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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세대 아빠와 촛불세대 딸이 나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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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세대 아빠와 촛불세대 딸이 나눈 편지

[촛불의 소리]"미친소 덕분에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운다"

"삶이란 옳은 길을 찾으려는 싸움의 연속이 아닐까"

내 딸 은자에게(은자는 집에서 부르는 애칭입니다. 편집자)

오늘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부산) 서면의 촛불집회에 나갔다

장대비가 내리시는 가운데 어린 학생들과 청년들 그리고 제법 희끗희끗한 머리의 아빠 또래의 어른들도 간간이 섞이면서 형형색색의 우산과 1회용 우비의 대열이 그야말로 굽이치는 물길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더구나.

그리고 이 대열 어디쯤 친구들과 어울려 쏟아지는 빗소리가 무색하게 깔깔대면서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열심히 손을 치켜들고 있을 내 딸 은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설마 무대 위로 올라가지는 않았겠지.)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대통령의 취임 백일을 맞아 이처럼 온 국민이 나서 성대한 촛불파티를 열어주는 나라가 있겠냐고 하더라만 집회 뒤 엄마와 함께 시청으로 향하는 가두행진을 하면서 착잡하기도 하구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구나.

은자도 잘 알겠지만 주로 어린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촛불집회가 한 달씩 이어지면서 촛불집회의 모습도 새로운 국면을 맞는구나. 이처럼 들판의 불길처럼 온 국민의 저항으로 퍼져나갈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냐만 오늘도 거리로 나선 생기발랄한 여학생들의 외침소리와 여기저기 높이 펄럭이는 청년학생들의 깃발을 바라보며 과연 이 싸움의 끝은 어디일지 생각해 보았다.

한 번씩 언니와 은자에게 들려준 얘기지만 아빠 엄마의 청년시절도 역시 공부에 열중하거나 자기 일에만 힘을 쏟을 수 있는 세월이 아니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억지로 정권을 거머쥔 군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던 때이라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군사독재에 맞서 온 몸을 던져 싸웠던 참 무섭고 어두운 세상이었지.
▲ ⓒ프레시안

그러면서 이전의 군인 대통령이 다시 그 부하였던 군인에게 대통령을 넘겨주려고 하자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에 앞장서면서 온 국민들이 반대하게 되었단다. 그러던 중 한 대학생이 전경이 곧바로 겨누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다쳐 목숨을 잃게 되고. 이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군사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을 외치며 거리로 나와 거세게 저항하였는데, 이를 6월항쟁이라 부른단다. 당시 엄마와 부산역에서 문현동 고가도로를 넘어 이곳 서면으로 가두행진을 할 때의 감격이란. 이러한 민주화 투쟁은 그 해 7,8월 그동안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억눌려 지내야 했던 노동자들의 대투쟁으로 이어지면서 끝내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내고 이 땅의 민주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지.

그리고 다시 20년이 지난 오늘 내 딸 은자를 비롯하여 이제는 나이 어린 여학생들이 거리로 나서는 힘든 상황을 맞게 되었구나.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참담한 느낌을 감출 수 없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구나.

내 딸 은자야. 삶이란, 살아가는 일이란 어쩌면 이처럼 끊임없이 제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나서게 마련이고 이에 맞서 올바른 길을 찾아나고자 하는 싸움의 연속 아닐까.

그러니 올바른 세상이나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란 어떤 정해진 그림이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어찌 보면 광우병 문제가 해결된다 해서 새벽부터 야밤까지 코를 끌고 다니는 너희들의 대학입시를 위한 쳇바퀴 학교생활이 무어 달라지겠니.

꼭 거리에 서있는 너희들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이 땅을 먼저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너희들에게 못할 짓을 시키는 마음 언제 한 번 제대로 편해본 적이 있을까

은자야 '힘들제?'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죽도록 힘들다거나 눈이 번쩍 띄게 즐거울 수 없다면 그저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뒷날, 오늘의 모습을 떠올려 후회하지 않을 '성실하고 건강한 삶'이라면 괜찮지 싶다.

오늘 촛불집회 속의 은자의 모습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이 사회와 은자의 삶이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는 줄긋기가 되면서 살아있는 사회공부가 되기도 하고 신나게 한 판 놀아보는 축제의 장으로 즐길 수도 있겠지

다만 미친 소가 우리 밥상에 또는 내 목숨이 걸려있는 문제라는 좁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참으로 부당하고 옳지 못한 이 사회의 여러 부조리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 보다 열린 시각을 갖게 되길 바래보는 것이지.

