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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만난 임대아파트 주민들, 다시 찾아가보니…

[도시 속 외딴섬, 임대아파트·④] 소유자 중심 주택 정책 벗어나야

- 도시 속 외딴섬, 임대아파트
도박집에 가출한 아내…오갈데 없는 부녀에게 "방 빼"
임대아파트의 겨울, 가난은 이웃도 원수로 만든다
철도에 임대아파트 건설? 하층민 수용소냐?

어정쩡한 '임대아파트' 정책의 기원

90년대 초반부터 짓기 시작한 임대아파트는 80년대 도시빈민의 주거권 운동의 결과였다. 정부가 철거에서부터 아파트의 건설 및 분양까지 책임지던 공영재개발 방식이 1982년 재개발조합과 건설회사가 주도하는 '합동재개발' 방식으로 바뀌면서, 도시에서 철거문제는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되었다.

사업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 민간은 재개발 사업의 일차적인 목표로 주택의 개량을 통한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집이 없는 세입자들은 지주들과 건설회사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장애물로 인식되었고, 철거는 그야말로 사업성을 높이는 '합리화 과정'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불과 3년이 지난 1985년, 과거 10년간 진행된 재개발 사업의 절반에 이르는 면적이 재개발 지역으로 파헤쳐졌다. 그리고 양화교 점거농성으로 촉발된 목동 재개발 투쟁, 민정당사 농성으로 이어진 사당동 판자촌 투쟁, 대표적인 독립다큐 '상계동올림픽'을 낳았던 상계동 세입자 투쟁이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났다.

그리고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등장한 6공화국은 100만호 주택건립을 약속했고, 1989년 서울시는 세입자들에게 19만호의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임대아파트의 대안을 모색하면서 굳이 20년도 훌쩍 지난 시기의 주거권 투쟁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 임대아파트정책의 한계 때문이다. 세입자를 비롯한 주거약자들의 삶을 건 투쟁의 결과로 도입된 우리나라 임대아파트 정책은 이중적인 특징을 지닌다. 하나는 당초 정부의 주택정책 특히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 등 주거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즉 주거권의 보장이랄지, 세입자 등 토지나 주택의 미소유자에 대한 권리 보장은 재개발 정책에서 그리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현재까지도 세입자들의 권리 보장은 '정상적인 재개발사업'을 위한 하나의 보조적인 조치일 뿐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재개발 사업을 하는데 적정한 사업성을 얻기 위하여 세입자 등과의 갈등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려하는 것이 세입자 대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사업성이 떨어지면 임대주택 비율을 줄이면서 사업성을 맞추려고 하고, 이에 대해 행정은 어떤 개입도 하지 못하거나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공동주택 관리정책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고 사실상 철거세입자나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를 도시에서 '수용'하는 역할만을 할 뿐인 임대아파트 정책의 혁신을 위해서는 임대아파트 정책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 1989년 3월, 노태우 대통령이 도봉구 번동 영구임대아파트 기공식에 참석해 시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제화된 임대아파트정책, '수용자'가 된 주민들

세입자들의 권리가 주변화 될 뿐인 '소유자 중심'의 주택정책에서, 철거세입자나 주거약자들의 빈자리는 여전히 취약하다. 결국 이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임대아파트 정책을 가능하게 만든 '운동의 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동안 관리의 대상이자 도시의 보이지 않는 장막에 가려진 '수용자'였던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운동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프레시안>의 연재에서도 밝혔듯이,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지난 2009년에 이어 2012년에도 강서 지역의 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만났다. 특히 이번 조사는 2009년 당시 설문에 응해주셨던 주민들을 다시 만나서 지난 3년간의 변화를 추적하는 목적도 있었다. 놀랍게도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은 임대아파트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흘러버린 듯하다.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현관문 밖은 높기만 하고 어떤 정책도 단지 안을 파고들어 이들을 덥히지 못했다. 그리고 저잣거리의 기준으로 그리 높지 않은 관리비에도 휘청거리는 삶의 조건을 움켜쥐고 살아가는 이들은 낯선 방문자의 질문에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느라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른다. 이 모습이 지난 20년 동안 박제화 된 임대아파트 정책의 현주소다.

