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라는 구면의 시뮬레이션
<보물섬> 과 <해저 이만리>와 같은 해양모험담은 가슴을 들뜨게 만든다. 지표면 위에서 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공간을 평면으로 착각하지만, 배에 올라탄 순간부터는 행성의 구면 위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평면은 수직과 수평으로 구획지어지지만, 구면은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는 좌표계다. 바다로 나가는 순간 국경과 영토의 구분은 사라지고, 부력과 바람에 의지한 채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는 감각에 사로잡힌다. 수평선 너머 나타난 해안선에 희열을 느끼는 것은 진화에 포섭되지 않은 모험심의 근거다. 위성과 지도로 지구의 모든 장소가 밝혀진 오늘날, 이런 열망이 채워질 수 있을까? 구글어스와 위성사진으로는 불가능하다. 영화나 TV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면으로만 바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라 명명된 15세기에는 직접 범선을 타고 나아갈 수 있었고,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의 그림자 속에서도 모험심이 구면을 따라 횡단했다. 대양 항해의 지도그리기에서 우리가 낭만을 취할 수 있다면, 그나마 비슷하게 시뮬레이션 된 좌표로 이뤄진 게임 속 공간에서일 것이다.
물론 게임에서도 대양의 로망스를 구현하는 건 쉽지 않다. 코에이의 전설적인 시리즈 <대항해시대> 외에는 사실상 전무하다.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터부 때문에 서구는 이 시대를 낭만적으로 그리길 머뭇거리지만 일본 버블경제의 끄트머리를 솟구쳐 나온 대양 항해 시뮬레이션은 게이머를 평면에서 구면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꿈을 품은 채 대양으로 나아가는 주인공들, 지구의 모든 공간을 항행할 수 있는 자유, 지도를 그려나가는 여정, 원양 무역과 해적 깃발, 보물과 유적 발굴까지. 90년대 이 시리즈를 즐긴 동아시아 게이머들은 비트로 된 구면의 공간을 탐험하는 감각에 노스탤지어를 가지고 있다.
대만의 인디 개발사가 2023년에 개발한 <세일링 에라>는 <대항해 시대 4> 이후 20여 년 가까이 끊긴 항해 게임의 복각판이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의 정체성은 정확히 '복각'이다. 새로운 시도, 독창적인 디자인보다는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충실했다. 그러나 2020년대 새로운 지정학적 국면은 게임의 복각을 넘어서 자유의 새로운 의미들을 창출하는 데 조응한다.
2. 항행의 자유가 끝난 시대, 표류하는 세계체제의 좌표
대항해시대를 포함해 <세일링에라>를 플레이하다보면 지구 구면의 감각에 이전보다 훨씬 익숙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가 얼마나 중요한 바다인지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 게임의 리뷰들 중 상당수가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게임을 플레이하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내용이다. 배를 몰고 해협과 대양을 항행하면서 풍랑을 만나고, 무역을 하는 경험은 지구를 비로소 구체로 매핑, 메르카토프 도법으로 지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한 모험가의 시점은 곧 항법사, 선장의 시점으로 바뀌고, 해안선이 밝혀짐에 따라 무역과 자본의 관점으로 바뀌며, 지도가 완전히 다 밝혀진 이후에는 세계패권과 제국의 시점으로 옮겨간다. 더 빠른 거리를, 더 많은 재화를 싣고 이동하는 도법에 익숙해 지면 플레이어는 왜 프랑스가 그토록 수에즈운하 건설에 집착했는지, 미국이 파나마를 독립시켰는지 이해하게 된다.
<세일링 에라>는 복각에 가깝기 때문에 대항해시대 시리즈의 모든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적절히 배치했다.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의 항해 서사는 2와 4를, 그리고 탐험과 유적발굴은 3를 참조했고 전투만 <네이비필드> 같은 실시간 포격 운용을 도입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존인물이 등장해 업적을 세우는 3, 항로 및 무역 경쟁을 하는 4 등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과감히 배제했다. 굴곡과 돌출부를 제거하고, 플레이어가 느긋하게 모험에 집중하도록 매커닉을 매우 완만하게 다듬은 이 게임은 지구 바다의 완전히 다른 측면들을 비로소 조망하게 해 준다. 즉 바다를 둘러싼 문명의 흥망성쇠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에게해에서 문명을 꽃피운 그리스와 흑해-카스피해에 걸쳐진 페르시아의 부흥, 북아프리카 이집트, 로마를 아우르는 지중해 패권, 이탈리아 연안 도시국가들의 부흥과 르네상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의 대서양 헤게모니, 북해의 한자동맹, 지브롤터와 영불해협에서 사활을 걸었던 네덜란드-영국의 패권, 그리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이르기까지. 바다에 해양물리력을 투사해 상품과 폭력을 통제할 수 있던 모든 국가는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현재 지구 문명의 스탠다드는 '항행의 자유'를 통해 전 세계에 자유무역을 강요할 수 있는 미국의 페트로-달러 체제라는 현실을 응시하게 된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순수한 해양 모험물이자, '항행의 자유'를 만끽하는 게임이었다. 반면 2020년대 복각된 <세일링 에라>의 플레이 경험은 항행의 자유가 아니라 위협받는 바다, 그리고 접근이 거부되고 있는 해안선이다. 똑같은 시스템과 요소들이 심플하게 재배치되었을 뿐인데도 그렇다. 게임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 세계체제가 변했다. '팍스 아메리카나'도 끝나고, 자유무역과 세계화도 끝났다.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이란의 신정 정권이 미국 패권을 흔들고 있음을, 그리고 미국이 스스로 자유무역체제를 폐기한 뒤 자해하듯 동맹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본다. 미국의 국가부채와 무역적자가 임계점에 달해 신용등급마저 조정될 위기에 있고,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 염가에 상품을 구매하고 대미 수출 국가들이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채우던 옛 질서의 문법이 통하지 않는 것도 목격하는 중이다.
