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국내 조선업계는 잇따라 수주를 성공시키면서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유독 영도조선소를 운영하는 한진중공업만 햇수로 3년째 수주에 실패하면서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휩싸여 있다. 조선소뿐 아니라 그에 연계된 하청업체 노동자와 가족들의 생계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 지역 경제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깊다.
2009년 말부터 시작된 구조조정 갈등이 또 한 번 해를 넘겼다. 급기야 6일에는 부산 노동운동의 산증인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랐다. 2003년 당시 김주익 한진중공업노조 지회장이 12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 목을 매 숨졌던 그 크레인이다. 끈질기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사측과 정리해고만은 안된다는 노조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영도의 겨울은 유난히 더 춥다.
지난해 초 중단된 구조조정, 은근슬쩍 재개
ⓒ프레시안(김봉규) |
영도는 12만㎢의 면적에 약 16만 명이 거주해 제법 밀집도가 있는 편이다. 해안가를 따라 오밀조밀 붙어있는 조선소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영도 조선소 주위로 퍼진 영세 조선소들이다. 단지 중심에 있는 한진중공업 입구를 통과하자 수십 미터 높이의 선박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박 주위에는 3000톤까지 들 수 있는 대형 크레인이 서 있었지만 움직임은 뜸하다. 지난해 12월 17일 사측의 400명 정리해고안에 반발해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날은 원래 사측이 희망퇴직인원을 제외한 약 350여 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통보하기로 한 날이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노조와 야당, 시민단체까지 나서 우려를 표하면서 4일 오후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통보는 연기됐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안도하긴 이르다. 가깝게는 2009년 말부터 시작된 사측의 구조조정 의지는 지속적이면서도 단호하다.
2009년 말부터 생산인력 700명의 정리해고를 놓고 대립하던 한진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2월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반대로 흘렀다. 설계부문이 분사하면서 290여 명의 인력이 줄었다. 울산조선소도 문을 닫아 160여 명의 노동자가 영도조선소로 이직했다. 부분 휴업에 따른 작업수당 축소 등 구조조정 분위기가 꾸준히 형성됐다. 노조도 부분 파업으로 맞서면서 사측이 정리해고 계획을 통보할 즈음에는 조합원의 임금이 5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 상태였다.
최우영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은 사측의 이러한 태도를 "조합원들이 구조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면대결보다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조여 스스로 퇴직을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속셈이란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 접수된 희망퇴직 인원은 50명도 채 되지 않아 정리해고 규모인 400명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사측이 내세우는 정리해고의 명분과 처리 방식에 납득하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최 사무장은 "수주 경쟁력을 위해 정리해고를 한다는데 그게 왜 400명이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며 "시설 현대화 등 경쟁력 재고를 위한 방안도 하나도 없으면서 덮어놓고 사람부터 자르려 하니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해다. 이 때문에 노사간 공방은 경영 위기의 근거인 '2년간 수주 제로(0)'에 대한 진실 공방으로 흘러가고 있다.(☞관련 기사: 한진重 노사, '정리해고' 놓고 진실공방)
"나이 오십이 넘어 찬 시멘트 바닥에서 구호 외쳐야 하나"
영도조선소의 일반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불안함을 넘어 착잡하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 위로금을 들고 미리 조선소를 떠난 이도, 이곳에 남아 저항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길게는 30년 가까이 삶의 터전이 됐던 조선소를 떠난다는데 대한 회한과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 탓이다.
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모여있는 생활관에서 문영복(52), 박무학(54) 조합원을 만났다. 문 씨는 1985년, 박 씨는 1988년에 각각 입사해 근무기간이 20년을 넘겼다. 이야기 도중 지난달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회사를 나왔던 박진봉(57) 씨가 합류했다. "개인 공구를 반납하지 않으면 퇴직금에서 제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왔다"고 하자 조합원들이 "동생들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해야지"하며 너스레를 떤다.
이들은 사측이 구조조정을 통보하기 직전인 2009년 말에 '후행처리파트 2직'이라는 팀으로 처음 만났다. 문영복 씨는 수십 년간 관리직으로 일하다 생산직으로 돌려졌고, 박무학 씨는 울산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폐쇄되는 바람에 차로 2시간이 걸리는 영도로 왔다. 제각각 모인 12명의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얼마되지 않아 구조조정을 통보했다. 1년 내내 압박에 시달리다 3명이 지난달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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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도 2년 밖에 안남아 구조조정 1순위인데다, 개인적으로도 (정리해고 철회가) 가망이 없어보여서 12월 24일날 희망퇴직을 신청했어요. 나가라고 할 때 나가면 좀 더 챙길 수 있을까 싶었고, 내가 비켜주면 동생들이 좀 더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나가고 나서도 흘러가는 상황을 보니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무학 씨가 "형님이 떠나는 날 회식자리에서 다 같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고 거들었다. "남겨진 '동생'들의 미래가 불안해서 울고, 동생들은 형님을 못 지켜드렸다는 죄책감"에 울었다고 한다.
