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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와 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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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와 포스트모더니즘

[촛불의 소리] 비폭력 평화 코믹 투쟁을!

▲ <르 코르뷔제 Charles-Edouard Jeanneret, 1887~1965>

현대 모더니즘(Modernism)의 건축과 그 이전의 건축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장식(裝飾)'이었다. 19세기 이후 모더니즘의 건축가들은 중세의 건축물과 같이 건물의 외양을 인체 조각이나 식물무늬 등의 장식으로 치장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중세 건축물에 치장된 아름다운 조각이나 무늬들이 단순히 건물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압도하여 복종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급기야 독일의 건축가, '아돌프 루스(Adolf Loos)'는 건물에 장식하는 것을 하나의 범죄행위로 까지 혐오시하기에 이른다. 철저하게 장식성을 거부한 건축가들이 주목한 부분은 '기능주의'였다. 현대의 모더니즘은 이와 같은 '기능주의'를 그 근간으로 삼는다. 이후 모더니즘의 건축가들은 철저한 기능에 따른 형태를 추구하게 된다. 그들에게 있어 중세건축의 화려한 장식성은 타도의 대상이었으며, '반장식성'과 '기능주의'만이 그들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원칙이었다.

모더니즘 운동의 최전선에 건축가 '르 코르뷔제(Le Corbuiser)'가 있었다. 그는 1923년에 펴낸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라는 저서에 아름다운 성당이나 거대하고 화려한 오페라하우스의 사진 대신 전기 터빈이나 저압 환기팬의 사진을 실었다. 그에게 있어 진정으로 위대한 건축이란 '능률의 추구에 따라 움직이는 건축'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적 건축가이기 보다는 기계를 만드는 엔지니어적 건축가이기를 원했다.

어떤 잡지의 기자가 애용하는 의자가 무엇이냐고 묻자 '르 코르뷔제'는 비행기의 의자를 예로 들면서, 비행기는 날아야 한다는 요구 때문에 모든 불필요한 장식이 사라진 가장 성공적인 건축물이라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르 코르뷔제'는 집 꼭대기에 고전주의적인 형상을 덧붙이는 것은 비행기에 그런 것을 덧붙이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적어도 비행기는 이런 덧붙임에 반응하여 추락함으로써 그 터무니없음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이 있음을 찬양했다.

"비행기는 고발한다!"

'에밀졸라'를 빗대어 '르 코르뷔제'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압축하여 표현한 유명한 말이다.
이와 같은 사조(思潮)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기능주의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유럽의 재건을 도맡은 미국의 실용주의로 확립되기에 이른다.

이런 흐름을 우리는 모더니즘이라고 통칭한다. 모더니즘은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기능 지상주의의 모더니즘은 1980년대를 접어들면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서유럽은 전쟁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었고, 물자 부족은 과거의 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위기상황에선 너무나도 유용하였던 기능주의는 풍요의 시대에는 더 이상 기능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물질을 향유하고자 하였으며, 문화의 가치를 갈구했다. 더 이상 생산성과 기능성만을 고려한 기능주의를 선호하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이탈리아의 디자이너들은 이전과는 다른 괴상한 것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물론 지금의 시각으론 너무나도 평범할 수 있지만) '안나 G'는 이와 같은 이탈리아 디자인을 선도했던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의 작품으로 와인 병따개이다. 귀엽게 웃고 있는 머리 부분을 돌리면 나사가 코르크를 서서히 뚫고 들어가는 것과 동시 양쪽의 팔같이 생긴 부분이 우아하게 올라간다. 팔이 완전히 올라갔을 때 양쪽 팔을 아래로 잡아당기면 '뿅'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코르크 마개가 빠진다.

모더니즘을 지배했던 기능주의적 엄숙함이나 비장함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안나 G'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병따개의 기능성을 담보하고 있지만, 기능성 이외에 병을 따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동시에 전달한다. 사람들은 '안나 G'를 조작하며 그녀의 괴상한 외모와 그 작동에 키득키득 거리게 되고 마치 애완동물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안나'라는 명칭 또한 멘디니 자신의 여자 친구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그에게서 모더니즘의 엄숙주의란 어색하고 불편한 장롱속의 헌 옷일 뿐이었다.

