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라이온즈 야구단 소속 선수들의 원정 도박 파문이 가을 야구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세 명의 선수가 거명되고 있는데 모두 스타급이다. 게다가 흔히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고 하는데 주전 투수들이 거액의 도박을 벌인 것이다. 한 기사에 따르면 폭력 조직과 연계된 마카오의 도박장에서 한 선수는 13억 원을 땄는데 협박을 당하다가 결국 받지도 못했고, 또 다른 선수는 10억 원을 잃었다고 한다. 수십억 도박판이었던 게다.
액수도 액수지만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건 야구 선수가 가족과 미국 여행 하다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잠깐 도박한 게 아니다. 선수들이 함께 무리지어 해외까지 건너가 폭력 조직과 연계된 거액의 도박을 한 것이다.
아무 말 없이 버티던 삼성 구단이 파문 닷새 만에 결국 사과하고 코리언(한국) 시리즈에 이들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당연하다. 만약 이들이 그라운드에 오른다고 생각해 보라. 한국 프로야구는 코미디가 되는 거다. '도박꾼의 제전'? '범죄자의 코리언 시리즈'?
코리언 시리즈, 더 재미있어졌다
삼성 구단의 전력 손실, 사기 저하 등을 걱정하고, 축제여야 할 코리언 시리즈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고 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올라서도 안 될 것이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다양한 긍정적 요인도 존재한다. 우선 삼성은 그 선수들이 없더라도 우승 전력인 것이 사실이다. 또 이러한 위기는 감독의 지도력, 고참 선수의 리더십, 팀 구성원의 응집력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한다.
감독과 선수들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도전이 되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삼성은 만약 우승을 못 하더라도 떳떳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한다면 더욱 박수를 받는 또 다른 드라마를 만들 것이다. 류중일 감독이면 그 두세 명이 없어도 충분히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 반면 상대 팀에게는 절대로 질 수 없는 승부가 될 것이다. 더 재미있어졌다.
프로 선수들의 도박 파문, 왜 끊이지 않는가?
당면 문제는 반복되는 프로 스포츠의 도박 파문이다.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는 선수뿐 아니라 감독까지 도박에 빠져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승부 조작은 물론 자신의 경기에까지 베팅을 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구별 없이 돌아가며 사고를 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럴까?
첫째, 최근 프로 농구에서 일어난 선수들의 도박 사건을 대하는 KBL과 구단들의 모호한 태도를 보자. 문제를 일으킨 선수에 대한 징계 수준과 관련하여 잔여 시즌 아웃 이야기가 나오자 소속 구단은 징계가 너무 지나치다고 반발한다고 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지난 2008년 프로 야구 선수들의 불법 인터넷 도박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문제가 된 선수는 무려 16명이었고 그중 13명이 삼성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은 결국 삼성 선수 한 명이 고작 출전 정지 5경기, 벌금 200만 원을 내는 것으로 끝났다. 사실상 휴가나 다름없다.
선수들이 사고를 쳐도 징계가 솜방망이니 선수들이 이러한 사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가 없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는 도박 문제에 단호해야 한다. 또 공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때 미국 스포츠에서 가장 골칫거리는 마약 문제였다. 1980년대 미국에서 NBA의 인기가 추락하던 시절 새로이 커미셔너가 된 데이비드 스턴은 선수들의 마약 문제에 단호하게, 또 공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극약 처방에 가까운 약물 정책을 도입했다. 선수들이 약물 복용을 시인하면 제재 조치 없이 리그가 최고 수준의 약물 치료를 제공하지만 불법적 약물 복용이 발각될 경우에는 리그에서 제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덕에 이후 미국 프로 스포츠에서 마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박, 진짜 이유는?
