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박정희가 주도하고 김종필 등이 참여한 5.16 쿠데타는 우리 사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그들이 쿠데타 직후 곧바로 착수한 일은 지방 의회와 국회의 강제 해산이었다. 쿠데타 3일 전인 5월 13일 강원도 인제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초선 김대중 의원은 초단기 의원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이후 30년간 지방자치가 중단됐다. 1990년 10월 8일 김대중은 지방자치제 부활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했고, 1995년에 자치단체장 직선제가 도입됐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 민중의당 소속 30세 청년이 훗날 국회의장이 되는 민정당 거물 신인 박희태에 맞서 경남 남해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다 떨어졌다. 그는 곧 지방자치의 시대가 올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김대중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 첫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37세의 청년은 남해군수에 당선된다.
김두관(59)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김포시갑) 이야기다. 지역주의의 소용돌이 속, 그는 경남에서 고독하게 '민주당'의 가치를 이어가려 분투해 왔다. 평생 지역주의에 맞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행정자치부장관에 파격 발탁한다. 그러나 화려함은 잠시 뿐, 그는 '어렵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경남에 내려갔고, 2006년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패배를 맛본다. 2010년 무소속으로 경남도지사에 당선됐지만, 2012년 대선에 섣불리 출마하면서 다시 한번 좌절을 겪어야 했다. 공석이 된 지사직을 홍준표 전 대표가 차지하면서 경남도민과 범 민주계열 인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2012년 대선 경선에서는 당시 문재인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김두관 의원은 이것을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1995년 남해군수에 당선된 지 21년 만인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김포시갑에 출마해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파란만장한 삶이다.
25일, 지방자치 27년의 산 증인인 그를 만났다. 시대가 조금 달라진 상황에서다. 지역주의가 깨진 것이다. 한국 지방자치제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성을 지닌 그에게서 이번 지방선거의 의의를 들었다. 그는 여태까지의 지방선거를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 풀뿌리 민주주의 1기로 본다면, 이번 선거는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2기의 시작이라고 평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의 성공을 위해, 또한 민주당의 성공을 위해 그는 '싱크탱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앙당의 싱크탱크(민주연구원)가 각 시도에 분원을 만들어, 지방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경남지사직 사퇴와 이후 대선 경선에서 ‘반문’, '비문'으로 분류되던 시절에 관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정치적 실수였다. 김 의원은 경남도지사 사퇴로 홍준표에게 도정을 넘겨줘야 했던 일에 대해 괴로움을 겪어왔다. 그리고 고토를 회복한 김경수 지사에게 "고맙다"고 했다.
갈등은 잊었다.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와 달라고 했다. 그때 문 대통령이 "돌아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김 의원은 "내가 가출을 심하게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정치 2막이다. 중진급 초선인 김 의원은 조심스럽게 차기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의향을 내비쳤다.
박세열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진행한 김 지사와의 인터뷰 전문을 요약했다.
"나 같은 이력 사람 더 나와야"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부터 이야기해 보자.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지만 선거 기간 내내 경남권역 지원 유세에 많이 갔다. 부산·울산·경남은 이번 선거 더불어민주당 압승의 진원지다. 2018년 처음으로 부산시장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고, 보수 정당 일당 독재 체제였던 부산기초의회 16곳 중 4곳에서만 여야 동수 의회를 허용했다. 나머지 전부는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부산시의회 47석 중 41석을 차지, 압도적 과반을 확보했다. 16곳 중 13곳의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압승을 거뒀다. 울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이겼다. 시장직과 기초단체장직을 싹쓸이했고, 시의회 22개 의석 중 17석을 거머쥐었다. 경남 18개 시·군 중 창원시, 고성군, 김해시, 통영시, 거제시, 양산시, 남해군 등 7곳에서 승리했다. 이들 지역 중 인구 100만 이상의 창원시와 김해시, 양산시는 경남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다. 승리가 지닌 상징성이 있다. 실제 가보니 분위기가 어땠나?
김두관 : 당시 상황을 전하기에 앞서, 지역에서 저를 많이 부른 배경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나라 기초광역의회에서 처음 투표를 실시한 때가 1991년이다. 지역 살림을 총괄하는 행정책임자를 처음 뽑은 때는 1995년이다(제1회 지방선거, 이 선거에서 김 의원은 남해군수에 당선됨). 의회 역사로 치면 27년, 살림살이로는 23년인데, 이 중간점을 잡아 올해를 '지방자치 25년'으로 거론하는 배경이다.
