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불명예스러운 총사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도부는 물러났지만,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드러낸 민주노총의 위기까지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의 문제가 안팎으로 심각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듯이 민주노총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전·현직 노동운동가를 만나 20년 민주노조운동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민주노총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정인열 코스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에 이어 마지막으로 현장 조합원 3명의 좌담을 연재한다. 릴레이 인터뷰 정리를 위한 좌담에는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강석도 전교조 안산광덕초 분회장,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장이 함께했다. <편집자> |
마음이 다를 리가 없었다. "위기가 거의 해일수준으로 덮친" 이번 성폭행 사건에 대해 안타깝고 속상하고 또 그래서 더 날카로운 것은 세 사람 모두 하나였다. "민주노총이 깃발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지도부 총사퇴는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할 때 "쉬쉬하면서 방치했던 책임은 어찌 보면 총사퇴로도 모자라지 않나 싶기도 하다"고 했다.
그리고 각각 자기 현장에서 느낀 민주노총의 모습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지난해 90일 넘게 단식을 했던 김소연 분회장이 "당시 공대위가 홍준표 원내대표도 만났는데 민주노총 위원장과 금속노조 위원장만은 끝내 못 만났다"고 털어놓자 현정희 의료연대분과장은 "듣고 보니 민주노총의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놀라워했다.
"과거에는 전교조도 굉장히 역동적이었다"는 강석도 분회장의 말에 김소연 분회장은 "조합원들의 평균 연령대는 높아졌는데 신규 조직은 별로 없다"고 함께 걱정했다. 그리고 현정희 의료연대분과장은 "조직 내의 심각한 토론을 거치더라도 비정규, 영세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를 위해 과감한 방향 전환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털어 놓는 단편 단편의 얘기들을 가만히 짜맞추다 보면, 오늘 민주노총의 위기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때로는 과거의 경험으로 투쟁을 통제하려 하고", "아주 기본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조차 가르쳐주지 않으며", "병원에도 있는 응급실은 없고 절차가 굉장히 중요한" 지금의 민주노총은 이들의 희망대로 다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현장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지도부가 그들을 재단하지 않으면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이들의 마음을 '윗 분들'이 얼마나 헤아리느냐에 달렸다.
다음은 지난 24일 진행된 좌담의 전문이다.
해일처럼 덮친 위기…"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싶다"는 조합원들
▲강석도 전교조 안산광덕초 분회장 ⓒ프레시안 |
강석도 :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지 13년이다. 이번 사건을 들으며 "올 것이 왔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바로 전 집행부도 비리 사건으로 중간에 물러났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또 그렇게 됐다. 사건 이후 다른 전교조 조합원과 통화를 했다. 그는 대뜸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이대로 놔두면 안 되지 않냐"며 "선배는 뭐하고 있냐"고 하더라.
그만큼 이번 사건은 생각 있는 조합원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사실 어찌 보면 민주노총의 위기는 꽤 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위기가 거의 해일수준으로 덮쳤다. 그게 현장에 있는 활동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소연 : 투쟁 오래하면서 민주노총과 관련한 비리 사건 등을 여러 번 접했다.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 문제는 처리 방식이다.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민주노조운동의 성격이다. 우리의 실수가 저들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 예방과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번 비리 사건이 터진 뒤에 제대로 된 반성도 없이 같은 집행부가 또 들어섰다. 개인적으로는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선거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 선정적인 보도가 참 많아서 속상했다. 그래도 우리 조직 아닌가. 비록 좀 억울한 면이 있고, 언론의 비난이 과했지만 빌미 제공은 우리가 했기 때문에 반성이 우선이다.
현정희 : 요즘 택시를 타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택시 기사가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민주노총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리곤 바로 "어떻게 그런 일을 막아야하는 곳에서 그럴 수가 있냐"고 안타까워한다.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더 실망한 것이다. "정말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하면 그 다음 반응은 "그게 미안하다고 해서 될 문제냐"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런 일의 발생 자체를 100% 막기는 어렵지만 민주노총답게 처리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밖에서 보기엔 더 폐쇄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일반 직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훨씬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에 나도 성폭력 사건 진상조사 위원을 한 적이 있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피해자은 훨씬 더 힘들어 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가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양쪽 다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피해자 중심주의가 중요하다.
