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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 튀어나온 팔다리, 밤새 도지는 통증에도 "사업장 변경 안 돼"…베트남 노동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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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핏줄 튀어나온 팔다리, 밤새 도지는 통증에도 "사업장 변경 안 돼"…베트남 노동자의 눈물

몸 망가져도 이직 못 하는 고용허가제의 덫…"제발 회사를 그만둘 권리를 주세요"

베트남 노동자 레 비엣 민(38·가명) 씨가 "제발 우리에게도 회사를 그만둘 권리를 주세요"라며 울먹였다. 지난 8일 <프레시안>과 만난 그는 자신의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말했다. 불과 2년 전까지 멀쩡했던 몸이 지금 공장을 다니면서 하나둘 고장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키가 174센티미터의 남성인 그의 몸무게는 50kg(킬로그램)이 조금 안 된다. 원래 53kg 남짓이었는데 올해 살이 더 빠졌다. 심한 저체중이다. 골격근량은 약 24kg이다. 30~33kg인 남성 평균에 비해 턱없이 적다.

민 씨가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건 8달 전부터다. 처음엔 목과 어깨 부근에 참기 힘든 통증이 느껴지더니, 통증이 순식간에 허리까지 내려갔다. 지금은 무거운 물건을 들려고 허리와 어깨에 힘을 쓰면 상반신 전체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없던 일이다.

그러는 새 팔과 다리엔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정맥류 증상이다. 그의 팔은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정맥 선이 훤히 다 보였다. 그는 "팔보다 다리가 심하다"며 "발끝부터 허벅지 끝까지 핏줄이 다 튀어나왔고, 통증 때문에 밤에 잠을 자기 어렵다"고 했다.

▲민 씨의 팔과 다리. 레 비엣 민 제공.

그는 중량물을 취급하고 수시로 허리를 쓰는 지금 일을 계속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난 3월 병원 첫 진단을 받은 지 3개월 넘도록 직장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사업주 허락이 없으면 직장을 바꾸기 힘든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일한 지 1년 후 병 얻어... 잔업 최대 118시간도

민 씨는 경기도 안산공단 A 분체(가루) 도장 업체에서 일하는 도장 작업자다. 페인트칠처럼, 철제 구 조물 등에 가루를 분사해 도료(페인트)를 입히는 일이다. 그는 중량물을 일상으로 취급했다. 칠을 해야 할 철제를 직접 쇠고리에 걸고, 고체 도료를 설비에 쏟아 붓는 운반 작업을 병행했다. 하루에 운반하는 도료의 무게는 800~900kg에 달한다.

그는 "도료 운반이 잡힌 날은 4시간 동안 꼬박 20~22kg이 되는 도료 박스를 창고에서 가져와, 하나씩 설비에 쏟아붓는다. 이게 30개 정도 된다"고 말했다. 동시에 사방에 흩어진 도료 가루를 재활용하기 위해 삽으로 긁고 퍼 거름장치에 한 번 거른 뒤 다시 설비에 쏟아붓는 일을 반복한다. 그는 "이건 15번 정도 하는데, 좁은 공간에서 목, 허리를 자주 구부려야 해 통증을 더 느꼈다"고 말했다.

▲민 씨가 운반하는 중량물 예시. 레 비엣 민 제공.

40kg이 넘는 철제 구조물 운반은 몸이 휘청일 정도로 혼자 감당하기 벅찼다. 이런 물건이 수십 개 쌓여 있으면, 그날도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두 명이 같이 들어야 할 만큼 무거운 물건도 적지 않았다. 이를 머리 위 컨베이어 벨트의 쇠고리에 매달아야 했기에 그는 허리, 어깨에 더 큰 부담을 느꼈다.

물량이 적을 땐 연장 근무를 적게 했지만, 많을 땐 한 달 50시간 넘게 잔업을 하면서, 주말 8일 모두 공장에 나갔다. 2024년 9월엔 총연장 노동 시간이 93시간, 10월엔 118시간을 기록했다.

그는 한국에서 8년 가량 일하면서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전까진 기계로 금속 부품을 깎고 다듬는 선반, CNC 업무 등을 주로 맡았기 때문이다. 2024년 5월, '일이 쉽다'는 아는 베트남인의 소개로 지금의 도장 공장으로 옮겼다가, 일한 지 1여 년 만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민 씨가 도장, 운반 업무 등을 하는 모습. 레 비엣 민 제공.

▲민 씨가 청소 작업을 하는 모습. 레 비엣 민 제공.

'아프면 계약 종료될라'… 온몸 파스 바르며 견뎌

그는 지난 3월에야 처음 병원을 갔고 회사에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통증을 느낀지 5개월이 지난 때다. 민 씨는 "E-9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라면 다 안다"며 "회사에서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아파서 쉬면 나중에 계약 연장을 절대 안 해준다는 공포가 항상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3번, 아침, 점심, 저녁에 온 몸에 파스를 바르며 통증을 견뎠다"고 했다.

고용허가제 비자의 취업 기간은 처음엔 3년이다. 이후 사업주가 재고용을 허가해야 최대 1년 10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최장 4년 10개월을 채우고 싶어 한다. 취업 기간 3년 만료를 앞둔 시기, 계약 연장이 되기 전까진 대다수가 아픔이나 부당한 처우를 참는 관행이 형성돼있다.