"총파업이 시작되고 조선소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갔는데 동료 하나가 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 울고 있더라고요. 조선소를 35년 동안 다니면서 일만 열심히 하면 잘 살 줄 알았데요. 정리해고 같은 일도 남의 회사 일인 줄만 알고. 그런데 나이 오십이 넘어서 찬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쳐야 하는 신세가 되니 너무 허망해서 눈물이 나온다고 하데요."
그들은 스스로를 '쟁이'라 부른다. 비하하는 말이 아니라 조선소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기술과 노하우를 갖춘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자부심도 있고 배 만드는 일에 애착도 강한 만큼 사측의 구조조정이 원망스러운 마음도 강하다.
"회사에 혼과 몸 다 쏟아 부으면서 살았어요. 이제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 받으며 나와야할 사람들에게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금은 우리가 쓸 수 있는 물건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필요 없으니 내다 버리는 식이잖아요. 마치 산업폐기물 처리하는 것처럼"
▲ 사측이 지난달 실시한 희망퇴직 접수에 모여든 인원은 정리해고 규모인 400명에 크게 못미치는 50여 명에 불과했다. ⓒ프레시안(김봉규) |
"산자와 죽은자의 갈라치기, 쉽게 안될 것"
이들에게 사측이 정리해고를 고집하는 이유를 물었다. 박무학 씨는 "결국엔 영도조선소 근처의 작은 조선소처럼 정규직을 하청 노동자로 대체하고 싶은 것 아니겠냐"고 답했다. 수주 실패를 빌미로 생산직 인력을 감축한 후 수주가 들어오면 하청업체 노동자를 투입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 씨의 의견은 좀 더 복잡하다. "고령자들을 내보내 세대 교체를 하건, 하청 노동자를 늘리건 영남권 노동 운동의 중심인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란다. 2003년 정리해고 당시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 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부산 지역 노동 운동의 상징성이 강한 한진중공업 노조가 기업이나 정부 차원에서 달가울 리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그들의 휴대전화는 부지런히 울렸다. 혹시나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되었을까 우려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전화다. 문 씨는 "정리해고 명단 안 나왔다고 하는데도 부인이 '걱정시킬까봐 거짓말 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하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노조는 정리해고 명단이 통보되면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도 대비하고 있다.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조합원들이 월 50만 원씩 걷어 해고 대상자들의 생활비에 보태고 나머지는 투쟁기금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정리해고 논쟁이 오래 끌어온 만큼, 한 번의 해고 통보로 사태가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사측의 (산자와 죽은 자의) '갈라치기'가 쉽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조합원들은 구조조정 갈등의 원인을 건설부문 출신 회장과 임원이 장악한 경영권을 들기도 했다. 문 씨는 "예전에는 임원들이 조선부문에서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이들이라 노조와 일정한 공감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조선부문과 건설부문이 합병된 이후에 건설 출신 임원들이 들어오면서 조선업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못한 결정을 내려 작업 과정이 꼬이곤 했다"고 말한다.
구조조정의 근거로 내세우는 영도조선소의 경쟁력 논란 역시 '토건식 발상'이 작용했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박 씨는 "건설이야 가장 싸게 지을 수 있는 사업자가 선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조선에는 경험과 지식, 노하우도 중요하게 평가받는다"며 "선주도 경험많은 조선소에서 수주를 하면 믿음을 갖기 마련인데 회사는 돈 얘기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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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경영', 여론으로 바꿀 수 있을까?
조합원들의 답답함 만큼 이번 사태를 원만하게 풀 방도가 딱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노조와의 협상에서 정리해고에 대한 안건 만을 다루겠다는 사측의 입장이나 경영상의 문제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노조의 입장은 평행선을 긋고 있다. 부산 시민단체와 야당이 나서 부산시가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시는 요지부동이다.
노조가 정리해고에 맞서 들고 나올 '카드'가 딱히 없는 상황에서 기댈 건 여론이다. 이른바 이익을 위해 외국에 세워진 조선소에 집중하는 '먹튀 경영'론이 부산 여론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최 사무장은 "부산에서 점유율이 80~90%였던 '시원(C1)' 소주가 외국기업에 팔렸다 다시 롯데로 넘어오면서 점유율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시민들에게 '먹튀' 인상을 남기는 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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