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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아래, 일하는 사람이 있다

[노동자 휴게실에 찾아간 학생들] ⑦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서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청년학생 공대위)다. 청년학생 공대위는 8월 18일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자마자 '대학이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릴레이 성명서를 통해 담았다.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려는 학생들은 계속 움직인다.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매주 청년학생 공대위 학생들이 각 학교 노동자들의 휴게실에 방문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써내려간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들의 휴식 환경과 단순히 면적이나 온도 수치를 통해 지정한 휴게공간이 아닌, 학생들의 눈을 통해 보는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글로 담는다. (필자)

환상에 불과한 '모범사례'

2018년 동국대에서는 약 다섯 달에 걸친 청소노동자 투쟁이 있었다. 대학 측에서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8명을 충원하지 않고 근로 장학생으로 대체하려 했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인력 충원을 요구하자 학교는 되려 근로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답했고, 갈등은 커졌다. 결국 파업, 삭발, 삼보일배, 단식 등 투쟁이 진행되고 나서야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

2019년 2월, 동국대학교는 용역업체에 소속되어있던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 형태로 전환하였다. 학교는 청소노동자의 정년을 최대 만 71세까지 보장하고, 복리후생을 교직원과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노사협의를 통해 임금 및 근로조건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하기로 약속했다. 사립대학이 청소노동자를 대규모로 직접 고용한 일이 거의 없었던 만큼, 동국대의 노사 합의 결과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세간에 알려진 이야기와 전혀 달랐다. 투쟁의 결과로 노동조건이 일부 개선되기는 했지만, 4년 만에 찾아간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은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정년 감축,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등 노동조건이 거꾸로 악화된 측면도 있다. '모범사례'라는 수식어는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

▲ 계단 바로 아래 위치한 법학관 1층의 청소노동자 휴게실, 출입문이 캐비닛과 화분으로 가려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계단 아래, 일하는 사람이 있다

법학관 1층, 수많은 학생이 오르내리는 철제 계단 아래에는 세 명의 청소노동자가 사용하는 휴게 공간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 실제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출입문이 커다란 캐비닛과 화분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휴게실 앞 길목은 얼핏 봐도 매우 비좁다. 그 때문에 출입문을 여닫는 간단한 동작도 매우 불편했다. 간신히 문을 열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지만 내부 환경은 더욱 열악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낮은 천장이다. 수그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은 층고에 시야 윗부분이 턱 막혔다. 천장에는 계단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장애물이 돌출되어 있었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머리를 부딪히기 일쑤였다. 이처럼 공간이 협소하고 들쭉날쭉하다 보니 전등 빛이 골고루 들지 않았다. 같은 공간인데도 어둡고 습한 곳과 밝은 곳이 공존했다.

▲ 사람이 허리를 펴고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의 낮은 천장. 수그리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낮은 층고에 시야 윗부분이 턱 막힌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계단 아래 위치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바닥이 좁아서 냉장고가 현관 바깥에 위태롭게 걸쳐 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계단 밑 휴게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소음이었다. 학생들이 층계를 오르내릴 때마다 철제 계단 특유의 시끄러운 소리와 진동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소음은 그치지 않았고, 때로는 바로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대화를 멈춰야 했다. 출입문에 붙여놓은 '미화원 휴게실' 명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계단 아래 위치한 휴게실의 구조상, 창문과 환풍구 같은 기본적인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나마 놓여있던 작은 공기청정기는 너무 노후화돼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환기를 위해서는 문을 열어놓는 수밖에 없는데, 가장 깊은 곳까지는 공기가 순환되지 않았다. 공간에 머무르는 청소노동자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정도였다.

"(환기가 안 돼서) 여기 문을 이렇게 항상 열어놔요. 문을 열어놔도 이 구석에 있으면 속에서 막 천불이 나. 그러니까 안쪽으로 못 들어가고 나와 있는 거야. 잠깐 다리 뻗고 좀 누워 있으려면 저기 가서 누워야 하는데 막 속에서 천불이 나서 못 있어요. 답답해서."

가장 어둡고 낮은 곳,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나.

경영관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2층에 있다. 외부로부터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내부가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했다. 창문과 환기 시설, 식수 시설과 같은 기본적인 설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하 휴게실을 이용하는 청소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비상구가 없다는 것이다. 휴게실에 머무르는 중에 화재와 같은 비상 상황이 일어나면 대피하기가 어렵다. 청소노동자들은 두 개 층의 계단을 오른 후에야 비로소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

"가장 위험한 건 화재예요. 나갈 데가 없으니까. 여기서 불이 났다고 하면 어디로 나가. 우리는 여기 그냥 가만히 갇혀 있는 거야. 비상구가 없어요."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휴게실 벽 너머에 폐수처리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폐수처리장은 복도 측면에 있는 문 하나만 열면 바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 가뜩이나 환기도 되지 않는데, 퀴퀴한 냄새가 복도를 타고 들어와 코를 찔렀다. 교내 식당 '그루터기'가 운영될 때는 악취가 더욱 심해져 참기 힘들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하수구에서 벌레가 끊임없이 날아들어 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근무 환경이다.

▲ 경영관 지하 2층에 위치한 휴게실 모습. 법학관 휴게실과 마찬가지로 계단 밑에 있어 천장이 낮고, 전등 빛이 닿지 않는 안쪽 공간은 어둡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노동자를 외면하는 사용자

휴게실의 내부 비품은 모두 누렇게 빛이 바래있었다. 알고 보니, 휴게실에 있는 설비들은 학교에서 마련해준 것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이 자체적으로 모은 것이었다. 

