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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의 온전한 쉼터를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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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의 온전한 쉼터를 고대하며

[노동자 휴게실에 찾아간 학생들] ④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 앞장서는 학생들이 있다.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청년학생 공대위)다. 청년학생 공대위는 8월 18일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시행되자마자 '대학이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개선하라'는 목소리를 릴레이 성명서를 통해 담았다.

노동자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려는 학생들은 계속 움직인다. 서울대학교를 시작으로 매주 청년학생 공대위 학생들이 각 학교 노동자들의 휴게실에 방문한다. 학생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써내려간 대학 청소·경비·주차·시설 노동자들의 휴식 환경과 단순히 면적이나 온도 수치를 통해 지정한 휴게공간이 아닌, 학생들의 눈을 통해 보는 '휴게공간'의 문제점을 글로 담는다. (필자)

고려대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은 작년 11월부터 시작됐다. 11월부터 3월 초까지 약 12차례 집단 교섭을 시도했고, 조정위원회를 통해 조정도 시도했다. 사측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학교는 보통 11월이면 다음 연도 예산안에 임금을 정해두기에 임금 인상에 소극적이다. 또한 학교로부터 돈을 받는 입장인 하청업체도 마음대로 임금을 올려줄 수 없기에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협상에 진척이 없자 지난 3월 14일부터 노동자들은 빨간 조끼를 입었다.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전이었다. 이후 3월 30일부터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고, 매일같이 아침 피켓시위와 중식집회를 진행했다. 7월 6일부터 23일간 진행된 본관점거 농성과 7월 28일 요구안을 일부 수용한 잠정 합의에 이르기까지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가 노동조합 투쟁에 함께했다.

직접 확인한 휴게시설의 실상

투쟁의 열기와 뜨거운 여름볕이 조금은 잠잠해진 9월, 생활도서관 운영위원들은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의 서재순 분회장님을 만나 투쟁의 과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분회장과 함께 학교의 휴게공간을 찾아갔다.

수년에 걸쳐 이루어졌을 투쟁과 요구를 통해, 학교는 휴게시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최근 경영대학 본관 지하에 위치한 여자 휴게실 3곳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기도 했다. 점차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곳들이 많다는 것을 휴게실을 방문하면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 국제관 1층에 위치한 휴게실. 노동자들은 개수대가 없어 불편을 겪고 있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 국제관 1층에 위치한 휴게실 벽에는 금이 가있는 등 안락한 쉼터가 되기에는 거리가 먼 부분들이 많았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국제관 1층과 학생회관 5층에 위치한 휴게시설의 주요한 문제는 개수대였다. 청소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시간은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적어도 한 끼니는 학교의 휴게실에서 해결하게 되는데, 휴게시설 내에 개수대가 없어 이들은 설거지를 하려면 화장실로 가야 한다. 취식을 위해 휴게시설과 떨어진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번거로운 문제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점도 노동자들이 토로하는 불편함이었다.

여기에 더해 3~5명이 쓴다기엔 협소해 보이는 공간, 금이 간 것이 한눈에 보이는 벽 등 안락한 쉼을 위한 공간과는 거리가 먼 부분들이 많았다.

지상 휴게실과 지하 휴게실의 간극도 컸다. 국제관 지하 2층의 휴게실은 앞에 설명한 지상 휴게실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원래 주차장이었던 공간을 학교가 창고로 활용하게 되면서 그 공간의 일부를 노동자 휴게실로 마련했다. 환기가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났고, 배수관을 타고 쥐나 벌레가 나타난다.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노래진 냉장고와 금이 간 벽, 어두컴컴한 조명, 그리고 사비를 털어 새로 깔았다는 노란 장판이 휴게시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휴게실을 찾아갔을 때 휴식을 취하고 계셨던 노동자가 누차 했던 말은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요"였다. "이 정도면"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투쟁을 거치셨을지, 그 수많은 투쟁을 거쳐 나온 휴게실의 상황이 '이 정도'라는 사실에 기분이 착잡했다.

학교는 누군가에겐 배움의 공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노동의 공간이다. 그리고 배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노트북과 책을 들고 지나다니는 복도의 한쪽 구석에, 그리고 그중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건물 지하에서 잠시 고무장갑과 청소도구를 놓고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마주했다.

▲ 국제관 지하 2층 주차장을 개조한 창고 옆 휴게실. ⓒ고려대 생활도서관

▲ 지하 2층 휴게실 내부. 사비로 마련한 장판과 쌓여있는 짐들이 보인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노동자를 외면하는 학교 구조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과 노조의 투쟁으로 휴게시설이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학교 곳곳에는 청소노동자의 어려움이 방치되어있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건물마다 청소노동자들의 고용형태와 하청업체가 조금씩 달라 노동자 모두가 하나의 노동조합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공학관 같은 곳은 아직도 개선이 안 되고 있어요. 노동조합이 없다 보니까 목소리를 크게 못 내요."

앞서 국제관과 학생회관의 휴게실을 소개해주던 분회장은 노조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휴게시설은 훨씬 더 열악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개수대가 없어 화장실에 가야하고, 주차장으로 쓰였던 각종 벌레들이 출몰하는 그 어두컴컴한 공간보다 더 열악하다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청소노동자들에게도 투쟁은 힘겹고 지치는 일이다. 하지만 "목숨 걸고" 싸우지 않으면 단 몇백 원의 시급 인상도, 안락한 휴게시설의 설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생계와 노동환경이 위협받기에 미화원들은 매년 빨간 조끼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학교가 총장과 교수, 직원을 위주로 운영된다는 것이었다. 예산 편성부터 전반적인 운영까지 그 외의 다른 구성원들은 부차적으로 고려된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고려 대상의 가장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온 것이다. 청소노동자들에게 온전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보다 사람답게 일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은 학교의 책임이다. 학교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고려대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피하지 않고 행동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이 없으면 저희 청소노동자도 없어요."

더욱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필요하다. 학생이 없다면 교내 노동자도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교내 노동자가 없다면 학생도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고가 있기에 학생들 또한 '특별히 불편함 없는' 캠퍼스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펜을 쥐느냐 고무장갑을 끼느냐가 아니라, 모두가 학교를 이루는 동등한 일원이란 사실이다.

"연대에 힘을 주셔야 해요. 연대가 없으면 사람 취급을 해주지 않아요."

앞서 언급했듯, 여전히 보완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약간의 개선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연대의 힘이 컸다. 지난 고려대 투쟁이 추진력을 얻고 학교와의 합의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는 여러 단체의 주목을 받으며 연대의 불씨를 되살렸다. 

연세대에서는 노동자 투쟁 관련 공대위가 살아나고, 고대 내부의 투쟁에도 타대생들이 다수 참여하는 등 학생들을 중심으로 노동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는 학생들이 알아서 모이더라'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여러 언론사에서 교내 노동자 투쟁을 다루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함께 해주는 게 저희에게는 엄청난 힘이 돼요. 학교에서는 우리가 아니라 학생들을 주시하거든요."

노동자들의 쉴 권리, 그리고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지켜내는 첫 걸음은 학교를 오고 가는 학생들이 그들의 투쟁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광장에 모여 요구안을 외치는 이유는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이 바뀌지 않고서는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학교 계단을 오르내리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우리의 일상 뒤에는 누군가의 생계가, 그리고 삶을 건 투쟁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 지난 3월부터 본관 점거 농성 전까지 진행된 중식집회에서 빨간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고려대 생활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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