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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직장? 자영업자는 감옥에서 산다"

[2009년, 살림살이 나아지셨나요④] '월수익 100만 원 이하'가 25%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직장과 집을 오가는 직장인에게 '내 가게'는 일종의 로망이다. 열심히 하는 만큼 벌 수 있고,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고, 무엇보다 내가 '사장님' 아닌가.

서울 구로구에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박재민(45, 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자영업은 우리 시대 직장인의 꿈의 직장이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내 대형 의류업계에서 매장 관리 일을 하던 박 씨에게는 "어차피 매장관리도 내가 하는데 이왕이면 내 매장이면 더 좋지 않나" 싶은 게 당연했다.

그렇게 박 씨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다. 그리고 1999년 지금의 식당을 열어 '사장님'이 됐다. 그의 로망은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장님 10년 차'인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자영업이 꿈의 직장? 감옥이예요, 감옥."

우동 값 500원에 매출이 왔다 갔다

경제위기 이후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 덕에 지난 한 해는 여느 해보다 더했다. 정말이지, 손님이 없다. 박 씨의 가게가 있는 구로구의 한 시장 상권의 주 고객은 진짜 서민이다. 주변의 주택은 대개 한 집에 정문과 쪽문이 있는 다세대 주택이다.

"배달 가면 주소만 가지고는 안 된다. 1층이라고 하면 쪽문인지 정문인지 알아야 한다. 많게는 한 층에 5개의 가구가 산다. 미혼자들도 아니다. 대개 노인이 있거나 아이가 있는 가족들이 방 하나, 주방 하나 달린 집에 산다. 그러니 이사도 잦다."

원래도 "등록금 낼 때, 입학 시즌, 연말, 월말, 그리고 명절 대목 직전에" 장사가 전혀 안 됐다. 박 씨는 "큰 돈 쓸 때가 되면 사람들이 절대 돈을 안 쓴다"고 했다. 서민들의 소비 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는 또 있었다. 우동 가격 500원 차이에 판매 경향이 달라졌다.

"우리 집 우동이 원래 3000원이다. 지난해 경제위기 이후 너무 장사가 안 되서 1500원으로 낮춰 팔았다. 그렇게 팔면 남는 건 없지만, 우동 먹으면서 다른 메뉴도 먹게 하기 위해 일종의 마케팅 전략을 쓴 것이다. 그런데 그랬더니? 죄다 우동만 사먹더라. 다른 메뉴는 일체 안 팔렸다."

몇 달 뒤, 우동 값을 500원 올려 2000원으로 바꿨다. 500원이 올랐을 뿐인데 우동 판매량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말 그대로 '서민 상권'에서 경제위기의 혹독함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 경제위기 이후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 덕에 지난 한 해는 여느 해보다 더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 없음.)ⓒ연합뉴스

'공격적 마케팅 전략'으로 매출 늘었지만 순수익은 월 150만 원

그래도 박 씨의 가게는 일종의 '공격적 마케팅 전략'으로 매출을 경제위기 이전과 비슷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가격을 좀 낮추고 배달을 시작했다. 인력도 더 뽑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20~30% 수준에 불과하던 배달 판매량이 최근에는 60~70%까지 늘었다. 덕분에 하루 평균 100만 원, 월 평균 3300만 원의 매출액이 1년 전보다 늘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었다. 비용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늘어났다. 무엇보다 재료비가 확 올랐다. 경제위기 전에는 매출액 대비 33~35% 수준이었던 재료비는 올해 40~42%로 대폭 늘어났다. 월 평균 1100만 원에서 1300만 원 가량으로 200만 원 정도나 뛴 것이다.

배달 인원을 3명으로 늘리고 홀 직원도 늘렸으니 인건비도 늘었다. 더욱이 박 씨네 가게는 다른 곳에 비해 인건비를 훨씬 더 쳐준다. 주5일제도 실현하고 있다. 57㎡(17평)의 크지 않은 가게에 현재 일하는 사람만 10명이 넘는다. 2008년에는 월 평균 1200만 원 정도던 인건비가 지난해에는 '공격적 경영 전략' 덕에 1400만 원까지 늘었다.

