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부가 지난달 13일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한 이후 의료민영화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습니다. 정부는 이 대책이 민영화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반대 진영에서는 민영화의 일환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양측이 의료민영화의 개념 정의에서부터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양측의 의료민영화 개념 정의가 어떻게 다른지 간략히 소개해 주시죠?
⇨ 보건복지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내용을 보면 정부는 "(공공의료보험인) 건강보험 환자를 받을지, 말지를 민간 의료기관 스스로 선택하도록 맡기는 것"을 의료민영화라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정부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의료민영화라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여기에서 당연지정제란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건강보험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반면에 반대 진영 주장을 종합해 보면 현행법상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을 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료민영화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여기에서 비영리법인이란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대신, 그 수익을 법인 외부로 유출할 수 없는 법인을 말합니다. 반면, 영리법인은 그 수익을 법인 외부로 유출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2. 정부가 최근 발표한 투자활성화대책에서는 의료법인의 수익을 외부로 유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나요?
⇨ 정부가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문건을 보면 의료법인에게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그 자법인으로부터 수익의 일부가 법인 외부로 유출되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즉 비영리법인의 경우에는 수익 대부분이 인건비나 운용비로 쓰여지고, 남는 수익이 있다면 비영리법인의 고유목적사업, 즉 교육이나 의료에만 재투자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는데요. 정부의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문건에는 그 수익 중 일부가 법인 외부의 투자자에게 유출되도록 허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정부가 '의료법인의 영리화를 허용'했다는 것, 즉 '영리병원을 허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법인 외부의 투자자라면 어떤 사람들을 지칭합니까?
⇨ 정부는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문건에서 법인 외부의 투자자로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털 등'을 지목했는데요.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털 등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맥쿼리인프라와 유사한 유형의 투자회사들이거나 혹은 이들로부터 자산운용을 위탁받은 회사들을 의미합니다.
4. 시민단체들은 자법인들에게 의료기기 매매업 등을 허용하게 되면 이를 통해 국민 혈세가 대규모로 유출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는데요. 이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전국에는 5만 개 이상의 병·의원이 있는데요. 이번에 정부의 규제완화 대상이 되는 의료법인은 모두 848개로 주로 대형 법인 혹은 중견 법인입니다. 정부의 구상대로라면 이들 848개 의료법인에게 자법인을 허용하면 이들이 수천 개의 자법인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천 개의 자법인 중 일부는 의료기기 매매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문제는 수천 개의 자법인이 의료법인을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인 소유주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이 법인 외부에 의료기기 공급업체를 세우고, 자법인에게 의료기기를 과도하게 비싸게 팔아 수익을 빼돌릴 경우 정부가 이를 통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5. 의료법인을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인 소유주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 비유하자면 사립학교의 재단 이사장과 그 법적 신분이 유사한 사람입니다.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은 재력가가 출연한 기본재산을 기반으로 하고, 건강보험공단의 지원금과 환자들의 본인분담금을 운영비로 하여 운영되는 법인입니다. 이 때 이 법인의 실질적인 운영권은 기본재산을 출연한 재력가에게 주어지는데요. 법적으로 이 법인은 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 소유물처럼 활용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유주'라고 부른 겁니다.
6.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이 법인 외부에 의료기기 공급업체를 세우고, 자법인에게 의료기기를 과도하게 비싸게 팔아 수익을 빼돌릴 경우 정부가 이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했는데요. 정부 통제가 어렵다고 보는 근거가 뭔가요?
⇨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의료기기의 전문성이 높아 가격조작을 적발해 내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사소한 기능 하나 바꾸어 놓고 가격을 2배 이상 받아가는 경우 정부가 그것이 부당하다며 제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둘째, 848개 의료법인이 수천 개의 자법인을 세울 경우, 정부가 이들 각각에 대해 제대로 통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셋째, 정부가 감독기관을 별도로 세운다 하더라도 대형병원과 중견병원의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들이 정치권 등을 움직여 정부의 감독기관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7. 정부는 의료법인 모법인과 자법인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서 가능한 비리를 차단하겠다고 하는데요. 효과가 있을까요?
⇨ 그와 같은 차단막은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할 겁니다.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이 대리인들을 내세우면 별다른 장애도 받지 않고 상상 이상의 많은 비리를 저지를 수 있고 많은 수익을 외부로 빼돌릴 수 있습니다.
8. 정부는 자법인 수익 중 80%는 고유목적 사업, 즉 의료사업에 재투자하게 하겠다고 했는데요. 이런 조치는 효과가 있을까요?
⇨ 그와 같은 차단막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겁니다. 최근 정부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는 의료민영화를 법 개정 없이 시행령, 시행규칙만 바꾸어서 실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당 의원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부가 그런 공언을 하고 있는데요. 정부의 이런 행태에 비춰 볼 때 나중에 80% 기준을 70%, 60% 아래로 낮출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9. 정부는 또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로 하여금 의료법인 자법인 수익을 빼돌릴 수 있는 길도 열어놓았다고 했는데요. 정부의 이와 같은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은 어떤 식으로 자법인 수익을 빼돌리게 됩니까?
