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불명예스러운 총사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도부는 물러났지만,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드러낸 민주노총의 위기까지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의 문제가 안팎으로 심각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듯이 민주노총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전·현직 노동운동가를 만나 20년 민주노조운동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민주노총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에 이어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을 만났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정인열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과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편집자> |
최근 여기저기서 사용되는 '뻥 파업'이라는 말은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의 작품이었다. 지난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월간지 <노동사회> 11월호에 보낸 글에서 하부영 전 본부장은 "노동운동은 실패했다"며 "뻥 파업은 그만하자"고 이른바 '자아 비판'을 했다. (☞관련 기사 : 민주노총, 이제 '뻥 파업' 그만하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열아홉 살에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무려 30년 넘게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 온 그의 비판은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하부영 전 본부장이 이번 성폭력을 어떻게 생각할지 특히 궁금했다.
그는 역시 신랄했다. 그는 "조합원들과 국민들은 민주노총의 실력을 다 아는데 우리만 매번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변하지 못했다"며 "거짓과 위선에 가득 차, 자만에 빠진 채로 민주노총은 지금 조합원 위에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합원의 입장에 서지 않고 군림하는 것은 민주노총이 이번 사태를 처리하면서 철저하게 피해자의 입장에 서지 못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는 존경을 받지만 군림하는 지배자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핵심 간부 한 명의 성폭력이 지도부 총사퇴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거짓말을 하는 우리는 진보가 아니라 진정한 보수"라고 민주노총을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조합원들과 국민들은 민주노총의 실력을 다 아는데 우리만 매번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변하지 못했다"며 "거짓과 위선에 가득 차, 자만에 빠진 채로 민주노총은 지금 조합원 위에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레시안 |
그러나 그는 "국민과 조합원의 민주노총에 대한 실망의 이면은 기대"라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이래서야 되겠느냐는 실망은 뒤집어 보면 '제대로 잘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라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했다.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그 이후 사건을 수습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보니 "그래도 민주노총은 다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그는 전태일 열사 정신을 다시 되새김하는 제2의 민주노조운동을 얘기했다. 그런 대대적인 혁신은 보궐 집행부의 임기를 1년 더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와는 관련이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그는 무엇보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의 역할과 기능의 분리 정립"을 강조했다. 단위노조부터 산별노조, 민주노총이 모두 하나의 동일한 사업계획을 갖는 지금의 태도는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총고용 보장 및 비정규직 우선 해고 금지는 산별노조의 역할이고, 민주노총은 자본 그 자체에 개입하는 反자본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
다음은 지난 17일 만난 하부영 전 본부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세상은 민주노총의 실력을 다 아는데 우리만 매번 사기 치려 한다"
프레시안 : 이랜드 파업 건으로 법정 구속되기 전에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간하는 월간지 <노동사회>에 쓴 글에서 '뻥 파업 그만하자'는 얘기를 했었다. 구속된 상태였지만 언론에 뒤늦게 대대적으로 보도된 바 있다.
하부영 : 감옥에서 그 얘기를 듣고 놀랬다. 그 글에서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은 실력과 수준에 맞게 하자는 것이었다. 거품 좀 걷어내자. 지금 민주노총은 현실을 너무 모르고 거짓과 위선에 가득 차 있다. 자만에 빠져 있다. '뻥 파업'이란 그런 의미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국민들과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실력을 다 아는데 우리만 매번 거짓말을 한다. 사기꾼이 돼 버렸다. 그러면서 조합원들이 개인주의가 되서 잘 안 되는 거라고 '조합원 탓'을 한다.
이번 성폭력 사태를 보면서 나는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이번 기회에 그런 거품을 걷어 내고 거짓과 위선을 버리고 진실한 자세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아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다. 이렇게 큰 사건 뒤에 정신 차려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하면, 사람들도 '그래도 민주노총은 다른 곳과는 다르구나'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변하지 못했다"
▲ "민주노총은 지금 조합원에게 또 하나의 지배자일 뿐이다. 스스로 엄청난 힘을 가지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반대만 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프레시안 |
하부영 : 누적된 결과다. 민주노총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지 못해 사태가 커졌다. 이는 그동안 민주노총이 늘 조합원 입장에 서지 못하고 교만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민주노총은 지금 조합원에게 또 하나의 지배자일 뿐이다. 스스로 엄청난 힘을 가지면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반대만 한다. 그러니까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옛 말로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변하지 못했다.
