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6자회담은 동북아 6개국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이 하자고 해서 시작됐고 중국이 수용해서 개최국을 맡았다. 이건 한국의 미래전략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두 나라까지 포함한 협력안보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박근혜 정부가 시진핑의 방한을 계기로 6자회담의 전략적 가치를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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