"관성의 반복을 관료라고 한다"
프레시안 : 사건 자체보다는 민주노총의 처리 과정에 대한 비판이 참 많았다. 피해자 중심주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이었다.
강석도 : 솔직히 자존심 상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민주노총이 사회의 문제 해결 집단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검찰, 경찰의 사건 처리 방식을 늘 비판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내부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에 결과적으로 넘어가 버렸다.
김소연 : 그래서 더 감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발생한 문제를 두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길이 올바르게 해결하는 방법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피해자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 해결을 못 했다. 의지가 있었는지를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 하부영 전 울산본부장의 <프레시안> 인터뷰를 보니 이석행 위원장이 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 또 한 번 충격이었다. 결국 일부 집행부가 "버티면 잠잠해지겠지"라는 관성으로 위원장에게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관성이 반복되는 것을 관료라고 한다. 그것을 끊어내지 않으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
▲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 ⓒ프레시안 |
현정희 : 노동조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조합원들은 "우리 조직을 어떻게 볼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그래서 더 빨리,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나중에 "지난 번 사건도 별 문제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안이함으로 이어진다.
"이 일로 깃발 내리는 건 과도하지만, 지도부 총사퇴는 당연한 결론"
프레시안 : 결국 핵심 간부의 잘못으로 지도부가 물러났다. 여론이 안 좋아 총사퇴를 하면서도 일부에서는 "그럴 일은 아닌데…"라는 억울함도 있는 듯하다.
강석도 : 총사퇴는 당연하다. 오히려 빨리 결단하지 못했던 것이 언론에 2차, 3차 보도가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총사퇴로 해결할 수밖에 없지만 '민주노총이 깃발 내려야 하지 않냐'는 지적은 과도하다고 본다.
김소연 : 역으로 나는 민주노총이기 때문에 총사퇴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현정희 : 사건을 쉬쉬하면서 방치했다. 이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고 총사퇴는 당연하다. 오히려 어찌 보면 사퇴로도 모자라지 않나 싶기도 하다. 다만 원칙에 따라 처리 과정을 밟았다면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으리라 본다. 사퇴했으니 책임질 것 다 졌다는 태도가 아니라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중요한 과제다.
"민주노총은 논의 따로, 결의 따로, 집행 따로다"
▲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장ⓒ프레시안 |
현정희 : 민주노총이 오래 전부터 심각한 위기라는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민주노총 대의원이기도 한데, 대의원대회를 보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늘 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전부가 아닌데 총연맹부터 다수결 원칙 만으로 민주주의를 대신하려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수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위한 고민은 없다.
또 민주노총은 논의 따로, 결의 따로, 집행 따로다. 총연맹의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탓인 듯하다. 내셔널센터의 역할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없었다. 단위노조부터 산별연맹의 상황이 민주노총으로 모아지는 것은 맞지만, 산별연맹이 해야 할 역할을 민주노총이 받아만 놓거나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총연맹의 역할이 합리적 설명도 없이 배제된다.
프레시안 : '논의 따로, 결의 따로, 집행도 따로'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단위노조부터 산별노조, 총연맹의 사업계획이 다 똑같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어디서부터 그렇게 된 것일까?
김소연 : 역할을 나누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역할을 나누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왜냐면 전경련이 기업을 대표하듯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계를 대변하는 곳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단위 사업장 요구를 그대로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런데 전체 노동자의 투쟁도 실천이 따르지 못했다. 이는 민주노총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별, 단위노조의 문제기도 하다.
이석행 집행부는 '준비된 파업을 하겠다'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결국 대중의 요구에 의해 총파업을 몇 번이나 선언했는데 정작 많은 조합원은 (총파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공수표를 남발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못했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파업은 몇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투쟁사업장에 있다. 투쟁 사업장 조합원들에겐 자기 일만큼 급한 것은 없다. 실제로 보면 같이 구호를 외쳐도 연대하러 온 사람들은 당사자보다 구호가 느리다. 마음이 급하니까 구호도 빨라진다.