변하자고 해서 산별노조로 갔지만, 내용이 없다. 정파도 마찬가지다. 내용이 없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재창출하는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총체적인 문제가 저런 사건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결과로 드러난 것이다.
지금 조합원 가운데 1987년 이전의, 노조 없이 노예처럼 일했던 시절을 경험한 사람은 겨우 20% 정도다. 망치 맞아가면서 일하던 그 고통스러운 시절을 지금 조합원의 80% 가량은 상상조차 못한다. 이미 만들어진 노조의 멍석 위에서 살아 온 것이다. 간부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절박함이 없다.
'남 탓'할 게 아니라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요즘 조합원 교육할 때 '나부터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세상을 바꾸라고 한다.
"가해자 징계도 '손 들어' 정한다? 그만큼 천박한 수준"
프레시안 : 성폭력 사건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태가 날로 확산되는 동안 민주노총은 계속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것도 '남 탓'의 일환인가?
하부영 : 어제 이석행 전 위원장을 접견했다. 그런데 자기가 왜 사퇴를 했는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더라. 단편 단편만 들었다고 했다. 이 전 위원장은 그 사태 이후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느 날 상집 한 명이 와서 조그만 쪽지에 누구의 무슨 사건 때분에 내부가 시끄럽다고 보여주더니 다음 번 면회 온 사람이 대뜸 '당신 사퇴하시오' 그랬다는 거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사무총장 등을 불러 물어보니 '다 잘 해결될 거다. 걱정하지 말아라'고만 했다고 전했다.
언론에 보도가 나오면서 본인이 들었던 얘기와 너무 다르고 분노가 컸다고 했다. 그리고 법률원 변호사를 통해 얘기를 자세히 듣고 사퇴를 결심했다는 거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과 자책, 분노 이런 것이 큰 듯 보였다. 죽고 싶다는 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다. 형식적 규정만 있었지 이런 문제를 다룰 전문가가 민주노총 내에 없었다. 그러니까 '당사자가 사법 처리 원하지 않는다고 처음에 그랬고, 그 형식에 따라 처리를 했는데 왜 우리가 은폐했다는 거냐'는 원망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처리 시간까지 지연되면서 여기 저기 발설이 됐고 피해자가 분노하게 됐다. 조직 내 처리를 맡겼더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됐다는 분노다. 우리가 미숙한 탓이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성폭력 사건 처리 및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 규정이야 있지만, 전문가들을 불러 보완 자문도 구하고 아주 촘촘하게 매뉴얼을 만들어 현장의 지회 및 분회까지 내려 보내야 한다. 다른 곳에서도 '민주노총의 성폭력 규정은 100점'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사실 지금은 가해자 징계 수위도 몇 명이 모여 손들어 정하는 것 아니냐. 게다가 거기에는 정파 논리도 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작동한다. 천박한 수준이다. 지금 재발 방지 대책을 얘기하지만, 사실 나도 자신 있게 100% 재발은 없다는 얘기는 못 한다. 어디선가 지금 이 순간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내일 모레 또 생길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처리다. 이번 일로 조합원들도 분명히 깨달았다. 이런 일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전 조합원에게 교양된 것이다.
▲ "지금은 가해자 징계 수위도 몇 명이 모여 손들어 정하는 것 아니냐. 게다가 거기에는 정파 논리도 있다. 제 식구 감싸기가 작동한다. 천박한 수준이다." ⓒ프레시안 |
"실망의 이면에는 기대가 숨어 있다"
프레시안 : 현장에 가까이 있으니 이번 일에 대한 조합원의 반응을 많이 접했을 것 같다.
