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8일, 작전명 '장대한 분노'라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전쟁은 초기의 예상과는 달리 7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쟁의 장기화로 전략적 딜레마에 직면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에 이어 최근 또다시 한국에 파병을 요청했고 기간도 11월 말까지 파병해달라는 취지를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병 요청을 놓고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비대칭 동맹에 따른 파병 앓이를 겪으면서 국론 분열의 조짐마저 보인다.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없어야 한다. 파병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어떤 형태의 군사적 자산 투입도 삼가야 한다. 여기에서는 큰 틀에서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삼가야 하는 3대 불가론을 밝히고자 한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글로벌 책임 강국의 국가 목표와 불일치
첫째,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이재명 정부의 국가적 목표 및 대외정책 기조와 기본적으로 부합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통해 글로벌 책임 강국의 튼튼한 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 과거 대한민국은 강대국들의 이익이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오랫동안 변방의 역사와 식민지의 역사라는 아픈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경험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거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 우뚝 섰다. 이제 이재명 정부는 글로벌 책임 강국에 부합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과 국가상을 형성하고 이를 튼튼하고 확고하게 정립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글로벌 책임 강국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표출하고 국제 사회에 이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화, 공존, 자유, 민주주의라는 글로벌 책임 강국의 핵심적 가치를 확고하게 정립해야만 한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이재명 정부가 확립하고자 하는 글로벌 책임 강국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전통적으로 한국이 지향하고 쌓아왔던 평화 지향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과 국제적 평판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위험한 휘발성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이재명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인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국익 부재의 편의주의 외교로 탈색시킬 수 있어 대외정책 기조 근간을 위태롭게 하는 매우 위험한 정책적 선택이 될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으로 우리는 가스와 원유 공급의 안전한 수송로를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제 사회에 공헌하여 한국에 유익한 국제적 평판을 얻는 것도 아니다. 파병에 따른 국익이 있다면 동맹 협조와 강화라는 한국의 구체적 국익이 아닌 동맹이익에 불과할 뿐이다.
글로벌 책임 강국의 기반을 확립하고자 하는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 이번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의를 계기로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상황에 따른 기회주의와 편의주의와는 엄격하게 구분되고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 행동의 모든 영역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진보적 변화를 중시하는 실용주의 철학을 반영한 실용 외교는 정책목표와 수단 간의 조화를 중시하면서 국익의 무한정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쟁은 이재명 정부의 국가적 목표와 대외정책 기조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 다시 태어난 대한민국은 강대국의 억압과 압박에 순응적으로 대할 정도로 비굴하지 않은 자존을 지켜나가야 한다.
강대국과 전략적 자율성의 시대, 동맹 의무는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
호르무즈 해협 파병 불가의 두 번째 이유는 변화된 국제정세에 따른 동맹 의무의 변화와 전략적 자율성에서 연유한다.
혼란과 혼돈, 그리고 각자도생이라는 오늘날의 국제정세는 강대국 정치가 위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중견강국의 전략적 자율성이 중첩적으로 작동하는 강대국과 전략적 자율성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이란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동맹의 의무와 협조의 모습은 전통적인 동맹 강화와 공고화가 아니라 저무는 동맹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동맹 자체의 소멸이나 해체가 아니라 동맹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인 집단 방위라는 약속과 의무가 회원국의 자동 개입이 아닌 상황과 여건에 따른 선택적 의무 사항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질서의 부담을 짊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안보는 준수에 대한 조건부 보상이 되어버렸고, 동맹 의무는 항구적인 제도적 약속의 필수 사항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군사적 얽힘 현상의 상징이었던 동맹의 의무도 선택과 거래의 대상으로 변했다. 동맹의 의무가 선택 사항으로 변해가는 상황은 역설적으로 동맹 회원국의 전략적 자율성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취임 이후 동맹에 대해 가치보다 거래적 접근과 상황에 따른 선택적 의무이행과 지원의 자세를 보여 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14일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나토의 유럽 동맹국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에 군함 파견을 요청했었다.
동맹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3월 16일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캐나다 7개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란전쟁에 참여하거나 무력으로 해협을 개방하는 군사 작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 작전 참여 요청을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데에는 이번 전쟁의 위법성, 즉 국제법 위반과 예방적 선제공격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변화된 국제 질서의 성격과 동맹에 대한 미국의 거래적 접근과 중견 강국들의 전략적 자율성에 따른 정책적 선택이었다. 나토의 유럽 동맹국들은 이미 전략적 자율성 문제를 전략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정책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이란전쟁을 통해 드러난 동맹 의무의 실상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국익에 부합하는 동맹 관리 전략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출발점은 먼저 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 심리를 우리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동맹에 대한 안보 의존 심리를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는 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에 따른 파병 앓이를 주기적으로 겪어야만 할 것이다. 협조의 내용과 상관없이 동맹 강화가 곧 국익이라는 무조건적 동맹 추종에서 벗어나 구체적 국익에 부합하는 동맹 관리 능력을 키워나가야만 한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의를 계기로 우리는 동맹에 대한 의존 심리를 극복하고 안보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반전의 기회를 찾아 나가야 한다.
불법적인 전쟁에의 파병은 국익 증대가 아니라 심각한 국격 손실 초래
호르무즈 해협 파병 불가의 세 번째 이유는 이란전쟁의 법적 지위와 전쟁 참여의 정치적 명분 부재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쟁 초기부터 전쟁목적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자주 연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과 불명확한 전쟁목적은 분명 전쟁의 장기화에 일조했지만, 더 중요한 건 이란전쟁이 국제법과 미국 국내법 모두를 위반한 불법 침략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란전쟁은 유엔헌장 제2조 4항의 무력행사 금지 원칙은 물론, 1949년 제네바 협약과 1998년 로마 규정이 금지한 민간인 고의 살해 및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이러한 불법적 이란전쟁에의 파병은 우리의 헌법 정신과도 맞지 않고 파병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전쟁의 불법성과 파병의 정치적 정당성 부재를 차치하더라도 또 다른 우려는 파병국에 대한 이란의 강력한 대응 의지의 표출이다. 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이란은 이번 전쟁을 미국에 의한 명백한 불법·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절체절명의 국가적 생존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전쟁에 임하는 이란의 전쟁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고 미국을 지원하는 세력이나 국가에 대한 대응과 보복도 강력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6개월 간의 전쟁 과정에서 보여준 이란의 전쟁 범위의 확전과 그로 인해 미군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중동의 주요 국가들은 군사적 타격과 경제적 피해를 봤다. 특히, 세계적 관광지이자 금융 업무로 유명해 안전이 보장되었다고 여겨졌던 주요 중동 지역 국가들의 국제적 이미지와 평판은 이번 전쟁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다.
자국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불법·침략 전쟁으로 규정한 이란의 대응 수준은 예측과 평가가 어렵다. 하물며, 이번 전쟁을 계기로 호르무즈 통제·관리권을 확보하고 이를 관철코자 하는 이란의 향후 행보는 미국의 지원 국가들에 대해 어떠한 보복 카드를 행사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파병의 정치적 정당성을 떠나 안전하고 원활한 원유 수송로 확보 차원에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적 자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한국의 명분은 평화 지향이라는 한국의 국제적 평판 손실을 떠나 전후 이란의 동일한 대응과 보복 논리로 한국이 원유 수송로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는 치명적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면서 묘수의 대응책을 마련코자 하는 이재명 정부의 신중한 자세를 지원하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논의가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진가를 발휘하는 결과로 매듭짓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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