이 주전자는 열을 받으면 증기를 뿜어내며 새소리를 낸다. 주둥이의 새는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장식물일 수 있으나 물이 끓기 시작하고 증기를 내뿜을 때는 그 어떤 단막극보다도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주전자를 디자인한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ele Graves)'는 신시내티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건축학도였으나, 1959년에 대학원을 마치고선 홀연히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전위적인 디자이너들과 교류하면서 모더니즘과 구별되는 새로운 사조에 눈 뜨게 되는데, 새소리를 내며 증기를 내품는 그의 주전자에서 '안나 G'와 같은 농담과 유머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와 '마이클 그레이브스'를 일러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스트(Post-Modernist)'라고 한다. 모더니즘과 그 이전의 구분이 장식성에서 비롯되었듯이,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구분은 농담 또는 유머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광풍(狂風)이 불었었다. 문화 판의 거의 모든 이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야기했고 서로 앞을 다투어 쫓았다.

그러나, 때는 어둠과 폭력이 난무하던 야수들의 시대!

거리에선 독재자와 시민들이 격렬하게 대치했고, 매일같이 거리에는 최루탄의 연기가 자욱했다. 그런 상황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벼운 농담이나 유머는 불경스럽기까지 한 것이어서 시대와 불화(不和)하며 단명했다.

세월은 흘러, 2008년의 여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물대포를 쏘아대는 경찰들을 향해 '온수(溫水)'를 외친다. 직사포로 쏘아대는 물대포에 등을 대고 맞서며 시민들은 찬물이 싫다고 뜨거운 물을 쏘아 달랜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반응인가!
시민들이 물대포에 부상을 입자 경찰은 물대포가 안전하다고 항변한다. 이번엔, 시민들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러면, 너희 집의 비데로나 써라! 우리는 실커등~"

급기야 시민들은 경찰들의 물대포에 맞설 절대 무기를 들고 등장한다. 그 절대무기는 문방구에서 극비리에 구입한 최신 디자인의 물총이었다. 경찰들의 방망이에 맛서 시민들은 물총을 들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광장에 모였다. 1000원짜리 비옷은 필수 옵션이다.

화나는데 웃겨서 미치겠다고 누가 그랬다.

나도 미치겠다.
하여, 나는 이와 같이 단정 짓기로 하였다.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꽃이 활짝 폈다고. 시민들은 스스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체화시키며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거나 앞서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누구하나 정확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랬다. 우리는 아직도 엄숙하기를 기대하며 경건해지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그것은 구시대적 유물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처 읽지 못했던 '시대정신(Zeitgeist)'의 변화는 치미는 울화를 사소한 농담과 유머로 승화시킬 줄 아는 시민들의 여유였다.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적 시민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6월 28일 비 내리는 밤, 나는 광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와 시민들의 물대포가 맞서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예상치 못한 시민들의 반격에 당황했던지 경고방송을 하던 여자 경찰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허공을 갈랐다. 그에 맞서 대책위의 방송도 연신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윽고,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무장한 전경들이 시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차별적인 폭력에 많은 시민들이 다쳤다. 광장은 순식간에 야수가 지배하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80년대의 재현이었다.

시민은 무력으로 공권력을 당해낼 수 없다. 비무장의 시민이 무슨 수로 진압장비를 갖추고 중무장한 경찰을 당해낼 수 있겠는가. 시민들은 다만 정부의 모더니즘적 도발에 포스트모더니즘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다. 유머와 농담! 이런 것들이 바로 시민들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무기인 것이다.

매일같이 광장에 나선 시민들을 맞이하는 똑같은 노래와 똑같은 구호를 이제는 좀 바꾸어 보자. 시민들에게 코믹 집회 아이디어를 공모하여 철저하게 평화적인 더더욱 웃겨 죽이는 집회 분위기를 만들면 어떨까?

중무장한 경찰에 맞선 색색의 비옷을 입은 물총 부대의 집단 체조.
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한 것들인가!

그래야 시민이 광장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래야 계속해서 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찾는다. 그래야 안심하고 청소년들을 광장에 내 보낼 수 있으며,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의 행렬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하여 철저히 비폭력함으로서 우리는 끝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 진보의 위대한 발걸음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와 같이 다짐하자. 그리고 모색해 보자.

비폭력 평화 코믹 투쟁!

세상의 흐름은 결국 이와 같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의 편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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