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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깊은 맛...만추(晩秋)의 도솔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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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깊은 맛...만추(晩秋)의 도솔계곡"

[알림] 두발로학교, 선운사→도솔계곡→선운산 트레킹

두발로학교(교장 전형일, 전 언론인)의 11월 걷기는 <선운산 도솔계곡 트레킹>입니다. 제21강으로, 11월 25일요일, 전북 고창 선운사를 지나 도솔계곡을 거닐며 선운산 천마봉까지 올랐다 내려옵니다. 단풍의 화려함은 지나가고 있지만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호젓하게 음미할 수 있는 산행 코스가 될 것입니다. <날짜가 11월 25일로 변경됐습니다.>

선운산(禪雲山) 천마봉은 높이가 336m로 산세는 낮지만 아기자기한 기암괴석들이 화려한 봉우리를 이루어 가히 <호남의 내금강>이라 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납니다.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운산은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래의 부처'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의 뜻이니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의미입니다.

▲ 단풍이 절정일 때의 선운산 풍광 Ⓒ김석철/선운사

선운산은 천년 고찰 선운사를 품고 있는데, 조계종 24교구의 본사입니다. 선운사 풍광은 봄 동백,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데, 꾼들은 봄철보다 가을철 경관을 한 수 높게 쳐줍니다.

[선운사]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에 자리잡고 있다. 호남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었다. 조선 후기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707년(숙종 33)에 쓰여진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左邊窟, 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음)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하였으니 이것이 이 절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하는 사실에 따라 형성되었겠지만, 당시에 이 지역이 신라땅에 속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은 위덕왕 24년이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난 지 2년 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海口)에 있는 검단리(檢旦里)는 관련 설화가 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쳤기에 해안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하였다는 것이다.
두 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 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물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 선운사 가는 길의 단풍 고목나무길 Ⓒ김석철/선운사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孝正)이 중수하였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 년 동안 극유(克乳)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극유는 1472년에 이 절에 이르러 뜰에 구층석탑만이 외로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중창을 발원하였다. 그는 이듬해 2월 제자 종념(終念)과 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아버지 덕원군(德源君)이 쓴 원문(願文)을 얻어 중창을 시작하였다. 그 해 여름에 나주 보을정도(寶乙丁島)의 재목 1,000여 그루를 3척의 배에 싣고 왔으며, 147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 가마를 구웠다.
그리하여 1474년에는 2층의 장륙전(丈六殿)과 관음전(觀音殿)을 짓고, 1475년 봄에는 선왕선가(先王仙駕)를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광명전(千佛大光明殿)을 조성하였고, 1481년에는 모든 건물이 단청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장전(地藏殿)·동상실(東上室)·금당(金堂)·능인전(能仁殿) 등을 짓고, 또한 영산회(靈山會) 등 53불회탱(五十三佛會幀)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10여 년에 걸친 극유의 중창불사로 인하여 선암사는 옛 모습을 되찾았는데, 건물이 189채나 되는 웅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 어실(御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부터 1609년에 이르는 2년 동안 승려 수십 명이 선방(禪房) 한두 개 소를 먼저 지은 뒤 몇 년 동안에 법당 3칸을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봄에 태수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에게 중창을 부탁하자 일관은 원준(元俊)과 더불어 수많은 집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그리고 어실을 빙자하여 고창 문수리에서 재목을 얻어 먼저 보전(寶殿) 5칸을 세운 다음, 상·하 누각과 동·서 양실(兩室)을 건립하였다. 이때의 중창은 6년 만인 1619년에 끝을 맺었다.
그 뒤 1707년(숙종 33)에 이르기까지 일관·원준 등의 선사들이 서로 계승하여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계속하였다. 1698년에 김우항(金宇杭)이 쓴 <선운사중신기 禪雲寺重新記>에는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 있던 대중 260여 명을 기록해 두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의 사찰규모와 조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1707년에는 현익(玄益)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를 지었다.
1839년(헌종 5) 비로 인해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졌다. 이에 찬성(贊誠)·의홍(義弘)·성찬(誠贊) 등이 법당과 향운전(香雲殿)을 수리하고 정문(正門)의 기와를 갈았는데, 1840년 가을에 중수를 마쳤다. 이 때의 중수내역을 기정진(奇正鎭)이 <무장현선운사대법당사적기 茂長縣禪雲寺大法堂事蹟記>에 기록하여 남겼다.
문화재로는 금동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 선운사 대웅전, 참당암 대웅전, 도솔암 마애불 등이 보물이고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 등이 천연기념물이며 석씨원류 경판, 영산전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약사여래불상, 만세루, 백파율사비, 참당암 동종, 선운사 사적기 등이 지방문화재이다. 절 입구 탑비 중에 백파율사비는 추사 김정희가 짓고 쓴 추사 글씨의 대표작이다.


