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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이미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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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이미 진화하고 있다

[촛불의 소리] 새로운 문명, 2008 촛불항쟁

6월 19일 CEO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리스크 관리를 진두지휘하고 21일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이 자기들의 협상전략을 자화자찬하며 '재협상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발표했지만 촛불은 동요하지 않았다. 간간히 퍼붓는 장대비 속에 48시간 이상 활기차게 진행된 촛불시위는 고시강행을 며칠간은 늦출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할 것이 없는 이 정부는 고시강행의 택일만을 기다리고 있고 촛불대오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이후 촛불은 시시때때로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의 촛불은 각별한 사회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문명으로서의 2008 촛불항쟁
  
  촛불의 '배후'로 억울하게 지목된 (노동)운동권은 촛불항쟁 두 달이 다 된 지금도 어색하다. 초기에는 '이게 며칠이나 가겠나?'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고 운수노조의 '미친소 운송거부 선언' 이후 쏟아지는 지지와 관심에 나름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썼지만 화학적으로 결합하고 흔쾌하게 하나가 되고 있지는 못하다.
  
  '운동권 문화'라는 것이 있다. 헌신성, 치열함, 논리적 정교함 등등의 긍정적인 요소와 함께 경직성, 상투성 같은 부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기왕의 운동권의 수위는 '문화'적 수준이다. 그런데 2008년 촛불항쟁은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였다.
  
  2008년 촛불항쟁은 자발적 참여, 고도의 창조성, 높은 의식수준을 함께하는 공동체적 '문명'이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대오는 처음부터 촛불집회에 참석했지만 '복무와 동원'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었다. 상부의 '지침'이 있어야 움직이고, 자기 소속 깃발이 보여야 안심한다. '촛불문화제'와 '촛불시위'에 생경하고 적당한 때에 '뒷풀이'를 해야 하고 '지침'에 따라 해산한다.
  
  반면 촛불문명은 '자발적 참여'를 속성으로 한다. 미친소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인식하고 스스로 극복주체를 자임하는 자발성이야 말로 2008년의 촛불이 꺼지지 않는 비결이다.
  
  잘 정비되고 조직된 노동조합 대오는 때로는 창발성의 한계점에 봉착한다. 지도부에 모든 것을 일임하고 지도부의 행보에 대한 비판에만 익숙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촛불문명의 또 하나의 속성은 고도의 창조성이다. 40번이 넘는 촛불집회는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매번 다른 것을 창조해 내고 문제에 봉착할 때 늘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한다. 닭장차투어나 조중동 광고주 압박 같은 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기존의 방식은 하나도 없다. 늘 새롭고 역동적이다.
  
  운동권 문화가 촛불문명과 쉽게 합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식수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광우병 문제로 촉발된 촛불항쟁은 생활에 밀착해 있고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그 본질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같은 구호를 수년동안 외쳐왔던 노동운동권은 그 인식의 깊이는 있을지언정 폭넓게 의제를 확산시키지 못하고 생활 속에 파고들지 못했다. 중학생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광우병 문제를 노동조합 간부들은 잘 설명하지 못한다. 정치의식화의 수준을 놓고 보면 촛불시민의 수준이 조직대중보다 월등하게 높다. 높은 의식수준이 촛불문명의 또 하나의 속성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촛불문명은 이 세가지 속성이 아우러진 '아름다운 소통과 굳건한 신뢰'로서의 '집단지성'이자 '공동체 문명'이라는 것이다. 웹2.0의 테크놀리지가 시대정신과 결합하여 완벽하게 구현되고 실시간 네트워크로 소통하고 오류가 검증되며 검증된 담론은 즉각적으로 현실세계에서 구현된다.
  
  '소통과 신뢰의 공동체 문명'이 한시대의 사건으로 소멸되지 않고 하나의 문명으로 승격되고 발전하는 촛불항쟁의 본질이다.
  
  진화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촛불항쟁
  
  촛불항쟁은 '계속 혁신'하고 '계속 전진'하고 있다. 다음 아고라는 '하나가 열을 만들고 열이 백을 만들며 백이 천을 움직이는' 대중운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리고 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도 이룰까 말까 하던 일을 몇분 단위로 만들어 낸다.
  
  서울에서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빠르게 전국화되고 문화제는 가두시위를 넘어 항쟁적 저항으로 발전해 있다. '부분에서 전체로,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집 현수막이나 횡단보도 촛불 같은 것은 순식간에 전파된다. '부분의 모범을 창조하고 이것을 일반화'시키고 있다.
  
  심지어 '소박하고 겸손하며 패기와 열정에 넘치는' 품성까지도 촛불광장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텍스트나 역사에서 배웠던 모든 것이 그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과 범위로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분석틀은 87년 6월 항쟁이나 프랑스 68혁명에 머물러 있지만 현실은 훨씬 역동적이다.
  
  2008년 촛불항쟁은 가장 진보된 형태의 사회운동이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운동권과 지식인은 촛불에서 배우고 실천해야
  
  낡은 것 은 새것을 이기지 못한다. 운동권은 낡았고 지식인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지도와 대중', '대중의 자발성과 목적의식적 지도' 따위의 기준을 가지고는 촛불항쟁을 따라가기 힘들다. '다함께','배성용','깃발부대'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은 왜곡된 측면도 있지만 기존의 잣대와 방식으로는 이 운동을 지도할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현대자동차 노조 파업부결에 대한 비판을 넘어선 비난이나, 운수노조의 미친소 운송거부에 이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촛불시민이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을 웅변한다.
  
  민주 대 반민주를 핵심으로 하는 '87년 체제'는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으로 정치적으로 종언을 고할 뻔 했지만 5-6월의 촛불항쟁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대결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보수 대 진보 따위의 엉성한 이념적 대결구도는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운동대오는 '새로운 문명, 진화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촛불항쟁'에 과감하게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흉내내기가 아니라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방식으로 촛불문명, 촛불운동의 정수를 실현하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전-고시강행과 대격돌
  
  이명박 정부는 21일부로 배수진을 치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재협상은 물론이고 더 이상의 추가협상은 없으며 '여론의 추이'를 보아 장관고시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그 '여론의 추이'는 저항의 양과 질이다. 아마도 21일 밤의 촛불대오가 약했다면 고시는 즉각 강행되었을 것이다. 촛불대오는 여전히 튼튼하고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여당 입장에서 무한정 고시를 늦출수 없다. 그리고 고시강행 즉시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5300톤은 무차별 유통된다.
  
  한번의 대격돌은 불가피하며 여기서 노동운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고시강행시 총파업과 운송저지 투쟁'을 천명했으며 '매뉴얼'을 발표했다. 이 매뉴얼은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부두 및 창고봉쇄'로 요약된다.
  
  그동안의 '선언'과 '발표'가 이제 현실의 문제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피할 수 없는 격돌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은 국면돌파의 질을 담보하는 것이며 그간의 관성을 극복하고 '21세기형 노동운동'으로 스스로 도약하는가 아니면 고립과 답보를 면치 못하는가 하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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