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은 경찰의 강경 진압 과정에서 6명이 숨졌던 용산 참사가 100일째 되는 날이다. 당시 사고 소식은 한국 사회를 경악케 했다. 철거 과정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대형 참사였다. 경찰의 진압 과정부터 재개발 정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놓고 비판이 이어졌다. 검찰은 농성을 벌인 철거민만 기소하고 경찰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후 정부는 용산 참사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철거민 유가족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사회 역시 참사를 잊었다. 지금도 매일 사고 현장에서는 촛불 집회가 열리지만 발길은 뜸해졌다. 그 와중에 현장 주위에서 철거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굴러갈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프레시안>과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용산 참사 100일을 맞아 용산 참사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글을 공동으로 연재한다. |
▲ "철거에 반대하며 농성 중이던 철거민 5명과 진압하던 경찰 1명이 사망한 지 어느 덧 100일이 지났다." ⓒ프레시안 |
전가의 보도인 '법과 원칙'을 내세운 검찰은 참사의 원인을 농성자들의 시너 투기와 화염병 투척으로 간주하고 농성자를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키고자 '전국철거민연합회'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하고 법정으로 끌어냈다.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하는 조합과 시공사에 대해 불순한 외부세력이 개입해 불법시위를 자행하고 정당한 공권력집행을 방해하다가 급기야 경찰까지 숨지는 참사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주장은 이렇다. '급박한 불법상황을 해결하고자 경찰특공대를 조기 투입한 것은 정당했다. 경찰특공대의 투입은 화재 발생과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으며 화재는 경찰의 지배 영역 밖에서 일어났다. 용산 제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전철연이 망루 농성에 배후로 개입하여 폭력시위로 발전했다.'
'철거용역업체의 불법행위란 기껏해야 연기피우고 물대포를 쏜 정도니 단순폭행에 불과하다. 삼성물산, 포스코, 대림산업 등 시공사는 철거용역을 발주했다하더라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 검찰의 정의는 그것이다. 본체는 놔둔 채 지엽 말단에 목매는 검찰의 정의는 그것이 전부다.
그러나 참사의 원인, 그 근본적 발화점은 망루 바로 밑에 있지 않다. 가난한 세입자 문제, 생계의 문제 나아가 생존권과 인간 존엄권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반헌법적 개발 사업이 발단이다. 세입자의 생존권과 관련된 보상 협의를 하면서 조합과 시공사, 정부는 정보나 협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하면서 세입자들의 이의 제기에 경비용역업체를 앞세워 협박과 폭력으로 응수했다.
대다수가 세입자인 재개발 지역에서 결국에는 다수의 영세 가옥주와 세입자들을 개발 유랑민으로 전락시키는 재개발 사업이 원주민 주거 안정이라는 근거법의 취지를 위반했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지역 주거 및 생활환경 개선 목적의 도심개발사업이 민간사업자들의 투기의 장으로 전락했고 공권력이 투전판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건설재벌로 구성된 시공사도 살인적 강제철거의 또 다른 공범이다. 경비업법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불법업체에 불법 철거를 발주하고 용역업체로 하여금 폭력적인 수단을 행사하도록 지체보상금 계약을 체결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용산 제4구역 재개발 사업은 사업비만 28조 원에 달하는 용산권 역세권 개발 사업의 일부이다. 건설재벌이 모두들 달려들고 있다. 게다가 금융기관도 개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개발과정을 투기 상품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건설재벌과 금융 투기 세력은 합작하여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가난한 원주민을 투전판으로부터 밀어내는 것을 공동의 목적으로 삼는다. 헌법원리인 사회국가원리와 법치국가원리를 근저에서부터 흔드는 반헌법적 개발사업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 그것이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의 첫 번째 과제이다.
▲ "경찰의 살인 진압은 막가파식 개발 사업과는 전연 별개인 또 다른 불법이다." ⓒ뉴시스 |
경찰의 살인 진압은 막가파식 개발 사업과는 전연 별개인 또 다른 불법이다. 개발 사업 자체가 반헌법적 성격을 띤다고 해도 그것이 경찰의 불법적 진압 행위를 당연히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의 진압작전은 이 땅의 법치주의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테러 등 특수범죄 진압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 준군사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것은 법령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요구되는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진압 시 지켜야할 안전수칙은 무시됐다.
화재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규정에 위배하여 강제 진압을 실시한 것은 명백히 과잉진압으로 철거민의 사망에 대해 경찰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법 철거 용역 업체가 경찰과 합동으로 공권력의 주체로 등장한 것은 경찰이 범죄 단체로 전락했음을 뜻한다. 용역업체 직원이 온갖 폭력을 행사하도록 경찰이 묵인한 데서 더 나아가, 불법 용역 업체 직원이 진압작전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경찰과 합동으로 물대포를 발사한 순간 법치국가원리는 소실되었다. 경찰의 살인 진압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의 두 번째 과제이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빈민대책위원회'는 2009년을 강제 철거 금지의 원년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입자를 포함한 개발지역 주민들의 주거권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순차적으로 재개발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주민의 인권이 시공사나 조합의 개발 이익보다 우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합과 철거업체 사이의 계약을 포함하여 철거업체의 불법폭력행위에 대한 감독권한을 강화하여 용역 폭력을 척결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개발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개발이익을 환수해야 한다. 이미 지난 2월에 55개 시민·환경·주거단체들이 결성한 '토지주택공공성네트워크'는 '뉴타운-재개발 5대개혁입법안'을 제시했다. 철거현장에서 용역업체들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경비업법 개정안, 세입자 대책 수립 후 재개발을 가능하게 하려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인권침해 없는 철거행정을 위한 행정대집행법 개정안, 철저한 이주대책 및 대안 없는 강제철거를 근절하는 공익사업법 개정안 그리고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확충하는 임대주택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다시는 용산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는 정의의 세 번째 과제이다.
정의의 세 가지 과제가 실현될 때 헌법의 다음 표현은 살아있는 가치를 지닌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정의가 없으면 평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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