선운사 주차장에서 일주문을 지나면 '선운사의 명품' 단풍 고목나무길의 오묘한 풍경 속으로 빠져듭니다. 곧 선운사 담벼락을 따라 도솔계곡이 이어지는데, 단풍 색깔과 물 빛깔의 조화가 도솔계곡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합니다.

▲ 도솔계곡의 아침 Ⓒ김석철/선운사

선운사를 지나면 왼쪽에 널찍한 차밭이 나오고 이어 우측으로 오르면 여덟 개의 가지로 소담하게 벌어진 600년 고송인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354호))과 진흥왕이 말년에 왕위를 버리고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조금만 오르면 도솔암. 우측으로 바위계단을 오르면 도솔천 내원궁 즉 상도솔이 있고, 좌측을 가보면 깎아지른 듯한 암벽에 도솔암 미륵마애불이 나옵니다. 40m가 넘는 암벽에 15m 크기의 이 미륵마애불은 석가모니 이후에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입니다. 불상의 배꼽에 선운사를 창건했다는 검단선사가 신비스런 비결 하나를 숨겨놓았는데 이것이 출현하는 날 한양이 망한다는 전설이 내려왔고, 이 비결은 1893년 가을 동학접주 손화중에 의해 꺼내졌으며 다음해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를 휩쓸었다고 전하나, 이 이야기는 동학군이 지어낸 것이란 설도 있습니다.

여기서 더 오르면 용문굴. MBC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 엄마가 죽은 곳이랍니다. 이어 낙조대. '드라마 <대장금>의 최상궁이 자살했던 바위'라는 팻말이 보입니다. 바로 이어서 천마봉으로, 선운산 최고의 절경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도솔계곡의 비경이 발아래 전개됩니다.

▲ 도솔암의 미륵마애불 Ⓒ눈꽃소리

여기서 하산길은 도솔암으로 향합니다. 이어 도솔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선운사에 닿습니다. 선운사→도솔계곡→진흥굴/장사송→도솔암/미륵마애불→용문굴→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 길 약 9km를 간식시간과 충분한 휴식시간 포함, 4시간 30분 잡습니다. 체력과 취향에 맞춰 고즈넉한 선운사와 도솔계곡을 거니셔도 좋습니다.(자료 출처 : 고창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선운사, 선운산도립공원, <이번 주에 오르고 싶은 산> 등)

두발로학교 제21강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25일(일요일)>
06:30 서울 출발 (6시 20분까지 서울 강남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10:00 선운사 주차장 도착, 걷기 시작
11:20 선운사, 도솔계곡 거쳐 도솔암 도착
12:20 낙조대 도착
12:40 천마봉 도착
(간식 시간, 각자 준비)
13:20 도솔암 도착
14:30 선암사 거쳐 선암사 주차장 도착. 늦은 점심 겸 뒤풀이
(고창읍 <미풍정>에서 복분자주를 곁들인 남도한정식)
15:30 서울 향발

▲ 선운산 산행지도(X표시는 갈림길 주의) Ⓒ두발로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등산복/배낭/등산화), 스틱, 무릎보호대, 장갑, 식수, 윈드재킷, 우의, 따뜻한 여벌옷, 간식(초콜릿, 과일류 등),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 개인용 깔개,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점심식사가 늦으므로 각자 충분한 간식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두발로학교 제21강 참가비는 11만원입니다(왕복 교통비, 2회 식사와 뒤풀이, 진행비, 여행보험료, 운영비 등 포함). 버스 좌석은 참가 접수순으로 지정해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 으로 해주십시오.

☞참가신청 바로가기

▲ 선운사의 가을 Ⓒ전제우/선운사

전형일 교장선생님은 언론인 출신으로 오랜 동안 일간지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 외국기업체에 재직 중이며, 원광대학교 동양철학박사 과정 중입니다. 그는 틈틈이 여기저기 <걷기의 즐거움>에 몰입하며 <걷기의 철학>에도 빠집니다.

교장선생님은 <두발로학교를 열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걷기>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이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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