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뚜렷한 위기의 징후다. 지난 10일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열린 제6차 자살예방기본계획 공청회에서 보고된 바에 따르면, 작년 자살사망자 수는 1만3900명으로 하루 평균 38명이었다.
이는 그나마 코로나19 시기보다는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2020년 1월부터 2022년 말까지 한국의 자살사망자 수는 3만9267명으로, 코로나 사망자 수 전체(3만5605명)보다 많았다고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근간 <죽고 싶은 사람, 살리고 싶은 사람>(마름모 펴냄)에서 지적한다.
책 저자는 한국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 경험과 대비되는 높은 자살사망률을 보며 "암과 감염병에는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한국의 공중보건 정책이 왜 자살 문제에서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코로나19 시기 우리는 국민적 협력으로 성과를 냈지만, 자살예방에서는 계획은 있지만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조기발견도, 추적도, 지속적인 지원도 어렵다"며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 절망에 빠진 자살 시도자를 위해서는 찾아가는 아웃리치(out-reach) 서비스가 핵심인데, 우리는 여전히 자살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일로 맡겨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은 '개인적'이지 않다. 세계보건기구는 자살에 대해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손실을 끼치는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규정한다. 저자는 자살을 코로나19같은 감염병 사태에 비유하며 "(자살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국가 차원의 예방 전략과 사회 안전망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특히 자살과 감염병은 "둘 다 '의학적 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보건·복지·교육정책이 결합한 다부문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 "자살은 병원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 보도나 주변인 자살 경험을 통해 '전염'되기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 교수는 또한 "감염병은 면역력이 약하거나 기저질환이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더 취약하고, 자살은 정신질환, 경제위기, 사회적 고립, 트라우마 등이 누적될수록 위험이 커진다"며 "결국 둘 다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공격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10일 열린 제6차 자살예방기본계획 공청회에서 강조된 바 중 하나는, 자살시도자가 주변이나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기까지 기다리는 이른바 '신청주의'에서 벗어나 사회가 자살 고위험군을 지속 관리하는 적극적 개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주제의식도 이와 같다. 백 교수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도움을 청할 힘마저 잃었을 때, 국가가 신청주의의 벽을 깨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이 자살예방"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사회의 현 제도상으로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 본인이나 가족이 위험을 방치하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필요한 경우 국가가 정신건강 평가를 받게 하고 입원을 결정할 수 있는 서구였다면", "일본처럼 보건소 공무원이 전문의를 대동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정신건강 평가를 진행할 권한만 있었어도" 달라질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례를 전하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자살을 막기 위해 한 모든 행동에 면책특권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미국 학교에서 "교사는 비자의(非自意) 응급입원을 신청할 권한이 있고, 교장은 부모를 소환할 수 있"으며, 자살 시도자를 의료기관으로 이송하고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경찰·소방·의료진에도 법적 권한과 면책특권이 부여된다.
한국은? 저자의 탄식대로다. "경찰과 교사, 의료진까지 법적 책임과 민원을 두려워하게 두고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한국사회에서 위기에 몰린 이들이 필요로 하는 행운의 덕목 중에는 "민원과 소송 위험 따위엔 끄떡없이 책임을 다하는 경찰, 소방, 사례관리자, 공무원을 만날 운", "열두 시간도 걸리는 장시간의 응급대응을 감당하는 헌신적인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을 만날 운", "부족한 인력에도 제 몸을 갈아넣어 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와 의료진을 만날 운"이 포함된다. 이를 더 이상 '운'의 영역에 두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청주의 탈피와 함께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은, 자살시도자들을 마지막 순간에 구할 수 있는 △일시적 충동 통제와 △경제적 위기의 유예, △물리적 자살 수단의 차단 등의 실효적 조치들이다. 저자는 이를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근본적인 변화와 더불어, 당장 삶의 끈을 놓으려는 이들이 '죽기 어려운 나라'를 만드는 촘촘한 사회 안전망"이라고 표현한다.
'죽기 어려운 나라'란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저자는 "자살예방학 및 공중보건학 분야에서 가장 강력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검증된 정책이 오히려 이 자살 수단을 통제하는 정책"이라며, 영국의 경우 과거 자살 수단으로 쓰이던 가정용 석탄가스를 천연가스로 교체하자 전체 자살률이 30%나 급감했다는 사례를 들었다.
놀랍게도 이 분야에서는 한국에서도 하나의 성공사례가 국제사회에 보고됐는데, 과거 농촌에서 자살의 수단이었던 고독성 제초제, 일명 농약에 대한 규제가 전체 노인자살률 감소로 나타난 것이다. WHO는 '수단 통제' 정책의 모범사례로 한국의 농약 규제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고 한다.
자살 수단을 차단하는 정책이 효과적인 이유는, 자살 시도자의 절반 이상은 갑작스럽고 강렬한 충동에 휩싸여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 충동은 15분 만에 급속히 상승해 평균 한 시간가량"이며, "재시도는 첫 시도 후 6개월 이내에 집중"된다.
