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북아프리카 자치령 세우타를 향한 대규모 이주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이를 계기로 한 극우 반이민 선동과 유럽연합(EU) 내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 우파를 넘어 중도 정부까지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유럽 정치에 미치는 극우 영향력이 부각됐다는 분석이다.
2일(이하 현지시간) 스페인 <엘파이스>, 미 <뉴욕타임스>를 보면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Vox) 대표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세우타에 방문해 이번 사태를 "침략"이자 "전쟁 행위"로 규정했다. 그는 진보적 이민 정책을 추구하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를 비난하고 국경의 "영구적 군사화" 및 재발 방지가 보장될 때까지 세우타와 모로코 사이 "국경검문소 무기한 폐쇄"를 요구했다.
스페인 제1야당 우파 국민당(PP) 대표인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도 전날 세우타를 찾아 이번 대규모 월경 시도를 "계획적 점령"으로 근거 없이 규정하고 산체스 총리를 비판했다.
영국 극우 정당 인사까지 세우타에 나타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을 보면 1일 극우 영국개혁당 내무 담당 대변인 지아 유수프는 세우타에서 이민자들과 대화를 나눈 결과 "상당수가 영국에 갈 의향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하며 영국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려 시도했다.
관련해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조나 훌 기자는 "유수프가 영어를 거의 못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몇 마디 말을 끌어내는 걸 지켜봤다"며 "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 누구도 영국으로 향한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영국에 가고 싶냐'고 물으면 '네'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현지에서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려는 시도가 환영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2일 세우타에서 집회를 조직한 25살 우파 평론가 비토 퀼레스는 시위 시작 5분 만에 경찰 호위를 받으며 현장을 떠나야 했고 10여 명의 주민들이 그를 쫓으며 "파시스트는 나가라! 인종차별주의자는 필요 없다!"고 외쳤다.
같은 날 스페인 극우 정치인 알비세 페레스도 세우타에서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주민들은 이민자와 무슬림을 동일시하고 이 위기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한다며 페레스를 비판했다. 페레스는 급히 술집으로 피신했고 이후 경찰 호위를 받아 상황을 모면했다.
그러나 정치적 파장은 이미 세우타를 넘어 유럽연합 전체로 퍼졌다. 1일 유럽연합 27개국 22개국 정상이 유럽연합 지도부에 공동서한을 보낸 뒤 4일 이 사태에 대한 유럽연합 긴급 회의가 소집될 예정이다.
22개국은 서한에서 "스페인 대법원의 최근 판결이 이번 공격 촉발에 이용됐다"며 이민자의 유럽연합 내 타국으로의 2차 이동을 막기 위한 "임시 국경 통제 강화 및 재도입"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으로의 불법 입국이 가능하다는 인식, 불법 입국이 합법 거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 형성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서한엔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포르투갈과 프랑스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사국인 스페인과 아일랜드, 룩셈부르크도 함께하지 않았다.
극우 성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달 31일 이번 사태를 이유로 스페인발 입국자에 대한 입국 심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에 대해 유럽연합 국가 간 자유 이동을 보장한 솅겐 조약을 일시 적용 중지하겠다는 것이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소속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도 스페인과 솅겐 협력 정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일 <가디언>을 보면 노동당 소속 앤디 버넘 영국 총리는 소형선을 이용한 영국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우린 (국경) 통제를 회복해야 하지만,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극우에서 중도 정당에 이르기까지 강경 이민 대응이 새로운 표준이 된 상황에서 홀로 완화적 이민 정책을 도입한 스페인의 고립이 부각되는 모양새다. 산체스 정부는 올해 불법 이민자에 합법적 임시 거주 허가 및 취업 허가를 부여하는 정책을 시행해 마감 기간인 6월 말까지 1백만 명 이상이 신청을 마쳤다. 신청자 대부분(67%)이 중남미 출신이었고 모로코 출신은 13%였다.
산체스 총리는 1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에 보낸 서한에서 일부 회원국의 솅겐 중지 등의 대응을 겨냥해 "편견, 가짜뉴스, 무지, 정치적 이익"에 따른 "이기적, 분열적" 움직임이라고 비판하고 "세우타는 솅겐 지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스페인 정부가 "48시간도 안 돼 국경 통제를 완전히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지난주 후반 세우타로 밀려든 이민자 5~6만 명 대부분이 주말 모로코로 자진 귀국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유럽 지도자들의 대응이 2015년 중동발 난민 위기 때와 판이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차이점은 "2015년엔 대체로 변방에 머물렀던 극우 정당들이 이젠 정권을 잡았거나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라며 "정치적 역풍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는 유럽의 중도 지도자들은 2015년의 좀 더 포용적이었던 방식을 버리고 이민 문제에 대해 극우의 강경한 정책과 어조를 일부 수용했다"고 짚었다.
세우타 입국 부추기는 SNS 게시글 최근 범람…'국경 열렸다' 소문에 청소년 휩쓸려
이민자들이 갑자기 몰린 이유는 여전히 불명확하다. <로이터>를 보면 침묵을 지켰던 모로코 당국은 2일 사태 원인으로 소셜미디어(SNS) 허위정보, 인신매매 조직, 해상을 통한 이주민의 즉각적 송환을 금지한 최근 스페인 대법원 판결에 대한 오해 등을 꼽았다. 모로코 당국은 불법 월경자를 4만 명으로 추산해 스페인 쪽보다 낮게 집계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 사망자 수도 스페인 쪽에선 72명으로 집계된 데 반해 모로코 당국은 11명으로 발표했다. 스페인 당국은 부상자 치료 건수도 1100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많은 이민자들이 바다를 헤엄쳐 세우타로 진입하려다 물에 빠져 숨졌다.
<AP> 통신은 대규모 이주가 시작되기 며칠 전부터 소셜미디어에 세우타 입국을 부추기는 게시글이 소셜미디어에 범람했다고 영 옥스포드대 이주정책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미리암 체르티를 인용해 전했다. 그러한 게시글들엔 국경을 넘는 방법, 체류 허가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해야 하는 말 등 구체적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세우타로 향한 이민자들은 소셜미디어에서 '국경이 열렸다'는 주장이 퍼지며 이에 휩쓸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16살 소년 압둘라알은 친구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운동화를 팔아 국경까지 갈 여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충격에 빠진 채 짝이 맞지 않는 슬리퍼를 신고 돌아 온 그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신문은 수영을 통한 월경을 시도한 많은 이들이 어리고, 이전엔 한 번도 이를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세우타로 헤엄쳤던 16살 소년 리다는 며칠간 세우타에서 머물다 모로코 국경마을 프니데크로 돌아왔지만 친구들과 먼저 세우타로 헤엄쳤던 6살 남동생 라얀은 숨졌다.
일부 이민자들은 모로코 경찰이 국경을 열어줬다고 증언했다. 지난달 29일 15분만에 헤엄쳐 세우타에 도달한 모로코인 유세프 엘아바스(44)는 <가디언>에 접경지 프니데크에서 봉쇄선과 검문소가 보이지 않았고 모로코 경찰이 "스페인으로 뛰어"라고 외쳤다고 주장했다. 그는 "물에 들어간 지 10분 만에 주검 네 구를 봤다. 사람들이 주검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사하라 분쟁 지역을 두고 알제리와 대립 중인 모로코가 최근 산체스 총리의 알제리 방문에 불만을 품어 국경을 열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모로코는 세우타에 대한 스페인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산체스 총리는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 보낸 서한에서 모로코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사태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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