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11월 26일 13시 54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박인규
inkyu@pressian.com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한미 동맹이 위태롭다"
[해외시각] '미국 우선’에서 '미국 왕따'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지 하루 만에 회담 재개로 180도 입장을 바꾼 트럼프의 깜짝쇼는 무엇을 남겼을까? 한반도에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3차 남북 정상회담 한 달 만에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완전한 평화를 위한 남북 공조를 한층 강화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선 트럼프의 변덕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조선일보는 난독증인가
지독한 대미의존증, 혹은 평화체제 공포증
"한국 역시 국내적 제약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만약 평화협정이 조인된다면, 주한미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보수 야당은 주한미군의 감축·철수를 강하게 반대할 것이고, 이는 문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딜레마가 될 것이다. 또한 문 대통령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판문점 선언의
미국은 어떻게 '사찰'을 최초로 발명했나
[전쟁국가 미국] 알프레드 매코이 <미국 세기의 그늘 속에서>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의 패권 국가로 등극했다. 참전을 놓고 국내 여론이 대립하고 있던 1941년 2월, 타임 라이프의 발행인 헨리 루스는 라이프 사설을 통해 20세기를 '미국의 세기(American Century)'로 규정하면서 미국의 참전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우리가 적절하다고 믿는 수단으로 전 세계에
'군복 입은 케인즈', 미국을 만들다
[전쟁국가 미국] NSC-68과 한국전쟁 <하>
딘 애치슨, 폴 니츠 등 미국의 전면적 재무장을 원하는 세력에게 북한의 남침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NSC-68이 주장한 소련 군사력에 의한 세계 공산화 음모가 현실화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소련의 음모가 드러난 이상 미국은 대응에 나서야 했다. 미국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전면적 재무장이 그것이다. 사실 북한의 남침은 미국 지도자들의
영구 전쟁국가의 탄생
[전쟁국가 미국] NSC-68과 한국전쟁 <상>
2차 대전 후 미국의 세계 패권이 완성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한국전쟁을 통한 전면적 재무장에 의해서였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국방비를 일거에 4배 가까이 증액했고 군사 물자 생산도 7배로 늘렸다. 서독과 일본 등 과거 적국의 재무장을 단행했다. 미국이 대대적 재무장에 나선 것은, 그것만이 미국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할 수 있는
IAEA는 미국의 하수인인가
2007년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의 진상 <하>
2007년 9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제기된 '북한-시리아 핵협력설'은 당시 진행되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은 중대한 걸림돌이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11년 5월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형 원자로를 지어준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북한을 핵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쓰 포터는 19
북한은 어떻게 악마화 되었나
2007년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의 진상 <상>
2007년 9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제기된 '북한-시리아 핵 협력설'은 당시 진행되던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은 중대한 걸림돌이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11년 5월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형 원자로를 지어준 것을 기정사실화 했다. 북한을 핵확산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독립연구자 가레쓰 포터는 1
압도적 '핵근육'의 미국,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이유?
[전쟁 국가 미국] 미국 핵무기, 냉전을 초래하다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해 스팀슨, 코난트 등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그토록 공을 들여 핵무기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이에 대한 미 국민의 동의를 끌어낸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핵무기가 전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 수단이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을 바탕으로 전후 세계 질서를 미국의 계획대로 형성
미국의 전쟁과 여론 조작의 역사
[전쟁 국가 미국]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미국의 전설적 독립 언론인 이지 스톤(I. F. Stone : 1907~1989년)은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는 말을 남겼다. 1922년, 만 열네 살에 기자 생활을 시작한 스톤은 이후 60여 년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명제를 자신의 좌
히로시마의 진실이 봉쇄되다
[전쟁 국가 미국] 핵무기와 '동의의 조작'
1946년 가을, 처음으로 미국인들이 핵무기의 정당성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핵 과학자들의 함께 살 것인가, 모두 죽을 것인가(One World or None), 존 허시의 히로시마, 그리고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와 종교인 라인홀드 니버 등의 문제 제기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1947년 2월이 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