총연맹은 그런 우리에게 '아마추어'라고 한다. 자신들의 오랜 노동운동 경험으로 현장 조합원을 재단하는 것이다. 투쟁은 고정된 것이 아님에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해서 그렇다. 단위노조에서 투쟁을 제안하면 총연맹은 어떻게 하면 더 크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고 "그 요구는 너희 힘에 비해 너무 과하다"고 한다. 절박해서 뭔가를 얘기하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 어려움을 먼저 얘기한다. 이런 식은 심하게 말하면 투쟁의 통제다. 바로 이 지점에 민주노총의 위기가 쌓여 온 것 아닌가.
상층이 현장과 멀어졌다. 현장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용산 투쟁이 더 크게 확대되지 못한 것도 민주노총이 관성화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 명동에서 투석전이 벌어지자 논란이 생긴 적이 있다. 투석전까지 해야 하냐는 일부의 말에 한 시민이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새 투쟁하고 있는 기륭 우리도 너무 고통이 곳곳에 많으니까 어찌 보면 고통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어려움이 너무 많아 '이 정도야 뭐'란 생각이 있는 것 아닌가 나도 많이 반성했다.
내가 단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식이 30일, 40일이 넘어가는데 촛불 시민들이 참 많이 찾아왔다. 그들에게는 단식이라는 것이 생소하고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굶어?"라는 충격이다. 그런데 조직 대오에게는 단식 30~40일? 기본이라고 보는 것이다.
물론 금속노조도, 민주노총도 찾아왔다. 찾아와선 "민주노총이 힘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안타까웠다. 그런 얘기할 때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 이해도 된다. 하지만 어렵다고 한 발 나아가기 위한 고민은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현실에 머무르고 안주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위기를 만든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민주노총 전체의 위기는 아니다. 지도부가 주인이 아니라 80만 조합원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강석도 :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일제고사를 막기 위한 싸움이 2007년 처음 부천에서 시작됐다. 교육장이 개학하자마자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험을 친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아직 일제고사 논란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부천 전교조 조합원들은 방학을 반납하고 싸웠다. 1인 시위도 하고 면담도 했다.
그런데 전교조 본부에서는 제대로 결합하지 않았다. '방학 때는 싸우기가 쉽지 않다, 실효성이 없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이다. 결국은 몇 군데 학교에서는 시험을 보고, 몇 학교에서는 파행이 있었다. 그 과정이 방학을 반납한 조합원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믿을 곳이 없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었다. 본부나 지부에서 같이 결합해 전국적으로 시행될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려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에 따라 지난해 일제고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것을 보면서 패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민주노총 혹은 산별노조가 자꾸 정리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 주체는 싸우려고 하는데 지도부가 나서서 싸움을 정리하고 축소하려고 한다. 그것이 민주노총 전체에 확대되는 것 아닌가 싶다.
"예전의 노동운동 경험으로 지금의 투쟁을 조절하려는 것은 문제다"
프레시안 : 코스콤 정인열 부지부장도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했었다. "민주노총이 부담스러운 투쟁은 안 하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김소연 : 1000일 넘게 싸운 기륭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에게 (민주노총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한 적은 결코 없지만, 무엇을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한 적도 없다. 자신들은 절박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자신들의 예전의 경험으로 투쟁을 조절하는 것이다. '저렇게 하면 승산이 없다'는 논리다. 현장에 있는 사람을 지엽적인 시각을 가진 아마추어로 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온다. 자기들은 딱 보면 판이 보이니까 지금은 이 정도만 해야 한다는 것이 있을지 모르나, 위험한 생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쟁은 역동적이고 움직이는 것인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갈 생각은 없이 조절만 하려고 한다.