탁자부터 전자레인지, 냉장고, 밥솥, 공기청정기 등 모두 교내에서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것을 주워서 사용하고 있다. 주로 퇴직하는 교수님들의 물건을 허락받고 가져왔다.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학교가 나설 법도 하지만, 어림도 없다. 학교에서 에어컨을 설치해주지 않아서 외부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은 것이 올해의 일이다.

"학교에서는 (우리한테) 전혀 관심이 없어요. 여기 (비품들) 둘러봐. 학교에서 해준 건 이 에어컨 말고는 없어요. 우리들끼리 공유해가면서 쓰지, 학교에서는 전혀 신경을 안 써. 조금만 학교에서 신경을 쓰면 그렇게 돈 많이 안 들이고도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 경영관 지하 휴게실 내부 모습.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사용하는 비품은 버려진 물건을 주워다 모은 것이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학교에서 한 번도 안 나왔어. 점검 같은 게 어디 있어. 고장이 나서 신고하면 올까나. 2년 전에 관리자가 한 번 오긴 왔었지. (고장이 났다고 말해도) 다녀가면 그걸로 끝나."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용노동부의 휴게시설 설치 의무화 제도에 따르면, 모든 사업장은 근로자가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파, 의자, 탁자 등의 가구와 냉장고, 냉온풍기, 정수기 등의 생활가전제품을 비치해야 하며, 담당자를 지정해 매달 관리 및 점검을 실시해야 한다.

청소노동자 직접 고용에 따라, 학교는 사용자로서 법적 의무를 진다. 그러나 학교의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은 방치됐다. 아울러 휴게실의 물품을 마련하는 일도, 고장이 나면 수리하는 일도 모두 청소노동자들의 몫으로 지워졌다. 중요한 점은, 특정한 몇 개 휴게실만 열악한 게 아니라 대부분의 휴게실이 사람이 쉴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노사 관계의 당사자인 학교가 철저히 제삼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춰진 공간, 보이지 않는 사람들

청소노동자 휴게 공간이 가지고 있는 중추적인 문제는 대체로 '계단 밑'과 '지하'라는 휴게 공간의 위치에서 기인한다. 왜 하필 이런 곳에 휴게실을 만든 것일까?

"지금은 나아졌지만, 옛날에는 어디 가면 그림자 취급받았어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일해라, 사람 보이는 데서 일하지 말라 그러고. 그런 식으로 대접을 많이 받았대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이렇게 대접받아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지."

오래전부터 청소노동은 전문성이 없고, 비위생적이라는 편견에 덧씌워졌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청소노동자들에게 눈에 띄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지금도 청소노동자는 스스로 건물 내에서 학생이나 교수와 같은 다른 학내 구성원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건물 내부에서도 눈길 한번 닿지 않는 가장 깊숙한 곳에 배치한 것도 동일한 이유다.

▲휴게실 벽면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들이 출력되어 붙어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일 뿐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동국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 이전에는 학교 측에서 점심시간에만 휴게실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그 당시 청소노동자가 근무 도중에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뿐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여전히 학생들을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이용하는 게 조심스럽다고 한다. 명목상으로는 휴게실 이외에도 샤워실, 화장실, 빈 강의실 등을 쓸 수 있게 되어있지만, 실제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과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다.

청소노동자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배제되면서 비가시화되었다. 역설적으로 청소노동자들이 학내 구성원의 시야에서 멀어질수록 무관심과 단절은 더욱 심화된다. 부조리한 굴레가 반복되면서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은 요원해진다.

청소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를 모색하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학교 측이 사용자의 책임을 방기하는 와중에도 행정기관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관료주의적 타성에 기대어 노동자 탄압을 사실상 묵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령 벌금을 문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행정처분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학교 측에서는 아주 적은 수준의 과태료만을 부담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법과 제도에 의지하는 것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경영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는 학생들이 어버이날에 선물한 카네이션이 있다. ⓒ동국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경영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의 한쪽 벽면에는 붉은 카네이션 두 송이가 꽂혀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 청소노동자 투쟁이 일어나자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찾아와 선물해 준 것이다. 그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아직도 당시의 투쟁을 지지해준 동국대학교 학생들에게 고마움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때는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편들어주면 참 힘이 났어. 학교 측에서도 꼼짝 못 해. 학교는 학생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하는 거잖아. 학생들이 말하는 게 우리가 이야기하는 거랑 달라.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듣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학생들을 믿고 (투쟁을) 했던 거지"

청소노동자분들이 해주신 말씀을 듣고, 어쩌면 노학연대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동문제는 일차적으로 개별 노동자의 삶과 직결되어 있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 역시 어느 시점이 되면 한 명의 노동자로 거듭날 테니 말이다. 미래의 노동자라는 잠재성은 노학연대를 일방향적이고 시혜적인 차원의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연합 관계로 만들어 주는 데 일조한다.

실제로 동국대학교는 노동자와 학생이 연대를 이뤄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해낸 경험이 있다. 비록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지만, 투쟁의 결과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었다.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학생들, 아울러 일반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아주 느리게, 조금씩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래 알갱이처럼 사소한 변화일지라도 지속해서 쌓이고 축적되면 커다란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은 환상에 불과한 ‘모범 사례’라는 수식어와 조응하는 현실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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