하부영 : 현장은 오히려 차분하다. 비난보다는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나에게 '우리 큰 집이 다 무너지고 절단 났는데 너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하냐, 서울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들 얘기한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제대로 못 한다고 우려도 하고 비판도 했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 오히려 차분하게 빨리 잘 수습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들의 실망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이 이래서야 되겠냐는 실망의 표현은 뒤집어 보면 그 이면에 '잘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숨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에 대해 국민과 조합원의 기대와 희망은 아직 있다.
이 험한 세상에 조합원들은 의지할 곳이 없다. 우리 노조가 잘 해줬으면 좋겠고 큰집, 민주노총이 잘 했으면 좋겠는 것이다. 내 삶이 병들고, 빚더미에 앉아 고통스러울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워낙 못하니까 돌아서고 욕하는 것이다.
내가 농담 삼아 하는 말 중에 '조합원이 가장 진보적이고 우리는 진보가 아니라 진정한 보수'라는 얘기가 있다. 조합원의 원칙은 일관적이다. 잘못했으니 비판하고 책임지는 마음으로 내려오라고 한다. 그것이 진보다. 지도부는 권력이 됐고 기득권이 됐다. 자기 자리 지키기 위해 책임을 피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까 파업 하자 그러면 조합원은 속으로 '에이, 저거 또 뻥이야. 말만 파업한다 그러고 뒤에서 회사랑 다 얘기해서 타협할 거야'고 한다. 이런 불신이 누적된 결과가 현재다.
그런데 조합원 없이는 노조 간부의 권력도 없다. 본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자리라는 것은 사실 뜻을 펼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이나 간부들도 신념과 전망조차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본인도 노동운동에 대한 뜻이 분명치 않으면서 민주노총 간부 입으로 민주노총을 욕하고 다닌다.
권력은 본래 주인인 대중에게 주기 위한 것이지 스스로 차지하고 휘두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년 간 그런 원칙이 다 무너졌다. 지도자는 모범을 보이고 지배자는 군림한다. 그 결과로 지도자는 존경을 받지만 지배자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 "지도자는 모범을 보이고 지배자는 군림한다. 그 결과로 지도자는 존경을 받지만 지배자는 타도의 대상이 된다." ⓒ프레시안 |
"위원장 바뀐다고 민주노총 바뀌지 않는다"
프레시안 :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조합원에게 권력을 돌려주기 위해, 지배자로 군림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시기다.
하부영 : 말로만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해서 그렇다. 지난 20년간 활동가들의 에너지가 이미 고갈돼 버렸다. 지금은 제2의 민주노조운동이 필요한 때다.
내가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위탁 정치 청산하고 직영 정치를 시작하자'고 했었다. 정파들에게 그동안 위탁해 왔는데 주인이 제 행세를 못하니까 머슴들이 다 말아먹고 저희들끼리 싸우다 짐 싸서 나가버렸다.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그런 의미에서 과거와의 단절이다. 분열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조합원들에게 새롭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제2의 민주노조운동도 그 연장선에 있다. 몇 년 전부터 이미 학자들은 87년 체제가 무너졌다고들 했다. 시대는 변화됐다. 노조도 이제는 산별시대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
핵심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이다. 그 정신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연구를 통해 사랑을 했다면 전태일은 실천으로 사람을 사랑했다. 전태일은 대의원대회에서 폭력 쓰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전태일은 비리 저지르라고도 안 했고, 성폭력하라고도 안 했다. 다시 대대적인 전태일 배우기 운동을 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평소에 그런 운동 하자 그러면 잘 되겠나. 모두가 충격 받은 이때에 해야 한다.
집행부가 물러났지만 위원장만 바뀐다고 민주노총이 바뀌지 않는다. 형식일 뿐이다. 산별시대도 마찬가지다. 질적 전환은 없고 조직만 바꿨다. 물론 초창기긴 하지만 지도자는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또 산별시대 노동운동으로 간다면서 그에 걸맞게 민주노총의 역할과 기능과 산별노조의 역할과 기능을 분리 정립했어야 한다.
지금은 단위노조의 사업 계획이나, 산별노조의 것이나 민주노총의 것이나 모두 똑같다. 말이 안 된다. 외국은 내셔널센터과 단위노조의 역할을 엄밀히 구분한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그 고유의 역할에 집중하고 산별은 산별대로 가는 것이다. 단위노조 운영 방식으로 내셔널센터에까지 고스란히 가져오다 보니 위원장 직선제가 나온 것이다.
