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강의 요점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수업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스쿨버스에서 조길우 박사의 진도 역사 문화 강의
* 진도 특미 간재미회를 곁들인 백반정식으로 점심식사
* 진도향토문화회관에서 토요민속공연 관람
* 남진미술관, 소전미술관 등 관람
* 세방낙조를 바라보는 황홀경 체험
* 졸깃졸깃하면서 푸짐한 울돌목 생선회로 저녁식사 겸 뒤풀이
* 사천리 운림산방 부근 운림예술촌에서 진도북춤 공연
* 한옥에서 하룻밤 자고 숙소 앞 식당에서 된장국으로 아침식사
* 운림산방, 소치기념관 등 관람
* 송정주조에서 진도홍주 빚기 관람
* 접도 동백나무숲 걷기
* 무한리필 통나무돌게장집에서 점심식사
진도로 가기 위한 스쿨버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10월 20일(토) 아침 6시 30분 서울에서 출발합니다. 6시 20분까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음식문화학교> 버스에 탑승 바랍니다(김밥과 식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운동화 등 가벼운 트레킹 차림에, 1박에 필요한 세면도구와 세수수건 등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진도(珍島)] 전라남도 서남단 해남반도 남서쪽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큰 섬으로, 동쪽은 명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해남반도로 이어지고, 서쪽은 황해, 남쪽은 제주해협으로 틔어 있으며, 북쪽은 화원반도 및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마주한다. 진도군은 진도와 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45개의 유인도, 185개의 무인도 등 23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등 1읍 6면으로 행정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1984년 한국 최초의 사장교인 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유물·유적, 천연기념물, 기·예능보유자가 많다.
첫째 날 12시 반경, 버스는 먼 길을 달려 울돌목 건너 진도에 닿습니다. 2시에 열리는 토요민속공연에 늦지 않기 위해 서둘러 점심을 먹습니다. 진도는 특히 간재미회, 무침이 유명합니다. 저녁에 맛있는 회를 즐기기 위해 살짝 간재미회로 진도 음식의 간만 봅니다.
진도에는 여느 지방에는 제대로 된 것 한 가지도 없을 연희 관련 국가 또는 지방지정 무형문화재가 여섯 가지나 있습니다. 토요민속공연은 진도군에서 주관하는 무료공연이지만 '진도소리'의 에센스만을 들려주는 수준 높은 옴니버스 공연입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8호-강강술래] 8월 한가위 날 휘영청 밝은 달밤에 꽃다운 처녀들과 아낙네들이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 진도 고유의 민속놀이.
[무형문화재 51호-남도들노래] 모내기, 논매기 등 논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요로서 가락이 다양하고 뒷소리를 길게 빼면서 시종일관 노래를 부름.
[무형문화재 72호-진도씻김굿] 샤머니즘과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킨 굿의 백미.
[무형문화재 81호-진도다시래기] 상가에서 출상 전날 밤에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물 반주에 맞추어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가무극적 민속놀이.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18호-진도북놀이] 양손에 북채를 쥐고 쳐 잔가락을 많이 활용하는 진도 고유의 북놀이. 멈춤과 이어짐이 민첩하고 가락이 다양하다.
[무형문화재 19호-진도만가] 사람이 죽었을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상여소리인데 진도에서는 특이하게 여자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사물악기로 반주함.
▲ 굿의 백미 진도씻김굿 Ⓒ진도군 |
흔히 진도가 섬이기 때문에 어로가 주업인 사회로 생각하기 쉽지만, 진도는 농업이 주업인 곳입니다. 진도에서 나는 쌀만으로 진도 사람들이 3년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진도 문화예술의 소재가 바다에서 산, 들녘까지 포괄하여 다양하고 수준 높은 것은 바로 진도의 그 인문지리적 특성 때문입니다.