이랜드 투쟁 때도 그런 아쉬움이 많았다. 하이닉스, 하이스코 등 그 전에도 비정규직 싸움은 많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전국적 이슈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당연히 민주노총이 그 싸움에 집중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나는 이슈를 좀 넓혀보자고 제안했었다.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 이랜드 문제만도 해결이 어려운데 다른 얘기까지 들어가면 더 정치적이 돼서 해결하기가 더 쉽지 않아 진다는 이유였다. 이랜드로만 모든 힘을 모아야 돌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단위노조는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랜드를 기본으로 해서 비정규직 전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기폭제로 투쟁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투쟁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반대로 지난해 기륭 투쟁은 본조직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전반적 투쟁을 관장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회단체가 결합해 공대위가 중심이 됐고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 이후에 기륭 공대위가 비정규 문제 전반을 다루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유의미한 과정이었다. '사실 이런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 "민주노총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랜드를 기본으로 해서 비정규직 전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기폭제로 투쟁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투쟁을 협소하게 만들었다."ⓒ프레시안 |
"홍준표도 만났는데, 이석행 위원장과 정갑득 위원장은 못 만났다"
당시 기륭 공대위에서 우리 문제를 풀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심지어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까지도 면담을 했다. 그런데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너무 바쁘다는 이유였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아무리 단위노조의 문제여도 간절히 원하면 시간을 내서 함께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
일부에서는 다른 단체와 연대 사업을 할 때, 민주노총이 다소 고압적인 자세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민주노총에서 온 사람은 무조건 '가서 논의해보고 다시 알려주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결정을 민주노총 중심으로 하려는 것은 연대의 자세가 아니다.
현정희 : 김소연 분회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민주노총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구나'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한 번 두 번의 문제가 아니다.
2004년 44일 동안 서울대병원이 파업을 할 때 산별 조직 문제와 엉켜 이거야 말로 민주노총이 산별 원칙에 대해 같이 논의하고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이수호 위원장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꼭 좀 같이 논의하자고 해서 공문도 수차례 보내고, 바쁘다고 해서 직접 위원장, 사무총장이 있는 곳까지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병원에도 응급실이 있는데, 민주노총은 절차를 너무 따진다"
김소연 : 절차를 굉장히 많이 따진다. 절차를 밟았나, 누구랑 얘기했나, 연맹이나 산별노조와 먼저 논의했는가, 이런 것이다. 절차가 복잡해서 우리 같은 현장 단위는 정말 어렵다. 절차를 밟다 보면 상황은 이미 종료된다.
병원도 응급실이 있다. 절차 밟다보면 환자는 제때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투쟁 사업장도 응급조치가 필요하니까 민주노총도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민주노총 입장에서는 '그런 사업장은 너무 많다'고 한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다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노동부 지청장 만나려고 절차 밟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강석도 : 얘기를 들어보니 교장 선생님과 똑같은 듯하다. (웃음)
김소연 : 관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총연맹? 너무 고여 있다. 그러니 실상을 모른다. 현장을 모른다. 순환이 돼야 하겠다. 현장 상황은 계속 변하는데 사람은 고정돼 있다. 그런 결단도 민주노총이 해야 할 때 아닌가.
현정희 :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된 정규직 중심의 활동을 하면서 총연맹부터 산별노조까지 노동조합의 주요 활동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조직율은 90년대 초반부터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총연맹의 역할은 조직을 확대하는 것으로 정확하게 둬야 한다. 물론 조직의 대상은 가장 열악한 밑바닥 노동자를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존 조합원을 관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 아닌가.
민주노총은 시작할 때부터 산별 운동을 조직 발전의 기본 방향으로 정해 놓았다. 지금도 70% 이상이 산별노조다. 그런데 우리가 왜 산별 운동을 하는가?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산별은 기존 정규직 중심에서 기업의 차이를 넘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오직 조직 통합이라는 형식만 고민하고 정신은 놓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강석도 : 활동가 재생산 구조가 전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내가 전교조에 가입하고 받았던 교육은 학교 교육과 관련된 연수에 덧붙여 관리자들과의 단협을 어떻게 체결하나 그런 것이 전부였다. 자주, 민주, 투쟁, 연대, 변혁중심성이라는 민주노조 운동의 5가지 원칙도 조합원이 된 지 10년이 지나 외부 노동단체의 강의를 통해 처음 배웠다. 그만큼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
운동한다는 사람들은 기능적, 실무적인 것에 매몰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운동은 바로 그 기능적, 실무적인 것에 매몰돼 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도 단협 속에서 문제를 풀려고만 한다.