민 씨는 이 점이 그의 발목을 잡을 줄은 깊이 생각치 못했다. 그는 계약만료를 앞둔 지난 2월 계약을 연장했다. 한국에서 더는 일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이어 3월 몸이 버티질 못한다며 공장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부탁했다. 사장은 '계약 연장 전엔 아프다는 말하지 않고서, 지금 와서 아프다고 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정말 몸이 아파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됐다. 그는 회사와의 논의 끝에 한 달 반 가량 베트남을 방문해 쉬었다. 그리고 5월 복귀했으나, 작업을 시작한 즉시 목, 허리 등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민 씨는 "무거운 걸 들면, 팔에 아무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며 "팔이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다시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으나, 사업주는 '아프면 베트남을 돌아가라. 사업장 변경은 허가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허리가 아파 연장근무를 빼달라'고도 요청했지만, 공장은 거부했다. 민 씨는 5일간 일한 후, 다시 병가를 냈다.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가 지난 6월 5일 발급한 업무적합성평가서 결론. ⓒ당사자제공

병원도 이직 권고, 그러나...

"보존 치료 및 경과 관찰 요함. 과도한 운동, 업무는 증상 악화 가능성 있습니다."(단원병원 5월 소견서)

"근골격계 부담 적은 업무를 할 수 있는 다른 업체로 이직 적극 권고. 일정 기간 현재 업무 불가"(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6월 업무적합성평가서)

민 씨는 회사에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안산 단원병원을 갔다. 그는 △신경뿌리병증 동반한 기타 척추증, 경추 △요통, 요추부 △기타 명시된 추간판 전위 △척추후만증, 경추 등을 진단받았다. 목, 허리의 관절이 손상됐고 척추 뼈 사이 디스크가 밀려나왔고, 주변 조직이 신경줄기를 건드려 통증이 동반된다는 진단이다.

사업주가 이 진단서를 인정하지 않아, 다시 업무적합성평가서를 받으러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도 찾았다. 그리고 6월 "일정 기간 동안은 현재 업무를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부적합 취지의 평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선 퇴사밖에 없다고 결론냈다. 결국 지난 5일 진단서, 업무적합성평가서 등을 모아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사장이 "우편으로 제출하라"며 수령을 거부했다. 그는 문자로 사직서를 발송했다.

업체 측 "연장 계약 전엔 말 안 해, 우릴 속여"

A 업체 관계자는 지난 15일 통화에서 "우리는 (비자) 기간이 끝나면 보내려고 했는데, 이 친구가 연장해 달라고 해서 계약 연장을 한 것"이라며 "비자 연장을 하기 전까지 아프단 얘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약한 기간이 있는데 갑자기 나가버리면 우리도 난처하다"며 "민 씨가 아프다고 하자, 다른 캄보디아인 직원도 갑자기 아프다며 똑같은 얘길 하기 시작했다. 회사로선 (악용될) 선례가 남을 수 있는 일로 간단치가 않다"고 말했다.

'건강 악화가 객관적으로 조사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공장 사업주는 "아픈 거면 연장 계약서를 쓰지 말았어야지, 그전에 아파서 못한다고 했으면 되지 (공장에) 거짓말을 한 게 아니냐"며 "(사업장 변경이 아니라) 쉬면서 병원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리 아프면 다른 일도 못한다.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적합성평가서를 확인했느냐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통화한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회사 측 입장과 관련해 "달리 보면, 2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면서 몸이 축난 건 어떻게 보상해 줄 건가"라 물으며 "이주노동자를 사람보단 돈 벌어주는 기계처럼 생각하니, 고용 연장을 해주는 걸 '베풀어 주는 시혜'로 여기고, '어디 감히 배신을 하느냐'는 괘씸죄를 적용하는 관점"이라고 지적했다.

정 집행위원은 "사업장을 변경할 권한부터, 최초 기간 3년 만료 시 고용 기간을 연장할 권한까지 모두 사업주에게만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며 "정말 많은 병폐가 전국에서 발생한다. '너 하는 거 봐서 해줄게' 식인데, 금품이나 퇴직금 포기를 요구하고 1년 10개월 연장해 주는 경우는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구조에서 몸이 아프다고 회사에 말하면 계약 연장이 안 될 거라는 공포는 당연히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할 고용센터가 직권으로 사업장을 변경해 줄 수 있는 제도가 있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하거나 산재가 입증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드물게 인정되는게 현실이다. 산재 승인을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 도망치거나, 참고 일하는 선택지에 몰린다.

정 집행위원은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질병·부상'도 고용센터의 직권 변경이 가능한 사유 중 하나인데, 완전히 몸이 고장나야 사업장을 바꿔준다는 것"이라며 "이를 일반 산재 기준인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질병·부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고 숱하게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고용 연장 권한과 사업장을 변경할 권한을 사업주에게만 주는 독소 조항을 없애야 한다"며 "이 또한 (지난해 출범한) 고용노동부 산하 외국인력 통합지원 TF 내에서 줄기차게 지적됐지만, TF가 곧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 진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지난 6월 8일 프레시안과 만난 민 씨 뒷모습. ⓒ프레시안(손가영)

3개월째 뜬눈으로 지새워

민 씨는 지난 3개월 간 "통증과 가족 걱정 때문에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말했다. 3월부터 병가가 길었고, 2월 급여도 아직 받지 못해 소득이 없는 동안 지인들에게 빚을 졌다. 고향엔 3살 난 아이와 임신한 아내가 있다. 간암 말기인 장인과 반신 마비 증세가 있는 아버지도 부양한다. 심리적 불안함이 심하다고 그는 말했다.

민 씨는 "우리에겐 왜 일을 그만둘 권리, 회사를 옮길 자유가 없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지난 8일 국민신문고에 사업장변경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는 진정서에서 "노동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회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보호 조치를 취해달라"고 호소했다.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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