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말을 아껴왔던 단병호 전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민주노총의 위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지난 6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노동포럼 '양대 노총에 듣는다' 두 번째 시간에서였다.
임성규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발제와 질의가 이어지는 노동 포럼 3시간 동안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말을 아꼈다. 주위에서 한 마디만 해달라는 요청도 웃음으로 거부했다. 포럼이 끝날 즈음 입을 연 그는 "지금의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는 사건의 본질을 잘못 짚고 있는 것 아니냐"며 민주노총의 혁신 방안을 비판했다.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렇기에 그의 충고는 따끔하지만 애정 어린 충고일 수밖에 없다.
▲ 단병호 전 민주노총 지도 위원 ⓒ연합뉴스 |
민주노총은 지난 2월 성폭력 사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에 당초보다 활동기간을 일주일 연장시킨 성폭행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오는 12일까지 진상 규명과 더불어 사건 재발 방지 및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대책을 제출한다.
성 평등문화 혁신과 더불어 민주노총은 12일 혁신대토론회 원탁회의를 열고 이를 통해 모아진 중지로 혁신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혁신위원회는 4월에 탄생하는 신임 보궐지도부가 바로 혁신사업을 전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민주노총이 아직 위기의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쓴 소리를 던졌다. 그는 "문제를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데 지금 민주노총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지금 민주노총의 상황과 관련해 "현장 조직이 다 무너지고 있고 조직의 통합성 또한 무너지고 있다"며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이러한 혁신 과제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안 한다"며 "이것은 얼핏 봐도 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체적으로 합의해 왔던 근간인 민주노조라는 개념이 다 허물어졌다"며 "지금의 민주노총은 민주노조라는 '사슬'로 노동자를 묶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단 전 지도위원은 지금의 민주노총을 두고 "민주노조를 외치지만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가슴 떨리는 조직은 아니다"고 단정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으로 단 전 지도위원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고민 부족"을 꼽았다. 그는 "(민주노총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 차는 평균 4배이고, 많게는 8~9배 차이가 난다"며 "이런 조직 구성의 차별성을 가지고 민주노총이 어떻게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민주노총 스스로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례로 외국 사례를 들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비정상적인 조직 구성을 가지고 있다"며 설명한 뒤 "노동자 중 정규직 노동자의 20%가 조직화 된 것은 세계 평균 23%와 비슷하지만 반대로 비정규직은 3%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외국의 경우 비정규직은 15%~20% 정도 조직화됐다고 단 전 지도위원은 주장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조직 확장이 안 된다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운동은 발전 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욕심 같으면 민주노총이나 연맹에 최소한의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올인해야 한다"며 "지금의 차별을 민주노총이 나서서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럼 비정규직에만 올인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자기 혁신도 못하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다 알고 있지만 하지 않아서 문제"라고 거듭 주장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이미 민주노총의 도덕성은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땅에 떨어졌다"며 현장 내 각종 비리와 중앙임원의 사퇴가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이를 두고 "여전히 위기라고 말하면서 실질적인 위기의식은 없는 것 아니냐"며 "매도 많이 맞으면 처음 맞을 때보다 덜 아프듯 지금의 민주노총도 그런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젠 사는 문제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죽는다는 걸 의식해야 한다"며 "살기 위해선 어떤 사안을 만들어 내고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직선제는 반드시 재검토 돼야 한다" 이날 포럼에서 나온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오는 12월로 예정돼 있는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였다. 민주노총은 이 선거에 유례없는 총연맹 위원장 직선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12월에 진행되는 직선제는 반드시 재검토 돼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우선 "직선제는 총연맹이라는 조직에 맞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단 전 지도위원은 "민주노총은 연맹의 연합이기 때문에 단위사업장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며 "만약 직선제를 하려고 한다면 민주노총의 역할과 위상을 그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지도부가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건 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고민에서 나온 듯 하다"며 "하지만 현재처럼 (노동) 현장이 죽어버린 상태에서는 직선제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단 전 지도위원은 "직선제를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만 분명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단 전 지도위원에 따르면 민주노총 대전 지역본부의 경우 직선제를 도입했다가 지도부가 4~5년 동안 공백기로 있었다. 민주노총 창원 경남 본부도 직선제를 실시했다가 문제가 생겨 고소,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사무금융연맹도 약 10년 전 직선제를 도입했다가 문제가 발생해 다시 간선제로 변경한 바 있다.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지역이나 연맹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던 직선제를 거대 조직인 민주노총에서 실시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그렇게 된다면 민주노총은 돌이킬수 없는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단병호 전 지도위원은 마지막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만들고 전 조직적으로 합의를 만드는 것을 해야 한다"며 "지금의 위기 속에서 그렇지 않으면 '아, 옛날이여' 하며 무용담만 늘어놓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고 당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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