<세일링 에라>는 주인공의 항해를 방해하는 세력이나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항행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한다. 그것은 선박이 자유롭게 이동할 자유가 아니다. 선박 위에 실린 상품, 노동력(노예), 그리고 화폐(금융), 자원이 이동할 수 있는 자유이고, 17세기에 네덜란드 법학자인 그로티우스가 주장했듯 독점될 수 없는 시장으로서의 바다이기도 하다. 우리는 바다를 통해 독점이 자본주의를 오히려 파멸시킨다는 확신을 얻는다.
게임 속에서는 실제로 호르무즈가 등장할 뿐 아니라 조선의 한양·부산도 등장한다. 게임의 공식 스토리에는 없지만 일본 주인공 편을 한양으로 해서 전개하다 보면, 예컨대 말라카 해협이 동북아시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면 한양에서 인삼을 싣고 출발한 함선은 아주 먼 거리를 빙 둘러서 가야한다. 또 미디어와 정치판에서 그토록 입질을 넣고 있는 북극항로 개척이 그닥 효용이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한양에서 상품을 가득 싣고 북극항로로 항해해 봤자 북극항로에는 상품을 내리고 다시 실을 항구가 거의 없다(거리는 짧아지지만, 기껏 한양에서 노르웨이에 도착해서 뭘 사고 판다는 것인가?). 지브롤터를 돌아 지중해로 가게 되면 수에즈 항로에 비해 큰 메리트도 없다. 게임은 15-16세기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호르무즈가 큰 영향력이 있진 않지만, 지도그리기로 드러난 아라비아-페르시아 일대 산유국들의 해안선을 보면 이 좁은 해협을 틀어막는 것만으로도 세계 에너지 안보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음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게임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변한 것은 세계체제의 시공간이다. 그로 인해 게임플레이 방식과 플레이 경험까지 바뀌는 건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체제의 좌표계가 곧 게임 속 경험의 좌표에 앞설 수도 있고, 구면의 공간을 적절한 도법으로 설계한다면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그가 속한 현실의 지정학적 측면들을 냉철하게 시뮬레이션 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미국이 최강의 세계경찰도 아니고, 세계화 및 자유무역도 끝난 야만의 바다, 다극 체제가 된 바다의 평면 위에 놓여지는 건 기물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신체이기도 하다.
