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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정책 공조, 한은 독립 물건너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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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정책 공조, 한은 독립 물건너가나

'남대문 출장소' 시절 되돌아오나

8일 오전 9시경,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이 소공동 한국은행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은 노조원들은 피케팅을 하며 맞섰으나 적극적으로 그의 진입을 막진 않았다. 법에 보장된 정부 측의 참석을 강제로 막긴 명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약 한 시간 후, 한은은 기준금리를 11개월째 2.0%로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8일 오전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 취재진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뉴시스

금통위 참석의 의미

일단 이날 금통위에서 허 차관이 실질적인 입김을 불어넣진 않았다는 게 중평이다. 실제 허 차관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열석발언권일 뿐"이라며 정책공조 차원으로만 봐달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역사상 단 네 번, 그것도 외환위기의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기간이었던 지난 1998~1999년 사이에만 정부의 열석발언권이 행사된 점을 감안하면 허 차관의 금통위 참석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의미는 강하다.

지난 경제위기를 거치며 정부와 한은은 뚜렷하게 기준금리에 대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지난해 하반기 들면서 이성태 한은 총재는 점차 기준금리 인상 방침을 강하게 드러내왔다. 그러나 윤증현 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정부 측은 이때마다 어김없이 "출구전략을 신중히 펴야 한다"는 입장을 국내외언론에 알려왔다.

허 차관 역시 기준금리 인상에 극히 부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금통위 하루 전인 지난 7일, 허 차관은 홍콩을 방문해 가진 'CNN 월드비즈 투데이' 인터뷰에서 "출구전략을 지나치게 빠르게 시행하는데 따른 위험이 늦게 추진할 때 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결국 허 차관의 참석은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정부의 의지를 한은에 보다 확실히 심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남대문 출장소' 시대 돌아오나

정부로서는 재정부 차관의 금통위 참석 정례화 방침이 각계의 반발을 불러올 것을 분명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방침을 발표한 날은 불과 금통위 하루 전이었다. 한은을 비롯해 어느 누구에게도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는 결국 "정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기준금리 인상을 막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키는데 효과를 거뒀다.

공동락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정부 발표 직후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로) 기준금리는 1분기 내 인상도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이성태 총재의 임기 내에는 기준금리가 인상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기준금리 동결이 경제에 미칠 영향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법률이 보장한 한은의 중립성마저 해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더 중요하다. 이성태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 한은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질문에 시원하게 답변하지 못하겠다"고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함부로 이번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는 점 자체가 이미 한은은 정부에 종속됐음을 상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은 독립성 전제돼야 정책 공조 의미 있어"

▲한은 노조원들이 허 차관의 진입을 반대하며 피케팅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보다 강하게 반발하는 쪽은 경제관련 시민단체들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곧바로 논평을 내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여전히 취약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부와 중앙은행 간 공조체계 강화 주장은 모피아의 관치금융을 합리화하기 위한 핑계"라며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데 몰두해야 할 재정부가 엉뚱하게도 한은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치사한 반칙"이라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한은의 독립성 상실 결과는 결국 출구전략의 시행을 과도하게 늦추게 돼 인플레이션 압력 및 자산시장 버블 생상,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국민경제적 피해를 양산할 것"이라며 "금융당국 간 공조체계 구축은 무엇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전제로 해서만 의미 있다"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사실상 70~80년대 개발연대에 횡행했던 관치금융의 구태를 눈치보지 않고 실행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으로 이번 일을 정의하며 "98년 한은법 개정 이전 재무부화 재경원(재정부 전신) 장관이 금통위 의장을 겸임하면서 통화정책을 정부 입김대로 통제해 온 시대로 후퇴함을 의미한다. 한은이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던 관치금융시대로 되돌아 갈 사태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재경원이 전례 없는 힘을 발휘하던 문민 정부 시절, 재경원은 1997년 9월 이후 지속된 외환시장 불안정 상황 하에서 원화가치 유지를 위해 과도한 환율 방어에 나섰다. 이로 인해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감소해 외환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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