전교조의 현재 가장 큰 딜레마는 곳곳에서 단협이 해지되는 상황이다. 결국 단협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셈이다. 더구나 교육의 가장 큰 문제인 일제고사는 결코 단협으로 풀 수 없다. 기존의 방법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교육비 문제도 마찬가지다. 실무 과정을 통해 실리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인식은 넘어서야 할 때 아닌가 싶다.
▲ "활동가 재생산 구조가 전혀 없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현정희 : 나는 1989년에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5대 강령 정도는 조합원이든 간부든 처음에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임금이 무엇인지, 임단투는 왜 하는지 등도 아주 기본적인 교육 내용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놓치고 확인도 못하는 수준이구나 싶다. 너무 기본이라서 잊고 넘어간 탓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기능적으로 접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조합원에게 '노조에 가입하면 이런이런 것이 좋아진다'를 중심으로 교육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조합원은 나이를 먹는데 민주노총은 '사람'은 고여 있다"
김소연 : 바로 그 지점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조합원은 당장 내 이익을 따지고, 기능적일 수 있다. 다만 간부들은 그에 부합하면 안 되고, 그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그러지 못했다. 선거에 나가 당선이 돼야 하니까 조합원의 요구 수준에 맞추는 것이다. 그 이상을 하면 조합원이 크게 호응을 안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머무르면 단순한 이익집단밖에 안 된다. 그것이 결국 비정규직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단지 조합 활동이 아니라 노동운동적 관점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 아닐까.
강석도 : 내가 40대인데, 50대의 대선배들이 우리에게 아쉬움을 많이 얘기한다. 해직 교사 선배들인데, 당시 전교조는 굉장히 역동적이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그때는 소모임이 참 많았단다. 놀이 모임, 학습 소모임 등 다양한 모임이 활성화 돼 있었고 그것이 바로 전교조의 자산이었다. 국민의 신뢰도 지금보다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참교육 운동은 따로, 제도 개선 운동은 따로다. 선배들은 '옛날에는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고 얘기한다. 오히려 합법화되면서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교조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다.
김소연 : 거기에 또 하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조합원의 평균 연령대가 높아졌다. 중심이 40대~50대다. 노동운동 경력 20년 되면 '아, 이쯤이면 정리되겠다'는 것을 다 안다고 한다. 조합원이 지도부 머리 위에 있는 것이다.
신규 조직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다. 비정규직이 조직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없다. 역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40대~50대 조합원에게 싸우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조직화가 안 되고 계속 고여 있으면 민주노총의 혁신도 없는 것이다.
현정희 : 통계로도 확인되는 문제다. 100인 이상 사업장은 이미 거의 다 조직돼 있다. 반대로 100인 미만이나 비정규직은 조직이 거의 안 돼 있다. 이제는 그쪽으로 발길과 눈길과 재정을 확실히 돌리지 않으면, 노동운동도 시한부 인생이 된다. 심각한 토론을 거치더라도 과감한 방향 전환과 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다소 저항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질병을 치료할 때도 조금의 고통은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오히려 왜 지금 방향 전환이 필요한지, 절실하고 솔직하게 얘기하자. 그러다 선거에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조합원도 알아줄 것이다.
김소연 : 명분이 있기 때문에 그래도 민주노총 조합원이 '비정규직 조직화'를 발목 잡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비정규기금 50억으로 무엇 했는지 평가할 때다"
프레시안 : 무게중심 얘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 같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지만, 비정규직 조직화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야 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잘 안 될까?