협회가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 외에 또 다른 문제는 당연히 선수들 자신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한국 스포츠의 오래된 못된 관행과 구단의 횡포와도 엮여 있다. 프로 선수와 감독까지 왜들 그렇게 도박 문제가 많을까. 이유가 있다. 이들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대부분 선수에게 여가란 오직 술이고 여자 친구뿐인데 또 상당수에겐 도박인 것이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특히 팀 종목의 경우 열악한 합숙소에 격리된 상태에서 운동 기계로 성장한다.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밤 12시까지 운동만 하는 고교 야구 팀은 널렸다. 또 매우 안타깝게도 이들은 운동선수가 아니면 친구도 없고 '알바' 한 번 못 해보고 성장한다. 게다가 감독과 선배의 욕설과 폭력에 휘둘리며 크는 것이다. 그러다 20대 나이에 갑자기 수십억 원의 돈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돼서도 비슷하다. 얼마 전엔 삼성 선수들이 '머리박기' 하고 있는 장면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도 했다. 작년 롯데자이언츠는 원정 경기 때 CCTV로 선수들을 감시하는 바람에 큰 파문이 일어 한참 시끄러웠다. 성인 선수조차 인권 유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해외 전지훈련을 가도 산중에 숙소를 잡아 외부와 격리시키려 들기도 한다. 과거 롯데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도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훈련 시간 외에는 선수들을 버스에 태워 시내에 나가 구경하다 들어오게 했다.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구단, 취미가 없는 선수들
이렇듯 전지훈련이나 원정 경기 때 선수들을 과도하게 통제하고 심지어는 숙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코치들이 로비를 지키는 사이 그렇다면 선수들은 방구석에서 무엇을 할까? 뻔하다. 인터넷만 하다가 지겨우면 고스톱을 치든지 불법 인터넷 도박을 하든지 그뿐이다. 과연 선수들 탓만 할 수 있을까.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풍운아 이상훈 투수를 알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자신의 밴드를 결성해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선수 시절 기타는 그에게 마음의 안식과 해방감을 줬다. 야구 외에는 주로 기타 연습을 했다. 그런데 그가 선수 시절 전지훈련이나 원정 경기 때 기타를 가지고 가니까 당시 이순철 LG 감독이 이를 못하게 했다. 이상훈이 LG에서 나가게 된 결정적 이유 중에 하나가 이로 인한 감독과의 불화였다.
사생활 침해 같은 거창한 이야기도 필요 없다. 한 개인의 취미 활동과 사적 시간까지 통제하는 한국 스포츠의 풍토는 정서적 '인간 말살'의 공간이다. 성인 선수조차 여가 활동의 자유가 박탈당한 채 통제된 가운데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선수들을 밖에 나가지 못 하게 하면 뭐하나. 방구석에서 모여 도박하는데.
한국 스포츠는 참 답이 없다. 선수들이 문제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지도자, 구단도 문제고,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학교도 문제고, 학부모도 문제고, 종합해 보면 '오직 성적'만 따지는 분위기가 문제인 것 같은데 사실은 대학 진학이 진짜 문제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미처 생각 못 했던 합숙이 모든 문제의 원흉 같기도 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강력한 징계와 예방 프로그램 병행해야
문제가 복잡하기만 한데 그렇다면 이번 삼성라이온즈 프로야구 선수들의 거액 원정 도박 파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간단하다. 만약 언론 보도가 전하는 도박의 행태와 액수가 사실로 판명된다면 엄중하고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 수준은 영구 퇴출이나 최소 한 시즌 출전 정지다. 해당 선수들이 징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선수들이 다시는 그런 시도를 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
아울러 데이비드 스턴이 NBA 선수들의 마약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시도한 방안을 참고해 KBO가 적극적, 그리고 공개적, 공세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번에도 대충 뭉개고 지나간다면 다음번 도박 파문은 이미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스포츠의 풍토가 바뀌었으면 한다. 오죽하면 '스포츠 4대 악'을 지목해 정부가 이를 근절하겠다고 나섰을까. 승부 조작·편파 판정, 폭력·성폭력, 입시 비리, 조직 사유화 등의 문제 때문에 어린 선수가 죽고 학부모가 자살하는, 이런 스포츠가 과연 필요한 것일까.
우리 스포츠계를 보면 무슨 마피아 같은 범죄 조직으로 보일 정도다. 이런 프로 스포츠는 필요 없다. '스포츠 4대 악'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스포츠 자체가 '사회악'이다. 우리에게 도대체 프로 스포츠를 가질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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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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