'수단'이 아닌 '동기'의 통제 필요성도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다. 영국의 '숨쉬는 공간(Breathing Space)'이라는 일시적 채무유예제도는 최대 90일간 채권자 접촉, 이자·수수료 등 추심이나 강제집행을 중지하는 제도이다.
즉 절망에 빠진 사람이 충동적으로 농약이나 번개탄을 사는 순간, 채무의 압박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 '순간'을 넘기게 하는 것이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박현욱 2006 <아내가 결혼했다> 중)이라는 통찰과 일맥상통한다.
마찬가지로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 차단을 위해 연예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건에서 그 수단 등 모방·동일시를 유발할 수 있는 구체적 내용에 대한 보도를 통제하는 것도 실제 자살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고 책은 지적한다. 198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지하철 자살 사건이 급증하자 오스트리아 자살예방협회는 언론에 '지하철 자살을 절대 보도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보도가 중단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지하철 자살률은 80%나 감소했다는 사례가 제시됐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책임에 대한 성찰이 없을 수 없다. 저자는 "자살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며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 같은 착시를 준다"고 지적한다. 그는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부르는 순간 사회적 책임은 흐려진다"며 "이를 '막을 수 있는 죽음'으로 규정할 때 비로소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동반자살'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부모라도 자식의 생명을 결정할 권한은 없다. 자식이 동의한 적도 없다"며 "세이브더칠드런이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은 없다.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만 있을 뿐'이라고 밝힌 것처럼, 자살에 동의한 바 없는 어린 자녀를 살해한 후 자살하는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이자 범죄"라고 지적했다.
무차별 살해 사건 등 반인륜적 사건의 범죄자의 정신질환 병력을 보도하는 경우도 주의가 당부됐다. 저자는 영국에서 강간살인 혐의로 기소된 현직 경찰관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인한 형의 감경을 요청했지만 '우울증을 가진 경찰이 시민을 살해했다'는 보도는 없었다며 "당뇨를 가진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그 이유가 당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27년간 우울증 환자를 보았지만 살인범이 되거나 살인미수범이 된 경우는 단 한 명도 없었다"며 "물론 우울증이 공격성이나 폭력 범죄 위험을 다소 높일 수 있다는 연구가 있기는 하나, 대개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거나 감형 사유가 될 정도로 증상이 심했던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보고된다"고 했다.
한국사회의 자살예방 시스템은 더 보완될 여지가 크다. 코로나19 시기인 2022년부터 미국은 자살예방 핫라인 시스템을 도립했고 예산을 1조3000억 원이나 투입했다. 호주는 매년 900억 원을 투입한다. 한국의 정신응급의료센터 예산은 불과 연 3억 원이다.
자살예방기금을 신설하는 내용의 자살방지법이 작년 9월 김교흥·정점식 의원 대표발의와 무려 여야 의원 127인 연서로 발의됐으나 아직 통과되지는 못하고 있다. 저자는 정부가 반도체 추가세수로 신설하는 미래대응기금에도, 청년을 위한 예산이 있다면 응당 자살예방 관련 항목도 편성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본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 한국의 시스템은 이 사건을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종결 처리하지만 미국 등 다른 선진국은 "아동의 모든 사망에 대해 적극적 조사를 진행하는 '아동사망검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아동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사고사, 살인, 자살 등의 케이스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사망검토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저자는 강조한다.
한편 책의 후반부에는 자살예방을 위해 노력해온 인물들, 즉 '살리고 싶은 사람'들의 노력도 소개됐다. 마약 전과자가 망상에 사로잡혀 4세 아동을 살해한 대만의 비극적 사건에서, 피해자의 모친은 사회제도 개혁에 나서 결국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내며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마련, 통과시켰다. 이 법으로 인해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본인·가족·병원이 아닌 법원에 의해 비자발적 입원을 심사하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했다.
소셜미디어(SNS) 유해 콘텐츠에 노출된 14세 영국 소녀 몰리 러셀의 죽음은 그의 이름을 딴 몰리로즈재단의 온라인 자살피해 예방 운동으로 이어졌다. 몰리의 사망 5년만인 2022년 영국 법원 검시관은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으로 인한 자해"로 사망했다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은 온라인 빅테크 기업의 이용자 자살에 대한 책임을 명시한 최초 사례였다.
몰리로즈재단은 2023년 영국 의회가 빅테크의 유해 콘텐츠 책임을 명시한 '온라인안전법'을 제정하게 하는 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 제한'이며 '미국 기업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레아 공주 역할을 맡았던 배우 캐리 피셔는 양극성장애(조울증) 병력을 공개하며 정신질환이 숨겨야 할 일이 아님을 드러냈고, 톱스타 레이디 가가도 학창시절의 집단 괴롭힘과 소속사 관계자의 성폭행으로 PTSD에 시달린 경험을 자신의 노래 가사와 '본 디스 웨이' 재단 설립으로 승화시켰다. "비밀은 수치를 키운다." 레이디 가가가 전하는 메시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