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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혐오에 항우울제 달고 사는 청년 여성들 "다들 똑같이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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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혐오에 항우울제 달고 사는 청년 여성들 "다들 똑같이 않나요?"

[프레시안 books]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의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이대녀. 성평등과 여성 안전 등 젠더 의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향을 지닌 20대 여성을 칭하는 용어다. 다른 말로는 이여자(20대 + 여자)라고도 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보수성향이 강한 20대 남성을 일컫는 '이대남'과 대척점으로 '이대녀'를 끌어들인다.

20대 여성을 일컫는 말 중에는 '이대녀' 보다 좀더 의미가 확장된 MZ세대도 존재한다. 이전 세대와 달리 조직과 자신을 분리하고 ‘워라벨’을 지키는 2030 세대를 일컫는다.

의문도 든다.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여성들은 모두 같은 환경과 조건, 그리고 성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이러한 특정어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2030 여성들을 빠짐없이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세대 내에도 부모의 능력과 교육, 성별, 태어난 지역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고 이는 불평등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저 '어떤 동질성'이 같은 세대라고 치부하며 그들을 특정 개념, 내지는 세대론으로 묶는다. 이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자칫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은폐 내지는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 여성 노동자. ⓒ프레시안(허환주)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2030 여성들의 현실적인 이야기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청년 여성노동자 20명을 만난 뒤 쓴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아를 펴냄)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다. 노동건강연대라는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비정규직과 산업재해 피해자 등에 천착해 온 저자는 'MZ세대'라는 세대론 안에서, '이대녀'라는 멸칭 안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2030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책으로 옮겼다.

특히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그간 2030 여성들에게서 다뤄지지 않았던 '사회초년병', '아르바이트', '직장내괴롭힘', '산업재해' 등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다룬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러면서 일터에서 최대한의 노동력을 싼값에 뽑아내기 위해 삭제된 청춘을 살아가는 삶을 이야기한다.

편혜영의 소설 <포도밭 묘지>를 연상케 하지만 다른 점은 이 소설과 다른 점은 실재라는 점이다. (저자가 <프레시안>에서 진행한 ‘MZ 여성 그리고 빈곤’이라는 연재가 이 책의 바탕이 되었다.)

저자는 자신이 만난 2030 여성들을 두고 "임금은 낮았고, 정규직이 거의 없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계약직, 특수고용 노동자, 기간제 노동자, 일용직 노동자, 가짜 3.3 계약을 한 프리랜서였다"라며 "이들 중에는 돈이 떨어져 물만 마시다가 한강 다리 위에 서봤다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여성으로서 겪는 회사에서의 차별도 심각했다. 물건을 만드는 곳이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든 청년 여성들은 일다운 일을 하지 않는다는 폭언을 듣거나 그런 대우를 받고 있었다. 기술직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사장에게 한약을 날라야 했고, 부서에서 제일 오래 일한 직원이었지만 '여자들은 잘해주면 그만둔다'는 편견 때문에 평사원 이름표를 떼지 못한 이도 있었다.

이런 일련의 모습들은 상황과 조건만 달라졌을 뿐, 과거 1960~1980년대 '여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은 21세기 공장 순례기 같은 것이다. 21세기의 공장은 카페이거나 콜센터, 도로 위 오토바이이거나 24시간 패스트푸드 매장이다. 20세기의 공장에서 10대, 20대 여성 노동자들이 잠을 쫓기 위해 타이밍이라는 각성제를 먹어가며 미싱을 밟았다면 21세기의 청년 여성들은 고카페인 에너지드링크를 먹으면서 야간 알바를 한다. 20세기의 여공들이 풀빵 값을 아껴가며 오빠의 학비를 대고 농촌의 부모를 부양했다면 21세기 공장의 여성들은 각자도생을 강요받으며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일한다. 21세기의 여공들이 야학에서 사회의식을 키우고 노동운동의 덕목을 배웠다면 21세기의 여공들은 자기 계발 압박에 쫓기다가 자기 착취의 전장으로 내몰린다."

▲ <아무도 나를 몰랐지만> ⓒ아를

'이대녀'로 통칭되던 2030 여성들의 '민낯'

저자는 가난에 등 떠밀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30 여성들이 당하는 산업재해에도 주목한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 산업재해는 제조업이나 건설업에서 일하는 남성들만 조명받은 게 사실이었다.

2023년 기준 여성 산업재해 인정자 3만4000여 명 중 2만7000여 명인 약 77.6%가 '기타의 산업'으로 분류돼 있다. 즉 대다수 여성들이 고용노동부 분류 항목에도 없는 직군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그렇게 이름 모를 곳에서 일하다 다친 여성들이 어떤 상황과 과정에서 일했는지를 면밀히 살펴본다.

두 사람 몫의 일을 하느라 입사 초기에 무릎 연골판이 찢어진 강아지 유치원 교사 수진은 참고 참다가 수술을 받겠다고 원장에게 말하지만 '수술을 미룰 수 없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결국 수진은 수술을 받고 회복도 못 한 채로 다시 출근해야 했다.

강도 높은 업무와 반복되는 야근으로 몸에 이상 신호가 오기 시작한 소영은 팀장에게 아프다고 하자 '나도 아파'라는 답을 듣기도 했다. 콜 센터에서 일하는 유진은 팔꿈치 터널중후군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단 이틀만 누워있다가 출근했다. 기본급 200만 원에 붙는 인센티브 40만 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들에게는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이로 인해 더 크게 아파했고 우울해 했다. 저자는 이들 2030 여성들이 젊고 어리다는,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들어야 했던 폭언과 혐오 표현도 담담하게 옮겨놓았다.

"여자한테 기술은 필요 없다. on/off만 알면 된다", "저거 기죽여야 돼. 옛날 같았으면 재떨이 던졌을 텐데", "대학을 안 나와서 그런가 일이 느리네", "니가 뭔데? 함부로 나대지 마", "네가 따박따박 말하는 게 너무 싫어"

저자는 "반복되는 육체노동과 여성을 향한 모멸과 혐오 문화 때문에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달고 사는 청년 여성들은 '다들 저랑 똑같이 않겠어요?'라고 반문하면서도 자신만의 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며 "아이스크림 카페 아르바이트, 공공도서관 계약직, 신문사 인턴, 콜센터 직원, 스포츠센터 강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강아지 유치원 교사, 현장실습생 등으로 일한 그들에게 직장의 복지나 사회 안전망에 대한 기대는 그림의 떡 같은 것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책을 읽다 보면, 현재의 일터에서 사라지고 소멸 되는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던 'MZ세대', '이대녀'로 통칭되던 2030 여성들의 '민낯'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에 국한된 이야기이거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힘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에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저항의 방법 중 하나다. 이 책은 그런 저항의 기록이다. 약한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곧 힘이기 때문이다."(작가의 들어가는 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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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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