3. 그럼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대양의 민주주의
항행의 자유가 사라진 시대에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는 대양 시뮬레이션 게임을 플레이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대항해가 불가능한 시대를 맞이했다. 유라시아의 바다는 러-우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의 폭주, 그리고 중국의 팽창으로 인해 완전히 조각나 버린 상태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해군력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말라카해협과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한국과 일본은 컨테이너선을 움직일 항로를 다각화해야만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미국은 부채 부담을 만회하려고 동맹국에 관세를 부여하고 있으며, 대서양과 태평양의 결속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차단하고자 국운을 걸고 일대일로를 펼치는 중이며, 러시아는 EU의 지중해 영향력을 위축시켜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스테일메이트에 직면했다. 전 지구적으로 바다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위협받고 있는 시기다. <세일링 에라>의 메인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언더독으로서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장악된 바다를(혹은 권력을) 되찾거나 혹은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서사로 나아간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대항해의 모험담을 남성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만, 게임 속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은 남성만큼(혹은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바다를 횡단하는 통치자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처음 플레이하게 되는 포르투갈의 항해사 앤드류에게 배와 자금을 후원하며 측량사로 동승하는 여성 조이스 드 프리츠, 한자동맹의 북해 헤게모니를 뚫고 대상이 되는 피오나, 정화의 아프리카 원정 항로를 쫓아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무역로를 구축하는 중국 여성 윤무 뿐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구속을 벗어던지고 대양 위의 항행과 자유에 일조한다. 또한 수많은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이 지중해를 인간 문화의 기원처럼 그리지만 <세일링 에라>는 남중국해와 인도차이나의 군도, 아라비아해의 비중이 지중해만큼 중요하며, 민주주의의 본산을 카리브해로 위치시킨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인데, 각 파트별 서사는 지역을 막론하고 유럽 국가의 권력구성체들(스페인, 포르투갈, 동인도회사 등)을 억압의 대명사로 그리는 반면 카리브해를 실존했던 인물 검은수염을 포함해 체제에서 탈주한 해적들이 해적 민주주의를 지상에까지 실험하는 공간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당시 해적들은 전리품 분배, 선상 위의 질서, 전투 교리에 이르기까지 활동의 모든 측면들을 투표를 기반으로 하는 공정하게 분배하는 '해적 민주주의' 라는 규약을 공유했는데, 본래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등의 거창한 사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에 따르면, 해적들의 암묵적인 해상 규약은 생존 전략을 넘어서 공통의 삶의 양식으로 실천되기도 했다. '마다가스카르'는 아라비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노예무역의 거점이었지만 동시에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이 스스로 이미지한 민주주의를 지상에서 실천하는 아나키즘적 실험장으로서도 기능했으며, 이는 국경과 영토가 강제하는 권력 질서에 강력한 안티테제로 작동했다. 유럽에서 무기와 노예를 싣고 온 식민주의자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바다 바깥으로 배척되었지만, 해적들은 중요한 바다 거점 지역에서 현지화되고, 공동체에 흡수되거나 스스로 재구성했으며, 분쟁을 해결하고 이익을 중재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데이비드 그레이버, 『해적 계몽주의』, 고병권, 한디디 옮김, 천년의상상, 2025). 이는 계몽주의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을 뒤엎고 바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그것도 천재 학자들이 아닌 평범한 뱃사람으로부터 바텀업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업(Strike) 또한 공장과 술집이 아닌 바다 위에서 기원했다. <대항해시대>나 <세일링에라>에서는 선술집에서 선원들을 모집하게 되어 있지만, 사실 선원 모집은 그보다 훨씬 야만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야한 범선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항구로 돌아오는 사람보다 더 많았기에, 누구도 푼돈을 받고 열악한 선상노동을 선뜻 하려 들지 않았다. 선원 모집은 주로 납치나 유배, 그리고 지상에서 죄지은 사람들(혹은 추방자들)이 내몰리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들은 최초로 조직적으로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이 되었다(마커스 레디커, 『대서양의 무법자』, 박지순 옮김, 갈무리, 2021.).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밥 먹듯이 벌어진 선상 반란에서 선원들은 돛을 내리는(Struck) 전술로 물류와 자본주의를 멈춰세웠다. 이것이 부두 노동자들로 그리고 공장노동자들로 전승되면서 노동조합과 파업이 생겨났고, 오늘날에는 헌법에 명시된 집회 결사의 자유의 토대가 되었다. 물론 게임 속에서는 선상반란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선상 반란을 전제로 한 긴장관계는 아주 낭만적으로 암시된다. 태생부터 해적인 주인공 압둘라나 카리브해에서 맞딱뜨리는 대해적 검은수염의 에피소드는 해적들의 민주주의가 야만적인 약탈공동체가 아니라 규약을 지켜내고 낭만화시키기 위한 전술임을 보여주는데, 플레이어는 이들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게임에 참여하거나 혹은 동료로 영입하는 프로세스에서 '해적 민주주의'의 낭만성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테크노파시즘과 극우정치가 부상하고, 미국 중심 세계체제가 몰락하는 오늘날, 바다 위의 로망스를 펼쳐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일링 에라>는 과거의 바다 모험담을 답슥하고 있지만, 평면 위의 민주주의가 아닌 구면 위의 아나키즘이 더 나은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아주 고전적인 문법으로 짜여져 있지만 100시간 넘게 바다를 헤매도록 만드는 마력은 고전적일 뿐 아니라 현대 지정학의 메르카토프법을 다시 등재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별 것 아닌 것 같은 게임은 항해를 통해 플레이어의 세계 지도를 바꿔놓을 뿐 아니라 지도를 읽고 그리는 감각까지 바꿔놓는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려야 하는 지도는 허울 뿐이었던 세계화나 MAGA가 아니라, 전 지구의 조각난 바다를 방황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민주적 감각은 아닐까? 육지에서 길을 잃은 대신 바다 위에서 항로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자유가 종이 위에 그려내는 정교한 도법이라서가 아니라 항구적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항해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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