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내란죄를 적용한 최초의 판사, 그리고 가장 늦게 도착한 단죄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정기승(鄭起勝, 1928~) 항목을 읽다가 한 장면에서 멈췄다. 1988년 노태우(1932~2021) 정권이 그를 대법원장으로 내정했을 때, 국회본회의 투표함을 열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재석 295명 중 찬성 141표, 기권 134표, 무효 14표. 동의에 필요한 148표에 단 7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그런데 무효표 대다수가 황당한 이유로 무효 처리됐다. 의원들이 국회법대로 '가' 또는 '부'를 써야 하는데, 정작 찬성표 다수가 그냥 '정기승'이라는 이름이나 동그라미, '찬'이라고 적어버린 것이다. 여당이 기표방법조차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자기 발등을 찍었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사부결이, 알고 보면 행정실수로 완성된 것이다.
1928년 충남 공주 출생, 야구를 사랑한 판사
정기승은 1928년 7월 23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1949년 공주고를 졸업하고 1953년 서울법대를 졸업, 1956년 제8회 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1958년 대전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흥미로운 이력 하나가 있다. 그는 학창시절 야구선수였고, 판사가 된 뒤에도 모교 공주고 야구부의 후원자로 활동하며 1977년 전국대회 우승에 기여했다. 법정에서는 권력의 각본을 베끼던 사람이, 야구장에서는 순수한 열정을 보였다는 것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세계사 속의 동류, '베끼는 판결문'의 계보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이 떠오른다. 나치독일 법정에서 일부 판사들은 검찰공소장을 거의 그대로 베껴 판결문을 작성했다. 1980년대 동독 슈타지 재판도 비슷했다. 정기승의 1972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판결문이 그렇다. 검찰공소장 첫머리 "피고인들 나름의 미숙한 상식으로 판단할 때"에서 '미숙한'이라는 단어만 빼고 그대로 베꼈다. 법관이 사라지고 검찰의 대필자만 남은 순간이었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학생에게 내란죄를 적용한 최초의 판결
정기승의 반헌법 행위의 정점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이다. 조영래(1947~1990), 이신범, 장기표(1949~2024), 심재권을 중앙정보부가 전기고문과 잠 안 재우기로 허위자백 시켜 만든 이 사건에서, 정기승은 검찰의 각본대로 내란예비·음모죄에 유죄를 선고했다. 검사 박종연이 이신범에게 "정기승 부장 정도가 검찰조서를 배척하지 못하니 공소사실을 시인하라"고 회유했다는 증언, 사건을 정기승에게 접수시킨 것이 권력에 순종적인 판사라는 계산이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명확히 적시한다.
"이명박, 김중태, 서청원 등 많은 학생이 내란죄로 기소된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 내란죄 유죄판결을 내린 판사는 정기승이 처음이었다."
47년 뒤인 2019년, 서울고법은 조영래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구말모, 서병호, 재일한국인 유학생을 향한 사형 각본
같은 시기 정기승은 재일한국인 2세 구말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누나를 만나러 북한을 한 번 방문한 것이 죄였다. 2012년, 40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보안사가 조작한 서병호 간첩사건에서도 구광신에게 무기징역, 서병호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변호사를 제대로 선임하지 못한 사람은 더 무거운 형을, 거물 변호사를 산 사람은 무죄를 받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이었다.
태윤기 변호사 제명, 어려운 사건을 변호한 죄
1983년 정기승은 태윤기 변호사 제명 징계위원으로 참여했다. 태윤기는 광복군 출신으로 재일한국인 간첩사건처럼 남들이 꺼리는 사건을 적극 변호한 인권변호사였다. 대법원 무죄와 파기환송을 끌어내자 안기부가 표적으로 삼아 제명시켰다. 정기승은 그 제명결정에 도장을 찍었다.
5건의 재심 무죄, 대법원판사로서도 멈추지 않았다
대법원판사 시절 정기승이 담당한 류한기, 김양기, 구명우, 이재두, 홍종열 사건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73일 불법구금, 생식기 고문까지 동원된 조작이었다. 재심무죄가 나온 뒤 기자가 물었을 때 정기승의 대답은 "잘 기억이 안 난다"였다.
1988년 대법원장 문턱, 그리고 90세까지 이어진 극우 활동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7표 차로 부결된 후 정기승은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1998년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회장이 됐다. 2017년에는 90세의 나이로 박근혜(1952~)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사법파동의 역사가 90세 노인의 법정출석으로 다시 소환된 것이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 부역 법관들에 대한 평가는 "기억이 안 난다"는 변명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며 나는 정기승이 적용한 '학생 내란죄'의 원형이 50여 년을 건너 돌아온 것을 느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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