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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생방송 심야토론>, 공론과 난장은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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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 <생방송 심야토론>, 공론과 난장은 어디있나?

[2009 위기의 KBS 해부] 이 시대 '말의 풍경', 토론 프로그램

"10년 넘겨 해보니 한국만큼 토론하기가 어려운 나라가 있을까 싶어요. 막무가내[로] 제 말만 하거나, 무조건 상대방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많아요. 돈 받으면서 공부한 제 경험으로 보면, 토론은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여유를 지닐 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고 나온 분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얼마 전까지 매우 오랜 기간 토론프로그램을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진행해온 - 하지만 최근에 '갑자기' 경질된 - 베테랑 진행자 정관용씨가 한 말이다. 이런 경험의 술회는, 그것이 지상파이건 온라인이건 혹은 의사당이나 특정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토론과 말싸움이건 간에, 우리사회의 상대적으로 척박한 토론문화(들)의 단면과 문제점을 아프게 지적하는, 동시에 공감이 가는 발언이다.

토론 프로그램, 흥미로울 수 있다…물론 잘 될 때!

이 지점에서 KBS의 <생방송 심야토론>이나 나아가 MBC의 <백분 토론>과 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대표적인 토론 프로그램의 역할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보자. 먼저 포맷의 측면에서 토론 프로그램은 해당 프로그램이 다루는 특정 주제나 사안들에 대해, 주로 관료, 지식인 혹은 시민단체의 주요 인사들과 같은 일정한 전문성과 식견 그리고 논의와 논쟁을 끌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혹은 가졌다고 기대하는 이들을 섭외해서 대화와 논쟁의 장을 만들고, 이를 화면 밖의 수용자들에게 제시하고 매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동시에 토론 프로그램의 포맷은 특정 사안을 두고 현격한 의견과 관점의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그룹을 의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특정한 사회적인 의제와 공적인 함의가 지대한 사안들이 가지는 복잡한 단면과 명암에 대한 양 진영의 의견을 대비시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 관습적으로 운용되고 정형화된 포맷과 양식성을 넘어서서, 텔레비전의 수용자들은 토론 프로그램에서 날카로운 동시에 화끈한 말의 공방전과,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되 종종 재기발랄하고 품격이 있는 말의 풍경이 실현되는 것을 기대한다.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야심한 시간 우리의 눈과 귀로 파고드는 말들의 군무와 경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환호하며, 토론에서 재현된 사안들의 중요성을 새삼 인지하고 곱씹게 되기도 한다. 이 점이 토론프로그램의 순기능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비교적 딱딱하고 즉각적인 반응과 비판이 불가능한 인터뷰나, 특정 공적인 공간에서 전문가나 관료 혹은 정치인들이 제시하는 일방적이고 단성적인(monological) 발언들의 장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와 사안을 매우 차별화시켜 바라보는 참석자들이 말로 엮어내고, 공방을 펼치며, 상대측의 논거에 도전·대응하는 이야기들의 공간 그리고 '입심 대결'이 이루어지는 '난장'으로서의 토론 프로그램은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생동감 있고, 의외로 흥미로운 경연의 장을 안방의 수용자들에게 선사할 수 있다. 잘 될 때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부가적으로 시사토론을 통해서 이름과 얼굴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던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하룻밤 만에 유명세를 타게 되거나 때로는 스타가 되기도 한다. 물론 무리한 발언과 동문서답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매우 부정적으로 만들거나, 구설수에 올라 대중의 기억에 남계 되는 이들 혹은 궤변과 무리한 언사로 '열사'가 되는 이들도 존재한다.

꾸준히 추락하는 토론 프로그램의 관심도

<생방송 심야토론>은 그간 광우병 쇠고기, 언론법, 용산참사, 대법관 재판개입, 비정규직문제, 경제회생, 대학입학제도, MB정부의 1년,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등의 굵직하고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들을 다루어왔다. 이러한 주제들의 선택은 적절하고 동시에 마땅히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생산적인 논의와 수용자들의 관심과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 수준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이제 다양한 측면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할 시점이 아닐까?

텔레비전 수용자의 한 사람으로 요즈음 <생방송 심야토론>을 접하다 보면, 전반적으로 논의의 열기와 더불어 관심과 흥미가 떨어지는 체험을 종종 맛보게 된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아무리 출연자들이 논리정연하게 혹은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내가며 자신들의 주장과 논지를 밝혀도 어딘지 모르게 공명과 공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민으로서 마땅히 알아야할 사안과 쟁점들이 비교적 명쾌하게 정리되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의견의 교환을 통해서 생각이 (재)정리된다는 느낌이 흔쾌하게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혹시 어떤 완강하고 고집스런 말들의 반복되는 대립상이나 고착감, 혹은 이러한 대결구도로 만들어진 동시에 대다수 수용자들의 관심에선 유리된 완강한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벽을 심야토론을 대하며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에 이루어진 한 조사는, 작년 9월초에서 금년 2월말까지 6개월 간 방송 3사 토론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률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기록 중이며 시청자의 관심도 상당히 떨어지고 있다고 전한다. 이 조사는 지난해 연말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난 심야토론의 하락세는 지난해 11월 한 달 평균 시청률 2.7%, 12월 2.7%에 이어 올해 1월에는 2.3%로 최근 1년 중 최저치를 보였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낮은 수준의 대중의 관심은 토론 프로그램들이 질적으로 수준 높은 논쟁과 말싸움, 적절한 논리의 구사와 충돌 그리고 그로부터 일정한 합의나 공감 혹은 생각할 거리들을 도출해내는데 크게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경마식 게임장과 엄숙주의의 만남