김소연 : 패배의식이 워낙 강하다.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와 같은 생각이다. 예를 들면 "불법파견은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기륭전자가 처음이었다. 불법이니까 당연히 직접 고용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은 상식인데, 어느새 우리도 많이 경도돼 있다. 워낙 많으니까 우리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정규직화는 무리한 요구'라고 보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조직한다고는 하는데 체감으로는 잘 못 느낀다. 이유는 비정규직을 조직하겠다면서 정작 비정규직 사업장에서 투쟁이 벌어지면 '그저 한 사업장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승부를 봐 성과를 내야 한다. 물론 승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과정을 볼 것이다. 그것을 많은 노동자도 지켜볼 것이다. 그런데 상급 단체 간부들이 너무 결과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신감의 부족을 극복하지 않고는 안 된다. 투쟁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고 "할 수 있어"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간부들이 자꾸 "안 된다"고 하니까 조합원들은 "총연맹은 뭐냐"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사실 비정규직기금 50억 등 돈은 많이 배정했는데 돈 투자해서 활동가 몇몇 교육시킨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조직화가 간부 몇 사람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조직된 비정규직의 의견도 듣고, 조직화 방법도 함께 찾아야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같이 얘기해보자는 제안을 받아본 적 없다. 기금도 모으고 활동가를 배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현정희 : 민주노총이 비정규직기금 50억 계획을 세웠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참 흔쾌히 그 운동에 같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평가를 잘 해볼 필요가 있다. 취지에 동의한 많은 사람들이 돈만 내고 운용은 민주노총이 알아서 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기금으로 비정규 활동가 교육해 산별 연맹에서 활동하게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는 그 업종에 수년 간 있어도 참 어렵다. 비정규직은 더하다. 경험이 많은 최고참을 보내도 쉽지 않다. 따라서 방식에 대한 재고찰이 필요하다.
▲ "무엇보다 우선, 50억 기금으로 조직화 사업을 한 것에 대해 당장 전 조직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리라 생각한다"ⓒ프레시안 |
돈은 민주노총이 내더라도 구체적인 집행은 산별노조와 지역 본부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돈은 민주노총이 모아서 주고, 계획은 각 조직이 세워야 한다. 다만 서로의 계획에 대해 같이 점검하고 확인해 관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 50억 기금으로 조직화 사업을 한 것에 대해 당장 전 조직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리라 생각한다.
강석도 : 조직적으로 연대조차 잘 안 된다. 학교 비정규직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007년 안산에서 학교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드는데 교섭권도 없어 도교육청을 상대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도교육청이 움직이려면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하더라도 사람도 많고 뭔가 힘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단위들이 전혀 힘을 실어주지 못했다.
당연히 그야말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개인적인 미안함과 뿌듯함만 있을 뿐이고 조직적 성과로 모아지질 않는다. 결국 학교 현장에서 탄압이 들어오니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탈퇴해 버렸다. 누구도 지켜주지 않으니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어느 순간부터 노동운동 지도부도 '엘리트주의'에 갇혀 있다"
프레시안 : 조직화 이외에 민주노총이 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현정희 : 체제와 사회 구조 변화로까지 가야 근본적인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노동조합 운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정치세력화도 중요한데, 그에 대한 총연맹의 역할도 새롭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은 정치세력화 사업이라고 할 때 민노당 가입시키는 것, 돈 내는 것, 선거 투표하는 것이 다였다. 생활 속의 정치, 지역 정치는 없었다. 정치세력화의 개념 정리부터 다시 해야 한다. 물론 진보정당 활동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조합원 본인이 같이 움직이고 같이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의 고립을 타개하는 길도 거기 있다. 그동안은 노조 활동이라는 것이 공장 안에 머물러 왔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뻗어나가야 한다.
김소연 : 나는 밑으로 올라오는 힘을 얘기하고 싶다. 상층 몇 사람, 전문가가 있다고 잘하는 것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세련된 기법을 중시하고, 조합원은 모르는 얘기만 한다. 세련되지 않더라도 밑으로부터 간부들이 올라오고, 상층에서 내려가기도 하고, 사회단체로 나가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새 직장으로서의 상근이 돼 버렸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위기가 있다. 누구는 현장이 가장 말단이 아니고 첨단이라고 말한다. 그 현장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강석도 : 어떤 사람은 '투쟁 만능주의가 민주노총이 신뢰를 잃은 원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현장의 싸움이 길어지는 것은 오히려 지도부의 세밀한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뻥 파업'만 남발했다.
나는 사실 교사이자 학부모다. 아이가 올해 중학교에 들어가다 보니, 학부모 운동에도 관심이 간다. 과거에는 교육 문제는 전교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학부모가 바라보는 교육 문제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급식 문제, 체험 학습 문제, 학교 운영 등 이런 문제가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확장돼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화가 중요하다. 민주노총이 그런 영역의 확대를 주도할 수 있어야 조합원을 대상화하지 않게 된다.