오후 3시 30분. 공연 관람을 끝내고 소전미술관, 남진미술관을 둘러봅니다. 소리와 함께 그림은 진도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부문입니다. 어떻게 작은 섬에서 그렇게 많은 한국의 대표적 서예가, 화가들이 배출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소전미술관(素筌美術館)] 20세기의 서예 거장으로 평가받는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선생의 작품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곳이다. 1990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03년 소전 탄생 100년을 맞아 확충해 다시 개관했다. 소전은 추사(秋史) 김정호의 뒤를 잇는 서예가로 평가받을 정도로 비중이 컸던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김정호 연구가였던 후지스카 지카시가 추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자 일본까지 쫓아가 그림을 되찾아온 일화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서법, 일본에서는 서도로 부르던 것에 서예라고 처음 이름을 붙인 이도 소전이다. 추사체 이후 처음으로 자신만의 서체인 소전체를 인정받기도 했다. 김기승, 정환섭, 김상필, 김사달, 하남호, 서희환, 박행보, 양진니 등 한국 서예계를 대표하는 이들이 소전의 제자들이다. 소전미술관은 소전의 서예 작품과 동양화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은 모두 4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1전시실에는 소전의 청년 시절 작품이, 2전시실에는 문인화가, 3전시실에는 소전의 장년 시설 작품이, 4전시실에는 양진니, 서희환, 박행보 등 제자들의 작품과 동양화가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선생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남진미술관(南辰美術館)] 1987년에 설립된 이 미술관은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河南鎬, 1926~2007) 선생이 세운 것으로, 1992년 문화부에 등록되었다. 총면적 1097㎡, 지상 3층의 건물을 전시관으로 사용한다. 미술관 명칭은 설립자 하남호 선생의 남(南)자와 부인 곽순진 여사의 진(辰)을 합하여 지은 것이다. 미술관은 한국화, 서양화, 서예, 조각, 도자기 등 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5개의 전시실에 각 분야에 걸쳐 조선시대 이후 작고한 작가, 원로작가, 중견작가와 현대작가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두루 전시하고 있다. 고려청자와조선백자는 별도의 주제로 진열되어 있다.
오후 5시, 땅거미가 슬슬 내리기 시작하니 '세방낙조'를 구경하러 갈 시간입니다. 세방낙조는 진도군 지산면 가치리와 세방리 사이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낙조 풍경입니다. 해가 멀리 수평선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면 진도 서편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드는데, 앞으로 띄엄띄엄 놓여 있는 장도, 양덕도, 주지도, 가사도 섬들 사이로 넘어가는 일몰이 장관입니다. 꾼들 사이에서는 맥주에 진도홍주를 반 잔 정도 넣으면 맥주잔의 딱 중간에서 홍주의 붉은 색이 은은하게 퍼져 이를 '세방낙조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 황홀한 세방낙조 Ⓒ진도군 |
6시, 세방낙조 천상의 풍경에 정신을 잃지만, 몸은 개똥이 뒹구는 세상을 재촉합니다. 새벽부터의 기나긴 여정에 지친 몸에게도 기쁨을 주기 위해 식당으로 향합니다. 울돌목 거센 물결을 오르내려 힘살이 쫄깃쫄깃한 생선회가 기다립니다. 회 마니아들은 물살 빠른 완도나 진도산 생선을 가장 좋아합니다.
저녁 8시. 배도 채우고 술도 채우고 기분 좋게 운림산방 마을로 향합니다. 진도의 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습니다. 숙소 옆 빗기네전수관에서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이희춘 단장이 여는 공연을 관람합니다. 진도씻김굿의 길닦음, 진도북춤 등 진도의 빼어난 민속연희가 공연됩니다.
저녁 9시 30분. 운림예술촌 한옥의 숙소로 갑니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의 하룻밤이지만, 이곳에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던 남종화 4대가의 숨결, 깊은 산속 솔바람 소리, 넓은 들녘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잠을 청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날 아침 8시, 아침식사를 하고 9시쯤 운림산방을 관람하러 갑니다. 운림산방은 소치 허유, 미산 허형, 남농 허건, 임전 허문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끌어온 곳입니다. 소치의 영향을 받아 남종문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현존작가 130여 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소치기념관도 같이 있습니다.
