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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중산층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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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중산층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2009년, 살림살이 나아졌나요①] 주부 이모 씨의 우울한 가계부

이명박 정부는 2010년 경제성장률을 5%로 전망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경제위기의 영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얘기다. 거시적 경제지표에는 이미 그런 회복세가 반영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서민들의 살림살이에도 반영되는지는 미지수다. 경제지표와 유리된 서민 경제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온 문제다. 2009년 한국을 살아가는 다양한 서민들의 가계부를 들여다보고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살펴봤다. 편집자

"작년과 올해 살림살이 변화요? 큰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고, 그것 때문에 친정 엄마에게 매달 드리던 용돈을 끊었죠."

주부 이연희(가명. 37) 씨는 2007년 둘째를 출산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직원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 인사경리부서에서 일하던 그는 둘째를 낳으면서 육아 문제 때문에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다.

"첫째까지는 그래도 회사에서 용인이 됐죠. 첫애 때도 3개월 출산휴가 다 쓰고 회사 돌아가서 한동안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는데, 둘째를 가졌다고 하니 아예 '그만둘 사람' 취급을 하더라구요. 10년 넘게 다녔으니 오래 다녔죠. 사실 둘째 낳지 않았더라도 슬슬 눈치가 보여 더 다니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또 첫째는 친정과 시댁을 전전하면서 그럭저럭 키울 수 있었는데 애 둘을 그렇게 돌릴 생각을 하니 그것도 못할 짓인 것 같더라구요."

"재테크요? 월 30만 원으로 무슨…"

▲ 주부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올해도 크게 올랐다. 육류, 우유, 야채, 과일 등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입장에서는 안 살 수 없는 품목들만 유독 많이 올랐다. ⓒ뉴시스
이 씨의 남편은 중소 무역회사를 다닌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보다가 결국 실패해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어렵사리 직장을 구했다. 남편의 연봉은 3400여만 원. 세전 월 300만 원에서 조금 모자란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소득세 등 각종 세금을 제하고 집에 가져오는 돈은 월 평균 280만 원 수준.

"회사 다닐 때는 사실 가계부를 꼼꼼히 쓰지 않았어요. 회사 마치고 부랴부랴 퇴근해 친정이나 시댁에서 애를 찾아와 애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면 밤 10시가 훌쩍 넘어요. 남편이 어쩌다 한번 일찍 퇴근해서 집안일을 좀 도와준다고 해도 결국 애 보는 건 제 몫이거든요. 가계부를 쓸 시간이 절대적으로 없었죠. 또 많지는 않아도 제 월급도 있으니까 지금처럼 쪼들리지도 않았구요."

둘째가 돌을 지나고 한숨 돌리고 나서 이 씨는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이 씨의 한달 가계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난달 남편의 실수령액은 279만5780원. 지출로는 식비, 의복비, 차량 유지비 등 생활비가 62만4270원, 전기요금을 포함한 아파트 관리비가 15만7120원, 도시가스비가 3만4210원, 남편과 이 씨의 핸드폰 요금과 인터넷 사용요금 등 통신비가 10만100원, 첫째 유치원비 등 교육비가 44만 원, 아이 2명의 민간 의료보험 등 보험료가 15만6800원, 시부모님 용돈이 30만 원, 남편 용돈으로 30만 원, 첫째의 신종플루 예방백신 접종 등 병원비로 12만8500원, 경조사비 6만 원 등을 썼다. 남은 돈은 49만4870원.

"둘째도 신종플루 백신 접종을 예약했었는데 밤새 고민하다 안 갔어요. 솔직히 부작용걱정 때문이 아니라 10만 원이나 하는 백신비가 부담돼서 유치원 다니는 첫애만 맞추고 안 맞췄어요. 형이 밖에서 걸려오지 않으면 집에서 나하고만 있으니까 걸릴 일은 없는 거 같아서요."

올해 매달 30-40만 원 정도 남았는데 남는 돈은 증권사 CMA 통장에 넣어뒀다. 목돈이 쌓이면 저축은행의 고금리 상품을 찾아볼 생각이다. 이 씨는 지난 2007년 펀드에 목돈을 넣어뒀다가 '반토막'이 나 낭패를 봤다.

"다시 주가가 오른다고 하는데 한번 그렇게 당하고 나니까 겁이 나서 펀드는 못하겠더라구요. 하긴 한 달에 30만 원 씩 모아서 무슨 재테크를 하겠어요?"

MB 물가 5.8% 올라…'월동 물가'도 비상

주부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 상황은 물가다. 미국발 경제위기의 여파로 소비자 물가지수가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소비자 물가지수는 2-3%대의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주부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는 다르다. 지난해 급등한 생필품 가격이 내리지 않고 그 수준을 유지하거나 소폭 상승하면서 날이 갈수록 주부들의 장바구니는 가벼워졌다. 이 씨는 이날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본 영수증을 보여줬다.