여기에 매달 들어가는 가게 월세에, 전기, 가스 등 일반 관리비도 늘었다. 2008년에는 월 300만 원이던 것이 올해는 400만 원이 됐다. 전기 요금, 가스 요금이 오른 데다, 집 주인은 월세를 더 올려달라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속속 문 닫을 만큼 심각한 불경기인데도 이상하게 집 값은 계속 올랐다. 이것도 수요와 공급의 논리였다. 박 씨는 "집 주인의 논리는 '대기자가 많다'는 것이었다"며 "임금 근로자가 줄고, 취업은 안 되니 자영업 희망자만 늘어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끝이 아니다. 직원 간식비, 냉난방 관련비, 낡은 주방의 수리비, 직원이 다치면 나가는 위로금 등 판매 관리비가 한 달에 평균 잡아 150만 원 가량 든다. 경제 위기 전에 비해 세금은 빼고, 늘어난 비용만 근 월 500만 원인 셈이다.

그리고 나면 손에 쥐는 것은? 고작 150~200만 원 수준이다. 박 씨는 "나도 역시 빚이 있고 지출해야 할 돈이 생기는데 그럴 때면 빚을 내서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자영업자 가운데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30%가 "기초생활보장제 수급 대상자인 빈곤층"

실제 조사 결과, 자영업자 가운데 거의 빈곤층과 마찬가지 수준의 수입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금재호 선임연구위원팀이 최근 내놓은 '자영업 노동시장 연구' 보고서를 보면, 월 100만 원 이하의 순수익을 얻는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4분의 1에 달했다. 또 월 300만 원 미만의 순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분의 2였다.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놀라운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 대상자의 선정 기준인 월 평균 가계 소득 126만5848원(4인 가족 기준)에 미달하는 소득을 얻는 사람도 무려 30.3%나 됐다"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 자영업자의 3분의 1 정도가 사실상 빈곤층인 것이다.

실제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이 1조 원을 넘어선 서비스업의 양극화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형화 추세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박 씨와 같은 영세 자영업자는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서비스업 부문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업의 매출은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서 1060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서비스업 사업체수도 총 223만6000개로 2007년에 비해 1만 개가 늘어났고 종사자 수도 1년 사이 3.2%나 늘어나 850만9000명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형업체와 영세업체의 명암은 엇갈렸다. 종업원 4인 이하의 사업체는 그 숫자도 0.30%포인트 줄어들었고, 매출액 비중은 0.72%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종업원 50명 이상의 사업체 숫자는 0.05%포인트 늘어났고 매출액 비중도 0.70%포인트 증가했다. 전체 서비스업 가운데 전통적인 서비스업의 비중은 줄었고 대형업체 비중이 늘었다.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의 매출액 비중은 각각 0.5%포인트, 0.3%포인트가 줄었다.
"임금 근로자 많아져야 자영업자도 사는데…아무도 '스톱' 해주질 않는다"

이런 문제는 자영업 시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더해지면서 악화된다. 박 씨는 "임금 근로자는 줄고 시장에 자영업자는 엄청나게 밀려드는데 아무도 '스톱' 해주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벌어진 대규모 정리해고 등으로 대폭 늘어난 자영업자는 2002년 이후 다소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자영업체 수는 594만 명으로 2007년에 비해 8만 명 정도 줄어들었다. 자영업체 수의 감소는 이미 시장이 포화된 상태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외식업의 경우 매년 휴업 또는 폐업하는 비율이 전체 60만 곳 가운데 20%가 넘는다. "10~15년 전과 지금 자영업의 상황은 다르다"는 박 씨의 말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10년 전에 처음 가게 문을 열 때만 해도 박 씨의 첫 달 순이익은 1000만 원이었다. 처음 가게를 내면서 생겼던 5000만 원의 빚도 얼마 되지 않아 갚을 수 있었다. 박 씨는 "자영업자는 처음에 투자한 돈을 모두 회수한 다음부터 돈을 버는 것"이라며 "10년 전에는 1년 반 정도에 회수하면 장사 잘 했다는 평가였지만 지금은 3년 안에도 회수 못 한다"고 말했다.

