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어디 가고…평론가들만 TV토론
독일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갈등이 있는 문제들에 대해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국회에는 분야별로 상임위원회가 있고, 여기에는 여야 의원들이 소속해 있다. 하지만 과문해서인지 그들이 주요 현안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기자들도 정치인을 찾아가서 의견을 묻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찾아가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간혹 써준 원고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본다. 그들이 과연 쟁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으로 국민을 설득하여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과도한 우려일까?
방송을 보면 이슈에 대한 보도에 이어서 정치인보다는 주로 전문가, 교수, 정치평론가들이 등장하여 논의를 주도한다. 토론회에서도 해당 분야의 정치인들보다 소위 전문가 그룹이 단골로 출연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지난 2012년 대선을 눈앞에 두고도 (특히 종편 등에서 보았듯이) 여러 가지 정치적 현안이나 대선공약들에 대해 여야 정치인들이 나와서 설명하거나 또는 국민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정치인이 나서야 당연할 것 같은 자리에 왜 정치평론가나 교수들이 나서는 것일까?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얼굴 마담에 불과한 것인가?
예를 들어 한진중공업 사태를 보면, 여권의 정치인은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야권의 목소리만 크게 나온다. 즉 그 문제를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만 나누어 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입장만 있는 게 아닐 터인데 말이다. 쌍용자동차의 경우에도 수많은 노동자가 계속해서 자살하고 있음에도 정치인들은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들의 대선개입 사건, 진주의료원 사태, 밀양 송전탑 건설, 철도 민영화 문제 등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이 옳다는 일방적 주장만 있을 뿐 서로 타협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현안들에 대해 정치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또는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처럼 갈등이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균형감각을 살려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표심 잡겠다고 개그맨 섭외하는 정당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유명하거나, 돈이 많거나,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주로 정치인이 된다. 그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들이며, 수많은 경쟁에서 승리해 온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그들이 개인적으로는 자신들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역대 국회에서 매번 초선의원의 비율은 절반에 이를 정도로 높지만,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많은 경우 시행착오를 반복하다가 정치에 대해 조금 알만하면 4년의 임기가 끝나게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것은 정치를 잘 모르고 이름값만으로 정치권에 들어온 것에 대한 부작용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각 정당이 차세대 정치인들을 육성하는데 소홀하고 그러한 시스템이나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치 지망생들도 정당에서 활동하여 경력을 쌓으려 하기보다는 다른 방면에서 성공하고 유명해져서 정치권으로 들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아마추어 정치인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특히 거대 정당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정당이 죽어있다고 할 수 있다. 매번 새로운 국회가 시작될 때마다 정치개혁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도대체 무엇을 개혁하는지 궁금하다.
우리현실이 이렇다 보니 독일 같으면 의원이 되지 않는 또는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자주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과거에는(물론 현재에도 그런 경향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무조건 잘 알려진 사람을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정치인으로 데려오는 경향이 있었다. 심지어 개그맨을 데려온 적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들이 당선이 된 경우도 있었겠지만 계속해서 정치하는 경우를 본적은 없다. 그들은 단지 1회용 상품으로 소모되었을 뿐이며, 아마도 우리 정치를 우습게 만들거나 불신을 조장하는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정치인을 뽑으면서도 매번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체념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정치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또 그에 걸맞은 전문성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나 권위주의의 시대에는 민주주의의 쟁취라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진영을 대변하여 목소리 크고 몸싸움 잘하는 정치인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이후 절차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사회갈등의 문제는 그 성격이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고 대단히 복합적으로 변모하였다.
정치의 전문성 인지해야 사회문제가 풀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란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그 본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나누어 상대를 무조건 적대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도 여야 또는 보수와 진보의 정치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상대방에 대해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이라는 식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명확한 범죄행위가 아닌 한 하나의 정치적 결정은 어느 한 편에게 옳거나 맞더라도, 반대로 다른 편에게는 틀리거나 맞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한 올바른 정치적 결정이란 보다 많은 사람이 만족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적 싸움이란 그것에 대한 다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서로 갈등하는 사안에 대해 양쪽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적절한 합의점을 찾으려는 정치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정치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 고도의 전문성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잘하면 요즘 맞벌이 등으로 아이 낳기를 꺼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다 스트레스로 어린 학생들을 자살로 내모는 무한경쟁 교육의 문제점들을 바로 잡을 수도 있다. 비싼 사교육비나 대학등록금의 문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문제도, 빈부격차나 양극화 문제도 완화할 수 있고, 복지문제도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우리의 일상에서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에 비해 그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매우 부족한 것 같다.
또한 정치인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들에 대해 이를 조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과 더불어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 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이것은 어떤 개인이 똑똑하여 한 분야에서 성공한 것과는 다른 것이며, 다양한 정치적 경험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음 편에서는 정치인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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