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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법인 도입, '기정사실' vs '희망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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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의료법인 도입, '기정사실' vs '희망사항'

전재희 복지부 장관 "보완책 마련이 먼저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놓고, 정부 안에서 충돌음이 들린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기정사실로 못 박으려는 기획재정부와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온 보건복지가족부 사이의 충돌 때문이다. 두 부처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15일 예정돼 있던 합동브리핑이다. 이날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산업진흥원의 용역연구결과에 대해 두 부처가 합동 브리핑을 할 예정이었으나, 결국 취소됐다. 부처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리의료법인 도입, '기정사실' vs '희망사항'

▲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뉴시스
먼저 도발한 것은 기획재정부였다. 15일 브리핑에 대한 보도자료가 나온 14일 오후, 기획재정부는 부처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브리핑을 열어 "(영리의료법인을) 어떤 방식으로 도입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것인지 논의하는 단계로 넘어간 것인 만큼 도입이 기정사실화됐다고 봐도 좋다"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공의료 서비스의 확충 문제, 영리 의료법인 출범에 따른 진료비 상승을 국가가 낮춰주느냐의 문제 등 보완책을 관계기관이 협의해야하고 협의 내용을 국민이 납득할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뒤, "보완책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보완책이 있어야만 영리의료법인을 도입할 수 있는데, 보완책이 없으므로 도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어 전 장관은 "영리 의료법인 출범에 따른 보완책은 연구되지 못했다"면서 "기획재정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가 협의에 상당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루 전 기획재정부의 비공식 브리핑 내용에 대해서도 전 장관은 "재정부는 빨리하고 싶으니 그 같은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은 기획재정부의 주장처럼 '기정사실'이 아니며,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기획재정부를 가리켜 "쌀을 씻고 밥솥에 불을 때야 밥이 된다"고도 말했다.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빨리 하려는 심정은 이해를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해서 거쳐야할 것을 거치지 않거나, 갖출 것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설명이다.

"영리병원은 대도시로만 몰릴 텐데"…'지역 간 의료격차' 우려

그리고 전 장관은 "의료는 공공재 성격이 강한 것"이라며 "모든 국민이 적정한 비용으로 적정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뒤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산업화할 것이냐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명을 다루는 의료는 전국의 모든 국민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성과 일정 수준의 진료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현 상황에서 영리 의료법인 출범을 허용하면 결국 영리병원은 대도시로 몰리고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합동브리핑이 취소된 배경에 대해서도 전 장관은 "기획재정부와 KDI는 영리 의료법인에 기대감을 갖는 곳이고, 복지부는 우려를 갖는 곳이며, 보건산업진흥원은 기대감과 우려를 모두 갖고 있는 곳"이라고 말한 뒤, "KDI와 보건산업진흥원 각각의 연구 결과가 종합 결론을 낼 수 없는 내용으로 나와 각 기관의 보고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 돈이 몰린다" vs "국민 의료비 부담 커진다"

이날 공개된 KDI의 연구 결과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의 효과를 긍정하는 내용이다. "음성적 자본조달을 양성화하여 의료산업 전체의 건전성을 높인다", "병원 경영자가 시장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다양한 의료 비즈니스가 가능해져서 향후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에 잘 대처할 수 있다" 등의 내용이다. 의료계를 뭉칫돈이 쏠리는 새로운 투자처로 키우겠다는 내용이다.

이와 달리, 보건산업진흥원의 연구 결과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꽤 포함돼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는 방식을 해외 환자 유치, 고급 의료 충족, 자본 조달 및 기능 특화, 산업 연계 등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뒤, 각각에 대해 분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네 유형 모두 국민 의료비가 상승하고, 의사들이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가서 중소병원이 폐쇄되는 효과를 낳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유형에 따라 국민 의료비 상승 폭, 의사 유출 정도가 다르게 나타날 따름이다. 국민 의료비 상승 폭이 가장 큰 것은 IT(정보기술)와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를 연결하는 산업 연계 방식인데, 4조3000억 원이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의료 선진화' vs '의료 양극화'

이런 갈등 국면에서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찬성하는 측은 '영리의료법인'이나 '영리병원' 대신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공익보다 돈벌이에 치우친 의료 행태를 지금보다 더 부추긴다는 뉘앙스를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과거 삼성 계열사였던 중앙일보가 대표적이다. 하루 전, <중앙일보>는 영리의료법인 도입 관련 연재를 시작하며 "본지는 '영리병원' 대신 '투자개방형 병원' 용어를 사용합니다. 병원의 자본 조달 창구를 다양화하자는 취지입니다. 지금도 영리 행위를 하지 않는 병원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연재기사에서 <중앙일보>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을 '의료 선진화'로 규정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서 "영리병원 도입이 국민 의료비 폭등과 의료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뻔한 결과에도 불과하고 이명박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병원자본과 민간보험사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삼성생명 등 재벌 계열 보험사는 영리의료법인 도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16일 국회 앞에서 지도부 삭발 결단식을 진행하고, 17일에는 경기 과천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영리의료법인 도입 반대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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