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서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청년학생 공대위)다. 청년학생 공대위는 8월 18일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자마자 '대학이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릴레이 성명서를 통해 담았다.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려는 학생들은 계속 움직인다.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매주 청년학생 공대위 학생들이 각 학교 노동자들의 휴게실에 방문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써내려간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들의 휴식 환경과 단순히 면적이나 온도 수치를 통해 지정한 휴게공간이 아닌, 학생들의 눈을 통해 보는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글로 담는다. (필자)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투쟁
작년 11월부터 숙명여자대학교 청소, 경비 노동자들은 생활임금 쟁취, 휴게실 개선 및 샤워실 설치를 요구안으로 투쟁하고 있다. 놀랍게도 정작 책임이 있는 학교보다 학생들이 먼저 이 투쟁에 입을 열었다. 학생인 우리가 투쟁에 연대하고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학내노동자 학생연대 TF팀'을 꾸린 지도 4개월이 되었지만, 진짜 사용자인 학교는 답이 없다.
지난 8월, 한 기자가 '청소노동자 휴게실'에 대해 보낸 질문에 대한 학교 측의 답변은 노동자들의 입장과 너무나도 상이했다. 학교 측은 휴게실에 관련한 노동자들의 개선 요구를 그 어느 것 하나 들어준 적 없음에도 언론에는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준 것처럼 전달했다. 가령, 화장실 옆에 위치한 휴게실의 악취 문제에 대해, 학교 측은 '휴게실 악취에 대한 항의 혹은 민원이 접수된 적이 없었다'라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직접 노동자들을 만나 휴게실을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숙명여대에서 직접 생활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직접 그 공방의 실상이 무엇인지 파헤치기로 했다. 지난주 수요일, 우리는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개선이 필요한 그들의 휴게공간에 방문했다.
노동자의 쉴 권리는 어디에
명신관에 있는 휴게실은 10명의 청소노동자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좁은 곳이었다. 직접 눈으로 본 휴게실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휴식을 위해 몸을 누이면 팔다리를 뻗기도 불편했다. 10명의 노동자가 모두 자리에 누우면 좁은 면적 탓에 이동할 수 없어 화장실에 갈 수도 없는 정도였다.
에어컨은 노후하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냉장고 역시 오래되어 성능이 떨어졌다. 오래된 싱크대의 수도꼭지에서는 녹물이 흘러나왔다. 옷을 갈아입을 공간조차 마땅하지 않은 이 휴게실에는 당연히 창문이 없어 환기도 어려웠다.
좁고 낙후된 휴게공간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학교는 개선에 대한 내용은 없이 2명의 명신관 노동자들에게 2캠퍼스 창업센터의 휴게실을 이용하라는 통보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1캠퍼스인 명신관에서 2캠퍼스까지 이동하는 데 최소 10분 이상이 소요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가 노동자들의 쉴 권리에 얼마나 무심한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명신관 휴게실에서는 아직도 10명의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좁은 휴게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명신관은 강의실도 많고 수업을 듣는 학생 수도 많은 곳이었다. 그만큼 학교 건물 중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학생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동아리방을 청소노동자들에게 제공하여 층마다 간이 분리수거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동아리방에 쓰레기를 모아두고, 오전 10시에 올라와서 분리수거를 하는 식으로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소 노동자들은 커다랗고 무거운 쓰레기를 들고 층마다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2020년도부터 학교는 합당한 이유 없이 2층을 제외한 각 층의 간이 분리수거 공간을 없앴다. 결국 노동자들은 아침 시간마다 무거운 쓰레기통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불필요한 수고를 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많이 이동하는 시간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조차 없어 계단으로 무거운 쓰레기통을 오르고 내려야 했다. 폐쇄된 간이 분리수거 공간은 문까지 떼어버려 휴식 공간으로도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마땅한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지하에 위치한 순헌관 휴게실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언제 고장난지도 확실하지 않은 냉장고, 냉방 효과 없는 에어컨은 물론이고, 창문도 하나 없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휴게실 내부에서는 악취가 나고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몇 년 전 학생회가 제공한 작은 공기청정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휴게실 공간이 좁고 열악해 편하게 몸을 눕는 것조차 어려웠다. 벽에 붙어 있는 테이프는 쥐가 출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붙여놓았다고 하였다. 싱크대의 수도는 탱크의 물을 끌어다 쓰는 탓에 식수로 이용할 수 없었다.
계단 아래에 위치한 과학관 휴게실에서는 6명의 청소노동자가 생활하고 있었다. 방문한 휴게실 중 가장 좁고 열악한 휴게공간이었다. 위치상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음 때문에 제대로 된 휴식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공간 한가운데 기둥이 세워져 있어 더욱 협소하게 느껴졌고, 비가 많이 오면 천장에서는 물이 샜다. 빗물이 기둥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양푼으로 물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각종 비싼 실험 기구들이 가득한 과학관에서 정작 그 건물을 쓸고 닦는 노동자들은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실상은 학교 학생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광경이었다.
학교의 책임회피, 그 뒤에 남겨진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
휴게실을 개선해달라는 요구에 여전히 불통인 것은 차치하고, 현재 숙명여자대학교에는 노동자들이 노동 도중에 잠깐씩 휴식을 취할 의자 하나조차 없는 상황이다. 근무 중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근무지를 벗어나면 사진을 찍고 보고하여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있어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제대로 된 휴식 시간조차 보장하지 않는 학교 측에서는 '용역 계약상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느냐'며 노동자들의 의무만을 강조하는 상황이었다.
학교는 학내 노동자들의 요구를 진정으로 들어준 적이 없었다. 학교 입장에서 청소 노동자들은 간접고용된 노동자이므로 용역 측에 책임을 전가하며, 학내 노동자들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휴게실 악취 문제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미 청소노동자들이 악취 문제를 총무구매팀에 요구한 바 있으나 학교는 악취 문제가 접수된 적이 없다며 거짓으로 일관하였다.
지난 8월 18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따라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었다. 대학 내 노조는 학교 측에 '25일까지 공공운수 노동조합에 휴게실 점검 실태 및 개선 사항에 대해서 답변을 달라'라는 공문을 보냈다. 많은 학교에서 각 학교의 용역업체를 통해 휴게실 개선 계획안을 전달했다. 그러나 숙명여대의 용역업체는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고, 원청인 학교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중이다.
심지어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전 총장의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기실, 혹은 각 층의 화장실 구석에 있던 간이 휴게 공간들마저 사라졌다. 미관상 보기 꺼려지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학교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깨끗하고 쾌적한 건물 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노동자들의 휴게공간이 있다. 청소경비 노동자들을 학교 내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학교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보다 노동자 투쟁에서 더 배우는 점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을 구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을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권리를 쟁취해가는 과정에 학생들이 끝까지 함께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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