한편 <생방송 심야토론>의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다음과 같은 시청자의 소감 역시 한 시민의 주관적인 반응만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교수건 박사건 (전문가이건]) 토론 전에 토론을 위한 기본적 예의에 관한 짧은 교육을 하고 시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상대 측에서 말하고 있는데 큰소리로 끼어들고, 뭐가 우스운지는 모르겠지만 웃기다고 크게 비웃고. 시청자로서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논의의 양식과 질에서 성숙하고 열린 태도와 타자의 주장과 관점을 대하는 화자의 성찰성과 반성성은 논리적인 언변이나 날카로운 풍자만큼이나 생생하고 영양가 있는 토론에 필요한 자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생방송 심야토론>은 비록 시의적으로 중요한 사안과 주제들을 다룬다고는 하나, 수용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기된 의제나 정책들에 대한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논의가 주종을 이루어왔다기보다는, 많은 경우 패널들이 이미 예단된 관점을 시종일관 유지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일방적인 주장과 때로는 교묘한 물타기와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인다.

그 자체가 쟁점적인 사안들을 다룬다고는 하나, 논의하는 사안들에 대한 관점이 줄곧 평행선을 달리며, 토론자체가 각 정파 간의 대리전이 되거나, 전문적이나 공허한 말의 상찬과 공감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언어의 소모전이 되어버린 측면이 상당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언론학자 원용진이 얼마 전에 지적했듯이 요즈음의 토론프로그램들이 "경마식 게임장"과 전문가들이 고수하는 엄숙주의가 만나는 전형성의 공간으로 한정된 역할만을 수행하는 측면이 상당히 감지된다.

"장르적 관습에 묶여 형식화됐다"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토론에 나오는 전문가와 이야기꾼들의 논쟁과 대화 속에는 마치 동창회 모임이나, 술집, 혹은 저자거리에서 일상적으로 재연되는 논쟁이나 말싸움과 흡사한 구조와 방식이 일정하게 녹아들어 작동한다. 본인이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이기도 했던 김주환 교수는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이고도 비목적적인 자발적 대화를 통해 시작한다. 술자리에서의 잡담이나 명절에 모인 가족들 간의 격식 없는 정치적 대화야말로 공론장의 본질"이라며 "공론장의 역할을 해야 할 토론프로가 장르적 관습에 묶여 지나치게 형식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토론프로가 '열린 토론의 장'이라는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보다 유연한 포맷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을 준 바도 있다.

물론 토론 프로그램에 대해 최근 드러나고 있는 대중적인 관심의 저하는, 일차적으로 앞서 언급한 수용자들이 종종 실감하는,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독선과 우기기, 말꼬리를 잡아가는 소모적인 논쟁, 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의견의 개진, 그리고 고착된 포맷의 전형성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말이 풍성하되 도무지 대화의 결이 모아지고 유의미한 반향과 공감을 수용자들에게 강하게 제시해주지 못하는 이러한 구태의연한 면모가 연속해서 토론상황에서 드러나다 보면, 수용자는 그저 들러리 혹은 점차 기대를 접는 관망자나 아예 신경을 끄는 외부자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결과, 일종의 "미시적인 공론장"과 표출의 공간을 형성해야 할 토론 프로그램이 일반 수용자들이 품고 있는 기대치에 한참 모자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소통'이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

마지막으로 필자는 <생방송 시사토론>을 포함하여, 현재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의 상대적인 무관심이나, 냉소주의, 그리고 관심의 저하가 생기는 배경 안에는, 보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벌어지는 현재 한국사회의 일그러지고 불온한 말들의 풍경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소통을 운위하되 소통에의 의지와 아래로부터 제기되는 여론의 수렴에 적극성과 자기반성을 보이지 않는 오만한 정치권력과 언로의 흐름에 무심한 정치권, 걸핏하면 '법치'라는 이름으로 물리력과 제도적인 힘을 동원하는 지배권력의 존재 앞에서, 담론과 공론 그리고 소통의 역능은 크게 위축되고 가치를 상실해왔다. 이러한 인식이 토론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태도에도 이미 일정 부분 스며들고 있다고 사료된다.

이러한 대중의 '감정구조'는 현재의 '불통'의 구조와 힘과 제도의 남용을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 통치의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쉽사리 변화하긴 어려울 것 같다. 변화를 모색하는 진지한 노력과 반성이 뒤따르지 않는 한, 토론 프로그램은 공명과 반영이 없이 메아리치는 겉도는 말, 전문가와 관료들이 주요 배역으로 등장하는 그들만의 스테이지와 그림자극으로 남게 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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