사과 1봉(4개) 4980원, 토마토 1봉(5개) 2980원, 호박 1개 980원, 오이(2개) 980원, 풋고추 1봉(150g) 1680원, 대파 350g 1480원, 두부(2팩) 2500원, 고등어(1손) 6500원, 오징어 (2마리) 4000원, 닭(1마리) 6700원, 호떡믹스(2개 묶음) 5100원, 달걀(10개) 2200원, 햄(270g) 3370원. 모두 합쳐 4만 원이 넘었다.

"작년에 비해 육류와 생선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어요. 첫째가 갈치를 좋아해서 갈치를 사고 싶었지만 한 마리에 1만8000원이나 해서 고등어와 오징어를 샀고, 고기도 닭고기가 제일 싸서 닭을 샀죠. 돼지고기 가격이 진짜 많이 올랐어요. 채소, 과일이나 달걀 같은 것도 유기농 제품으로 사면 가격이 두배인데요. 저두 몇번 유기농 샀다가 이제는 그냥 일반 제품 사요. 애들 과자나 음료수 같은 군것질거리는 건강에 나빠 잘 안 사주는데, 사실 가격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어요. 안 먹으면 안 되는 게 아니면 사지 말자, 이렇게 마음먹고 장을 봐야 5만 원 안팎에서 볼 수 있어요. 솔직히 애들한테 많이 미안하죠. 한창 먹고 싶을 게 많은 나이일텐데…"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정한 정부관리 대상 52개 실생활 관련 품목의 물가가 지난 1년 6개월 동안 5.8% 올랐다. 같은 기간 일반 소비자 물가는 4.9% 상승했다. 배추(37.8%) 돼지고기(36.2%) 우유(36.2%) 설탕(29.9%) 식용유(24.5%) 등은 30% 안팎의 가격상승률을 기록했고, 샴푸(16.8%) 도시가스(15.1%) 고추장(14.9%) 쇠고기(14.6%) 목욕료(12%) 화장지(11.9%) 달걀(11.5%) 생리대(10.8%) 빵(10.7%) 바지(10.2%) 등도 가격상승률이 10%를 넘었다. 52개 품목 중 가격이 오른 것은 38개였다.

또 여의도연구소의 설문에서 조사 대상의 57.8%가 '물가가 매우 많이 올랐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4.5%가 '물가가 오른 것 같다'고 답해 전체의 92.3%가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으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답한 응답자도 90.2%나 됐다.

이런 가운데 난방비, 내복, 난로 등 월동제품 가격이 크게 올라 서민들의 겨울을 더욱 춥게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연탄 가격은 전월 대비 19.1% 올라 1980년 5월(35.5%) 이래 최대로 급등했다. 가스료는 지난 6월말 주택용이 5.1%, 일반용은 9.1% 상승했고,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지난달부터 지역난방용 열 요금을 3.52% 추가 인상했다. 전기요금의 경우 주택용은 작년과 같지만 일반용은 지난 6월 2.3% 인상돼 일반용을 쓰는 자영업자의 부담이 커졌다.

또 난로 가격은 전월대비 8.0% 상승해 석유파동이 발생했던 1980년 11월(26.9%) 이래 가장 많이 올랐다. 내복 가격도 급등세를 보였다. 11월 남자 내의는 전달보다 9.7% 상승해 1981년 2월(17.5%) 이래 가장 상승률이 높았다. 여자 내의는 전월대비 9.4% 상승해 1998년 10월(14.6%) 이후 최대로 올랐다.

"내집 마련, 평생 모아도 할 수 있겠어요?"

이 씨 가족은 서울 서대문구의 20평형대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작년 봄 전세값을 2000만 원이나 올려줘 1억6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내년 봄 전세값을 올려주거나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전세대란' 얘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아파트 입구의 부동산 앞을 지날 때나 가끔 인터넷을 통해 전세시세를 확인해보고 좌절하죠. 얼마 전에 우리 앞 동에 전세가 나왔던데 1000만 원이 올랐더라구요. 가격도 가격이지만 집 구하기도 쉽지 않죠. 이 동네는 20평형대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인데도 소형 평수는 물량이 워낙 적어 나오자마자 바로 계약이 된대요. 이 동네에 사는 건 남편 회사와 친정 어머니 때문인데요. 애들을 가끔 맡겨야 하니까요. 근데 이런 추세로 전세값이 계속 오르면 내년에는 서울이나 아파트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겠죠."

