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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지워도, '민의'는 부정하지 말아야 할 공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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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지워도, '민의'는 부정하지 말아야 할 공론화

[초록發光] 신규 원전의 되풀이 되는 공회전

한국 사회에서 공론조사라는 개념의 본격적인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여론조사라는 단순한 설문 형태의 인기투표에서 벗어나, 국민이 심사숙고해서 판단을 내리는 숙의민주주의를 일반인들에게 각인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2년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문재인 후보는 신예 정치인으로 참신한 바람을 일으키며 인기가 급상승했던 안철수 후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우리나라의 대통령으로서 적합한 자질을 갖춘 야당 후보를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공론조사가 제안됐다. 그렇지만 결론은 안철수 후보의 일방적 사퇴였으며, 이처럼 힘 빠지는 흥미롭지 못했던 단일화로 인해 당시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2017년 두 번째 대선에서 당선된 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론조사를 추진했다. 그해 안건은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재개였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을 대표하는 471명의 시민이 33일 동안의 숙의 과정뿐만 아니라 2박 3일의 합숙 토론을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론적으로는 59퍼센트의 시민들이 일시 중단된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며, 마찬가지로 과반이 넘는 53퍼센트가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공론조사를 도입한 이유는 원자력이라는 안건이 과학기술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도깊은 의사결정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는 46억 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며, 당시의 최종 결정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탈원전·탈석탄 공약을 에너지 전환으로 재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권이 두 번 교체된 2026년에 이재명 정부는 다시 한번 신규 원전 관련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2일에 공론화위원회를 출범했으며, 300명의 시민참여단이 또다시 2박 3일의 숙의 토론을 거쳐서 신규 원전의 건설 여부뿐만 아니라 원전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한다. 9년 전의 공론화와 정확히 동일한 안건을 다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같은 민주당 소속의 이재명 대통령이 전임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뒤집겠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론조사는 여론조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손바닥처럼 뒤집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부 보도자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사실 정부는 산하기관인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을 통해서 매년 국민들의 여론을 조사하고 있다. 즉, 원전에 대한 찬반 뿐만 아니라 향후의 원전 발전 비중에 대한 의견도 정기적으로 묻고 있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거의 일정하게 국민들은 원전을 찬성하는 의견이 높은 편이며, 원전 확대와 관련해서도 늘 반수 이상이 동의하는 편이었다. 만약에 정부가 국민의 단순한 선호를 반영해서 정책을 추진할 생각이라면, 지금도 공론조사 없이 여론조사를 근거로 진행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도 동일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원전건설을 재개했어도 그만이었다.

그렇지만 공론조사는 단순 여론조사가 아니다. 즉, 원자력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심사숙고하는 절차가 누락된 일회성의 설문조사가 아니라, 학습과 토론에 기반한 직접민주주의의 시민참여를 보완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바로 2012년의 공론조사가 이런 학습과 숙의과정을 거쳐서 진행된 국민들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동일한 안건으로 국민들이 자신의 판단을 부정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특히나 10월 2일 출범 당시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위원회 설립 목적은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참고하기 위한 것임이 명시돼 있다. 이때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년마다 수립되는 행정계획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 후반기에도 다시 한번 공론화를 진행해서 미래를 숙고해야 하며, 심지어는 이후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또다시 격년으로 공론화를 진행해야 한다. 10월 15일에 발표된 공론화의 대주제도 "우리는 앞으로 어떤 전기로 살 것인가"였지만, 미래의 전망을 2년마다 바꿀 수는 없다. 신규 원전은 수명이 60년에 달하기 때문에, 격년 계획으로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부분은 2012년 공론조사에서 471명의 시민 대표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미래이며, 이를 이재명 정부가 300명의 국민을 다시 선발해서 뒤집겠다는 것이다.

양당제가 고착화된 한국적 상황에서 새롭게 출범한 정부가 정권 교체와 더불어 과거의 정부와 차별화되려고 시도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전임 정부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으려는 노력이라면, 나쁘게 볼 필요도 없다. 다만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우리나라 국민들은 변함없이 이 땅에서 뿌리내린 채 살아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지워도 좋지만,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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