중요한 것은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이 껴안고 있는 문제는 단지 '주거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다. 즉, 불안한 주거 때문에 건강이나 실업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이나 실업 등의 문제로 인하여 주거가 더욱 안정적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물리적 환경으로 주택이 아니라, 삶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주거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아파트라는 집단거주의 특징을 살릴 수 있는 노동과 생활의 내용들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주택관리기금+주민주택조합'을 제안한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지난 2009년 '서울시 임대주택관리의 현황 및 대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주민이 주도하는 임대아파트관리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여기서 지적한 것은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의 문제는 단순히 안정적인 주거의 제공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며 일자리와 복지서비스 등의 복합적인 소프트웨어 정책과 함께 노후화된 주거환경의 개선이라는 하드웨어 개선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제안할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좀 더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재원 부분이다. 서울시는 2011년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장기수선충당금의 현실화를 통해서 공동주택의 기대수명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서 거의 사문화된 장기수선계획의 수립과 충당금 적립 여부를 관리·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한 법 개정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수선충당금을 단지별 기금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2014년부터는 서울시가 일정비율(20%)에 대해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기금적립을 유도할 것이라 했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하더라도 이런 서울시의 대책은 여전히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재정의 안정성 부분이다. 현행 '주택법'은 장기수선충당금을 관리비의 일부로서 징수하도록 하고 있다. 장기수선이라는 방식이 사실상 소유자의 재산가치 유지에 대한 부분임에도 세입자가 이를 보장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순히 충당금의 현실화에 불과해서 그간 문제가 지적되었던 관리회사 중심의 관리방식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최근까지도 언론보도를 통해서 아파트 주요공사가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면서 예산 낭비, 혹은 뇌물 수수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또한 '주택법 시행규칙'에 의해 정해진 장기수선계획의 수립기준을 보면, 6개의 영역별로 세부 공사내용이 수선주기까지 딱 정해져 있는 형편이다. 매번 관행적인 장기수선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임대아파트로 국한시켜 보자면, 다른 민간공동주택과 다르게 장기수선충당금 문제를 접근할 수 있다. 기타 공동주택과 다르게 임대아파트의 경우에는 장기거주라는 특징이 있으므로 장기수선충당금의 납부와 수혜자가 어긋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리고 임대아파트는 기본적으로 SH공사나 LH공사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관리기금의 재정지원비율을 50%에서 60%로 높여도 재정의 공공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한 현재 임대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자회의가 별다른 실효가 없는 이유는 권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의 관리소장이 모든 입주자대표보다 '갑'인 상황에서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이 대표자회의에 열심일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기존의 관행화된 임대아파트 관리 방식을 입주자대표자회의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표자회의의 방식이 아니라 '주민주택조합'으로 전환하여 아파트 단지에 대한 '자기관리'를 시행해볼 수 있을 것이다. 5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의 경우 통상 4명의 정규직(관리소장, 회계담당, 기전담당 등)과 7명의 비정규직(경비, 청소 등) 등 11명의 고정인력과 장기수선계획이나 기타 법령에 따른 공사계약이 수시로 이루어진다. 즉 단지 하나에서 연간 발생하는 일자리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물론, 법적인 자격을 가진 기관이 해야 되는 업무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그렇듯 면허 소지자가 바로 시공자는 아니다. 즉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관리조합 역시 공공지원을 통해서 법적으로 명시된 관련 면허를 취득하도록 돕더라도 다른 인력들을 지역 주민들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수선계획에서 규정하는 연한을 기계적으로 따질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주택관리 방법을 도입한다면 사실 적정 수준의 장기적인 일자리를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서 만들 수도 있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수급자격과 문제가 된다면 임대아파트 단지 내에 공동식당 등을 운영하면서 최소한 식비 정도라도 간접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면 된다. 이렇게 된다면 주민이 관리소장, 기전이나 회계담당자가 될 수 있고 이들은 임대아파트가 아니라 일반 민간공동주택의 영역으로도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임대아파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제적 자립기회를 얻는다.

공공에서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정기적인 싱크대교체, 현관문 교체, 놀이기구 교체와 같이 일시적으로 소요하지 말고, 일상적인 유지관리를 통해서 시설물의 내구연한을 높인다면 이 역시 효율적인 재정운영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개인화된 임대아파트 거주자들이 현관문 밖을 나올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을 만들고, 주민들 스스로가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직접 관리하면서 생활이 유지된다면 이 역시 단지 내 순환적인 생활공동체가 만들어져 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운동'이다

그런데 이런 제안들이 회심한 서울시에 의해서, 혹은 교체된 새로운 정부에서 바로 받아들여 질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어디서도 주택을 주민의 힘으로 '관리'하는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행정의 영역에서는 모험일 수밖에 없는 사업에 선뜻 나설 리 없다.

게다가 그동안 관행화된 임대아파트의 먹이사슬은 어떤가? 관리업체-공무원-관련회사로 이어지는 유무형의 유착관계를 스스로 끊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역시 난망하다. 결국 새로운 임대아파트 관리사업의 모델은 '운동'을 통해서만 달성이 가능하다. 특히 임대아파트 주민들 스스로가 단지의 주체로 다시금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행정과 주민, 전문가 그룹과 주민을 연결하고 지원할 수 있는 지역의 주거활동가가 양성되어야 한다.

주거운동 1세대의 성과가 임대주택이라면, 이제 20년이 넘도록 도시의 수용소가 되어 버린 임대주택을 새로운 도시 주민운동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새로운 주민들과 이루어 나가야 할 도시 주거운동의 2막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지원 대신, 아예 새로운 지형을 그릴 수 있는 임대아파트 정책이 나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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