[한국의 남종화(南宗畵)] 명·청대 중국 남화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 남종문인화론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조선 후기의 숙종·영조 연간이다. 종래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에서 보면 이러한 화관(畵觀)은 보다 일찍 전하여졌을 법하지만, 조선 중기의 임진·병자의 전란으로 인하여 문화활동이 침체되었고, 대명숭상(對明崇尙)의 잔존으로 인하여 청나라로부터의 새로운 화관의 수용이 더욱 늦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종화는 북경을 다녀온 사행원(使行員)과 화원들에 의하여 파급되었지만, 명·청대의 화보 등도 남종화의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다. 남종화는 18세기 초엽부터 본격적으로 침투하여 선비화가들은 물론 화원들도 보편적으로 이를 따랐다. 그러나 남종화풍의 진정한 유행과 토착화는 김정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추사의 작품은 중국 문인화의 세계와 상접한 경지를 보여준다. 추사의 영향을 받아 허유(許維)·조희룡(趙熙龍)·전기(田琦) 등 여러 화가가 배출되고, 묵란(墨蘭)의 대가 이하응(李昰應)과 민영익(閔泳翊), 괴석(怪石)의 작가 정학교(丁鶴喬) 등이 여기에 가담하여 조선 후기의 심원한 문인화풍이 진작되었다.
[운림산방(雲林山房)] 조선 후기 화가 허유(許維, 1807∼92)가 만년에 기거하던 화실의 당호. 운림각(雲林閣)이라고도 하며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옆에 위치한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은 운림각, 거실은 묵의헌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연못을 만들고 다양한 화훼와 임목을 심었다. 하지만 허련이 사망하고 아들 허형이 운림산방을 떠나면서 매각되어 운림산방의 연못과 가옥은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렸다. 이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운림산방을 다시 사들였고, 1982년 허형의 아들 허건이 운림산방의 예전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철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지었다. 화실 안에는 허씨 집안 3대의 복제된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기념관에도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허련의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허련의 3남 미산 허형과 손자 남농 허건이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고, 한집안 사람인 의재 허백련이 이곳에서 그림을 익혀 한국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
▲남종화의 성지 운림산방 Ⓒ진도군 |
10시 30분, 운림산방 관람을 마치고 진도의 명주 홍주 양조장을 찾아 갑니다. 이제는 옛날 방식으로 술을 내리는 곳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표준화된 기법으로 홍주를 빚고 있는 송정주조를 가볼 생각입니다.
[진도홍주(珍島紅酒)] 진도홍주는 쌀과 지초로 만드는데, 지초 뿌리에서 우러나온 색소 때문에 붉은 빛깔을 띠어 홍주라고 불린다. 홍주가 진도에 정착하여 전승되어 온 배경에 대하여는 항몽 삼별초군의 입도, 양반 유배인의 전수, 함경·평안도 유민의 입도, 남방문물의 유입, 의료처방에 따른 독자발전 등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어느 것도 확인되지는 않는다. 다만 진도홍주에 얽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야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세조 때 한씨 부인이 허종(許綜)에게 홍주를 마시게 해 낙마하는 바람에 윤비 폐출을 위한 어전회의에 참석치 못해서 연산군의 갑자사화 때 목숨을 구했다는 설과, 광해군의 형 임해군이 진도로 유배될 때 부인 허씨(허명의 딸)가 친정조카인 허대에게 고숙을 보살피도록 부탁해 허대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고조리(소주를 내리는 기구)를 가지고 진도에 와 정착한 뒤 홍주비법을 전수했다는 이야기다. 진도홍주는 1994년 12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기능보유자는 허화자(78)씨이다.
