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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에 발가벗겨진 쌍용차 노동자들을 보며

[기고]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6일 오후, 점거 파업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회사 측과 합의하여 농성을 풀었다고 합니다. 회사 측이 내놓은 정리해고 60%안을 거의 수용한 52%안에 합의하였다고 합니다. 협상을 한 노조지도부도 힘들 것이고, 노조 지도부가 끝까지 원칙을 지키지 못했으니 조합원들의 원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77일간, 아니 그 전부터 잘 싸웠습니다. 다만 국가 폭력에, 보수언론의 융단 폭격에 좌절당한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인권활동가로서 근거리에서 고무총을 쏘아대고 미끄러운 슬레이트 지붕에 물대포와 발암성 최루액을 쏘아대는 국가폭력을 막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죽든지 아니면 포기하든지 선택하라며 폭력을 휘두르는 국가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대로 해외매각을 주도한 정부와 경영진의 실패입니다. 그런데도 책임은 언제나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일자리에서 갑자기 한꺼번에 내쫓는 '정리해고'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떠넘깁니다. 한국사회는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전무하기에 일자리를 잃는다는 것은 바로 생존의 위험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노조도 회생방안을 내놓았던 까닭입니다. 적어도 일자리는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자본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맥락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은 게 정부와 사측이었습니다. 자본의 이익만을 남기는 구조조정, 이후에 여러 분야에서 진행시킬 노동유연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도 강력한 노동자의 저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양보도 없다는 게 그 배경이었습니다.

잔인한 국가는 언제나 힘센 자본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적 근거가 미흡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밟기 위해서는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어떠한 안전대책도 없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진압했습니다. 넘어진 노조원에게 3~4명씩 달려들어 방패와 경찰봉으로 두들기는 장면은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경찰 장비규정에도 없는 고무총을 근거리에서 쏘아댔으면서도 경기도지방경찰청장은 파업노동자에게 고무총을 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죽든지 아니면 정당한 권리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노조 지도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추락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다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식량도, 물도 없이 고립되어 단전되어 어두운 공간에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여기가 끝인가'라는 생각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검은 옷의 무장한 전경들로 둘러친 도장 공장에서 죽음을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감히 쌍용자동차 노조 지도부의 결정을 잘 했네 못 했네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칼날이 동료의 목에 겨누어져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차라리 광주항쟁 때처럼 원칙을 지키며 결사항전하여 죽지 못 했냐라고 말할 수 없기에 가슴이 더 아프고 무너집니다.

▲ 잔인한 국가는 언제나 힘센 자본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적 근거가 미흡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밟기 위해서는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프레시안

잔인한 폭력을 너무나 당당하게 휘두르는 이 땅

그래서 오히려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을 제지할 수 없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이 상태가 되도록 우리는 무얼 했나 자책합니다. 몇 달째 싸우는 동안, 보수 언론이 정당한 파업농성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테러집단'운운할 때 방어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파업권은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파업뿐 아니라 노동자의 쟁의행위를 불법화하려는 지침을 만든 바 있습니다. 파업권을 포함한 단체행동권은 자본과 고용을 쥔 사측과 최소한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약자의 권리입니다. 한국도 가입되어 있는 <유엔 경제적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사회권 규약)에도 명시된 분명한 인권입니다.

더구나 한국정부가 노동자의 파업권 행사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등 불법시하는 것에 대해 유엔에서도 이를 매우 우려한 바도 있습니다. 2001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는 한국정부에게 "파업의 합법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관련 기관에 과도한 재량이 부여되고" 있고, "파업행위를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 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다"며 명백한 권리 부정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서 파업권은 인권의 권리목록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폭력을 앞세운 권리박탈과 상처

권력자들은 언제나 폭력으로 권리를 빼앗았습니다. 20세기 광주에서 민주화를 원하며 정치적 권리를 외친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총으로 권리를 빼앗았던 것처럼, 21세기 용산에서 주거에 대한 권리, 생존에 대한 권리를 특공대의 진압으로 빼앗았듯이 말입니다. 지금 노동에 대한 권리, 생존에 대한 권리, 파업할 권리를 경찰특공대의 테이저 건과 헬기를 동원한 최루액 투하, 고무총 난사로 빼앗았습니다. 폭력은 우리를 발가벗겨 놓습니다. 단지 신체적 상처만을 줄 뿐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자신에게서 '존엄성 상실'을 느끼게 하여 가슴에 큰 멍을 남기기에 단지 '어떤 권리를 빼앗겼다'에 그치지 않습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

노동자들이 경찰의 총과 몽둥이에 밀려 정리해고안에 합의했다고 해도 아직 우리의 싸움은 끝난 게 아닙니다. 정부가 곳곳에서 쌍용자동차에서 물리력으로 정당한 노동에 대한 권리를 빼앗았듯이 다른 사업장에서도 그러할 것이라는 건 명백합니다.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권을 옹호하는 것, 경영자인 자본에 휘둘려 인권을 빼앗기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쌍용차에서 벌어진 '존엄성을 짓밟은 인권침해'에 국내외적 고발활동을 계속 해야 합니다.

쌍용차에서 우리가 빼앗긴 권리를, 우리는 하나하나 기억하며 기록하고 되찾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일자리에 대한 권리, 부당하게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 형평한 법에 대한 권리, 식수에 대한 권리, 생명에 대한 권리, 모욕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파업권을 행사할 권리, 연대할 권리, 경찰 폭력을 비롯한 사측 용역의 폭력에 노출 되지 않을 권리, 공동체를 파괴당하지 않을 권리, 집회와 결사의 권리 등 말입니다.

야만의 땅, 한국에서 인권침해에 많은 이들이 눈감거나 무감해지지 않도록 우리는 끝까지 행동할 것입니다. 무감하지 않고 연대하고 저항하며 싸우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인간적 존엄성을 실현하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2009년 8월 6일
서울에서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 8조
(한국정부는 90년에 이 조약에 가입)


1. 이 규약의 당사국은 다음의 권리를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
(a) 모든 사람은 그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관계단체의 규칙에만 따를 것을 조건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가 선택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권리. 그러한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로 정하여진 것 이외의 또한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를 위하여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주 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과할 수 없다.
(b) 노동조합이 전국적인 연합 또는 총연합을 설립하는 권리 및 총연합이 국제노동조합조직을 결성하거나 또는 가입하는 권리
(c) 노동조합은 법률로 정하여진 것 이외의 또한 국가안보, 공공질서를 위하거나 또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제한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로이 활동할 권리
(d) 특정국가의 법률에 따라 행사될 것을 조건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권리
2. 이 조는 군인, 경찰 구성원 또는 행정관리가 전기한 권리들을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합법적인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
3. 이 조의 어떠한 규정도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의 보호에 관한 1948년의 국제노동기구협약의 당사국이 동 협약에 규정된 보장을 저해하려는 입법조치를 취하도록 하거나, 또는 이를 저해하려는 방법으로 법률을 적용할 것을 허용하지 아니한다.

2001년 유엔 사회권 위원회 최종 견해( 한국정부의 사회권보고를 심사 결과) 20항

위원회는 파업을 관장하는 법률이 투명하지 않고 파업의 합법성을 판단하는데 있어 관련 기관에 과도한 재량이 부여되고 있는 점을 우려한다. 이점에 있어서 파업행위를 법죄시하는 정부의 접근 방식은 전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위원회는 판단한다. 또한 위원회는 대량해고에 의해 유발된 최근의 노동관련 시위에서 과도한 경찰력이 사용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러한 상황들의 종합적인 효과는 규약 8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들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라고 위원회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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