⇨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이 자법인 수익을 빼돌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자법인이 주식회사로 세워질 경우 투자분에 대한 배당금을 받아 갈 겁니다. 둘째,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의 투자를 최대한 유치하여 양측의 이해(利害)를 어렵지 않게 동일화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쉬운 동일화 작업이 끝나면 맥쿼리인프라와 같이 자법인을 상대로 금리 6~20%의 고리대금업을 해서 수익을 빼돌릴 겁니다. 셋째, 이들과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의 쉬운 이해(利害) 동일화 작업이 끝나면, 이들은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과 합작해서 의료기기 공급업체를 세우고 가격조작을 통해 자법인의 수익을 빼돌릴 것입니다. 물론 이 때 양측은 대리인을 내세워 여론의 비난을 피해가면서 수익을 유출해 갈 겁니다.
10. 자법인이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의 고리대금업을 거부하면 어떻게 됩니까?
⇨ 앞에서도 말했듯이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이 의료법인의 실질적인 소유주들과 한통속이 되는 것은 미분적분에 능통한 학생이 사칙연산을 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따라서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이 자법인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입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맥쿼리인프라가 대주주로 있는 민자SOC 운영회사들은 별다른 저항도 없이 맥쿼리인프라의 고리대금업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11. 정부는 이와 같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을 통해 지방 중소병원의 경영건전성을 높인다고 하는데요. 효과가 있을까요?
⇨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은 지방 중소병원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죽이는 정책입니다. 전국 5만 여개의 병의원 중에서 대형 의료법인 848개를 위한 정책이 어떻게 지방 중소병원을 위한 정책입니까? 오히려 이번 정책으로 지방 중소병원들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대형 의료법인 848개에게 '대형화 이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대형 의료법인에게 대형화 이익을 준다면 중소 지방병원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대형마트 확산과 유사한 결과, 즉 지방 중소병원 몰락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12. 정부의 이번 정책으로 지방 중소병원이 몰락한다는 근거가 있나요?
⇨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을 보면 부대사업 범위를 대폭 확대했습니다. 특히 숙박업, 목욕장업, 여행업 등이 눈에 띕니다. 수도권의 대형 병원들이 패키지 상품이라면서 비수도권 주민들에게 부대사업 저가 물량공세를 할 경우, 비수도권의 지방 중소병원들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13. 대형병원의 실질적 소유자들이 맥쿼리 인프라 등의 투자회사들과 손을 잡을 경우 중소병원에게는 피해가 없을까요?
⇨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정책을 보면 의료법인 자회사에게 의료기관 임대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대형병원의 실질적 소유자들이 맥쿼리 인프라 등의 투자회사들과 손을 잡고 이 제도를 악용하여 덩치 키우기 경쟁에 나설 경우, 중소병원들이 속수무책으로 그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14. 대형병원들이 덩치 키우기 경쟁을 한다고 중소병원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근거가 있나요?
⇨ 국민들의 부담하는 의료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시장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때 대형병원들이 덩치를 키우려면 중소병원들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15. 중소병원의 몰락은 전체 의료체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됩니까?
⇨ 정부가 대형병원들의 무한경쟁을 허용하게 되면, 대형병원들은 과거 서독의 대기업들이 통일 후 동독기업들을 몰살시켰던 것처럼 중소병원 사냥에 나설 것입니다. 대기업들에게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것은 곧 시장점유율 확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대형병원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중소병원들을 먹어치워야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의료사각지대가 많이 양산된다는 것입니다. 대형병원 입장에서는 소외지역에 병원을 잔존시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과거 서독의 대기업들이 통일 후 동독기업들은 인수한 후 폐허로 버려두었던 것처럼, 대형병원들도 소외지역 병원들을 인수한 후 폐허로 버려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장점유율이지 공공성이 아닙니다. 결국 병원이 사라진 소외지역에는 정부가 혈세를 투입하여 새로운 공공병원을 세워야 하고, 별도로 엄청난 운영비를 지불해야 합니다.
16. 중소병원이 몰락한 이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 의료시장이 한정된 상태에서 대형병원들의 독과점이 형성되면 그들의 수익률이 정체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형마트들이 포화상태에서 SSM이라는 출구를 찾았던 것처럼 대형병원들도 다른 출구를 찾게 될 것인데요. 대형병원의 경우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맥쿼리인프라와 같은 투자회사들과 합작하여 자법인 수익 유출에 더 많이 몰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 의료시장이 한정된 상태에서의 지속적인 수익 유출은 결국 건강보험으로부터의 혈세 유출을 수반하여, 종국에는 건강보험 붕괴라는 비극적인 사태를 유발하게 될 것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