이 기간 나처럼 지방선거 밑바닥에서 출발해 고위직까지 오른 인물이 흔치 않다. 난 이장에서 시작해 군수, 경남도지사를 거쳤고, 중앙부처에서는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지냈다. 풀뿌리 자치부터 전국 지방행정을 총괄하는 중앙직까지 지냈다. 이번 선거에서 날 찾은 이가 많은 이유라고 본다. 유달리 부울경 지역만 자주 찾은 게 아니다. 강원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각 지역의 온갖 도시를 돌았다. 전남에서는 하루 일정으로 8곳이 잡히기도 했다. 특히 울산에는 송철호 당선인과의 인연이 있어 더 자주 갔다. 송 당선인은 나처럼 고충처리위원장을 지냈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고문은 나와 같이 했다.
앞으로 나 같은 이력의 사람이 더 나와야 한다. 풀뿌리 정치의 밑바닥에서 출발해 더 큰 지역을 책임진 사람이 나와야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프레시안 :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잡았던 경남을 되찾아왔다. 그 전에 지사직을 지낸 김 의원이 여러 생각이 들 듯하다.
김두관 : 당선인이 아니라, 제가 김경수 지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제가 2010년에 경남도지사직에 당선됐음에도, 2012년 대선 경선에 참여하느라 도정을 비운 원죄가 있다. 그 때문에 후임자로 홍 전 대표가 와서 경남 도정이 파괴됐다. 김 당선인 덕분에 실지를 회복했다.
"지방선거 당선인 책임 막중"
프레시안 :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심이 강렬하게 반응했다. 그 결과, 선거지형도가 대거 재편됐다. 이번 선거에서 민심의 반응을 어떻게 보나?
김두관 : 그간 변하지 않은 기존 정치권을 향해 민심이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고 봐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좋은 후보를 많이 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선거는 기성 세력을 향한 심판이었다. 지난 10년 가까이 국정을 주도한 자유한국당이 권력으로 국정을 농단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것을 심판했다.
아울러, 이제 지역주의에 기대 편하게 정치하지 말라는 심판이기도 했다. 지역만 믿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정당을 향한 경고였다.
프레시안 : 이번 지방 선거에서 특히 경남권 선거 결과를 두고 지역주의 종언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이번 선거의 의의가 지역주의 해체라는 주장에 동의하나?
김두관 : 물론 지역주의를 극복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 그간 한국 정치를 가로막은 가장 큰 요인이 지역패권주의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정치 인생을 바쳤는데, 결코 쉽지 않았다. 제가 2010년 경남도지사직에 도전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며 출마를 권유했다. 당시 나는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사실상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 범야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등과도 긴밀하게 협력해 겨우 이겼다. 결국 열 번 찍어 지역주의라는 나무를 넘기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다시금 말하지만, 나는 새로운 나무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대선 경선에 참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같은 과거를 놓고 보면,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부울경 승리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공고해진 지역 주류 권력을 교체하는 진정한 서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불어민주당이 울산 전역과 부산 13개 구에서 승리했고, 경남 18개 시군 중 7곳을 가져갔다. 경남 대도시 중 진주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이번 선거의 의의를 지역주의 극복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종북, 반공으로 대표되는 안보 장사가 더는 유효하지 않음을 확인했다. 냉전, 대결의 한반도 국면이 화해와 협력, 평화와 번영으로 바뀌고 있다. 아예 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 정치가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게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건,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민선 25년은 지방자치의 태동기로 봐야 한다. 그간 우리 지방정치가 성숙하지 못해 인사 논란이 많았고, 지방 정부의 비리도 많았다. 그 점에서 이번에 출범하는 민선 7기는 지방자치 본격기의 첫 번째 선거다. 지방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인들이 길게는 50년, 100년을 총설계할 막중한 책임을 졌다.
프레시안 : 더불어민주당 시각으로는 선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당의 정치 독점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당 내에서도 오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이 나왔다.