"내년 서울 전세가 5% 올라"

국내 부동산 연구기관과 정보업체들은 내년에 전세가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뉴타운·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택은 줄어드는데 이사를 가야할 사람들은 많아져 '전세대란'은 2012년까지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뉴타운·재개발로 멸실되는 예상주택은 올해 2만807가구, 내년 9만8782가구, 2011년 3만1717가구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전국의 전세가가 5~6%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 아파트 전세가는 서울 5.6%, 수도권 4.2%, 전국 2%의 상승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부동산 포털사이트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세금은 경기도 과천이 37.80%로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은 전세금이 평균 11.96% 상승했다. 구별로는 송파구(26.87%) 서초구(18.45%) 강동구(16.74%) 광진구(16.33%) 강서구(13.63%) 강남구(12.45%) 중구(12.43%) 양천구(12.42%) 등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7.48%이며 이 가운데 하남시의 아파트 전세금이 26.19% 올라 과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결혼 8년 동안 이사를 3번 하고 전세값이 얼마나 오를까 불안해하지만 이 씨는 집을 살 생각이 없다고 한다. 아니, 내 집 마련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진작부터 마음을 먹었다고 얘기한다.

"솔직히 우리 형편이 최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남편 월급이 허리띠 졸라매면 네 식구 살아가는데 모자라는 돈은 아니고, 당장 갚아야할 빚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우리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 '더 풍족한 삶' 이런 걸 기대하고 꿈꾸기보다는 형편이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집 문제만 해도 애가 둘이니까 집을 산다면 30평형대는 돼야 하거든요. 수도권에서 구하려면 못해도 4-5억 원은 있어야 되잖아요. 지금 일 년에 500만 원 모으기 힘든데 어느 세월에 그 돈을 구할 수 있겠어요. 설사 은행 빚을 얻어 무리해서 집을 산다고 해도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구요."

30세 직장인이 서울에서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몇 년?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직장 생활을 하는 노동자가 서울에서 100㎡(33평형)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37.5년, 강남에서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마련하려면 56.1년을 저축해야 한다.

30세부터 내집 마련을 위해 저축을 시작한다면 67.5세가 돼야 서울 비강남권의 30평형대 아파트를 겨우 장만할 수 있다. 강남에서 30평형대 아파트를 사려면 80대 후반이 돼야 한다. 근로자 가구(2인 이상)의 연간 근로소득은 지난 2분기 기준으로 3915만 원. 지출을 제외한 저축 가능액은 953만 원이다. 한편 100㎡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서울은 5억6034만 원, 강남은 10억7778만 원이다. 여기에 지난 2분기 기준 일반 정기예금 금리 2.30%를 적용하면 위와 같은 계산이 나온다.

서울 강남의 경우, 100㎡ 아파트의 전세가도 평균 3억 원으로 23.5년 저축해야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소득 증가에 비해 집값이 급등하면서 청년층(30-40대)의 자가거주율이 대폭 감소했다. 김란우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자가거주율 변화의 인구학적 접근'이라는 논문에서 "청년층이 서울에서 자력으로 주택을 구입해 사는 '자가거주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의 평균 자가거주율은 지난 1985년 41%에서 2005년 45%로 20년 새 4%포인트 높아졌지만, 이 기간 서울의 가구주 가운데 45세 이상 중장년층 비중은 36%에서 53%로 늘어났다.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자가거주율은 떨어진 것이다. 김 연구원은 "수도권 자가거주율 상승은 주택 소유가 쉬워진 결과가 아니라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30~44세 가구주의 주택구입능력이 심하게 나빠지고 있다"고 밝혔다.

"나는 중산층에서 하층으로…우리 아이들은 극빈층이 될까 두렵죠"

이 씨의 가장 큰 고민은 두 자녀의 교육이다. 집 살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자녀 교육에 쓰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나 남편이나 부모님들이 잘 사시지는 못해도 중산층은 됐던 것 같아요. 친정은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형편이 많이 기울긴 했지만 양쪽 부모님들 다 집 한 채씩 갖고 계시고 자녀들 대학교육 시키고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저희 세대로 내려오면서 솔직히 중산층이 아니라 하층이 됐죠. 자기 집과 차가 있고 자녀 교육에 큰 어려움이 없는 그 정도 경제력을 가지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우리 세대에 중산층이 몇이나 될까요? 제 친구들을 봐도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자력으로 집을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거 같아요.

제가 이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요? 아무래도 부모가 지원해줄 수 있는 것도 더 적고, 갈수록 취업도 힘들어지고, 경쟁도 심해지고…빈곤층으로 전락하지 말란 법 없잖아요. 그게 제일 걱정이죠. 그래서 집 살 돈이 있으면 애들한테 쓰겠다, 남편과 내가 노후에 극빈층으로 살더라도 얘들은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는 내년에는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다시 돈을 벌 계획이라고 한다. 다시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지만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학 동창이 경기도 일산에서 작은 학원을 하는데 그 일을 돕거나 학습지 교사 일을 알아볼까 고민이다.

"친정 어머니가 둘은 절대로 안 봐주신다고 했지만 어쩌겠어요? 시부모님은 부산에 계시거든요. 제가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둬야 애 둘 대학등록금이라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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