오후 1시, 점심식사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닿는 대로 용장산성, 진돗개 훈련장 등 진도의 명소들을 더 돌아볼 생각입니다만, 둘째 날의 사정을 보아 진행할 생각입니다. '보배(珍)의 섬(島)'에 있는 보배들을 모두 돌아보기에는 너무 짧은 하루이지만, 아쉬움을 좀 남겨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오후 2시 30분. 1박2일 제25강의 일정을 모두 마친 음식문화학교는 진도을 떠나 서울로 향합니다.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는다면 8시 전후에는 서울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 10월 참가비는 23만원입니다(교통비, 숙박료, 공연관람료, 입장료, 4회 식사와 뒤풀이, 여행자보험료,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좌석은 접수순으로 지정해 드립니다. 참가신청과 문의는 사이트 www.huschool.com / 전화 050-5609-5609 /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
☞참가신청 바로가기
▲ 보물섬 진도 Ⓒ진도군 |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유명한 음식칼럼니스트로, 음식 칼럼집 <맛에 끌리고, 사람에 취하다>와 술 칼럼집 <태초에 술이 있었네>를 펴냈으며, 네이버 블로그 '김학민이 꿈꾸는 세상'에 음식, 술, 건강, 문화, 시사 관련 글을 활발하게 올리고 있습니다.
김학민 교장선생님은 <음식문화학교를 열며> 이렇게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
최초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 그대로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불의 발견을 계기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슬기를 발휘하여 서서히, 또한 독특하게 식생활 체계를 세웠으니, 이것이 음식문화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요리하는 동물'로 진화되어, 각기 살고 있는 곳의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제각각의 음식문화권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음식문화의 자연스런 분화와 발전이 있었으므로,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규범을 흐트러트리지 않는 한, 한 인간이 무엇을 어떻게 먹든 그것은 그의 자유입니다. 또 특정한 먹을거리를 특별하게 먹게 된 것도 그 공동체 고유의 살아온 환경과 문화, 역사의 소산이므로 자기만의 잣대를 들이밀어 왈가왈부할 일도 아닙니다.
흔히 "모두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원초적 과제들을 의·식·주로 나누어 그럴 듯하게 분화하였지만, 그건 어느 정도 문명화된 시기의 이야기이고, 사실은 식(食)의 문제, 곧 먹을거리 문제가 인간 실존의 근원입니다. 먹을거리 문제는 질서와 규범 속에서 평화롭게 조절돼 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일 매일의 사회면 기사의 행간을 뜯어보면 그 이면에는 모두 먹는 문제가 개재되어 있고, 국가 사이의 전쟁, 민족 사이의 분쟁도 땅과 자원의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하니, 그 끝을 파보면 결국 먹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맛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먹을거리 문제의 극단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그러나 먹을거리의 질과 독점을 둘러싸고는 계속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 거대 식품산업이나 외식사업 등에서 양산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품들이 우리 식탁에 도전해 오고 있고, 세계 각국의 먹을거리들도 그 나라의 문화요소들과 함께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 음식문화학교는 우리 전통 먹을거리를 낳게 한 사회문화적 배경, 그리고 특정 먹을거리와 그를 갈무리하는 맛깔스런 음식점, 그리고 그 주인과 공동체에 얽힌 이야기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곧 '먹을거리 이야기'를 넘어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 여정이 음식문화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문화유산 답사의 개척자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습니다. 유 교수의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음식도 아는 만큼 맛있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음식문화학교는 요리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음식문화학교는 문화 속의 음식, 음식 속의 문화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음식문화학교는 음식의 현장을 찾아가 문화를 즐기거나, 문화의 현장을 찾아가 음식을 즐기는 기행의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곧 '금강산과 식후경의 조화'가 저희 음식문화학교의 교훈입니다.
앞으로 김치, 젓갈, 된장, 두부, 등심, 갈비, 불고기, 육회, 토종닭, 홍어, 비빔밥, 산나물, 막걸리 등 숱한 우리 전통 먹을거리의 명품, 명소를 찾는 기행이 쭉 이어집니다. 전문가 또는 교장의 음식문화 강의 후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되며, 재래시장 장보기, 산나물 뜯기, 쭈꾸미 잡기, 콩 털기 등의 체험행사도 함께 하며 유명 음식축제 여행으로 변화를 꾀하기도 하겠습니다.
음식문화학교는 월 1회, 셋째 토요일(1박2일은 셋째 토, 일요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명절, 연휴, 장날, 음식축제 등)에 따라 날짜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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