김두관 : 중요하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어떤 당이든, 어떤 사람이든 선거에서 지지받은 후에는 결국 오만해지더라. 당장 2004년 열린우리당이 총선 압승 후, 국민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지 않았나. 지금과 딱 정반대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직후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라고 했다. 당선인들은 대통령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특히 여당은 이번 선거 결과가 '국민의 지지'가 아니라, '제대로 하라'는 표심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전국 17개 시도에 민주연구원 분원 세워야"
프레시안 : 지방정치 선배로서 당선인들에게 한 마디를 한다면?
김두관 : 겸손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국민을 섬겨서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지방 정치 책임자들도 대통령처럼 겸손해야 한다. 승리의 기쁨은 잠시고, 책임이 큰 자리다. 지역 당선인들이 의정 활동을 잘 하고, 지방 행정을 잘 할 수 있도록 시도당이 잘 뒷받침해야 한다.
프레시안 : 시도당 지원을 위해서는 중앙당의 역할도 큰데?
김두관 : 시도당이 실질적으로 분권형 정부를 운영할 수 있게끔 중앙당이 할 일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격인 민주연구원이 각 시도에 분원을 만들어, 실질적으로 지방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민주당 경남도당에 '단디연구소'가 있다. 지역 사투리로 '제대로 하라'는 뜻의 '단디하라'를 딴 명칭이다. 연구소가 나름 지방정책 뒷받침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중앙당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모든 일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민주연구소가 전국 17개 시도에 분원을 만들어야 한다. 분원이 지역에 맞는 연구정책 과제를 만들어, 지역 의원들, 행정가가 충분히 활동할 수 있게끔 지원해야 한다.
프레시안 : 정리하자면, '지방자치 본격기'의 서막인 이번 지방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중앙이 지역에 더 큰 역할을 맡겨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개헌 논란 당시 지방자치분권 정신을 헌법에 넣자는 이야기가 많았다.
김두관 : 우리가 흔히 '선진국에서는 지방자치가 잘 된다'고 착각한다. 아니다. '지방자치를 잘 하면 선진국이 된다'는 게 맞다. 자치 역량 축적의 결과로 선진국이 되지, 선진국이라서 자치를 잘 하는 게 아니다. 중앙의 권력을 지방에 계속 나누는 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전당대회 도전 의사 시사
프레시안 : 민주당 차기 대표를 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김 의원도 언론이 대표 경선에 나설 인물로 꼽는다. 출마할 생각인가?
김두관 : 아직 최종 결심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은 당원, 동료 의원들, 시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현 상황에서 민주당의 책무가 막중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고만 말하겠다. 물론 나만 당의 책무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보로 거론되는 분들 모두 지난 촛불혁명의 요구가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임을 알리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할 책임이 차기 당 지도부에 있다. 차기 지도부가 정부와도 잘 발맞춰야 하고, 한반도 평화 안착을 위해 국회가 해야 할 일도 잘 챙겨야 한다. 앞으로 북핵 폐기-한반도 평화 시간표에 따라 여러 일이 일어날텐데, 이를 제도나 법으로 뒷받침하고, 예산과 관련한 비준 동의 등을 국회가 잘 해야 한다. 야당을 설득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리더십도 차기 지도부에 중요한 자질이다.
뭐니뭐니 해도 국정의 핵심은 국방과 민생이다. 민생 관련 현안이 특히 많다. 국회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지방분권 시대를 잘 여는 것도 차기 당 지도부의 주된 역할이다.
프레시안 : 차기 당 대표 경선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읽히는데,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논란으로 인해 김두관을 사람들이 이른바 '친문'으로 보지는 않을 것 같다.
김두관 : 당시 일을 얘기하자면, 나는 경선에 나서는 후보는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게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게선거니까. 물론 캠프에서 지나치게 과격한 구호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같은 친노를 저격한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나는 지난해 대선 당시 문 후보 공동 선대위원장 겸 자치분권균형발전위원장을 지냈다. '반문'이 그런 일을 했을 리 있나.
당시 문 후보가 휴대전화로 연락하셨다. 선대위원장 수락 후 "돌아와서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 권양숙 여사를 만났을 때도 권 여사님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돌아와서 고맙다'고. 나는 2012년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상당수 사람들이 '김두관이 가출했다'고 생각을 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그런 부분을 털고 민주당을 위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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