프레시안 : 위원장 직선제는 안 된다는 말인가?
하부영 : 사실 직선제를 하려면 하나의 단일한 노조로 만들어야 한다. 유럽은 기본 60만~70만 명을 하나의 노조로 본다고 한다. 조합비 문제도 있고 투쟁 계획도 그 정도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떠나서, 지금 직선제가 가능한가에 대해 나 역시 자신이 없다. 산별노조 위원장들도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의 문제가 과연 직선제를 안 해서 생긴 것이냐는 회의감도 있다.
선거 제도가 오히려 문제다. 부위원장의 경우 후보들을 죽 줄 세워 놓고 대의원들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투표를 한다. 고문이다. 투표 과잉은 민주주의도 아닌 흉내 내기일 뿐이다. 차라리 위원장과 사무총장 등을 뽑고 나머지 부위원장은 위원장이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 정무직으로 바꿔야 한다.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함께 집행하기 위해서다.
"산별노조의 역할과 총연맹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프레시안 : 직선제에 앞서 일단 보궐 선거를 치러야 한다.
하부영 : 총사퇴하고 하는 선거에서 또 정파들이 경쟁하는 것은 창피하다. 통합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
보궐 지도부의 임기 연장에 대해서는 아직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장단점이 물론 다 있다. 여러 정파들의 집단 지도체제를 통해 민주노총의 고질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8개월로도 충분하다. 앞서 얘기한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의 역할과 기능을 새로 정립하는 것이 바로 총노선의 변화인데 굳이 임기 연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임기 1년 8개월의 안정적인 집행부가 들어선다고 할 수 있는 일을 8개월 임시 집행부가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안도 대응해가면서 대대적인 총노선의 변화를 이루는 것은 비상 대권을 가진 보궐 집행부가 더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분위기는 임기 1년 연장으로 모아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굳이 이 얘기를 하는 것은 다음 집행부가 제대로 혁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임기 1년 8개월의 안정적인 집행부가 들어선다고 할 수 있는 일을 8개월 임시 집행부가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현안도 대응해가면서 대대적인 총노선의 변화를 이루는 것은 비상 대권을 가진 보궐 집행부가 더 잘 할 수 있다. " ⓒ프레시안 |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경제 위기 대응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여러 가지로 외환위기 때와는 또 다르게 쉽지 않은 상황인데,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자를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부영 : 제조업은 이미 잔업, 특근이 다 사라져 임금이 30~40% 삭감된 상태다. 수입의 3분의 1이 줄어들었으면 거덜이 난 거다. 그런데 상급단체는 제대로 문제 제기조차 못 한다. 집집마다 당장 담보 대출이 물려있고 소비도 정해진 수준이 있는데 그런 삶의 상태를 민주노총은 정확히 모른다.
노동운동 20년은 실패라고 내가 했던 것은 조합원의 불행 때문이다. 빚내서 아파트도 사고 자가용도 몰고 다니지만 물질적 향상이 곧 행복은 아니다. 70% 이상이 빚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한다. 결국 노동운동의 좌표와 방향이 잘못 제시됐기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총고용 보장은 산별노조의 역할이다. 민주노총의 요구가 '총고용 보장'이라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일반 서민이 집 때문에 빚더미에 앉아 있다면 민주노총은 부채 탕감을 요구해야 한다. 경제가 어렵다고 정부가 기업을 지원해준다고 하면, 민주노총은 그 기업 감시를 해야 한다. 과연 지원 받은 만큼 고용 창출이 되고 있는지, 법은 지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민주노총의 역할이다.
구조 조정은 필요하다고 본다. 임금도 못 주고 노동법조차 못 지키는 기업은 구조 조정해야 한다. 해고를 위한 구조 조정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 인수·합병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사실 모든 것이 과잉이다. 덤프트럭도 공급 과잉이고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공황은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과잉에서 온다. 본질을 알고 反자본운동에 제대로 개입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역할이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면서 反자본운동 없이 노동운동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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