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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돈 못 버는 독일, 진정한 '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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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으로 돈 못 버는 독일, 진정한 '창조경제'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④

집 살 필요 없는 이유…5년간 월세 5유로 올라

쾰른과 베를린에서 집을 구하고 임대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바로 계약서에 임대 기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기간 만료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다. 다시 말해 세입자는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매월 월세만 제대로 내면 내 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처럼 2년에 한 번씩 불필요하거나 원치 않는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다만 그 집에서 나가고 싶으면, 일반적으로 이사 나가기 3개월 전에 통보만 하면 됐다.

조금 신기해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더니, 세입자의 권리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서에 임대 기간을 쓰지 못하도록 2001년에 민법을 개정한 것이었다. 계약서에 임대 기간을 쓸 경우에는 반드시 그 이유(예를 들어, 세입자의 요구에 의해)를 명시하도록 하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임대차 계약은 자동으로 무기한이 되도록 규정되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이 굳이 무리해서 집을 사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임대인은 세입자를 함부로 내보내지 못하는 대신, 경제적 변동이나 주변 시세에 따라 월세를 인상할 수 있다. 하지만 월세 인상도 법으로 명시된 규정들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가장 흔한 월세 인상의 근거는 집을 보수하여 비용이 들어갔을 때 이를 다음 연도 월세에 반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월세 인상의 근거가 되었던 관리 비용의 인상은 2001년의 법 개정으로 이제 더 이상 인상 요인이 될 수 없게 되었다.

민법 558조에 따르면, 임대인은 월세를 3년간 2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였고, 동시에 도심과 같이 집이 부족한 인구 과밀 지역의 경우에는 3년간 15% 이상 인상하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최근 18대 총선 후 대연정 협상에서도 이러한 월세 인상 관련 사항이 보다 강화되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집주인이 새로이 임대할 경우, 월세를 주변 시세보다 10%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하였다. 집의 보수 비용을 임대료에 부담시킬 경우에도 그 인상분이 월세의 10%가 넘지 않도록 하고, 또 그 보수 비용을 다 상쇄했으면 월세는 다시 이전으로 되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동산 중개 수수료는 주로 집주인이 부담하도록 하였다. 그 밖에도 공공 임대 주택 예산을 2019년까지 연간 5억 1800만 유로(약 7700억 원)씩 투자하기로 결정했으며, 집세 보조금도 인상하기로 합의하였다.

실제로 쾰른에 살 때 월세가 2003년에 386유로(약 56만 원), 2년 후에 389유로(약 56만 원), 다시 391유로(약 56만 2000원)로 인상되었는데, 5년 동안 5유로가 오른 셈이었다. 이는 무엇보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물가 인상률이 연간 1~2%에 불과하였고, 그 인상 요인도 유가 인상이 그 주요한 이유였다. 어떤 해에는 0%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세입자 보호를 위한 독일의 이러한 법 개정은 대체로 옳고 바람직하며, 우리도 그러한 제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월세 인상의 억제와 관련해서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 우리의 경우에는 아직 물가 상승률이 높은 상황인데, 다른 부분은 그대로 방치한 채 월세만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든다면, 상대적으로 많은 빚을 떠안고 집을 산 다수의 사람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임대인의 재산 상태를 감안하여 임대 수입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형편이 어려운 임차인에게는 '집세 보조금' 지급 등 복지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갤러리. ⓒ조성복

부동산, 투기 대상 아니다

2006년 기준 독일에는 약 3600만 채의 집이 있는데, 그중에 자가 소유 주택은 약 1500만 채로 약 42%를 차지하였으며, 임대 주택은 2100만 채로 약 5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공공 임대 주택(사회주택)은 1987년까지만 해도 약 390만 채(전체 주택의 약 11%, 임대주택의 18.5%)에 이르렀으나, 매년 조금씩 감소하여 2001년 말에는 약 180만 채(전체 주택의 5%, 임대 주택의 8.5%)로 줄어들었다. 2006년 기준 베를린의 공공 임대 주택 비율은 과거 서베를린 지역이 9%, 동베를린 지역은 24%를 기록하였다.

독일에서는 부동산을 투기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물가가 안정되어 있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산별 노조의 본부가 여러 도시에 나누어 위치하듯이 연방의 주요 기관, 대학, 기업, 사회 단체들이 나라 전체에 골고루 분산되어 자리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한곳으로 몰리지 않는다. 특히 대학에 서열이 존재하지 않고, 고등학교도 평준화되어 있어서 우리처럼 자녀 교육을 위해 이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집값이나 월세가 특별히 오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 통일 이후 수도를 본(Bonn)에서 베를린으로 다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의 집값은 별로 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전체가 고르게 발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낮은 월세와 저렴한 물가는 세계의 젊은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젊은 예술가들이 과거 동베를린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문화의 도시로서 베를린의 면모가 그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전시회, 연주회 등이 넘쳐나고 더불어 해마다 찾는 여행객의 수가 늘어나고 있어서 관광의 도시로서의 명성도 올라가고 있다.

어쩌면 "창조 경제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해외의 유능한 젊은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비싼 월세와 높은 물가 때문에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에게조차도 어떤 '창조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아르바이트의 고통만 안기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인가 정책의 방향이, 자원의 배분이 크게 잘못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우리처럼 정부가 수시로 내놓는 단기적 처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독일과 같이 인구와 자원을 골고루 분산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 경찰, 조세 징수 등의 분야에 대한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각 자치 단체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 독일의 안정적인 주거 문화

① 무작정 오른 유학길, 독일에 가보니 '0층'이?
가족 수가 많아지면 임대 주택도 커지는 나라
전세제도 없는 독일에서 월세 체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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