더하여 보다 중요한 것은 20년 전의 6월 항쟁과 오늘의 촛불집회의 그 사이, 또는 촛불시위 이후 일상으로 돌아온 삶을 어떤 내용으로 채우느냐 하는 거겠지. 그 삶의 속을 얼마나 알뜰하게 맛깔스럽게 채우느냐에 따라 다음 맞게 될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도 달라지지 않겠니. 이는 은자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직 삶을 여행 중인 아빠 스스로에게도 다짐을 놓는 말이 될 거야.

그래 이제 우리 은자와 아빠는 거리에서 같은 뜻으로, 같이 애써 싸우는 동지가 된 셈이네. 두 팔 벌려 우리 은자 동지를 환영하며 아빠와 언제까지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칠고 험한 산등성이 길이라도 흙먼지 속에 소금 땀 흘려가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공부 못한다는 구박에도 '그래도 잘하는 게 많잖아' 여유를 부리며 씨익 웃어주는 우리 딸내미가 아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은자가 알까.

내 딸 은자를 비롯하여 이 땅의 모든 여학생들, 힘내고 파이팅이다. 아자!

"아빠도, 이 시대를 살아갈 내 친구들도 모두 화이팅이예요!"

나의 아빠에게

아빠, 며칠 동안 제대로 얼굴 보기도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아빠얘기를 듣게 됐네.
▲ ⓒ프레시안

아빠의 올해 모토가 '무슨 일 이든 나서자'라고 했잖아. 근데 평소에도 느끼는 건데 이게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 될 일이라는 걸 알면서, 나서야 한다는 걸 알면서 용기가 없어서 혹은 귀찮아서 피하고 숨고...

이런 나를 보며 이번에 아빠가 우리 동네 보궐 선거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내게 자극이 되기도 하고, 멋있어 보였어요. 아빠가 후보를 대신하여 목이 쉬도록 연설하는 것이 선거결과를 떠나서 지금 잘못 흘러가는 우리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르게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마음을 모으고 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아빠도 이렇게 나서는 것이 처음이랬지?)

요즘 전국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모이고 있잖아. 나 또한 촛불을 들면서 느꼈던 건데, 그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고 바꾸려한다는 거였어. 지난 토요일 날 밤새워 시위를 하는 현장을 볼 때는 어쩌면 잘못된 세상을 조금씩 바꿀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다?

처음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게 5월9일이었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났네. 집회에 그렇게 많이 참가하진 않았지만, 나갈 때 마다 항상 좋은 기운을 전해 받고 오는 기분이야.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서로를 응원해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촛불을 들고 나란히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다 같은 동지예요'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후후하며 살짝 미소가 지어진다.

처음에 촛불집회를 한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었을 때는 집회를 한다고 수입이 취소되겠냐는, 사람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렇게 한번 두 번 집회에 참여를 해보니깐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거 같애. 이렇게 잘못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 뜻을 세상에 내비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걸.

아빠, 요즘 세상은 참 납득하기 어려운 것투성이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많이 배우고 가진 것 많고 아는 것도 많다고 자부하는 그 사람들은 왜 모르는 걸까. 아님 모른 척 하는 걸까.

대학생이었던 아빠가 거리로 나섰던 20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게 뭘까. 아빠가 보냈던 학창시절은 지금보다 더 폭력적이고 끔찍했겠지만 20년이나 흘러버린 지금도 여전히 정부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생각해. 군사정부 때 방망이를 휘두르고 최루탄을 쏘면서 시민들을 억압한 것과 지금 국민을 팔아넘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져.

그러면서 20년 전에 이 나라의 청년으로, 또 지금은 두 딸의 아빠로 그렇게 변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는 우리 염소수염 아저씨가 나에게 얼마나 좋은 스승인지 아빠는 알까^^.

아빠와 딸이 함께 할 수 있는 촛불집회현장, 생각만 해도 벅차고 힘이 나는 공간이 아닐 수 없어. 엄마 아빠가 처음에 촛불집회로 우리를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엄마 아빠의 대학시절처럼 나도 내 뜻으로 처음부터 일어설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 (잘못된 것을 알지만 거리로 나서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겠지?). 우리를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대열에 함께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이제 내 앞에 어떤 일이 생기고 또 얼마나 힘들지 알 수 없지만 아빠의 말대로 성실하게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나의 미래에 지금 내 모습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거리에서 같은 뜻으로, 같이 애써 싸우는 동지로 딸을 응원해 줄 거지? 힘낼께요, 아빠 .

아빠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나갈 나의 친구들도 모두 힘내고 파이팅이예요. 아자!

(이 글은 지난 7일 부산 서면 촛불집회에 다녀와서 아빠가 작은 딸에게 보낸 편지와 딸이 아빠에게 답장을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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