"고객은 늘지 않고 경제위기로 소비 여력은 줄어들었는데 기존의 공급망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탓"이다. 특히 66㎡(20평) 미만의 가게일 경우 더 생존이 쉽지 않다. 66㎡ 미만은 2~3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다. 그러니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박 씨의 가게 주변 상가들도 작은 규모일수록 폐업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이 작은 상권에 핸드폰 가게가 엄청나게 많다. 붕어빵, 찐빵 등을 파는 말 그대로 '분식'집도 이 작은 상권에 무려 7개나 된다. 노점도 아니다. 장사를 해 본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안 한다. 그러니 당연히 장사는 더 안 된다."

▲ 특히 66㎡(20평) 미만의 가게일 경우 더 생존이 쉽지 않다. 66㎡ 미만은 2~3억의 자본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어 진입 장벽이 낮다. 그러니 경쟁이 더 치열할 수밖에 없다. 박 씨의 가게 주변 상가들도 작은 규모일수록 폐업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프레시안

"자기 인건비 빼서 생활하는 구조에 놓인 자영업자"

박 씨는 "자영업은 사실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서 마진율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식업의 경우 더하다. 어느날 갑자기 음식 관련 사고가 나면 매출이 사실상 0원이 된다. 조류독감, 만두파동 등 사례는 많다. 매출이 적더라도 안정적이어야 하는데, 들쑥 날쑥 하는 순간, 비용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집 주인이 '월세'를 놓고 횡포를 부려도 막을 방법이 없다. 인테리어 비용 등 이미 들어간 돈을 놔두고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 씨는 "현행법대로면 2년에 10%를 올려달라고 주인이 요구할 수는 있지만 15%를 요구하더라도 올려줘야지 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 그때부터 악순환이 시작된다. 장사가 안 되면 재료의 신선도는 떨어진다. 손님은 금방 알아채고 다시 찾지 않는다. 매출이 줄면 자영업자는 일단 인건비부터 줄인다. 결국 꿈꾸던 '내 삶'도 가게에 묶여 버린다.

박 씨는 "장사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인건비를 빼서 생활하는 구조의 삶을 모든 자영업자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어쩌면 초기 투자 비용을 차라리 은행에 두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비정규 노동자보다 자영업자 만족도 낮다…노동시간도 월등히 길어

실제 자영업자의 만족도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낮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자영업자의 생활 만족도는 2002년 이후 하락해 정규직 임금 노동자의 만족도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종업원이 없거나 가족과 함께 일하는 자영업자의 임금과 소득 만족도는 전체 5점을 만점으로 2007년 2.44점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같은 해 2.55점으로 더 높았다.

이는 근로시간 및 불투명한 전망과도 연관돼 있다. 자영업주 가운데 42.1%가 사업체 상황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다", "고전하는 편이다", "매우 고전하고 있다"는 부정적 응답을 했다. 특히 월평균 소득이 150만 원 미만인 자영업주(64.8%)와 연간 매출액 4800만 원 미만인 경우(51.8%) 이런 응답이 더 많았다.

노동시간도 임금 노동자에 비해 월등히 높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보면 자영업자 가운데 고용주는 55.4시간, 자영자는 50.6시간, 무급가족종사자는 50.1시간으로 나타났다. 반면, 2007년 임금 노동자의 주당 총 노동시간은 43.4시간이었다. 이는 초과 노동시간까지 포함된 것으로 초과 노동시간을 제외하면 39.5시간에 불과하다.

때문에 금재호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주와 자영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각각 8년 4개월과 13년 5개월로 임금 근로자의 평균 근속기간과 비교할 때 상당히 안정적인 일자리라 할 수 있으나 진정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자영업자의 고령화 추세도 눈에 띈다. 외환위기 전인 1995년에는 전체 자영업자 419만 명 가운데 50대 이상의 비중이 22.9%, 96만 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7년에는 자영업자 498만 명 가운데 38.1%, 190만 여 명이 50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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