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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안철수가 아니라 정당이 한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치 ⑤

정당정치 살려야 새정치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정치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데에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똑똑한 그들이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공천권을 중앙에서 대통령이나 정당의 대표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천권의 독점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다수 정치인으로 하여금 해당 지역주민이나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일보다 다음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만든다. 즉, 정치인들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공천권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더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가 당 지도부의 뜻을 거슬러가면서 소신 있는 발언이나 주장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조건은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은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점이 한국정치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정당은 선거 국면이 되면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미명 아래 외부 인사들을 데려다가 소위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를 만들어 공천작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공천권자의 독점적 권한행사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자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갑자기 등장한 공심위원들이 정당의 사정에 대해 어떻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선진국에서 이런 식의 공심위를 만들어 공천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악순환에서 오는 정치인들의 무능과 무소신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질려 하면서 혐오하게 되었고, 동시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소망하게 되었다. 바로 그러한 기대에서 소위 '안철수 현상'이 생겨났고, 국민은 이를 통해 정치권이 달라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이 주춤하게 된 것은 안철수 의원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새정치'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치권을 그대로 답습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안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한길 대표 대신에 자신이 새로운 정당에서 그러한 역할(공천권의 행사)을 하는 것을 새정치라고 보는 것이라면, 그것은 착각이다.
그것들은 우리 모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경험한 바이다. 그동안 총선에서 매번 절반에 가까운 새로운 인물들이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새로이 들어갔지만, 우리 정치의 모습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새로운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자신을 공천해 준 공천권자의 의도를 거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의 공천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안철수 의원 등 새로운 인물들이 정치를 한다고 해서 새정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그동안 권력을 한 개인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실종되었던 정치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새정치'란 먼저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전혀 작동되지 않고 있는 정당정치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각 정당이 공직후보자의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공직에 당선된 정치인들은 국민의 뜻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당원의 뜻이 곧 국민의 뜻이기 때문이다.

또 정치신인이나 지망생들도 중앙에서 공천권자의 눈치를 살피며 그 개인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현장에 내려가 당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민들 또한 정치를 혐오하거나 기피하는 대신에 자신의 뜻에 맞는 정당을 골라 당원이 되고,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 줄 공직후보자를 선출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당원들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면 정당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권에 등장한 안철수 무소속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비례대표제가 강화해야

이와 더불어 정당제도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기존의 선거제도를 개선하여 보다 많은 정당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새누리당과 민주당만을 당선시키고 있는 현행 '소선거구 선거제도'를 '정당투표제를 대폭 강화한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독일은 전체 의원의 절반을 정당투표에 의한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과거와 달리 훨씬 더 복잡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당들은 여전히 독과점이 아주 심한 모습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데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비정규직 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정당의 출현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은 먼저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당체제가 실질적인 다당제로 바뀌게 될 경우, 기존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이에 걸맞은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 등으로 권력구조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새정치나 정치개혁을 언급하고자 한다면 이와 같이 공천혁명을 통한 정당의 활성화, 또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들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선거제도의 혁신 등을 이야기해야 한다. 동시에 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당원에 의한 공천이 우리의 현실에서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지만, 어느 정도 정착할 때까지는 중앙당과 시당 또는 도당에서 공동으로 공천을 결정한다는 유예기간을 두면 된다. 정치지망자나 당원들에게 예측 가능한 정당의 활동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초단체 정당공천 폐지하면 정당 역할 후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단체 정당공천폐지'의 문제는 그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정치혁신에 역행하는 사례이다.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이 기초의원 후보자들과 지역구 국회의원 간의 유착관계와 돈거래 비리를 가져오니 그 해결책으로 정당이 아예 공천을 하지 말자는 것인데,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이다.

그러한 결정은 정당의 역할을 더욱 후퇴시켜 장기적으로 정치를 더욱 더 퇴행시키게 될 것이다. 원래 당원들이 기초의원의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하면 되는데, 기존의 거대정당들에 제대로 된 당원들이 많지 않고, 활동도 거의 없으니 실질적으로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이 그 후보선출권을 행사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정당들을 활성화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해야지, 유착에 따른 비리문제가 있으니 정당이 아예 빠지자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돈 안 쓰는 깨끗한 정치를 하자고 과거 지역의 지구당을 폐지한 정치개혁법(소위 오세훈 법)과 비슷한 맥락이다. 정당의 지구당 유지에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그것을 없앤 결과가 결국은 정당의 지역 근거지를 없애버렸고, 결국은 풀뿌리 민주주의로서의 정당 활동을 막아버린 결과를 초래하였다. 지역에서의 정당한 정당 활동이 지역위원회 또는 당협위원회 등의 이름으로 이상하게 변질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하였다.

국민이 염원하는 새정치는 무조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치인의 역할이 바뀌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에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슈퍼스타 K'를 뽑는 것처럼 매번 1회성 공연이 되어서는 안 되고, 예측이 가능하도록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이러한 체계화를 위해서는 정당이 제대로 발전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원들의 권한을 보장하고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정당의 활성화 및 다양한 정당들의 정치권 진입을 위해서는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정착될 경우, 권력구조에 대한 개편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의 정치상황이나 제도적 조건을 그대로 두고 권력구조만을 바꾸는 것은 오히려 개악이다.

이를 위해 다음 편부터는 일상의 생활주변에 자리한 독일의 정당제도를 알아보고, 독일의 주요 정당들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이어서 그러한 다당제를 가능하게 하는 '혼합 비례대표제(Personalisierte Verhältniswahl)'라고 불리는 독일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겠다. 또한 최근에 우리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개헌논의와 관련하여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의원내각제, 지방자치제도, 연방주의" 등 독일의 정치시스템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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