현정희 : 김소연 분회장의 얘기를 듣다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과거엔 노동조합에서 조사 통계는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었다. '조사 없이 요구 없고 요구 없이 투쟁 없고 투쟁 없이 교섭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당연히 임단투 하기 전에는 시장 조사를 해야 했다. 지역마다 물가도 다르니까. 그리고 그 조사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각 조합원들의 양말, 속옷 사정까지 다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이런 것이 지금은 다 간과되고 있다. 총연맹이 알아서 다 자료 만들어주니까 더 그렇다.
20년 전의 그 현장에서부터 힘 있는 노동운동이 됐듯이 다시 지금 우리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다시 희망과 투쟁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노동법 개악 총파업 때 서울대병원노조 위원장이었다. 위원장 된지 얼마 안 됐을 때 총파업 지침을 받았다. 그때 집행부는 몇 차례 토론을 통해 '정리해고 들어오면 민주노조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파업을 결정했지만, 생각보다 정말 많은 수가 파업에 동참했다. 그런 투쟁력은 현장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다만 미리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위기가 기회가 될 것이다.
강석도 : 선거도 있고 직선제도 있는데 그 절차에 매몰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말만 통합지도부라고 하면서 나눠 먹기 식도 아니었으면 싶다.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최대 위기라고 한다. 과거와 같은 투쟁력을 되살릴 수는 없더라도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집행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최우선 아닌가 싶다.
김소연 : 광우병 촛불 때 비정규직 문제가 부각이 전혀 안 됐다. 제기하자고 했지만 민주노총은 '안 된다'고 했다. '과연 이슈가 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여전히 상황을 재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륭전자가 오래 단식을 하고 시청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면서 비정규직이 이슈가 됐다. 헌신을 가지고 하면 된다. 민주노총은 태생 자체가 투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건강성이 있다고 믿는다.
"정규직이 임금 양보하면 망할 기업이 살아날까?"
프레시안 : 잠깐 언급됐던 경제 위기에 대한 민주노총의 대응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을 듣고 싶다.
김소연 : 우리 내부에서도 벌써부터 정규직 양보론 얘기가 솔솔 나오는데, 나는 잘못된 얘기라고 본다. 대체 이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이미 외환위기 때 고통분담 우리가 다 했다. 또 우리가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는가? 정규직도 기득권 아니다. 현대차 아저씨들은 하루도 못 쉬고 일해서 연봉 5000만~6000만 원 겨우 받아가는 것이다. 임원들은 대체 얼마를 받아 가는데?
▲"늘 인건비가 문제라고 하지만, 사실 제조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외환위기 때는 먼저 고용부터 치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임금부터 삭감하면서 치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고용을 칠 것이다."ⓒ프레시안 |
늘 인건비가 문제라고 하지만, 사실 제조업의 경우 인건비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기륭전자는 인건비가 2%수준이었다. 외환위기 때는 먼저 고용부터 치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임금부터 삭감하면서 치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고용을 칠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제대로 받지 못하면 소비를 못 하니 더 어려워진다. 공세적으로 나가야 하는데,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까 수준을 스스로 자꾸 낮춘다. 책임 소재가 분명한데 왜 우리가 책임을 지나?
강석도 : 아빠가 사업을 하다가 가정 경제가 부도가 났으면 아빠가 수습해야 한다. 아들이나 딸에게 수습하라는 것이 말이 되나. 외환위기 때도 그러더니, 또 그런다. 기업과 정부에게 내수 진작과 고용 보장을 위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데, 거꾸로 정규직에게 대책을 내놓으라고 묻고 있다.
김소연 : 결국 저들의 이데올로기에 묻히는 것이다. 임금 좀 깎고 동결한다고 해서 망할 기업이 살아나는 것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공격이 나올까를 잘 살펴봐야 한다. 물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저들은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고, 내부의 단결도 해친다. 노동계가 수용하는 순간 절대로 싸움을 할 수 없다.
현정희 :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이 양보하는 것을 스스로 해법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최저임금제에 대해 저들이 공격을 들어오면, 최고임금제를 얘기할 수 있다. 즉각적인 편의적 대응이 심각한 문제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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